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핑크색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핑크색이 가진 가치와 의미 역시 변화해왔다. 핑크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과 이야기들.

 

pink

‘핑크’라는 이름
핑크의 어원으로 시작해보자. 핑크는 패랭이꽃과에 속하는 ‘Pinks Flower’ 꽃에서 왔다. 이 이름은 패랭이꽃, 카네이션 등의 꽃잎 끝부분의 톱니 모양에서 유래하는데, 동사로 ‘구멍을 낸다’라는 뜻이다.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핑킹가위를 생각해보길. 지그재그 무늬를 만드는 데 쓰이는 바로 그것이다. 핑크색이 핑크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핑크색을 뜻하는 말은 장미를 뜻하는 로즈(Rose)나 로사(Rosa)였으며, 17세기 무렵부터 ‘핑크(Pink)’로 불리기 시작한다.

 

남자의 색
19세기까지 붉은색과 핑크색은 강함과 권위를 상징하는 남자들의 색이었다. 작은 남자인 소년은 핑크 리본을 주로 맸고, 여자들은 푸른색을 입었다. 화학적 염료가 개발되며 흰색 일색이던 의복에도 대변화가 일어났는데, 패션 디자이너들은 핑크색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엘자 스키아파렐리가 발표한 ‘쇼킹핑크’ 색상과 이 색상의 박스에 들어 있는 ‘쇼킹’ 향수가 유행했다. 남자는 붉은색, 여자는 푸른색이라는 전통적인 개념은 시장의 논리, 전쟁 등을 겪으며 반대로 바뀌기 시작한다. 1930년~1940년대를 거치며 핑크색은 확실히 여성의 색이 되었다. 1953년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 취임식에서 퍼스트레이디는 핑크색 드레스를 입었다.

분홍빛 노래
가사로 쓰이는 분홍색은 ‘여성스러움’을 설명한다. 가장 유명한 ‘분홍 립스틱’의 ‘분홍의 립스틱을 바르겠어요’는 물론 AOA의 ‘단발머리’에도 ‘분홍 립스틱을 바를까’, 쥬얼리의 ‘One More Time’에는 ‘핑크빛 립스틱처럼 스며든 내게 취해봐’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그 외에도 연애 전선의 긍정적인 기운을 뜻하는 표현이 많은데 유승우의 ‘사랑이 뭔데’에서는 ‘핑크빛 꽃잎이 흩날리고’, 홍대광의 ‘잘됐으면 좋겠다’에서는 ‘분홍길을 걸으면 좋겠다’ 등으로 사용되었다. 또 수줍음과 행복감으로 붉어진 볼을 표현하기도 한다. 트와이스의 ‘어쩜 좋아 볼은 분홍 불이네’, 엑소의 ‘분홍빛 감도는 얼굴 구름 위를 걷는 기분’ 등이 그 예다.

우리 그림 속 분홍빛
민화에서 분홍색의 흔적은 봄의 계절 그리고 복숭아꽃과 맞물려 나타난다. 지금의 분홍색을 일컫는 말은 복숭아꽃에서 딴 ‘도색’이었다. <삼국유사>에 복숭아 나무가 기록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우리나라 땅에 복숭아가 자라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로장생과 번영, 미인 등을 뜻하는 복숭아꽃은 선조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 중 하나였다. 구한말에는 우리나라의 국화를 복숭아꽃으로 정하자는 이야기가 대두되기도 했다. 박승무의 <도류춘심>은 산 곳곳에 피어난 복숭아꽃을 소재로 하는데, 복숭아와 강, 봄을 다룬 그림을 ‘도류춘심’이라 부른다. 김홍도 역시 <투도도>라는 복숭아를 소재로 한 그림을 그렸다.

옛 문헌 속 분홍
문학에 정확한 색상명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선비들의 풍류에 그림과 시가 빠지지 않는 만큼, 복숭아꽃, 살구꽃 등을 소재로 한 것이 많이 남아 있다. 이소의 도화는 ‘복사꽃 붉게 핀 날 며칠이나 볼 수 있을까/이 모두 복사꽃의 타고난 운명이다’라고 노래했다.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미인이 나오는 꿈을 꾼 뒤, ‘눈 덮인 산속 깊은 곳에 한 송이 꽃/연분홍 복사꽃이 비단에 싸였는가’라는 시를 남겼다. 문일평은 <화하만필>에서 살구꽃을 요부에, 복숭아꽃을 염부에 비유했다. 복숭아꽃을 미인에 비유한 것은 중국도 같았다. 이 복숭아꽃은 ‘도화살’의 어원이 되기도 했다.

핑크 리본 캠페인
핑크색 리본이 유방암의 상징이 되기 시작한 건 1990년이다. 유방암 생존자들을 위한 ‘Race for the Cure’ 경주에서 참가자들에게 핑크색 바이저를 나누어준 것이 시작이었다. 1991년부터는 참가자들에게 핑크 리본을 나누어주었다. 그 다음 해에는 헬스 매거진 <셀프>와 유방암 생존자이자 에스티 로더 그룹의 일원인 이블린 로더가 함께 제작한 핑크색 리본을 뉴욕의 화장품 매장에서 나눠주었다. 핑크 리본 캠페인은 유방암에 대한 인식 고취와 조기 검진의 중요성을 홍보하기 위해 매년 10월 유방암의 달에 개최된다.

분홍색 작명법
공감각적인 표현을 강조하는 최근 화장품 작명법에서도 분홍은 아름답게 묘사된다. 소녀와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는 이니스프리와 에뛰드하우스에는 기발하고 예쁜 이름의 제품이 많다. 이니스프리의 ‘물빛 봄 장미’, ‘소녀의 핑크빛 볼’, ‘저녁 7시 석양’, ‘봄 석양’, ‘분홍빛 솜사탕’, ‘라떼 한잔 로지’, ‘작은 벚꽃 핑크’. ‘밤에 핀 장미’ 등이 그것이다. 에뛰드하우스는 정확한 색상명을 쓰지 않고 분홍색 제품을 출시하고 있는데 ‘고백을 도와줘!’ ‘키싱미 키싱구라미’ ‘딸기마카롱’. ‘새벽꽃시장’, ‘먹먹한 고백’, ‘덤덤한 반응’, ‘두볼 가득 샤샤샤’ 등이 고운 분홍색 제품이다.

색채의 힘
색채심리학에서 분홍은 치유와 휴식의 색으로 여겨진다. 미국의 생태사회학자 알렉산더 샤우스 박사는, 교도소 내부를 온통 분홍색으로 꾸미고 수감자들의 변화를 관찰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수감자들의 폭력 행사가 크게 줄어들고 성격도 침착해졌다고 한다. 샤우스 박사에 의하면 분홍색 환경 속에 있는 사람은 공격적으로 행동하거나 화를 내기 힘들어진다고 한다. 분홍색은 에너지를 서서히 약화시켜 진정 작용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