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4번 이상 30분 이내에 잠들지 못한다면 ‘불면’을 의심해봐야 한다. 코를 곤다면 호흡 장애 때문에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꿀잠을 방해하는 것들, 그리고 잘 잠들고 제대로 자기 위한 방법에 대하여.ALR01_160205_2023_R0

조금은 예민한 성격, 혹은 어릴 때부터 앓아온 비염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침대에 누워 억지로 눈을 감아도 1시간 이상을 뒤척여야 겨우 잠들 수 있었고, 새벽 늦은 시간까지 잠들지 못한 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기도 수십 번이었다. 건조한 비행기 안에서는 절대 1시간 이상 잠들 수 없었으며, 해외 출장이라도 다녀오면 다시금 원래 시차에 적응하는 데 2~3주가 넘게 걸리곤 했다. 잠을 속시원히 잘 수 없으니 자연히 낮 시간이 괴로워졌고,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새벽까지 이어진 화보 촬영으로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침대에 누운 어느 날,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또 한 시간 넘게 뒤척인 끝에야 잠이 들었다. 몇 시간 자지 못하고 출근한 다음 날, 편두통이 더 심해졌다. 문득 겁이 났다. 이러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는 것은 아닐까. 수면 클리닉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고 서둘러 병원을 방문했다. 병원 대기실은 교복을 입은 여고생부터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 말고도 불면의 고통을 토로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조금은 생소했고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검사는 크게 세 가지로 이뤄졌다. 손에는 산소 포화도를 측정하는 기계를, 종아리에는 하지 불안을 체크하는 기계를, 머리에는 뇌파 측정 센서를, 코에는 호흡을 측정할 수 있는 호스까지 온몸에 측정도구를 잔뜩 달고 수면실에서 1시간가량 잠을 자며 수면 패턴을 분석하는 수면다원검사가 첫 번째 코스. 두 번째는 호흡에 큰 영향을 미치는 콧속 구조를 살펴보는 이비인후과 면담이다. 머리를 CT 촬영하는 두경부측부촬영을 마지막으로 약식 검사가 끝났다. 정식 검사는 병원에서 하루 머물며 밤부터 아침까지 수면 패턴을 분석하고, 신경정신과, 치과 상담까지 더하는 것이라고 한다.

잠을 잘 못 자는 이유 4시간에 걸친 검사를 마치고 서울스페셜수면신경과의원 한진규 원장을 만났다. “주변이 어둡고 체온이 떨어질 때. 뇌가 밤이 되었음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해요. 수축되어 있던 근육이 이완되면 힘이 빠지면서 낮 동안의 피로가 몰려옵니다. 자연스레 깊은 잠에 빠지게 되는 거죠 .”따라서 위의 조건들이 충족되지 못하면 쉽사리 잠이 들지 못하는 것이다. 숙면을 위해 잠들기 1~2시간 전부터 스마트폰 사용이나 TV 시청을 자제해야 하는 이유다. 근육이 제대로 이완되지 못해도 쉽게 잠이 들지 못한다. 에디터 역시 이런 경우였다. 수면장애의 일부인 하지불안증후군으로 진단받았는데, 잠이 들게 하는 호르몬인 도파민 부족으로 근육이 긴장 상태를 유지해 미세한 다리 떨림과 움직임이 계속되는 증상이었다. 여태껏 잠이 들 때 이러한 다리의 움직임을 한 번도 자각해본 적이 없어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혹시 평소 베개나 큰 인형을 다리에 끼고 자는 것이 더 편하다면 이 하지불안증후군을 의심해봐야 한다. 이 증상은 철분 결핍이 원인인 경우가 많아 전문의의 진료하에 꾸준히 철분을 복용하면 개선될 수 있다.

