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막힐 듯 아름다운 에바 그린
깊고 공허한 눈동자가 스크린 너머를 응시할 때면 다들 그 아름다움에 숨죽였다. 데뷔작 <몽상가들> 속 에바 그린의 이야기다. 9월 개봉을 앞둔 팀 버튼의 새 영화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에서 아이들과 저택에 고립되어 살아가는 미스 페레그린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파리에서 태어난 에바 그린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몽상가들(The Dreamers)>로 데뷔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프렌치 시크’의 또 다른 아이콘이 탄생했음을 즉각 알아차렸다. 그 다음은? 곧바로 수많은 블록버스터 영화가 ‘미녀’의 자리에 에바 그린을 앉혔다.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 <007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 <300 : 제국의 부활(300: Rise of an Empire)>, 그리고 <씬 시티 : 다크 히어로의 부활(Sin City: A Dame to Kill for)>까지의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물, 미드 <페니 드레드풀(Penny Dreadful)>에서 자신의 비밀스러운 능력을 깨달아가는 바네사 역할은 에바 그린 특유의 어두우면서도 우아한 아름다움이 가장 잘 드러난 출연작이기도 했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Miss Peregrine’s Home for Peculiar Children)>은 제목만으로는 도무지 내용을 추측하기 힘든 영화다. 감독이 팀 버튼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상상의 여지는 늘어난다. 아이들과 사는 마녀 이야기일까? 아이들에게 마법을 가르치는 <해리포터> 같은 마법학교? <메리 포핀스> 같은 특별한 가정교사의 이야기? 영화는 미국의 소설가 랜섬 릭스가 2011년에 내놓은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는다. 미스 페레그린은 시간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능력자인데, 자신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이상한’ 아이들과 함께 외딴 섬, 다른 시공간에서 머문다. 아이들의 능력을 탐내는 어둠의 세력 ‘할로가스트’로부터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꽤 다정하고 유능한 보호자인 셈이다. 이들의 존재를 제이콥(아사 버터필드)이 발견하면서 기이한 모험이 시작된다는 이야기다. 책에는 사진을 찍는 것이 취미인 원작자 릭스가 오랜 시간 수집해온 기괴한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이미지는 팀 버튼이 그간 쌓아 올린 기묘한 세계관과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미 2012년 <다크 섀도우(Dark Shadows)>로 팀 버튼과 작업을 한 적이 있는 에바 그린은 이 이상한 세계에서 다시 한 번 존재감을 드러낼 예정이다. 여전히 깊고 푸른 눈동자와 단호한 태도로.
랜섬 릭스가 찍은 원작 사진을 보자마자 ‘딱 팀 버튼 감독의 영화’라고 생각했다면서요?
정말로 팀 버튼 감독이 아니면 영화로 만들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언제나 자신만의 감정과 시적 요소를 더해 자기 스타일로 연출하는 감독이죠. 섬세하고 독특해요.
팀 버튼 감독과 함께한 두 번째 작품이에요. 이번에는 어떻게 출연을 결심하게 됐나요?
원작을 읽어보고 어떤지 말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벌써 2년 전이네요. 마음에 들면 출연할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 나는 그의 작품이라면 어떤 역할이든 출연할 생각이었죠. 나무든 빗자루든 말이에요!(웃음) 심지어 원작의 스토리는 정말 훌륭했고, 캐릭터도 멋졌어요. 미스 페레그린은 새로 변신한답니다. 나무나 빗자루보다 더 근사하죠.
미스 페레그린이라는 캐릭터를 설명한다면?
할로가스트라고 불리는 악당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에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데리고 살며 돌보죠. 미스 페레그린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어요. 자신도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죠. 새로 변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시간을 조종할 줄도 알거든요. 매일 밤 시간을 재설정하는 그녀 때문에 아이들은 나이를 먹지 않아요. 상당히 복잡한 캐릭터예요.
아이들의 엄마 같은 역할인 셈이네요. 아역 배우들과의 작업은 어땠나요?
처음에는 걱정했어요. 아이들이 나를 좋아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몰랐죠. 괜한 걱정이었다는 게 밝혀졌지만요. 가장 어린 배우조차도 상냥했고, 촬영할 때는 진지했어요. 자연스럽고 느긋한 아역 배우들의 모습을 보며 오히려 제가 많이 배웠죠.
어떤 걸 배웠나요?
생각을 많이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현재에 충실하자는 거요.
미스 페레그린의 시간 조절 능력에 대한 이야기도 더 듣고 싶네요. 또 언제 타임 루프 능력을 사용하나요?
