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레드 컬러 트렌드

여성스럽고 정열적이며 섹시하다. 산타클로스의 선물처럼, 추운 겨울 우리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할 레드 컬러 트렌드가 돌아왔다.

1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루브르의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영화 <퍼니페이스>의 오드리 헵번. 2 1990년대 최고의 패션 아이콘이었던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 공식석상에 빨간색 옷을 자주 입고 등장하기로 유명했다. 예로부터 빨간색은 VIP를 상징하고 권력을 나타냈는데, 조선시대 왕의 도포가 빨간색이었던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다. 3 토끼털 장식의 폴리에스테르 소재 코트는 가격미정, 잇 미샤(It Michaa). 4 스웨이드 소재의 스트랩 펌프스는 가격미정,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일년 중 감정의 농도가 가장 짙어지는 연말이 다가왔다. 한 해를 정리하며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평소 잘 만나지 못했던 사랑하는 사람들과 따뜻한 곳에 모여 온정을 나눈다. 누군가는 다가오는 새해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커져가는 외로움과 아쉬움에 안타까워하는 등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연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색깔은 단연 빨간색이 아닐까 싶다. 불과 같은 열정, 피보다 진한 사랑, 마그마처럼 끓어오르는 화, 기쁨, 경계, 흥분까지, 빨간색만큼 많은 감정을 지닌 색깔은 드물기 때문이다. 특히 동양권에서는 예로부터 결혼식이나 명절 같은 좋은 날에 붉은색 옷을 입는 문화가 있었기에 빨간색과 연말연시를 연관 짓는 것이 우리에게는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파리와 뉴욕, 밀라노의 2014년 가을/겨울 시즌 런웨이 또한 이 따스한 붉은색의 물결에 휩싸였다. 디자이너들은 컬렉션의 정점에 다다랐을 때나 컬렉션 중간 중간 악센트가 필요할 때마다 강렬한 빨간색 의상을 내보내며 에너지를 더했고, 평소 검은색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던 이브닝 룩도 빨간색의 정열적인 드레스로 대체되었다. 무난한 느낌의 옷차림에서 시선을 집중 시킨 것 역시 빨간색의 액세서리였다. 또 토마토 레드, 버건디, 푸시아 레드 등 같은 빨간색이라도 시즌마다 유행에 따라 빛깔이 조금씩 달라져왔는데 이번 시즌만큼은 잘 익은 딸기처럼 새빨간, 순도 높은 원색의 빨강에 집중하자.

5 비스코스 소재의 프린트 블라우스는 6만9천원, 자라(Zara). 6 비스코스 소재의 프린트 스커트는 6만9천원, 자라. 7 송치 소재의 숄더백은 49만8천원, 바이커 스탈렛(Biker Starlet). 8 폴리에스테르 소재의 팬츠는 6만9천원, 자라. 9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벨벳 소재의 레드 드레스를 입은 비비안 리. 극중 그녀가 맡은 캐릭터의 이름 또한 빨간색을 뜻하는 ‘스칼렛’이었다. 이 드레스는 스칼렛의 열정적인 캐릭터를 가장 잘 드러낸 의상으로 손꼽힌다. 10 울 소재 재킷은 59만8천원, 럭키 슈에뜨(Lucky Chouette). 11 울 소재 스커트는 18만9천원, 잇 미샤. 12 인조 진주 장식의 에나멜 소재 귀고리는 2만9천원, 하이 칙스(High Cheeks).

새빨간, 순도 높은 원색의 빨강에 집중하자. 빨간색은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힘이 있다. 그래서 VIP를 위한 길목에는 레드 카펫이 깔려 있고, 영화 속 여주인공이 가장 돋보여야 할 때 흔히 빨간색 옷을 입고 등장하는 것이다. 영화 <퍼니페이스>에서 톱 모델 역을 맡은 오드리 헵번이 드레스 자락을 휘날리며 루브르의 계단을 내려올 때나 <어바웃 타임>의 레이첼 맥애덤스가 폭풍우 속의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릴 때 입은 새빨간 드레스가 좋은 예다. 이런 시선을 확 잡아끄는 레드 드레스는 발렌티노, 프라발 구룽, 톰 포드, 베르사체, 돌체앤가바나 등 글래머러스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브랜드의 단골 이브닝 룩으로 등장했다. 베르사체와 프라발 구룽은 과감한 절개와 비대칭 실루엣으로 드라마틱한 매력을 살린 롱 드레스를 선보였고, 발렌티노와 돌체앤가바나는 시폰과 레이스 같은 섬세한 소재로 만든 여성스러운 실루엣의 드레스를 제안했다. 벨벳 소재의 긴 티셔츠 드레스를 선보인 톰 포드나 털이 긴 키다시아 양털로 드레스를 만든 프라다처럼 아방가르드한 디자인 또한 주목을 받았다.


빨간색은 평범한 옷차림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도 가지고 있다. 발렌티노는 미니 드레스와 숄더백, 스트랩 슈즈를 모두 빨간색으로 통일해 심플하면서도 눈길을 잡아끄는 룩을 선보였고, 생 로랑의 에디 슬리먼은 어두운 색 일색의 룩에 강렬한 ‘빨간 망토’를 등장시켜 컬렉션의 중심을 잡았다. 사카이의 두툼한 울 코트와 미디 스커트 또한 빨간색으로 채색됐고, 빅토리아 베컴의 미니멀한 실크 드레스는 빨간색으로 거듭나면서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아우라를 뿜어냈다. 빨강은 이번 시즌 액세서리 트렌드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샤넬, 펜디, 세린느, 루이 비통, 발렌티노, 프라다와 미우 미우 등 요즘 여자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브랜드의 시그니처 백과 슈즈는 저마다 빨간색 버전으로 새롭게 출시되어 마음에 불을 질렀고, 참신한 디자인에 빨간색을 입힌 컬렉션 피스들 또한 매력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이번 시즌 빨간색을 입을 때 지켜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단순함을 유지하는 것. 실루엣은 간결하게, 장식은 최대한 줄일수록 세련되고 지적인 느낌이 든다. 두 번째는 빨간색이 옷차림의 중심이 되게 하는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빨간색으로 무장하는 것도 좋지만, 그게 부담스럽다면 무채색 옷차림에 강렬한 빨간색 코트나 액세서리를 매치해 시선을 한곳으로 모으는 것을 추천한다. 열정적이고 예쁘게, 극도의 여성미와 활기찬 에너지를 겸비한 빨간색으로 이번 시즌 스타일의 심장을 뛰게 하는 동력을 발휘해보는 건 어떨까.

    에디터
    패션 에디터 / 박정하
    포토그래퍼
    이주혁
    Photography
    InDigital, Getty Images/Multibits
    어시스턴트
    유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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