숙면을 방해하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호흡의 문제다. 비염이 심한 에디터는 일단 콧속의 뼈가 일자로 곧지 않고, 한쪽으로 휘어진 비중격만곡증을 진단받았다. 따라서 왼쪽 코는 콧속 뼈와 살이 맞닿아 숨을 쉽게 쉬기 힘든 상태. 오른쪽 코로만 숨을 쉬기 때문에 똑바로 누워 자는 것보다 왼쪽으로 누워 자야 숨을 쉽게 쉴 수 있어서 더 편하게 잠드는 것이라고 한다. 비염 때문에 코가 아니라 입으로 숨을 쉬는 것도 문제였다. 숨을 쉬기 위해 입을 벌리고 잠을 자기 때문에 입안에 세균이 쉽게 들어가고 이 세균이 코까지 이동하여 비염이 더욱 심해지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는 것. “불면증 치료를 받고 있는 20대 여성 60명을 조사한 결과, 기도 넓이가 정상인보다 좁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이러한 상기도저항증후군은 젊은 여성들에게 많이 나타나요.” 한진규 원장에 따르면 정상적인 성인 여성의 기도 넓이는 약 11mm. 그런데 에디터의 기도 넓이는 겨우 2mm에 불과했다. 기도가 좁기 때문에 입으로 호흡하게 되는 것인데, 이렇게 구강호흡을 할 경우 호흡이 빨라지며 뇌가 각성 상태가 되고 결국 숙면을 취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휘어 있어 한쪽으로만 숨을 쉬는 코, 정상인보다 심각하게 좁은 기도, 만성 비염까지, 나에게 숙면은 정녕 이룰 수 없는 꿈인 것일까. 일단 상기도저항증후군 환자라면 기도 트레이닝이 이뤄져야 한다. 목구멍을 통해 공기를 주입하여 기도를 조금씩 넓혀가는 방식이다. 또한 구강 호흡 대신 코로 숨을 쉬는 연습도 꾸준히 해야 한다. 그리고 수면의 질이 떨어질 경우 우울증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심리 치료도 병행할 것을 권했다.

평소 불면증이라 생각해서 멜라토닌을 복용하고 있었는데, 이건 괜찮은 걸까? 의사는 복용을 멈출 것을 권했다. 멜라토닌은 뇌로 하여금 잠을 자는 시간이라고 인식하게 도와주는 보조제. 불면증 환자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수면 장애 환자에게는 올바른 치료법이 아니다. “불면증은 뇌가 스스로 잠을 자지 않으려 하는 것이라면, 수면 장애는 근육 불안, 호흡 등의 문제로 밤에도 몸과 마음이 긴장을 풀지 못해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것이에요. 불면증의 경우 불면을 유도하는 각성상태를 조절하기 위해 심리 상담 등을 통한 인지행동치료 및 수면제 처방이 병행됩니다. 수면 장애는 수면 방해 요소들을 개선해주는 이비인후과, 치과 치료 등이 처방되고요. 엄연히 다른 질병인 거죠.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 괴롭거나 혹은 많이 자도 개운하지 않다면 자신이 불면증인지, 수면장애인지부터 먼저 진단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수면클리닉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어 놀랐다고 말하자 의사는 대답했다. 그만큼 잠을 제대로 못자는 현대인들이 많다는 증거라고. 불면이든, 수면 장애든 잠을 못 자는 것은 분명 치료해야 할 질병이다.

잘 자고 싶다면
서울스페셜수면신경과의원 하진규 원장이 조언하는 숙면을 유도하는 방법들.
1 뇌로 하여금 밤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 주변을 어둡게 만들 것. 그래야 멜라토닌 분비가 원활해진다. TV를 켜두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은 숙면을 방해한다.
2 잠들기 2시간 전쯤 족욕이나 반신욕을 하는 것도 좋다. 족욕이나 반신욕이 의도적으로 체온을 상승시켜 이후 자연스러운 체온 저하를 유도하기 때문이다. 또한 긴장되어 있던 몸의 근육을 이완시켜 하지불안증후군 등을 개선시킬 수 있다.
3 억지로 자려고 노력하지 말 것. 잠을 자려 억지로 노력할수록 뇌가 각성되고 체온이 상승되어 오히려 더 잠들기 어려운 상태로 접어들 수 있다.
4 절대 수면 시간에 집착하기보다, 밤 시간대에 잠을 자도록 노력한다. 새벽 3시에 잠이 들어 8시간을 자는 것보다 밤 12시 전에 잠이 들어 5시간을 자는 것이 훨씬 좋은 ‘잠’이다.
5 낮에 햇빛을 충분히 쏘이는 것도 숙면에 도움이 된다. 수면 시간대의 멜라토닌 분비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