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과 라임 사이

요즘 힙합 신에서는 여성 혐오적인 가사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힙합은 원래 그런 것인가, 창작에 윤리는 없는 건가?

Mnet <쇼 미 더 머니>는 논란을 낳고, 화제를 먹고 자라는 기형적 프로그램이다. 수년간 힙합 신에서 활동하던 래퍼들에게 신인으로 캐스팅을 제안한 시즌 1부터 활발한 논란 거리를 제공했다. “대한민국에서 힙합 하는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알리고, 힙합 커뮤니티가 활성화돼서 힙합이 장르로서 주목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담당 PD의 기획 의도처럼 이제 <쇼 미 더 머니>는 한국 힙합에서 부정할 수 없는 위치로 자리매김했다. “아이돌은 래퍼가 되려고 하고, 래퍼는 아이돌이 되려고 이 쇼에 출연한다” <쇼 미 더 머니4>에 참여 중인 프로듀서 타블로의 말이 그 증거다. 덕분에 시즌 3 우승자 바비는 아이돌이지만 랩을 잘한다는 대중적 지지를 얻었다. 그리고 아이언은 커피 CF도 출연하는 스타성을 거머쥐었다. <쇼 미 더 머니>와 맥을 함께하는 <언프리티 랩스타>도 마찬가지다. 치타와 제시, 키썸은 인지도가 생겼으며, 짧은 치마를 휘날리던 AOA의 지민은 래퍼라는 인식을 다졌다. 이 과정에서 날것 그대로를 방송한다는 리얼리티 정신으로 포장해 수많은 비프리와 무음이 튀어나왔다. 없던 스토리도 포털 헤드라인을 장식해줄 악마의 편집, 비트와 밀당하는 ‘60초 후’의 기술은 프로그램의 인기를 달구는 요인이었다. 프로그램 시작 4년 만에 무반주로 랩을 하고픈 래퍼 7천 명을 인천 남동체육관을 빙빙 돌려 세울 정도로 양성했으니, 그 파급력은 무시하지 못할 만큼 커졌다. 최근 송민호의 가사 ‘MINO 딸내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로 이번에는 여성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참가자들이 이전에 발표한 노래마다 숨겨져 있던 강간과 성교, 성기 등 여성 비하를 넘어선 여성 혐오적인 가사가 도마에 올랐다. 논란의 강도는 시즌 역사상 가장 거세다.

마초와 여혐, 힙합은 원래 그래?

이 논란을 보는 시선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예술적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이다. 누군가는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는 자만 돌을 던져라’, ‘힙합이 유교냐’, ‘달콤한 사랑 노래만 읊어야 하나’라고 성을 낸다. 갱스터 문화에서 비롯한 마초적인 힙합의 본질과 전통성을 끌어와 ‘힙합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방어하는 여론이다. 여자를 ‘Bitch’로 조롱하거나, ‘난 성공했기 때문에 전리품처럼 돈과 명예, 원하는 여자를 가질 수 있다’는 슬랭이 힙합의 장르적 관습이라는 뜻에서다. 비하의 의미가 아닌 ‘기믹(관심을 위한 트릭)’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행간은 비워진 대신 철저한 기믹으로서의 재미를 높게 사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클리셰라는 의견도 많다. 나쁜 걸 알지만 찾게 되는, 일종의 길티 플레이저의 즐거움인 셈이다. 다른 한 편은 듣기 불편한 윤리적 문제라 말한다. 예술에서도 논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기준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흑인 음악 웹진 <리드머>의 편집장 강일권은 트위터를 통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여성 비하 랩 가사들에 관해 힙합 팬이라고 다 인정하고 재미있어하지 않습니다. 힙합이라고 여성 비하 표현을 쓰는 게 당연한 것도 아니고요. 일단 전 해당 가사들이 굉장히 생각 없이 쓴 질 낮은 가사라 생각합니다”는 소견을 밝혔다. ‘여성 비하 가사를 쓴 래퍼를 옹호할 때 은유가 담긴 워드 플레이일 뿐이고, 불편함을 느낀 것은 본인들의 피해 의식일 뿐이라는 논리는 일차원적’이라는 주장에 찬반이 갈렸다. 힙합 장르의 특성을 이유로 출연자들이 가진 발언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며,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는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을까. 사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방송사 측에 내린 중징계와 제작진은 물론 가사를 쓴 송민호가 사과하면서 일단락됐다. 방송이 19금 딱지가 붙지 않은 금요일 황금 시간대의 녹화분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니 더 씁쓸해질 뿐이다.

예술은 사람이 사는 다양한 모습을 반영한다. 힙합 역시 예술의 한 장르다. 우리는 예술이 올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매력적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표현의 자유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보장되고 권장받아야 할 영역이다. 하지만 그 결과 사회적인 약자가 불편함을 느낀다면? 예술가의 창작이 공식적으로 발표되고, 그것이 다른 이에게 폭력이 된다면 지탄받아야 마땅한 문제로 바뀐다. 예술이라 해서 면책 대상이 될 순 없다. 관습 역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심사를 하던 버벌진트의 말처럼 “이건 누가 봐도 즐거운 게임이었을까?”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면, 그건 이미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는 증거다.

    에디터
    박소현
    포토그래퍼
    심규보(Shim Kyu 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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