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가 돌아왔다
비누가 달라졌다. 식물에서 유래한 계면활성제와 에센셜 오일 등 고가의 재료로 만든 프리미엄 비누가 세련된 취향을 반영하는 라이프스타일숍과 패션 편집숍의 한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것. 프리미엄의 훈장을 달고 컴백한 비누를 만날 시간!
1,2 사봉젬므 by 러쉬룸의 오팔 & 터콰즈 프랑스 그라스 지방의 유기농 식물 원료와 에센셜 오일로 제조한 비누로, 원석의 마블링과 다채로운 빛깔을 재현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오팔은 달콤한 과일과 우디 머스크가 어우러진 향을, 터콰즈는 과일과 꽃, 나무 향이 조화를 이룬 향을 담고 있다. 각각 170g 3만9천원.
3 발로브라 by 센트87의 프리뮬라 1903년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비누 브랜드로, 식물성분을 원료로 18세기 비누 장인의 제조법에 따라 만든다. 100g 1만8천원.
4 에르메스의 퍼퓸드 솝 오 드 네롤리 도레 글리세린과 알란토인 성분이 피부를 건조하지 않게 하며, 오렌지꽃의 싱그러운 향이 남는다. 100g 3만원.
5 바코의 솝삽 레몬버베나 솝 레몬버베나의 상쾌한 향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올리브 오일과 시어버터를 함유해 부드럽고 풍성한 거품이 만들어진다. 170g 1만6천원.
6 에이프릴스킨의 국민비누 오리지널 식물성 오일을 베이스로 쌀겨 추출물과 시어버터를 함유해 피부에 자극 없이 노폐물과 각질을 제거한다. 100g 2만원.
7 르 라보의 바 솝 로즈 31 비타민 E와 올리브잎 추출물, 시어버터가 피부를 매끄럽게 하며, 장미에 시더우드, 앰버, 유향이 더해져 스파이시한 우디 향이 느껴진다. 225g 5만8천원.
8 프레쉬의 오벌 솝 망고스틴 망고스틴에 함유된 항산화 성분인 크산톤이 피부 노화를 방지하며 거품이 잘 일어나고 향이 오래 지속된다. 250g 2만2천원대.
9 그로운 알케미스트 by 시코르의 바디 클린징 바 제라늄 잎 추출물과 파촐리 추출물이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베르가모트 추출물이 피부를 탄력 있게 한다. 200g 3만원.
10,11 모트의 렛 미 시 & 레어 스카이 청대 추출물이 피부 트러블과 가려움증을 개선하는 렛 미 시와 카올린 클레이와 핑크 클레이를 함유해 모공 수축과 탄력 개선에 효과적인 레어 스카이. 각각 120g 1만8천원 & 310g 3만8천원.
12 바이레도의 집시 워터 코롱 솝 베르가모트 향으로 시작해 솔잎 향을 지나 바닐라와 샌들우드의 신선하고 부드러운 향으로 마무리되는 집시 워터 오드코롱 향이 세안 후에도 오래 지속된다. 150g 3만5천원.
13,14 솝퍼리의 로즈가든 & 센트오브라벤더 핑크 클레이와 시금치, 스위트 아몬드 오일을 함유해 피부 진정과 미백에 효과적인 로즈가든과 코코넛 오일과 시어 버터, 라벤더를 함유해 보습 기능이 뛰어난 센트오브라벤더. 각각 100g 9천8백원.
15 유에스 아포테케리의 주니퍼 & 제라늄 솝 전통적인 비누 제조 방식에 따라 수작업으로 만든 비누로, 제라늄 워터, 시어버터, 올리브 오일 등 식물성 보습 성분이 피부를 부드럽게 하며 향나무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255g 1만9천원.
프리미엄 비누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잠시 과거로 돌아가보자. 집집마다 세면대에 비누 하나씩은 놓여 있던 시절이 있었다. 손으로 비누 거품을 낸 후 얼굴에 싹싹 문질러 뽀드득한 느낌이 들 때까지 씻어내는 것을 당연시 여기던 시절이었다. 목욕을 할 때도 샤워타월에 비누를 묻혀 하얀 거품이 풍성해질 때까지 비비곤 했다. 온 가족이 사용하다 보니 일주일도 채 되기 전에 동그랗던 비누가 조각 비누로 바뀌었고, 화장실 수납장에는 박스로 산 비누 여러 개가 늘 구비돼 있었다. 그렇게 온 국민의 사랑을 받던 비누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잊혀지기 시작했다. 피부 관리와 화장품에 대한 높은 관심은 세안법과 세안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클렌징 폼을 비롯해 클렌징 오일, 클렌징 밤, 클렌징 워터 등 다양한 종류의 세안제가 출시되면서 비누는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다. 게다가 비누를 비롯한 세안제에 함유된 인공계면활성제가 피부를 건조하게 하고 피부 자극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면서 비누의 설 자리는 더 좁아졌다.
그렇게 서서히 잊혀져 가던 비누를 다시 만난 곳은 마트가 아닌 챕터원이나 퀸마마마켓 같은 라이프스타일숍과 비이커, 마이분 같은 패션 편집숍에서였다. 그곳에서 만난 비누의 가장 눈에 띈 변화는 바로 패키지다. 인테리어 소품이나 패션 소품 사이에서도 전혀 손색없는 세련된 디자인의 수입 비누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디자인만큼이나 성분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유해성 논란을 불러일으킨 설페이드류의 인공계면활성제 대신 식물에서 추출한 성분과 에센셜 오일을 담아 수공예 방식으로 제작한 제품들이 주를 이뤘다. 마트나 편의점에서 파는 비누에 비해 적게는 3배, 많게는 10배가 넘는 가격대지만 식물 성분과 세련된 향에 관심이 높은 이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여섯 명의 작가들이 각각의 비누 제작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솝퍼리는 지난 몇 년간 라이프스타일숍과 패션 편집숍이 많아지기 시작한 것이 국내 프리미엄 비누 시장이 성장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일상 속에서 프리미엄 비누를 접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구매로 이어지면서 시장도 덩달아 성장하게 됐죠. 니치 향수를 비롯해 향에 대한 관심과 취향이 높아진 것도 한몫했어요. 기호와 개성에 따라 비누를 고르는 시대가 열린 거죠.”
