적성에 안 맞아요
직업은 자아 실현의 수단이다. 그리고 만족스럽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은 삶의 질을 떨어트린다. 처음 일을 배워가는 사회 초년생일수록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생각이 있다. 이 일, 과연 나에게 맞는 걸까? 나의 직장 생활은 이대로도 괜찮을까?
적성은 직업 선택에 중요한가?
입사한 지 3년이 안 된 친구들과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치 데자뷔처럼 같은 장면을 마주한다. 실제 직무에 부딪혀보니, 일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취업 시장이 워낙 꽁꽁 얼어 있다 보니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판단 없이 얼떨결에 합격하는 곳으로 입사하는 경우가 많아 더욱 그렇다.
적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에는 많은 사람이 공감을 표했다.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외국계 기업 재무팀에 다니는 친구 A는 ‘커리어를 설계하려면 일단 일을 계속해야 하잖아. 좋아하고 재미를 붙일 수 있는 일을 해야 그나마 회사생활을 오래 버틸 수 있겠지’라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원래부터 수학을 좋아해서 숫자로 묻고 숫자로 답하는 게 더 쉽고 명확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숫자를 보는 일이 적성에 맞는 것이다. 헤드헌팅 기업 ‘커리어케어’의 정은아 파트장은 같은 질문에 좀 더 명확한 답을 주었다. 적성이 직업 선택에 중요하기 때문에 점점 적성검사를 필수로 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원자 입장에서도 적성이 중요하지만, 직무 테스트를 하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도 직군별로 원하는 구성원의 자질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본인의 성향이 맞는 것은 당연히 중요한 고려 요소지만 기업에서도 적성 검사를 통해 이 사람이 우리와 맞을지 판단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 초년생이라면 하고 싶은 일과 적성 사이의 갭을 좁혀가는 과정도 필요하다. 상담을 하다보면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인사 업무에 어울리는 사람인데, 본인은 영업이나 세일즈를 원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본다고 했다.
책 <커리어를 경영하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직장인은 원하는 직업 속에서 일해야 한다. 그리고 이따금 이를 확인하며 일해야 한다. 오래 근무해도 만족감이 떨어지는 직장인이 많다. 대부분 상사, 고객, 회사, 급여 등에 대한 갈등 상황이 바뀌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물 한 모금으로 허기를 대신할 수 없다.’ 이처럼 적성이 중요한 것은 명확한 사실이지만 또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이직을 고민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 과연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이 이직을 고려할 요건이 될까? 왜 어떤 사람은 이직을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 걸까?
이직, 해도 될까?
친구 B는 자신의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녀는 현재 동종업계에서 알아주는 은행에 다니고 있다. 신입사원 때는 오히려 업무를 깊이 있게 하지 않아서 다닐 만했다고 한다.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건 2년 차가 되어갈 무렵이었다. 금융과 투자를 포함해 숫자를 보는 일에는 아예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평소 자신이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활동적인 성향인 데 비해 은행 업무는 정적이고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성취감이 떨어진다고 느꼈던 것이다. 출장이나 외부 미팅, 행사 기획 등의 업무와 달리 늘 같은 자리에서 뻔한 업무를 하는 게 지겨웠다. 이런 부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어떻게 버티다 보니 일은 점점 익숙해졌다. 주어진 역할을 해내는 데 큰 지장이 없고, 그러다 보니 참고 다닐 만해졌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었다. ‘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처럼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에 맞춰가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한동안은 바빠서 이직은 꿈도 못 꾸다가 최근에 여유가 생기면서 알아보기 시작했지만 그녀의 가장 큰 걸림돌은 연봉과 복지였다. 높은 연봉과 안정된 복지를 포기하고 이직할 만큼 이 일을 죽어도 못하겠다는 단계는 이제 지났고 적은 연봉을 감내할 만큼 새로운 직장이나 다른 포지션이 적성에 맞거나 원하는 일이라는 확신이 없다는 거였다. 또한 회사 내에서 쌓아놓은 인맥, 그리고 나름의 업적 때문에 이제 와 포기하기 아쉬운 부분도 있어 오히려 다른 부서나 지점으로의 사내 이동에 대한 열망이 커진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직을 고민할 때, 핵심은 우선순위를 어떻게 두느냐에 있다.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자기계발, 안정적인 수입 등 직업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 중에 어떤 부분에 가치를 두는가에 따라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 커리어케어의 정은아 파트장은 이직을 고민하는 단계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 몇 가지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우선 열 번을 생각해봐도 ‘이건 아니다’라는 대답이 나오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또, 그만큼의 기회 비용을 지불할 자신이 있는지에 대해서 고려해보아야 한다. 