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생리대와 탐폰, 면 생리대의 단점을 보완한‘ 생리컵’이 새로운 월경 용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화제의 생리컵, 직접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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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낳는 느낌이 사라졌어요’, ‘쓰다 보니 신세계가 따로 없어요.’ 포털 사이트를 통해 생리컵을 예찬하는 글을 접할수록 호기심이 샘솟았다. ‘ 뭐가 그렇게 좋길래 이렇게 극찬 을 하는 거지?’ 호기심은 곧 폭풍 검색으로 이어졌다. 생리컵은 의료용 실리콘 소재로 만든 종 모양의 여성 용품이다. 속옷에 부착하는 일회용 생리대나 면 생리대와 달리 질 내에 삽입해 컵이 자궁 경부에 흡착되며 생리혈을 받아내는 방식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일반화되어 있고, 국내에서도 입소문이 나며 마니아층이 형성되는 중이다. 덕분에 국내에서 아직 공식 판매되지 않고 있음에도 포털 사이트에 ‘생리컵’을 검색하면 다양한 후기를 찾을 수 있다. 처음에는 생리컵을 삽입하는 게 두려웠지만 사용해보니 움직임이 편하고, 피부가 짓무르거나 축축해지지 않아 생리할 때 특유의 찝찝함이 적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유일한 단점은 해외 직구로만 살 수 있다는 것뿐이라는 의견도 눈에 띄었다.

 

생리컵, 써봤더니
간증 글을 꼼꼼히 읽고 난 후 마우스는 어느새 생리컵을 장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먼저 잘맞는 사이즈를 골라야 했다. 셋째 손가락을 질 내에 넣어 자궁 경부가 만져질 때까지의 길이를 잰 후, 후기가 좋은 디바컵과 레나컵 스몰 사이즈를 구매했다. 해외 제품이라 배송에는 5~7일이 걸린다고 했다. 빨리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이 점점 초조해졌다. 다행히 생리 2일 차 저녁에 기다리던 제품이 도착했다. 난생처음 마주한 생리컵은 생각보다 컸다. 탐폰도 써본 적이 없는데 과연 이걸 질 속에 넣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한번 써보기나 하자’고 용기를 냈다. 처음에는 끓는 물에 컵을 넣어 1 ~2 분간 소독한 뒤 사용하는 게 좋다는 팁을 참고해, 컵을 소독하고 물기를 제거했다. 손을 깨끗이 씻은 다음, 저장해두었던 ‘생리컵 접는 법’ 영상을 참고해 생리컵을 C자로도 접 어보고 7자로도 접어봤다. 컵을 어떤 모양으로 접는지는 중요하지 않은데, 컵의 모양과 경도, 손힘에 따라 맞춰 선택하면 된다. 생리컵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질 입구까지 가기도 전에 손에서 펴지기 일쑤였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후, 드디어 7자 모양으로 접은 생리컵을 질 입구까지 가져가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생리컵이 쉽사리 들어가지 않았다. 스쿼트 자세를 하면 쉽게 넣을 수 있다는 후기를 참고해 다시 도전한 결과, 겨우 생리컵을 질 속으로 집어넣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이물감이 심하진 않았다.

화장실을 나온 후엔 또 다른 불안감이 엄습했다. ‘컵이 질 안에서 잘 펴졌을까? 자는 동안 생리혈이 새면 어떡하지?’ 결국 한 시간도 되지 않아 화장실로 가 속옷이 깨끗한 것을 확인한 후에야 안심하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역시 도전의 연속이었다. 생리컵을 빼야 하는데 꼭지가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부랴부랴 포털 사이트에 ‘생리컵 빼는 방법’을 검색했다. 자는 동안 생리컵이 자궁 경부에 흡착해 다음 날 아침에 빼는 데 애를 먹었다는 후기가 대다수였다. 자고 일어난 후에 바로 빼지 말고, 일상생활을 하다가 중력에 의해 꼭지가 내려오면 그때 컵을 빼라는 팁부터 케겔 운동을 하라는 팁까지. 저마다의 노하우가 가득했다. 케겔 운동을 하니 확실히 쉽게 꼭지를 찾을 수 있었다. 생리컵을 뺄 때는 꼭지를 잡고 살살 흔들면서 컵의 공기를 뺀 후, 생리혈이 새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빼냈다. 생리컵에 담긴 생리혈의 양은 생각보다 적었다. 색깔도 그간 마주하던 것보다 훨씬 붉고 선명했다. 생리컵을 비울 때는 생리혈을 변기에 버린 다음, 생수병을 이용해 생리컵을 물로 깨끗이 헹구고 다시 사용했다.

