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오카 겐메이로부터 온 편지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이너’ 나가오카 겐메이는 오래 쓰고, 오래 볼 수 있는 ‘롱 라이프 디자인’을 고른다. 그의 철학으로 만든 디앤디파트먼트 스토어를 서울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다. 현해탄을 건너 그와 나눈 말은, 소비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정표가 되어준다.
<디자이너 생각 위를 걷다>,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이너> 등 우리나라에도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한 디자이너 나가오카 겐메이. 책이 설명하는 것처럼 그는 직접 디자인을 하기보다 디자인에 대한 생각과 철학으로 많은 사람의 공감을 자아내는 디자이너다. 무인양품의 하라 켄야와 함께 일본 디자인의 정수를 보여주는 디자이너로도 유명한 그는 오래전부터 ‘롱 라이프 디자인(Long Life Design)’에 골몰해왔다. 생명력이 긴 디자인을 뜻하는 ‘롱 라이프 디자인’은 ‘무엇이 좋은 디자인인가?’에 대한 근원적 물음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서 찾은 답이다. 그가 세운 ‘디앤디파트먼트(D&Department) 스토어’에서는 그 답을 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 있다. 50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지금까지도 멋지고 단단한 리키 와타나베의 시계, 홋카이도의 목공예 공방에서 겨우내 만든 나무 접시 같은 것들부터 누군가에게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지만 여전히 쓸모가 살아 있는 물품을 깨끗하게 닦고 손질한 재활용 제품도 판매한다. 재활용 제품을 제외한 모든 제품은 처음 만든 연도와 생산지가 표기되어 있다. 디앤디파트먼트 서울은 디앤디파트먼트의 첫 해외 상점이다.
한남동 엠엠엠지(mmmg)에 위치한 디앤디파트먼트 서울에는 일본 디앤디파트먼트에서 골라온 것부터, 한국에서 찾아낸 롱 라이프 디자인 제품이 가득하다. 그런데 이 디자인 제품은 일부러 모양을 낸 디자인 제품이 아니다. 삼화금속에서 만든 미니 가마솥, 담양에서 장인이 만든 죽세공품부터 여느 학교 식당에서 볼 수 있는 스테인리스 컵과 접시, 때밀이 수건과 우리나라에서 만년필과 볼펜을 가장 잘 만드는 아피스의 볼펜과 만년필도 있다. “업무용 제품은 대부분 매우 단단하고 군더더기가 없고 기능적으로 만들어졌다. 너무 화려하게 만든 제품보다는 일상에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담담하게 만든 물건이 굿 디자인, 롱 라이프 디자인이다.” 디앤디파트먼트 서울 최윤호 실장의 말이다. 우리나라의 좋은 물건과 훌륭한 생산자들이 값싼 해외 상품과 해외 노동력에 밀리고 있는 현실 속에서 디앤디파트먼트는 좋은 디자인은 물론 소비에 대한 자세를 점검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이들은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롱 라이프 디자인’을 찾고 있다. 이곳을 만든 나가오카 겐메이의 의중이 더 궁금해졌다. 그에게 보낸 이메일은, 단정한 문장과 함께 돌아왔다.
디앤디파트먼트 서울(D&Department Seoul, 이하 디앤디)이 순항 중이다. 디앤디의 첫 해외 지점인데, 이곳을 열면서 어떤 것을 기대했나?
일본 디앤디를 서울에서 재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디앤디의 ‘롱 라이프 디자인이라는 콘셉트를 한국에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하고 기대했다. 앞으로도 우리가 해야 할 프로젝트이기에, 지금부터 쭉쭉 한국의 롱 라이프 디자인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당신은 디자인의 지속성에 대해 계속 고민해왔다. 버려지는 디자인과 버려지지 않는 디자인을 가르는 조건은 무엇이었나?
이야기다. 내력이 있는 것은 버릴 수 없다. 물건이 탄생한 배경이나 어떤 사람이 어떠한 생각으로 만들고, 팔고 있는가. 이러한 이야기가 보이는 것들은 버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디앤디는 지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물건을 고르고, 판매할 때에도 지역을 내세운다. 그냥 볼펜이 아니라, 부산에서 온 볼펜이라는 걸 강조한다. 지역색은 왜 중요한가?
