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시윤과 떠난 로드 트립
스스로를 제어하고, 절제할 줄 아는 배우 윤시윤. 누군가는 속박이라 느낄테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던‘ 바른 청년’ 윤시윤은 사실 그 누구보다 자유를 열망하는 사람이다.
귀를 덮을 만큼 덥수룩한 머리를 한 윤시윤이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09 년대 톱스타를 연기해야 하는 드라마< 최고의 한방>을 위해 머리를 기르고 있다고 했다. 윤시윤은 미리 준비한 차에 타서 직접 운전했고, 사진가는 보조석에 앉았다. 운전에 집중하는 그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서였다. 연휴 덕에 도로는 한산했고, 하늘도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그는 사진가 라이언 맥긴리를 좋아한다고 했고 우리 역시 그의 사진처럼 자유로운 윤시윤을 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생수를 마시며 때이른 더위를 식혔고, 초록색을 잔뜩 머금은 나무들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다. 리얼 버라이어티 <1박 2일>에서는 데뷔 전에 사용한 이름 ‘윤동구’로 불리고 있지만 그의 진짜 모습은 책을 좋아하고, 이따금씩 글을 쓰며 사진을 찍는 윤시윤에 더 가까워 보였다. 그는 부유하는 단어를 자신만의 입담으로 단정하게 말했다. 때로는 속삭였고, 때로는 힘주었다. 스스로를 멘탈이 약하다고 했지만 유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주관이 뚜렷한 소신 있는 사람이었다. 1년 전, 군에서 제대한 후 윤시윤다운 것을 찾기 위해 탐구하던 배우는 6월의 나무처럼 여물었다.
_화보 콘셉트가 드라이브였어요. 차는 좋아해요?
차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자유가 좋아요. 다른 곳으로 더 빨리 이동할 수 있는 바퀴가 있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스피커도 있고,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에어컨도 있잖아요. 차는 저에게 일탈의 공간이에요.
_<1박 2일> 촬영 때문에 국내 여행을 자주 다니죠?
워낙 여행을 좋아해요. 촬영 전에 이미 가봤던 곳도 있고, 촬영하고 나서 다음에 또 가봐야겠다 싶어서 점찍어놓은 곳도 있죠.
_여행할 때 맛집을 찾아다니는 편인가요?
아무래도 국내 여행을 할 때는 볼거리보다는 먹거리에 집중하게 되죠 . 오히려 뭘 봐야겠다 생각하고 가면 실망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맛집을 갔다가 소화도 시킬 겸 구경하러 다니는 편이에요.
_혼자 여행하는 것도 좋아해요?
사실 혼자 여행하는 건 쉽지 않아요. 목적도 뚜렷해야 하고, 계획도 잘 짜지 않으면 힘들고 외로워져요. 힐링하고 싶을 때는 친구들과 시간 맞춰서 가요. 그럴 때는 오히려 계획은 한두 개만 잡고, 나머지 시간은 친구들 과 함께 채워나가는 편이에요.
_스스로를 ‘아날로그적인 인간’으로 규정했어요. SNS는 의식적으로 안 하는 건가요, 아니면 정말 재미를 못 느끼는 건가요?
SNS 하는 거 재미있죠. 그럼에도 안 하는 이유는 나만의 학습을 멈추게 될까봐 두려워서예요. 연예인이지만 매체가 주는 정보만 취하고 거기에 함몰되는 게 싫어요. 스스로 고른 책을 읽고, 여행 가고, 글을 쓰고, 사진 찍는 활동을 하다 보면 쌓이는 것들이 있어요. 공부할 시간을 갖기 위해 TV를 보거나 인터넷을 잘 안 하려고 해요.
_애서가이자 독서광으로도 유명해요.
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노력도 많이 해요. TV 보는 것과 독서는 상극 의 활동이에요. TV를 보면 독서 시간은 반드시 줄어들어요. 저희 집 거 실에는 TV가 없고 책상과 책장을 두어 공부하는 곳으로 꾸몄어요. 침실 은 잠만 잘 수 있게 침대만 뒀고요. TV 룸은 따로 있고, 목적이 있어야지 만 TV를 켜죠. TV가 내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굉장히 달라 요. 후배들에게도 추천하는데, 집이 넓지 않으면 파티션으로라도 나눠야 해요. 이런 생활을 몇 살까지 지속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래야 한 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지금보다 나이를 먹으면 TV를 많이 봐야죠. 새로 운 것도 많이 접하고, <개그 콘서트>도 열심히 볼 거예요. 그때 돼서 자신 만의 깨달음만 고집하면 굉장히 편협해질 것 같아요.
_지금까지의 얘기만 들어보면 <1박 2일>에서의 모습이 당신에게는 더 비일상적으로 느껴지네요.
저에겐 일탈이죠. 하지만 재미있어요. 주변에 죄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멤버들이 있으니까요.
_제대 직후 한 인터뷰에서 나다운 모습을 찾고 있다고 했어요. 당신 다운 모습은 어디에 가까운가요?
늘 자유로운 인간이기를 꿈꿔요. “피아노를 잘 치려면 지금의 자유를 제 한하고 연습해야 한다. 그러면 피아노를 잘 칠 수 있는 자유가 생긴다”라 는 말이 있잖아요. 고차원적인 자유를 얻기 위해서 자기 관리를 하는 거 예요. 계속 나 자신을 제어하려는 것도 결국엔 연기를 잘하고 싶어서예 요. 연기는 열심히 한다고만 해서 잘되는 것 같지는 않고, 자유로워야지 만 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_아무 목적 없이 ‘그냥’ 하는 것도 있나요?
