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플랜 B
출근길 지옥철, 야근에 찌든 밤, 바닥 난 통장의 잔고를 보며 오늘도 이 길이 내 길인지를 고민한다. 인생의 플랜 A와 B에서 헤매는 이들을 위해, 한발 먼저 B에 도전한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장점과 단점을 충분히 비교하자
글로 먹고 사는 기자를 꿈꿨다. 일은 매력적이었지만, 매달 열흘간 새벽 두세 시에 퇴근하는 강행군 속에서 아이를 키우긴 힘들어 보였다. 결혼 후 회사를 그만두고 6시 퇴근이 가능한 공무원 공부를 시작했다. 7급 공무원이 된 이후 여유로운 업무량과 규칙적인 생활을 얻었다. 육아휴직 3년과 정년보장이 따라왔다. 잃는 것도 많았다. 일의 재미와 만족감이 고스란히 사라졌으니까. 나이가 들면서 우선시하는 가치관이 달라졌고, 이 또한 받아들여야 어른이라며 위안하고 산다. 플랜 A와 B를 잘 비교해보라. 현 직장의 장점은 다닐 땐 모른다. 나오고 나서야 뼈저리게 느낀다. 나 역시 공무원의 다양한 직무를 잘 살펴보고, 좀 더 흥미로운 영역을 찾았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 진혜민(7급 공무원)
회사와 공부를 병행하려면 제대로 해라
신문사에서 사진을 다룬다. 주변에 전업 작가가 많다 보니, 창작자의 권리 보장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현재 홍익대 지식재산학 석사 과정(IP School)을 통해 특허권과 상표권, 저작권을 공부하고 있다. 회사와 공부의 병행은 물론 쉽지 않다. 수업을 따라가려면 예습을 해야 하고, 과제는 넘친다. 근무와 겹칠 때마다 진땀을 뺐다. 다행히 회사의 허락을 받았지만,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면 더 열심히 일해야 했다. 달라진 건 인생을 보는 시야와 인맥이 넓어졌다는 점이다. 직장인이라고 해서 절대 학교를 대충 다닐 생각은 하지 마라. 설렁설렁 하다간 회사에서도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학교에 시간과 돈만 버리는 꼴이 된다. 그럴 바에야 안 하느니만 못하다.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을 여럿 봤다. – 장진영(중알일보 사진기자)
쉬면 뒤처진다는 강박은 버려도 된다
광고대행사에서 딱 10년 근무했다. 업계는 점점 더 치열해졌고, 중간관리자가 되면서부터는 일이 나의 성향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줄곧 해온터였다. 지치고 힘들 때 취미로 전통주를 배우게 되었다. 행복의 방법을 고민하던 차, 때마침 전문인 교육과정이 시작되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결단을 내렸다. 지금은 우리 술을 알리는 웹툰< 술은펫>을 연재하고, 팟캐스트에서 <우리술톡>을 진행한다. 수익이 발생되는 일은 아니지만, 곧 전통주 관련한 사업을 실현할 단계니까 걱정은 없다. 출퇴근이 없다는 것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일할 땐 일하고, 놀 땐 놀고 싶은데 둘이 늘 교집합처럼 얽혀 있다. 다만, 더 이상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을 가지고 스트레스를 받진 않는다. 온전히 나를 향한 고민만 하면 되니까, 그게 좋다. 직장인에겐 커리어를 쉬면 안 될 것 같은 강박이 있다. 좀 쉬면 어떤가? 내가 조직에 없어도 세상이 바뀌진 않는다. 잠시 멈추면 내가 진짜 원하는 가치가 눈에 보인다. 그리고 내 행복은 나만이 안다. – 김효실(웹툰 작가)
목표를 세우되, 겁을 버리자
CJ E&M의 공채 PD 1기다. <롤러코스터>와 <끝장토론>, <화성인 엑스 파 일> 등을 제작했다. 회사 다닐 때 난 불만 덩어리였다. 직무, 연봉과 처우 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했다. 다른 동기들이 꿈을 실현했다고 만족할 때, 작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난 더 불안해졌다. 출근하기 위해 샤워를 하던 어느 날 아침, 알몸 상태인 내 목에 사원증이 걸려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그날 바로 그만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 난 매체에 글을 기고한다. 책 <연애전과>를 썼고, 얼마 뒤면 두 번째 연애 에세이가 완성된다. 목표는 드라마 작가다. 지금은 내 드라마를 꿈꾸며 보조 작가로 활동한다. 불안과 걱정, 대기업에 기댄 모범생의 안정된 미래를 버렸더니 진짜 내 삶이 찾아왔다. 일이 재미있고 삶이 생동감 있어졌다. 당신의 결정을 주변에서 말린다면, 확실한 목표와 의지, 주눅들지 않을 자존감만 확실히 기억하자. 귀띔하자면 퇴사하자마자 그달에 잡혀 있던 소개팅이 사라졌다. 이런 사소함에 상처받지 않을 강한 심장만 챙긴다면, 제2의 인생을 향한 도전은 언제든 열려 있다. – 김정훈(작가)