확실히 편했다. 무엇보다 혈이 왈칵 쏟아지는 ‘굴 낳는 기분’이 느껴지지 않는 것과 젖은 생리대가 피부에 닿을 때의 찝찝함이 없다는 게 좋았다. 물에 들어가도 새지 않는다는 후기처럼 양이 많은 날 사용해도 활동성이 높았고, 불쾌한 냄새도 없었다. 조금씩 생리컵에 대한 신뢰가 쌓여갔다. 생리컵을 넣고 빼는 과정 역시 갈수록 익숙해졌다. 그런데 생리 5일째, 생리혈의 양이 부쩍 준 것을 확인한 후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한 것이 실수였다. 마치 생리를 갓 시작한 것처럼 양이 갑자기 많아진 것이다. 식약처에서 생리컵의 제조, 판매 허가를 받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이지앤모어의 안지혜 대표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저 역시 생리컵을 사용하던 중 생리혈의 양이 적어 일회용 생리대로 교체했다가, 다시 3일 차만큼의 피가 나와서 놀란 적이 있어요. 그래서 이제는 생리 기간 내내 컵을 사용해요. 생리컵을 사용하면 질 벽에 고였다 흘러내리는 혈이 적어서 탐폰, 일회용 생리대보다 컵을 자주 교체하지 않아도 돼요. 그래서 생리컵을 꾸준히 사용한 사람은 일회용 생리대를 다시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죠.” 일회용 생리대는 박테리아 증식의 위험이 있어 2~4시간마다 교체해야 하는 반면, 생리컵은 무균의 실리콘 소재여서 최대 12시간 동안 사용해도 괜찮다. 재사용이 가능해 경제적인 것도 장점이다. 사용 전후에 컵을 깨끗이 소독하고, 교체 주기를 잘 지키면 약 2~10년간 쾌적하게 사용할 수 있다. 질의 탄력이 떨어질까봐 걱정하는 사람도 많은데,  산부인과 전문의에 따르면 질 근육은 생각만큼 쉽게 늘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해외에서는 생리컵 사용을 통해 케겔 운동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렇게 장점이 많은 생리컵이 왜 한국에서는 판매되지 않는 걸까? “생리혈을 다루는 제품은 의약외품이라 생리컵을 제조, 판매하기 위해선 식약처로부터 의약외품 제조업허가를 받아야 해요. 아직 의약외품으로 지정되지 않은 품목이라 품목 허가도 받아야 하고요. 안전성 허가를 받은 이력이 없는 만큼, 첫 판매 업체라면 의료기기 안전성 시험기준 통과를 위한 임상실험까지 진행해야 하죠. 그래서 다들 눈치만 보고 있는 거예요. 첫 판매 업체일수록 투자비용이 많이 드니까요. 크라우드 펀딩으로 생리컵의 제조, 판매 허가를 받기 위한 ‘블랭크 컵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에요. 저희가 허가를 받는다면 다른 제품도 쉽게 시장에 나올 수 있게 되니까요. 현재 한 생리컵 수입업체도 수입허가 사전신청서를 제출하고, 올해 안에 공식 출시하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지금 국내에서 판매되는 여성 용품은 크게 일회용 생리대, 탐폰, 면 생리대 세 가지다. 이지앤모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현재 약 92%가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한다고 한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생리컵은 누군가에게는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평소 생리대를 사용하면서 불편함을 느껴왔다면 한 번쯤 대안 용품으로 사용해볼 만하다. 무엇이 됐든 여성 용품의 선택지가 또 하나 늘었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