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 칼리 클로스의 미래는 현재진행형!
23세의 칼리 클로스는 이미 모델 세계를 정복했다. 하지만 아직 계획한 일이 많다. 공부도 더 할 생각이고, 여자들에게 코딩을 가르치는 일에도 관심이 많다! 그녀는 동향의 패션 에디터 데렉 발라스버그에게 세상을 변화시킬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칼리 클로스를 묘사하는 대부분의 형용사는 보통의 슈퍼모델을 수식하는 말들이다. ‘키가 크다’, ‘탄탄하다’, ‘글래머러스하다’. 하지만 여기 당신이 예상하지 못한 수식어가 있다. 바로 ‘검소하다’. 십대의 칼리를 우리 둘의 고향인 세인트 루이스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만났을 때 바로 그 점을 확인하고서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 얼마나 검소했냐고? 그녀는 패션 하우스에서 사준 1등석 자리를 이코노미석으로 낮췄고, 그만큼의 항공사 마일리지를 아껴 가족을 뉴욕으로 초대했다. 그때 185cm 키의 소유자가 이코노미 좌석에 몸을 접는 모습을 목격했는데, 꽤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2012년, 그녀는 모든 가족을 덴마크로 데려갈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마일리지를 쌓았다!
칼리는 이처럼 일등석보다 ‘가족 먼저’를 모토로 삼은 소녀였다. 톱 모델들마다 동화 같은 ‘픽업 스토리’가 있다. 칼리는 13세 때 세인트 루이스에서 열린 어느 바자회 패션쇼에 나갔고, 지방 스카우터의 눈에 띄어 뉴욕 에이전시로 발탁되었다. 007년 9월, 그녀의 열다섯 번째 생일이 지난지 한 달 되었을 무렵, 뉴욕 컬렉션의 캘빈 클라인 쇼로 데뷔했다. 이듬해 봄, 그녀는 뉴욕 컬렉션에서만 31개의 런웨이에 올랐다. 그 뒤로 디올과 마크 제이콥스 등 럭셔리 패션 하우스의 캠페인 모델이 되었고, 빅토리아 시크릿의 ‘엔젤’로 발탁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녀가 갈망해마지 않던 로레알 파리의 얼굴이 되었다!
본업 외에도 그녀의 관심사는 많다. 2012년에는 글루텐이 들어가지 않은 빵과 쿠키를 만들어 팔아 급식 자선단체를 위한 기금을 모금하기도 했다. 올해 여름, 코딩 수업을 들은 후에는 ‘코드 위드 칼리(Kode With Karlie)’라는 장학 재단을 세웠는데, 이 단체는 젊은 여성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는 것을 돕고 있다. 올해 후반에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시작할 예정이고, 지난 9월엔 뉴욕대에 입학해 신입생으로의 생활도 시작했다.
왜 지금 대학 입학을 결심했나요?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서 서른이 되기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았어요. 올해 스물셋이 되었고, 모델 커리어에서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이게 또 다른 시작이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뉴욕대에서는 어떤 걸 공부할 건가요?
다른 대부분의 학생들처럼 아직 전공을 결정하지 않았어요. 내년쯤 정할 거 같아요. 지난 몇 년간 숙제를 한 적이 없어서 당신에게 도움을 청할지도 모르겠어요.
얼마 전 이메일로 보내준 버즈피드 퀴즈를 해본 적 있나요? 카라 델레바인 쪽이었는지, 아니면 칼리 클로스 쪽이었는지?
내가 칼리 클로스 쪽이었다는 사실에 안도해야 할걸요?
나는 카라 델레바인 쪽이었어요.
카라 쪽이었다는데 기분이 상해야 하나요?
버즈피드에 따르면, 칼리 클로스는 애플파이만큼 달콤하다고 해요. 당신의 이런 다정다감한 슈퍼모델 이미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당신이나 저나 사람들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고 살라고 길러졌잖아요. 저는 ‘굿 걸(Good Girl)’이고, 그걸 지킬 생각이에요.