섣부른 투잡은 본잡까지 위협한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결혼하고 싶어 전세 대출을 받았다. 남편도 나도, 적지 않은 연봉이라 쉽게 갚을 수 있다고 여겼는데 막상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집안의 대소사와 줄줄이 이어지는 친구들의 경조사 지출은 예상 외로 컸다. 가계 상황을 고민하다가 우연히 영화< 아메리칸 셰프>를 봤다. 영화처럼 푸드 트럭을 만들면 아주 재미있을 것 같았다. 멋진 미니밴을 구입해 츄러스 푸드 트럭을 만들었다. 본업을 피해 주말에만 운영했지만, 일주일을 모두 일하게 되자 점점 피로가 쌓였다. 푸드 트럭이 합법화되었다지만, 황금 자리 경쟁은 피 튀기듯 치열해서 나 같은 초보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시장 조사와 경험이 부족하니 뭐든 어려웠고, 주변 상인들이 신고해 철수할 때마다 서러웠다. 열정에 넘쳐 앞뒤 재지 않고, 덜컥 거금을 들여 푸드 트럭을 구입한 나를 원망했다. 다행히 지금은 자리를 잡았다. 휴일을 적절히 분배하는 여유도 생겼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린다면, 말릴 거다. 열정만으로 투잡을 하기엔 너무 힘들다. 남보다 세 배 더 성실하고, 책임감이 넘치는 사람만 도전하자. 약간의 돈과 삶의 질을 맞바꿔야 한다는 것도 유념해야 한다. – 김지혜(뷰티 브랜드 홍보)
도전하지 않는 자, 변화는 없다
패션 스튜디오에서 일했다. 열정으로 일하며 밤을 새우던 나날, 미드 <CSI>에 빠졌다. 내가 저 일을 해보면 어떨까, 호기심이 일었고 결국 경북대에 수사과학대학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이십대의 끝자락에서 전혀 다른 전공에 도전했다. 대학원에서 법의간호학을 배운 뒤, 대학병원의 수술 간호사로 4년간 일했다. 그러고 나서야 최근 법의간호사로 자리 잡았다. 범죄 현장에서 변사체를 검시하고, 사망 원인을 밝히는 업무다. 누군가는 무섭다 할지 모르지만, 망자의 한을 풀어주는 매우 중요하고 또 정의로운 일이다. 드라마 <싸인>을 떠올리면 된다. 물론 드라마와 현실은 차이가 크다. 도전을 망설였다면 내 천직을 만나지 못 했을 거다. 또 미래를 긍정적으로 그리지 않았다면 쉽게 포기했을지 모른다. 이 단순한 진리가 내 인생을 바꿨다. – 박은경(법의간호사)
마음이 향하는 가치가 진짜다
코카콜라에 입사해 공익 재단 설립 업무를 맡았다가, 사회 공헌 세계에 눈을 떴다. 후원금을 주는 입장이 아니라 직접 현장을 뛰어보고 싶었고, 내 일의 보람을 피부로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세계아동구호단체로 전직했다. 우선 일하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인권을 위하는 일인만큼 경쟁적이거나, 살벌하지 않을뿐더러 서로를 존중해준다. 현장에 갈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눈빛을 보며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를 매번 상기시킨다. 여기도 직장이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아예 없지는 않다. 기업의 후원금으로 움직이는 NGO 단체의 구조상 종종 을의 설움을 당하기도 한다. 그래도 다 괜찮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 박재흥(플랜코리아 대외협력팀)
인생 선배들의 조언을 귀담아들어라