프리미엄 비누 시장이 커지면서 개성 있는 콘셉트와 디자인, 기능을 내세운 국내 프리미엄 비누 브랜드도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작은 회사에서 만든 비누가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이름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던 브랜드까지 유명해지게 되었다. 에이프릴스킨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비누가루나 비누베이스로 공장에서 대량으로 제조하는 방식이 아닌 식물에서 추출한 오일을 베이스로 장시간 건조, 숙성 과정을 거치는 방식을 택했다. “액상 형태의 클렌저는 정제수 비율이 높아 순수 비누분의 비중이 적기 때문에 세정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부족한 세정력을 보충하고 거품을 풍성하게 내기 위해 인공계면활성제도 사용하게 되고, 산패를 막기 위해 방부제나 보존제도 첨가할 수밖에 없죠. 반면 식물성 오일로 만든 천연 숙성 비누는 순 비누분의 비중이 80% 이상이라 세정력이 좋고, 인공계면활성제를 전혀 넣지 않아요. 또 고체비누는 법으로 정해놓은 유통기한이 따로 없을 만큼 장기간 보관이 가능해 방부제나 보존제를 넣을 필요가 없어요.” 에이프릴스킨 상품기획팀 장수민 대리의 설명이다. 세정력뿐 아니라 보습이나 진정, 모공 수렴, 트러블 개선 등 다양한 스킨케어 기능을 더한 비누가 출시되면서 선호하는 향뿐만 아니라 피부 고민에 따라서도 비누를 고를 수 있게 됐다.
대리석을 연상시키는 감각적인 디자인의 비누로 유명한 모트의 전보라 대표는 국내 비누 제조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기능성 비누 시장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말한다. “모트 비누는 마블링 공법을 적용해 보습 성분과 유효 성분이 화학적으로 서로 섞이지 않도록 제작됐어요. 물과 만나 거품이 만들어지는 순간 피부에 바로 전달되기 때문에 효능이 더 높아지죠. 식물성 오일이 알칼리 성분과 천천히 합성되면서 서서히 고체화되기 때문에 화학적 경화제를 사용할 필요도 없고요. 단, 비누가 무르지 않도록 사용 후 거품을 씻어낸 후 물이 잘 빠지는 비누 트레이에 건조하게 보관하는 것이 좋아요.” 솝퍼리 역시 국내 프리미엄 비누 시장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공방을 찾는 분들 중에 아토피나 여드름 같은 피부 트러블이 있는 분들도 있지만 특별히 큰 피부 고민이 없더라도 피부에 자극이 적은 세안제를 찾기 위해 오는 분들이 많아지는 추세예요. 물론 아직까지는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 프리미엄 비누 시장의 규모가 매우 작은 편이지만, 황사와 미세먼지, 자외선 등에 의한 자극은 점점 더 심해지고, 유해한 화학 성분에 대한 관심이 계속 높아지는 만큼 앞으로 프리미엄 비누를 찾는 이들이 더 많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남다른 비누
우리나라의 공중목욕 문화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프리미엄 비누 브랜드 비누 비누(Binu Binu). 뉴요커를 사로잡은 이 특별한 브랜드를 론칭한 카렌 킴과의 미니 인터뷰.
뉴욕에서 비누 브랜드를 론칭하게 된 계기는? 비누를 좋아하고 자주 사용하다 보니 성분에도 관심을 갖게 됐는데 이름 모를 화학 성분을 담은 제품이 많았다. 화학 성분을 배제하고 100% 식물 성분으로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비누를 만들고 싶었다. 성분도, 기능도, 디자인도 단순하게 하자는 게 처음 생각이었다. 뉴욕 온라인 편집숍 라 가르송에서 프로덕트 디렉터로 일한 경험을 살려 패션 편집숍이나 라이프스타일숍에 어울리는 제품을 만들고자 했다.
세신 코리안 스크럽 솝, 해녀 시 우먼, 보리차 솝 등 제품 이름이 굉장히 한국적이다. 한국의 공중목욕 문화로부터 브랜드의 영감을 얻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자라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한국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 중 하나가 어머니와 이모들과 함께 공중목욕탕에서 갔던 것이다. 커다란 탕에 함께 몸을 담그고,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모습이 정겨웠다. 공중목욕 문화가 전혀 없는 캐나다와 미국 사람들에게 특별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주 해녀를 모티프로 한 비누를 만든 건 제주 해녀의 강인한 여성상에 매력을 느껴서다.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 자리한 스티븐 알란 홈 숍을 비롯해 여러 편집숍에 입점해 있다고 들었다. 스티븐 알란 홈 숍을 비롯해 LA의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모하크 제너럴 스토어와 기네스 팰트로가 운영하는 라이프스타일 온라인숍 굽(Goop) 등 북미와 유럽 50여 곳에 패션 편집숍과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에 입점해 있다. 비누에 이어 클렌징 밤과 보디 스크럽, 립 컨디셔너를 출시했는데 스킨케어와 보디케어 제품으로 카테고리를 더 확장해나갈 계획이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도 제품을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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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조은선
- 포토그래퍼
- Jung Won Young, Courtesy of Binu Bi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