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여자들의 이야기
예능은 남자들이 잠식한 지 오래지만 드라마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여자 이야기
예능은 남자들이 잠식한 지 오래지만 드라마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남주인공과 여주인공, 둘만의 세계를 그린 로맨스에서 벗어나 ‘여자들’이 전면에 나선 드라마가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 것. 선두에 선 것은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다. 출연진 이름만 봐도 든든하다. 김혜자와 장미희, 채시라, 도지원, 그리고 이하나까지. 탄탄한 연기력을 선보여온 각기 다른 세대의 배우들이 포진해 있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인생은 순탄치 않다. 강순옥(김혜자)은 평생 남편의 바람을 지켜본 것으로 모자라,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남편이 사랑했던 장모란(장미희)과 함께 살게 된다. 갈 데 없이 주저앉게 된 장모란은 위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몸이다. 순옥의 두 딸의 인생도 각각이다. 촉망받던 앵커인 큰딸 김현정(도지원)은 나이가 들면서 앵커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고, 선생님의 미움을 사는 바람에 고등학교 퇴학을 당한 둘째 딸 김현숙(채시라)은 저축은행 사태로 재산을 날린 뒤 도박장까지 넘나들게 된다. 하지만 인생에 재미있는 일이 도통 없는 삶이라고 해서 그녀들 캐릭터가 매력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고운 외모와 달리 거침없는 입담을 가진 순옥과 우아함이 몸에 밴 모란은 조강지처와 내연녀의 관계를 뛰어넘는다. “이렇게 와서 초라한 몰골로 앉아 있는 게 죗값을 치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한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모란에게 순옥이 “그러면서 비비 크림은 왜 바르는 거냐”고 묻는 식이다. 현숙 역을 맡은 채시라는 망가지기로 작정했다. 동네 일진 청소년들에게 일갈하는 장면에서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착착 달라붙는 대사도 한몫한다. “생긴 것도 쌍스럽게 생긴 것들이 바지통만 줄여 입음 다야?” 누군가는 TV 리모컨 결정권을 손에 쥔 중장년층 여성들을 사로잡기 위해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 아줌마들을 앞세웠다고 하지만 <태양의 여자>, <결혼하지 않은 여자> 등 여자 이야기를 꾸준히 써온 김인영 작가가 그리는 여자들의 삶은 유쾌하면서도 속 깊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5화 시청률은 11%를 기록했다.
<선암여고 탐정단>의 세계는 그보다 훨씬 독특하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미스터리 수사물에 다섯 명의 여고생이 주축이 되는 청소년 드라마를 표방했으니 애초부터 대중적인 흥행성을 노린 작품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선암여고 탐정단 : 방과 후의 미스터리>라는 든든한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그 이상의 의미를 성취해낸다. <선암여고 탐정단>은 평범한 학원물이 아니다. 여고생 탐정단이라는 말은 장난처럼 보이지만 이들이 밝혀내는 진실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학교장까지 나선 사교육 실태, 학교뿐 아니라 SNS로까지 번져나간 청소년 왕따, 10대의 임신과 낙태 등의 문제를 드라마는 적극적으로 다룬다. 탐정단 소녀들의 목표는 꿈을 찾는 것도,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비밀을 파헤쳐가며 어른들이 구축한 세상의 뒤틀린 점을 지목하고, 잘못된 것은 ‘현재의 어른들’임을 명확하게 한다. 지난 2월 25일 방송된 12화에서는 여고생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를 다루며 키스 장면을 내보내기도 했다. 이후 일어난 논란에 대해 연출을 맡은 여운혁 CP는 이렇게 대응했다. “우리가 만난 동성애자 학생들은 실제로 학교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했다. 이들에 대한 옳고 그름은 우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됐다. 우리는 다양성이 인정되길 바라기에 제작하게 됐다.” <선암여고 탐정단>은 현재 시즌 1을 14화로 마치고 시즌 2 제작을 기획 중이다. 한편 김희선은 학교폭력에 힘들어하는 딸을 위해 유급생으로 고등학교에 잠입하는 ‘앵그리맘’으로 변신할 예정이다. 아줌마와 학교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드라마는 3월 18일 첫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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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처 에디터 / 이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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