내 일은 네이버에서 콘텐츠를 발굴해 소개하는 콘텐츠 큐레이터였다. 회사는 나날이 성장했지만, 정작 내 이름의 콘텐츠가 없으니, 내게는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었다. 이렇게 계속 회사원으로 무미건조하게 살 수 있을지 고민하던 시기에 인생 선배들의 조언이 가장 큰 힘이 됐다. 그들의 답은 저마다 달랐으나, 덕분에 내 생각을 찾을 수 있었다. 자유인이 된 요즘은 협동조합 ‘십년후연구소’에서 도시 온난화를 막는 캠페인을 제작한다. 나머지 시간은 인문학공동체 문탁의 스터디 모임에서 2030세대가 적당히 벌고 잘사는 법에 대해 교류한다. 오늘은 오스트리아 사상가 일리치를 배웠고, 그림을 배우러 화실에 다녀왔다. 천천히 커피를 내려 마시고, 밀린 책을 읽는 여유는 내가 얻은 가장 멋진 선물이다. 살면서 고민이 없을 순 없다. 답은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우린 언제나 삶의 해답을 찾아나간다. 인생에서 조언을 구하는 시간을 아끼지 말자.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면 당연히 더 좋은 길이 보인다. 물론 결정은 본인이 해야 하지만 말이다. – 김진선(십년후연구소 조합원)
취미를 살린 투잡을 해라
올 2월에 졸업한 내 명함은 두 개다. 하나는 외국계 기업의 경영 지원을 담당하는 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진가다. 대학생 때부터 사진 찍는 취미를 살려 입사 6개월 차, 결혼과 돌잔치 스냅 전문 사진관을 차렸다. 주말마다 잔치를 찾아다니며 행복을 촬영하는 것이 내 세컨드 잡이다. 투잡의 단점부터 찾는다면 내 달력엔 휴일이 없다. 몸은 솔직히 고되다. 주 5일이지만, 신입사원에겐 변수가 있는 법이라 늘 전전긍긍 눈치를 봐야한다. 하지만 취미를 전문적으로 지속할 수 있다는 장점이 어마어마하다!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사진 찍으며 풀 수 있고, 쌓이는 통장 잔고를 보면 마음이 두둑해진다. 아직 시작하는 단계라 장비에 투자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나날이 사업을 키워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돈만을 위해 투잡을 시작 했더라면 삶이 팍팍해졌을 거다. 또 취미가 취미로만 그쳤더라면, 깊은 재미를 못 느꼈을 거라 확신한다. 혹시나 나처럼 투잡을 고민 중이라면 평소 좋아하던 취미를 살려보라 조언하고 싶다. 설령
그게 돈이 되지 않더라도 후회가 남진 않을 거다. 우린 아직 젊기에 할 수 있는 건 많다. – 김성빈(외국계 회사 경영지원팀 & 사진가)
조금 돌아서 간다 한들 상관없다
음반 프로듀서가 꿈이었다. 여러 기획사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간절히 원하던 합격전화는 오지 않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작은 음반 회사에 입사했지만 사장은 천하의 독불장군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봐야 결국 내 회사를 차리지 않는 한, 제대로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꿈은 그대로 꿈으로 남겨놔야 아름다운 것 같아서, 수입 운동화의 마케터로 자리를 옮겼고, 또 대형 클럽의 홍보 이사도 맡았다. 이후로 이직을 두 번 더 했다. 목표를 잃은 내가 앞으로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시험하고 싶어서였다. 다행히 하는 일마다 잘 풀렸다. 결과도 컸고 칭찬도 받았다. 하지만 마음이 공허하더라. 내가 원하는 삶은 이게 아니었다. 결국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영입해 드디어 내 기획사를 차렸다. 그토록 원하던 여기 오기까지 돌아 돌아서 왔다. 이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춤추면서 일한다. 해보고 아니면 멈추면 된다. 혹여 도전이 잘못된 선택이었다 한들, 그 경험이 내 안에서 사라지진 않는다. 한 뼘 더 깊어진 내공은 언제
든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길고 긴 백세 인생 조금 돌아간들 손해는 없다 . – 노지현(팝그린엔터테인트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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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박소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