글 쓰는 거요. 물론 책을 내고 싶기는 하지만, 일단은 그냥 써요. 머릿속 에 떠오르는 글을 정리하고 싶어요. 마치 빨래를 개는 것처럼요. 노트북 에 수필이나 시나리오도 써보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쓰고 보는 거죠.
_<얼루어>에 정기적으로 연재해보는 건 어때요?
아, 그건 힘들 것 같아요.(웃음) 창조가 규칙이 되면 고통스럽잖아요. 만 화 <유리가면>이 왜 완결이 안 되고, <열혈강호>의 진행 속도가 왜 그렇게 더딘지 알 것 같아요. 아는 분이 ‘글은 절대 무르익거나 완성되어가는 게 아니다, 지금 나이, 기분, 상황에 따라 쓸 수 있는 글이 있다’고 하더라고 요. 그래서 일단 지금 쓰는 거예요.
_요즘에는 어떤 책을 읽어요?
드라마 촬영 때문에 많이 못 읽고 있는데요, 어제 읽은 책은 한홍구 교수 님의 <대한민국사>예요. 근현대사가 재미있어요. 그 책을 보면 역사는 역 시 반복된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_한 달에 책 20권을 우선 훑어보고 그중에 여섯 권 정도를 완독한다 고 하던데, 책을 선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서점에 가면 우선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나왔는지 살펴보죠. 정 치, 사회 분야 책 중에서도 유시민 작가의 책을 좋아해요.
_한때 ‘연애를 책으로 배운 사람’이라는 말처럼 실전보다 이론만 아는 사람을 놀리는 말이 유행이었어요. 당신은 어떤가요?
책으로 예습하면 바보고, 복습을 해야 해요. 연애도 마찬가지죠. 연애를 한 다음에 길을 모를 때 책을 봐야 해요. 모든 이론은 길을 잃었을 때 좋 은 지렛대가 되는 것 같아요.
_드라마 <최고의 한방>은 예능PD 유호진과 배우에서 연출자로 변신 한 차태현의 첫 드라마로 사람들의 기대가 커요.
연출자들이 전 국민적으로 사랑받는 사람들이라 부담스러워요. 저희의 목표는 시청률보다는 젊은 친구들에게 회자되는 것이에요.
_맡은 역할이 90년대 톱스타죠?
듀스의 고 김성재를 모티프로 삼았어요. 생각해보면 그분은 당대 멋쟁이 들과 레벨이 달랐던 것 같아요. 옷도 모노톤으로 아주 세련되게 입었고 요. 원래도 좋아하는 가수였는데, 이번에 연기할 때 ‘그분이 지금 살아 있 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_90년대 톱스타를 차용한 드라마가 꽤 많았어요. 그 캐릭터들과 어떻 게 차별화하고 있나요?
비슷한 캐릭터로 보이겠지만 연출자, 시나리오, 조명, 카메라, 대사도 모 두 다르기 때문에 저는 그걸 믿고 가요. 누군가가 “쟤는 왜 연기가 똑같아?”라고 한다면 그건 제가 연기에 집중하지 못한 것이고 진정성이 없었던 거라 생각해요. <최고의 한방> 촬영하면서도 톱스타처럼 연기하려고 하면 (차)태현이 형이 자연스럽게 하자고 말려요.
_누군가의 롤모델이 되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했죠. 그러다 보면 스스로의 행동에 제약이 생기지 않나요?
도덕적인 인간이라고 반드시 존경받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다른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인간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책임감을 느껴요. 영향력을 주는 사람으로서 권위를 잃으면 안 되니까 늘 조심하죠.
_스스로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미친 듯이 빠져들었던 경험이 있어요?
제대하고 이틀 만에 촬영했던 드라마< 마녀보감>을 할 때요. 2년 동안 연기를 굶었던 터라 에너지가 폭발했어요. 그 작품 끝나고 사진 찍는 것에 빠져서 하루에 128기가짜리 메모리 카드를 다 채운 적도 있어요.
_오늘 <백상예술시상식>에 참석한다고 들었어요. 끝나고는 뭐 할 거예요?
저녁에 집에 가서 아침에 못한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할 거예요. 오늘은 흰색 옷 빠는 날이에요.
_예능 <나 혼자 산다>에 나오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너무 재미없지 않을까요?(웃음) 자다 말고 침실에 둔 스탠드의 전선이 눈에 거슬려서 그거 가리려고 몰딩 자르고 붙이느라 세 시간밖에 못 잔적도 있어요.
_하나에 꽂히면 집착하는 스타일인가요?
네. 아무것도 안 보여요.(웃음)
_연애할 때도 그래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못해요.
_한동안 작품 활동을 하지 않으면 연애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사실 제가 술자리에서 사람을 사귀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레스토랑에서 와인 한잔 정도 하는 걸 즐기는 편이에요. 하지만 얼굴이 알려졌으니 소개팅이나 미팅도 못하겠고. 괜찮은 데이트 앱 있으면 외국 계정이라도 만들어서….(웃음)
_이번 달 <얼루어>는 여행 특집이에요. 애서가답게 여행지에서 읽으면 좋은 책 추천해주세요.
여행 갈 때는 주로 아트북을 가져가요. 사진이나 그림은 읽는 게 아니라 해석하는 거라서 어떤 상황과 기분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거든요. 그러니 여행지에서 느끼는 기분은 또 다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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