당신은 친구가 꽤 많죠? 테일러 스위프트를 비롯해서 말이에요.
테일러와는 2년 전에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에서 만났어요. 모델 릴리 앨드리지가 우리를 소개해줬어요. 그녀는 “너희 둘은 친절한 영혼이야. 어떻게 나의 친절한 미국 친구들이 아직도 안 만났을 수가 있어?”라고 말했죠.
그러고 나서 즉시 ‘베프’가 된 건가요?
우리의 우정은 당신과 나 사이와 같아요. 가까운 친구들 대부분이 항상 여행하니까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죠, 특히 문자나 페이스타임 같은.
테일러 스위프트의 ‘Bad Blood’ 뮤직 비디오에 대해 얘기해보죠. 당신을 포함해서 셀레나 고메즈, 카라 델레바인, 레나 던햄까지 등장했죠!
테일러이기에 가능했죠. 사람들을 모으는 굉장한 매력과 재주가 있어요.
테일러처럼 당신도 소녀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어요.
어린 소녀들의 롤모델이 되는 것에 대해서 일종의 책임감을 느껴요. 그게 코드 위드 칼리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소녀들이 프로그래머가 되는 데 관심이 없다고 해도 코딩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것. 내가 어느 누군가에게 그것을 한번 해보도록 영감을 줄 수 있다면 행복해요.
여자가 많은 가정에서 자랐는데, 이런 환경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해요.
엄마와 저, 그리고 세 자매는 무척 가까워요. 아침에 학교 갈 준비를 할 때면 전쟁 같죠! 아빠가 소외감이 들 거 같아서 강아지 조를 입양했어요. 수컷으로요!
그래도 늘 엄마와 함께던데.
이건 자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인데, 엄마는 19년 전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어요. 엄마가 암에서 벗어난 지 18년이 되었다고 말하는 게 자랑스러워요. 엄마가 암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영감을 얻었어요. 저 역시 새로 태어나는 것 같았죠. 엄마는 제게 엄청난 힘을 불어넣는 영감의 원천이죠.
쇼 백스테이지에서 숙제를 하던 모습이 기억나요. 그 모습을 보면서 당신이 패션과 현실 세계 둘 다에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건 이상한 이중 생활이었어요. 하지만 학교에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어요. 고등학교에서 아무도 <보그> 이탈리아판을 읽지 않는 거랑은 달라요.
고등학교 졸업 파티에서는 어떤 드레스를 입었나요?
그걸 물어볼 줄 알았어요! 제게 있던 디올 쿠튀르 의상을 입었어요. 하지만 평상시에는 머리를 대충 묶고, 편한 옷을 입어요.
일을 시작하고 패션 산업이 어떻게 변했죠?
소셜 미디어의 힘이 막강해졌죠. 패션은 덜 엘리트주의적이고 더 접근 가능해야 해요. 데뷔 당시에는 오직 몇백 명의 사람만 패션쇼를 라이브로 볼 수 있었어요. 지금은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으면 누구나 볼 수 있죠. 덕분에 우리 일을 더 많은 대중이 알게 됐죠.
패션 산업이나 모델들에게 잘된 일 아닌가요?
제 커리어에 있어서든, 개인적으로든 잘된 거죠. 진짜 제 성격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댓글은 챙겨서 읽나요? 악플 같은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당연히 몇몇은 읽어요. 대다수의 댓글이 호의적이에요. 하지만 악마들도 있죠. 그들을 무시하라고 배웠어요. 제 인생에 단지 소음일 뿐이니까요.
난 언제나 좋은 댓글을 남겨요.
그래요! 제 런웨이 워킹을 보고 여장 남자 같다고 한 트윗을 기억해요.
사실, 그 트윗은 “여장 남자들이 칼리 클로스에게 런웨이에서 어떻게 워킹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요. 다음 질문! 모델로서 많은 캐릭터를 연기해야 하잖아요. 특히 이입하기 쉬운 모습이 있나요?