그 지역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풍토에 맞는 생태계에서 삶을 영위해나가야 한다. 즉, 그 지역의 개성이나 매력을 정확히 본다면, 그 지역에 뿌리내리고 살 수 있다. 가장 자기다운 것, 즉 ‘정체성’은 살아가는 데 양식이 된다.
소비자도 생산자를 잘 알아야 한다고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
본인이 먹고 사용하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안 그런가?
디앤디에서는 새 제품뿐만 아니라 중고 제품을 판매한다. 이건 서울에서도 마찬가지다. 잘 닦은 오래된 컵이 줄지어 늘어선 풍경이 낯설면서도 따뜻해 보였다. 중고품을 함께 판매한다는 것이 독특하다.
좋은 물건에는 중고품과 신상품이 따로 없다. 생산이 중지된 물건들 중에서도 좋은 물건이 잔뜩 있다. 그것들을 더욱 유통시켜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끊임없이 물건을 사고, 또 버린다. 우리는 소비자로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당신은 필요 없어진 물건이나 구입을 후회하는 물건을 어떻게 하나?
알고 있는 사람의 중고품을 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되고, 물건을 버릴 수 없게 된다. 앞으로 물건을 살 때에는 ‘누구에게 샀는가’에 중점을 두어보라. 나 역시 젊은 시절, 유행을 좇아 사버린 물건이 있다. ‘이런 거 사지 말걸’ 하고 후회하는 중이다. 유행에 좌우되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생활에 대해 생각하고 물건을 고르면 어떨까?
디앤디에서 목욕용 ‘때밀이 타월’ 같은 익숙한 물건을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때수건은 어느 집에서나 늘 보던 것이지만, 그것을 ‘디자인 제품’으로 인식하지는 못했다. 디앤디는 그런 익숙한 제품을 다시 보게 한다. 당신은 이런 사례를 자주 볼 것 같은데?
실제 생활에 관심을 가지면서, ‘어릴 때부터 있었던 이 좋은 물건을 실제 생활에 엮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여기에는 ‘센스’와 ‘밸런스’가 중요하다고 본다. 나는 ‘옛날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변하지 않는 것과 계속 변화하는 시대의 조합를 잘 조합하는 나라가 문화 수준이 높은 나라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지역별 여행을 다루는 잡지 <디 디자인 트래블>의 발행인이기도 하다. 여행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디 디자인 트래블> 여행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먼저 그 장소로 가라. SNS나 페이스북의 사진으로만 간 듯한 거 말고! ‘그 지역이기에 멋있다’라고 생각한 것을 지지하면서, 돈을 내고, 사고, 먹고, 사람을 만나라.
제품을 고를 때뿐만 아니라 진열하고 전시하는 방법도 고민했을 것 같다. 디앤디는 마치 누군가의 창고에 온 듯한 모습으로 정리되어 있다. 지금과 같은 방식을 취한 이유는?
사람들의 충동 구매를 막기 위해서 일부러 한 듯한 디스플레이나 연출은 하지 않는 게 철칙이다. 보통 가게들은 사람들을 매혹시키기 위해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한 상황을 연출하나? 어떻게든 사람들의 마음을 당겨 ‘어머 이건 사야 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구매를 유도하게끔 디스플레이를 하고 있다. 그런 제품을 사서 집으로 돌아간 뒤, 자신의 좁은 집에 놓고는, ‘뭔가 다른데?’라면서 후회에 빠지는 경우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서 디앤디는 처음부터 현실적이지 않은 연출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냉정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생활을 생각하고, 곰곰이 생각해서 구입해주길 바란다.
디앤디 서울에는 일본 아이템과 한국 아이템을 모두 찾을 수 있다. 한국 아이템 중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은 아이템을 고른다면?
때밀이 타월, 스테인리스 밥그릇.
디앤디에는 지속가능한 소비, 공정무역, 재활용, 지역 음식 등 환경에 대한 철학이 가득하다. 여기에 앞으로 더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것들을 일상생활에서 24시간 체험할 수 있는 호텔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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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허윤선
- 포토그래퍼
- 이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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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D&Department 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