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밝혀줄 새로운 트렌드는?
새해가 밝았다. 생기를 잃고 얼어붙은 마음에 한줄기의 짜릿한 전류를 흐르게 할 패턴 트렌드를 주목하자.
맨 정신으로 버티기 힘든 한 해를 보냈다.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그동안 우리에게 기운을 북돋아준 사람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겨울의 시작 또한 혹독했다. 평년의 기온을 훨씬 밑도는 살인적인 한파는 고단함으로 축 처진 어깨 다시 한 번 움츠러들게 했고, 그렇게 우리는 전원 스위치를 하나 둘 꺼버리듯 생기를 잃어 갔다. 하지만 눈으로 뒤덮인, 만물이 얼어붙은 한겨울의 고요한 풍경 속에서도 새로운 생명의 심장은 태동하기 마련. 한껏 경직된 겉모습과 달리 올겨울의 패션 트렌드는 그 어느 때보다 에너지 넘치는 새해를 준비하고 있다. 삭막하고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의 마음은 요동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을/겨울 컬렉션을 점령한 프린트 트렌드는 요즘 사람들의 심리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단정한 꽃무늬나 파스텔톤의 부드러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혼란과 까마득한 현기증, 광란으로 가득 찬 뇌리를 반영하듯 굴곡진 선, 뒤엉킨 색과 파편처럼 부서진 형상의 조각들로 가득했고, 이 요소들은 혼돈 속에서 부딪히고 융화하며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아갔다. 그 시작은 큐비즘이었다. 조르주 브라크, 파블로 피카소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입체파 예술가들의 시선은 트렌드를 주도하는 수많은 브랜드의 런웨이에서 느낄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깨진 거울처럼 평면적인 형상을 파괴해 다양한 각도로 재정립하는 입체파적 미학에 가장 충실한 브랜드는 프라다였다. 짙은 보라색과 빨간색, 청록색과 겨자색 등 보색대비가 뚜렷한 프라다의 큐비즘 패턴은 실크 소재의 여성스러운 데이 드레스와 이브닝 드레스에 젊은 감각을 불어넣었다. 샤넬과 끌로에는 원과 사각형, 지그재그 등 다양한 도형이 일정한 규칙을 두고 서로 부딪히는 독특한 패턴을 선보였는데, 채도 높은 원색으로 복고적인 느낌을 강조해 난해함을 벗어난 영민함이 돋보였다. 프로엔자 스쿨러의 큐비즘에서는 섬세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톤 다운된 색상, 가는 선과 면의 조합은 TV의 화면조정 모니터처럼 지글지글 움직이는 듯했고, 묘하게 빠져드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렇게 형체의 파괴에서 비롯된 큐비즘은 곧 환각과 최면을 불러일으키는 패턴으로 무게중 심을 옮겨갔다. 눈을 어지럽게 한 옵티컬 아트의 정수를 보여준 디자이너는 단연 드리스 반 노튼이었다. 평범한 줄무늬를 뒤틀거나 과녁을 연상시키는 원 형 패턴을 분할하고 깨트려서 시선을 집중시켰다. 여기에 네온 핑크, 옐로 등 아찔한 컬러의 거친 꽃무늬를 더해 완성도 높은 컬렉션을 선보였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현기증>을 연상시킨 보테가 베네타 컬렉션은 옷의 재단에서부터 선과 면을 왜곡하는 시도를 선보였다. 곧게 뻗어나가던 선은 불규칙한 플리츠로 왜곡되어 영화의 포스터에 등장한 소용돌이로 재탄생했고, 엇갈리게 이어 붙인 패치워크 디테일은 면을 다각도로 분할하며 영화 속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인 종탑의 계단 신을 떠오르게 했다.
1960~1970년대식 사이키델릭 문화의 영향 또한 눈에 띄었다. 전류가 흐르듯 짜릿한 대비의 컬러로 불규칙한 형태의 패턴을 선보인 겐조는 섹시한 은하계 여전사의 모험을 다룬 영화 <바바렐라>의 기묘한 에너지를 담아냈고, 반복된 소용돌이 패턴과 오렌지, 일렉트릭 블루 등 화려한 색상을 놈코어 스타일의 옷차림에 적용한 아크네의 컬렉션은 사이키델릭 룩과 몽환적인 전자 음악으로 무장한 ‛지기 스타더스트’ 시절의 데이비드 보위를 떠오르게 했다.
이렇듯 이번 시즌 패턴 트렌드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는 사람의 복잡한 심리를 시각적으로 반영하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흐름을 찾아 새로운 에너지를 발산하는 과정을 보는 것이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했던가. 절망과 혼돈이 뒤섞인 한 해였지만 그 끝에는 분명 다음을 위한 움직임이 있었을 거다. 그러고는 힘찬 새해를 맞이할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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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패션 에디터 / 박정하
- 포토그래퍼
- JAMES COCHRANE, 심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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