재미있는 게 뭐냐 하면, 저는 제 본연의 모습으로 사진 찍힐 때 가장 불편해요. 오히려 특정한 역할을 연기하는 게 좀 더 쉬운 편이죠. 오스카 드렌타의 백조나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의 비즈니스 레이디처럼요.
당신은 이 업계의 많은 여성 롤모델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어요. 대선배 크리스티 털링턴이 당신의 뉴욕대 입학 추천서를 써줬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그녀는 제 영웅이에요.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눈물까지 흘렸어요.
잠깐만, 내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은 없잖아요.
당시 그녀는 도나 카란 스튜디오에서 촬영 중이었고, 도나는 제가 그녀의 엄청난 팬인 걸 알고 저를 초대했어요. 그리고 크리스티를 만났을 때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 거죠.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크리스티와 아이티 봉사도 함께 갔죠?
그녀의 후원 단체인 ‘에브리 마더 카운츠(Every Mother Counts)’의 일원으로 가서 단체의 도움을 받은 엄마들과 아이들을 만났어요. 아주 많은 걸 배운 시간이었죠.
이런 이야기 들어봤나요? “ 당신은 누군가가 왜 마라톤을 했는지 알고 있는가? 걱정 마라, 그들이 당신에게 말해줄 것이다.” 어떻게 당신과 내가 파리에서 하프마라톤을 같이 했는지 얘기해봐요.
당신과 경쟁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걸 해낼 수 있었어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죠. 당신이 좋아하는 질문은 아닌 걸 알고 있지만, 요즘 연애에 대해 말해줘요(그녀는 기술 개발자 조시 쿠시너와 데이트를 한다).
노 코멘트.
그럼 이 질문은 어때요? 지금 행복한가요?
행복해요. 제게 사랑은 나를 도전하게 하고, 웃게 만드는 누군가를 찾는 거예요.
프로그래밍 기술과 관련한 관심에 대해 말해볼까요?
컴퓨터 과학과 프로그래밍은 학교에서 배우는 수업은 아니었지만 전 과학과 수학, 그리고 기술이 어떻게 세계를 바꿀 수 있는지에 매력을 느꼈어요. 그래서 코드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죠.
대체 그 코딩은 뭔가요?
코딩은 우리의 세계가 지어지는 방식이에요. 그게 소프트웨어건, 사람의 몸이건, 모든 게 코드로 소통되죠.
그럼 코딩에 ‘아하!’ 하고 깨달음이 찾아온 순간이 있었나요?
지난여름 플랫아이언(Flatiron)에서 일주일간 코드 수업을 들었을 때….
여름 한 주를 코딩 학교에서 보냈다고? 그건 대단한 헌신인데요!
그랬어요. 저는 코드를 짓는 능력이 있다는 데 엄청난 가치를 발견했어요. 그래서 ‘코드 위드 칼리’ 장학 재단을 시작한 거예요. 이 분야에는 소녀들이 많지 않거든요. 제 여동생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패션 기술과 관련한 스타트업에서 일해요. 많은 회사에 여성 엔지니어가 별로 없어요. 더 많은 여자가 관심을 갖게 하는 게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음 10년간 당신은 어디에 있을 것 같아요?
10년이요? 그건 좀 상상이 안 가는걸요! 하지만 지난 10년간 저는 제 목소리를 찾았고, 제 친구들을 찾았고, 패션에서 제 인생을 찾았어요. 다음 10년간 무슨 일 일어날지 흥분되는 건 사실이에요.
어디에 있건 우리의 고향, 세인트 루이스를 잊지 말아요.
걱정 마세요. 이미 이모 집 옆집을 샀어요. 그러니 언제건 돌아갈 곳이 있는 셈이죠.
최신기사
- 스타일리스트
- 나타샤 로이트(Natasha Royt)
- 헤어
- 해리 조시(Harry JOsh)
- 메이크업
- 프란셀(Francelle)
- 매니큐어
- 트레이시리(Tracylee)
- 글
- 데렉 발라스버그(Derek Blasberg)
- Photographed by
- Tom Mun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