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에서 만난 배우 김하늘
새파란 하늘과 초록빛 바다, 그리고 피부를 감싸 안는 부드러운 바람까지. 일본의 하와이라고 불리는 오키나와 하늘 아래를 배우 김하늘과 함께 걸었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의 서이수라는 사랑스러운 캐릭터 이후, 김하늘은 조용히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 정우성과 함께한 뜨거운 멜로 <나를 잊지 말아요>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한편, 곧 김태용 감독의 새로운 영화 <여교사(가제)>가 촬영에 돌입한다. 그 사이 그녀는 <얼루어>와 함께 오키나와로 떠났다. 10년 이상 함께 한 스태프들과 떠난 여행지에서 김하늘은 편안해 보였다. 좋지 않은 날씨 때문에 모두가 지칠 때쯤이면 먼저 밝게 분위기를 띄운 것도 그녀였다. 오키나와를 떠나기 하루 전날 드디어 해가 났고,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는 가운데 그녀는 “난 원래 이렇게 될 줄 알았는데?”라고 말하며 주인공답게 뜨거운 태양 아래로 성큼성큼 걸어 나아갔다. 우리가 오랫동안 지켜봐온, 밝고 아름다운 여배우가 거기에 있었다.
오키나와는 처음이죠?
오키나와를 다녀온 주변 사람들로부터 아름다운 곳이라는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었어요. 머무는 동안 날씨가 안 좋아서 아쉬워요. 친구에게 제가 찍은 오키나와 바다 사진을 보냈더니 원래는 이보다 훨씬 더 푸르다고 하더라고요.
일정 중에 어떤 게 가장 기억에 남나요?
여행을 오면 뜻밖의 일이 생기잖아요.비행기가 4시간이나 늦게 출발한 것, 유명한 오키나와 소바 가게를 찾았더니 문을 닫은 것, 비가 엄청나게 내린 것. 이런 일이 겹치니까 오히려 재미있더라고요. 시간이 지난 후에 생각해보면 모두 추억이겠죠.
여행을 즐길 줄 아는걸요? 오키나와의 전통 문화 체험도 했죠?
오키나와의 전통 사자상인 시사를 칠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친구와 함께 여행했으면 이런 체험이 있는 줄도 몰랐을 거예요.
다음에 또 온다면 하고 싶은 건 뭔가요?
스노클링이요. 오키나와의 바다는 조금만 들어가도 열대어들을 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원래 여행을 좋아하는 편인가 봐요.
정말 좋아해요. 서울에 있을 때도 혼자 드라이브를 즐기고, 몇 년 전에는 혼자 파리에도 다녀왔어요. 지하철을 타고 도서관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나러 갔는데 무사히 도착해서 친구한테 ‘나 왔어’ 하고 문자를 보낼 때 참 뿌듯했죠.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것 아닐지도 몰라요. 하지만 배우는 여러 사람에게 보호받는 직업이다 보니 혼자 뭔가를 한다는 게 어색하고 머뭇거리게 되거든요.
그런 머뭇거림을 던져버리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엄청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언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데 그냥 어떤 영화가 무척 보고 싶었어요. 그날 그 시간, 그 영화가 보고 싶은데 그때 딱 맞춰 같이 보러 갈 사람이 없는 거죠. 다른 날 볼까, 누구한테 연락해서 약속을 잡을까 고민하는데 순간 고민하는 내가 너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결국 영화는 봤고요?
네. 혼자 보니 영화에 집중할 수 있어서 더 좋던걸요? 예전에는 혼자 드라이브를 하다가 걷고 싶은 예쁜 길을 발견해도 내려서 걷는 게 두려웠어요. 그런데 지금은 ‘걷고 싶은데 왜 못 걸어?’ 하고 차에서 내려요.
선을 조금씩 넘은 셈이군요! 혼자 밥 먹고, 혼자 영화 보는 게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계속 어려워하죠.
저도 제가 직업 때문에 그걸 어려워하는 건지, 타고난 성향이 그런 건지 모르겠어요. 중요한 건 하나하나 선을 넘은 시간들이 제게 큰 의미가 됐다는 거예요.
당신의 필모그래피에서도 지금 말한 면들이 느껴져요. 멜로든 액션이든 다양한 역할을 해왔죠.
맞아요. 낯선 걸 두려워하면서도 결국에는 하고 싶은 마음이 이기더라고요. 늘 망설이고 걱정하면서도 하고 싶으면 도전하는 편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아요.
가장 망설였던 역할은 뭐였나요?