어떤 직장이든 그곳만의 단점은 존재한다. 업무는 흥미로운데 인간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거나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가 맞는데 업무 만족도가 떨어진다거나, 하나를 만족시키면 다른 하나에서 불만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모든 게 완벽한 직장은 환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법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직 후 발생할 문제를 감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장기적인 커리어 플랜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A를 피하기 위해 B를 택하는, 즉, 회피로 말미암은 선택은 이래저래 엉망인 경력을 만들 수 있으므로 지양해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덜컥 사표를 던지기보다는 조직 내에서 변화를 주는 것을 고려해보는 편이 낫다. 사내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아온 사람이라면 그걸 당장에 놓기보다는, 그 평판을 유지하면서 다른 직무로의 도전을 꾀할 것을 권한다.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이 꼭 이직으로 이어져야 하는 건 아니다. 사람들은 일에서 채우지 못한 결핍을 퇴근 후의 취미 생활이나 공부로 보충하며 삶의 밸런스를 맞추기도 한다. 독서모임에서 만난 C는 중견 기업의 관리팀에서 일하고 있었다. 업무에 큰 흥미나 관심은 없지만 퇴근 시간이 규칙적이었고, 야근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니 퇴근 후의 시간이나 주말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었다. 평소 배우고 싶던 운동을 하거나 취미 생활을 하면서 그녀가 선택한 것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참석하는 독서모임이었다. 말이 잘 안 통하는 회사 사람들만 마주하다가 같이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과의 만남은 신세계였다. 잊고 살았지만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던 감성을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그것은 지루한 회사 생활을 이어나가게 하는 버팀목이 되어주었고, 그렇게 삶의 만족도도 올라갔다. 이렇게 적성에 맞는 개인적인 활동을 통해서도 직장 생활은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직업의 본질
사회 초년생의 경우에는 10년 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이 먼저다. 미래를 그려봤을 때, 지금의 경력을 포기하더라도 이직을 하는 게 내가 원하는 10년 후의 모습에 더 가까워지는 것이라면 이직은 충분히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주변에도 적성에 맞는 일을 하기 위해 과감히 직종을 변경한 친구가 있었다. 신문방송학과를 나와 남들이 알아주는 대기업의 홍보팀에서 일했지만 홍보 업무는 그녀와 맞지 않았고, 콘텐츠를 만드는 PD에 대한 열망은 점점 더 커졌다. 무엇보다 일을 통한 성취감을 얻고 싶다는 게 이직을 선택하게 한 가장 큰 이유였다. 간절함은 통했고, 그녀는 신입 공채를 통해 이직에 성공했다. 이직 후에도 팀원과의 갈등, 높은 업무 강도 등 여러 가지 장애물을 마주하고 있다. (역시 상상 속의 완벽한 직장은 없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일이 주는 재미와 뿌듯함을 온전히 그녀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여전히 그걸 위해 다른 외부적인 요소를 감수하고 있으며, 이직을 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을 위한 궁극의 체크리스트
아래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후회는 따를 수 있다는 것을 먼저 인지하고 있을 것. 완벽한 결정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 당신은 충분히 냉정한가? 많은 사람이 실제로 욱하는 마음에 이직을 결심한다.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 스트레스로 인한 충동적 이직은 위험하며, 명확하고 타당한 이유가 없다면 득보다는 실이 더 많다.
☐ 당신이 싫어하는 것 말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회사 생활의 어려움을 버틸 수 있도록 도와줄 중요한 가치 한 가지가 필요하다.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을 찾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싫어하는 것을 피하려고 이직하면 언제든 다시 그 문제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 이직은 스스로 원한 것이 맞는가? 지금 다니는 회사가 자신을 가두기에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나 자신만 뒤처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면, 당신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일 수 있다. 진정으로 본인이 원해서 하는 이직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 당신이라는 상품과 당신을 살 고객을 알고 있는가? 왜 당신을 채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여태까지의 직장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업종에 진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
☐ 해볼 만큼 해보았는가? 스스로 한계를 규정 짓지 말고 자신의 능력과 마음을 다해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노력하고, 그것을 이뤘을 때의 작은 성취감을 느껴볼 것. 지금 할 수 없는 것을 다음이라고 잘한다는 보장이 없다. 현재 몸담고 있는 곳에서 더 배울 것은 없는지 생각해본 후에 옮겨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