독일군의 폭탄이 저택에 떨어지기 전에 시간을 멈추기도 해요.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그녀는 아이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엄격해요. 그럴 수밖에 없죠. 아이들 중 한 명만 늑장을 부려도 타임 루프가 잘못되어서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팀 버튼은 미스 페레그린을 ‘특이한 버전의 메리 포핀스’라고 표현했는데 동감해요. 그녀는 정말로 독특하고 용감한 캐릭터예요.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즐거웠죠.
새로 변신하는 모습이 예고편에서 공개됐어요. 변신 장면을 촬영하는 건 어땠나요?
사실 저는 고소공포증이 있어요.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새라니 조금 우습죠? 와이어에 매달려 촬영을 하는데 조금 무서웠지만 근사한 경험이었어요. 마치 안무를 해내는 것 같았죠. 진짜 새로 변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쉬워요.(웃음)
와이어 연기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007 카지노 로얄>, <씬 시티: 다크 히어로의 부활> 같은 액션 영화에도 출연했죠. 육체적으로 힘든 역할에 도전하는 것을 즐기는 편인가요?
맞아요. 몸을 많이 쓰고, 트레이닝이 필요한 액션 연기를 좋아해요. 제 성격이 지나치게 직관적인 경향이 있거든요. 그래서인지 몸을 많이 움직이는 역할에 끌리는 편이에요.
당신이 가장 처음 본 팀 버튼 감독의 영화는 무엇인가요?
맨 처음 본 영화라면 아마도 <비틀쥬스(Beatlejuice)>였을 거예요. 어릴 적에 여러 번 본 기억이 나요. <가위손(Edward Scissorhands)>도 좋아해요. 정말 시적이고 감동적인 영화죠.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파요.
팀 버튼 감독은 촬영장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드는 것으로 유명해요. 이번에도 여전하던가요?
맞아요. 전혀 압박감이 느껴지지 않는, 긍정적이고 유쾌한 분위기죠. 촬영장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데 촬영장에서 이런 분위기는 보기 드물다고 할 수 있죠. 뻔한 비유지만 정말 가족 같은 분위기였어요. ‘팀 버튼 군단’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 주위에는 오랫동안 함께 일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모두 즐기면서 일을 했거든요. 팀 버튼 감독의 촬영장에서는 눈치 보지 않고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 있어요!
이번 촬영도 꽤 만족스러워한 것처럼 들려요. 맞나요?
동화 속으로 들어간 기분으로 촬영했어요. 저택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는 이야기라서 마치 꿈속으로 들어간 듯했죠. 좋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자유롭게 즐기면서 일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에요.
Films
에바 그린이 아름답게 빛난 영화 속 순간들.
<몽상가들> 자유와 청춘의 열기로 가득한 1968년 파리 혁명. 영화광인 미국인 유학생 매튜는 파리 시네마테크에서 쌍둥이 남매 이사벨과 테오를 만난다. 부모님이 한 달간 휴가를 떠난 집에서 남매와 머무는 동안 세 사람의 기묘한 관계가 쌓여간다. 쌍둥이 남동생과 떨어지지 않으려는 매혹적인 외모의 이사벨을 연기하며 데뷔와 함께 곧바로 유명세를 탔다.
<007 카지노 로얄> 올랜드 블룸과 함께 출연한 <킹덤 오브 헤븐> 이후 출연한 블록버스터로 에바 그린의 이름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제임스 본드는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했다.
<크랙> 20세기 초반 영국. 기숙학교의 여학생들과 그녀들의 선망의 대상인 교사 미스 G. 이 고립된 공간에 전학생이 오면서 벌어지는 감정의 미묘한 변화들을 세심하게 그려냈다. 아름다운 의상과 여배우들, 폐쇄된 주변 환경 속. 미스 G 역할의 에바 그린은 비밀스러운 매력을 최고조로 발산했다.
<씬 시티: 다크 히어로의 부활> 그래픽 노블의 장르적 느낌을 성공적으로 재현한 2005년 개봉작 <씬 시티>의 후속작으로 에바 그린은 남성 캐릭터들을 차례로 파멸로 이끄는 팜므파탈 아바 역할을 맡았다. 극에서도 ‘여신’으로 표현될 정도로 치명적인 매력은 슬립 한 장을 걸친 채로 총을 겨눈 에바 그린이 아니었다면 설득력이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퍼펙트 센스> 후각, 미각, 시각 등 사람들의 감각이 아무 이유 없이 사라지기 시작한 미래. 그 혼란의 가운데에서도 새롭게 사랑에 빠진 연인이 있다. 요리사로 변신한 이완 맥그리거와 사랑에 빠지는 과학자 역할로 ‘사랑’이 여전히 희망임을 이야기한다. 에바 그린의 절절한 멜로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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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이마루
- 포토그래퍼
- Courtesy of 20th Century Fox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