영화 <블라인드>의 수아 역할이요. 시각장애인 역할은 처음인데 스릴러적 요소도 있었으니까요. 몸을 써야 하는 역할은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으며 연습하다 보면 할 수 있어요. 감정적인 역할도 내 안의 것을 꺼내려고 노력하면 되는데 수아는 전혀 다른 캐릭터였어요.
그 작품으로 그해 대종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죠. 수상 소감 중에서 연기가 너무 어려워서 매번 그만두고 싶어 했다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어린 마음에 제가 못하니까, 다른 사람에게 피해 준다는 생각에 너무 괴로웠어요. 그런데도 신기하게 사람들이 저를 계속 찾아주고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주니까 저도 모르는 장점이 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면서 희망도 생기고, 오기도 생겼죠.
‘로코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는 마음에 드나요?
배우에게 어떤 수식어가 있다는 게 나쁜 건 아닌 것 같아요. 데뷔 초에는 청순한 역을 하다가 밝고 귀여운 캐릭터로 연기 변신을 했는데 그 작품들이 좋은 반응을 얻은 게 기쁘기도 했고요. 지금은 좀 더 성숙한, 여자 느낌이 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러면 또 다른 수식어가 생길 수도 있겠죠.
<신사의 품격>의 서이수도 드문 캐릭터 아닌가요? 30대, 40대 어른들의 연애라는 점에서 말이에요.
서이수도 밝고 사랑스러운 역에 가깝죠. 사실 제게는 가장 힘들었던 캐릭터 중 하나예요. 로맨틱 코미디의 밝은 캐릭터를 영화에서는 종종 했지만 드라마에서 해본 적은 없어서 그 캐릭터를 긴 호흡으로 가져가려니 정말 어렵더라고요. 스스로의 연기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여배우의 역할이 남자 배우보다 제한적이라는 이야기가 많아요. 당신 생각은 어때요?
여배우라면 다들 공감할 이야기예요. 작품이 많지도 않고, 역할과 캐릭터도 매우 한정적이에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지죠.
얼마 전 <거인>의 김태용 감독의 새 영화에 캐스팅됐어요. <여교사>는 어떤 영화인가요?
한 여자, 인간에 대한 이야기예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 질투, 모멸감 등 여러 감정을 그려내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역할이어서 연기적으로 욕심도 많이 나고요.
제목 때문에 자연스레 <로망스> 때의 당신을 떠올렸는데, 실수였네요.
연상녀, 혹은 선생님과 제자의 사랑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예요. 어떻게 보면 이것도 도전인 거죠. 저는 매사가 이런 식이에요.
하고 싶은 게 많은 것 같아요. 지금 계획 중인 또 다른 일이 있어요?
승마도 배우고 싶고, 게스트 하우스 같은 데서 머무는 여행도 하고 싶고, 하고 싶은 건 많아요. 쉴 때도 어떨 때는 촬영 있을 때보다 더 바빠요. 혼자 한 달 정도의 스케줄 표를 짜거든요. 평일에는 기타, 영어를 배우러 다니고 운동도 하다가 다른 사람들처럼 주말에 몰아 쉬기도 하고요.
이곳에 오기 전에도 오키나와 날씨를 찾아봤다고 들었어요.
혼자 뭘 알아보는 걸 좋아해요. 원래 가려던 오키나와 소바집이 문을 닫았을 때 사실은 가고 싶어서 찾아둔 또 다른 가게가 있었어요. 너무 멀어서 강하게 주장하지는 못했지만요.
다양한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을 했잖아요. 그중에 내 연애도 이랬으면 좋겠다, 싶은 게 있나요?
<신사의 품격>에서의 프러포즈 장면이요. 친구들이 두 사람을 위해 축하하며 등장하는데, 작품을 할 때는 그들이 정말 제 친구들이잖아요. 그런데 나와 남자친구를 위해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준다는 사실이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카메라가 뒷모습을 찍고 있을 때부터 저는 펑펑 울고 있었죠.
의외예요.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서 하는 소란스러운 이벤트는 좋아하지 않을 줄 알았어요.
어머.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그때는 이게 현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많은 사람이 보고 있다면 싫을 것 같기도 해요. 그럼 길에서만 하지 않는 걸로!
-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이마루
- 포토그래퍼
- 박자욱
- 스타일리스트
- 최경원
- 헤어
- 강성희(보보리스)
- 메이크업
- 수이(보보리스)
- 취재협조
- 오키나와 컨벤션 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