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 피부로 산다는 것 <1>
알레르기와 홍조, 아토피, 여드름. 듣기만 해도 건조함과 따끔함을 부르는 민감성 피부의 대표 고민들이다. 피부는 왜 민감해지는지, 상태에 따라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하늘은 미세먼지로 막혀 희뿌옇고, 모공은 노폐물로 막혀 트러블을 유발한다. 아침저녁의 기온차는 4월이 되어도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피부 혈관은 여전히 아침저녁으로 줄었다 늘었다를 반복한다. 피할 방법이 없는 자외선도 오존층이 얇아지면서 점점 더 강해지고, 그래서 생긴 잡티를 간단하게 지우는 시술은 나날이 간단해지고 가격도 매력적이다. 여드름으로 인해 생긴 흉터를 한 번에 해결해준다는 박피재생술은 매끈한 피부결을 안겨주지만, 동시에 피부를 민감하게 한다. 오염된 환경과 스트레스는 피부의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그래서 생긴 염증이 반복되면서 문제성 피부가 된다. 집에서 피부과 시술과 동일한 효과를 주는 관리를 혼자 할 수 있는 기기가 넘쳐나는 건 피부 자극 측면에서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피부에 좋다고 하면 얼굴에 갖다 대보는 게 사람의 심리니까. 피부 좋은 연예인이 나와서 찬물로 세안한다고 하면 그날부터 찬물 세안 마니아가 되고, 온라인에서 이슈가 되는 피부 관리법을 따라 하는 것에도 거부감이 없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결국 피부에 자극을 주는 위험 요소들이다. 그렇게 다양한 실험 대상이 된 얼굴이 붉어지면 화장품을 바르고 또 바른다. 문제는 현재 피부 상태에 필요한 제품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제품을 찾는 기준 자체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감해진 피부 때문에 피부과를 찾는 사람 중에는 피부 자체가 민감하다기보다는 관리를 잘못해 피부가 민감해진 경우가 절반 이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민감한 피부는 어떤 피부를 말하는 것일까?
이렇게 말하면 김빠질 수도 있지만, 라로슈포제의 사이언티픽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소피 세이트는 민감한 피부를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민감성 피부에 대한 피부학적인 기준은 없어요. 피부가 민감하다고 느끼는 것은 일종의 자각의 영역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한 여성이 피부가 민감하다고 느끼더라도 붉음증, 가려움증 같은 의학적인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정확하게 진단하기가 어려워요. 육안으로 당신의 피부는 민감하다, 아니다를 가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테스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죠.” 사전적인 정의는 아니더라도 이해를 돕기 위해 정의해보면 민감성 피부는 다양한 자극에 정상 피부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피부를 말한다. 그러니 아토피 같은 병리학적인 증상이 없더라도 스스로 따끔하다거나 피부가 땅기는 현상, 겉보기에는 아무 느낌이 없어도 본인만 느끼는 자극이 있다면 피부가 민감한 상태라고 보면 된다. 민감성 피부는 피부 타입과는 또 다른 문제다. 민감성 피부는 지성, 건성, 복합성과 같이 쉽게 연상할 수 있는 피부 타입과는 다르게 피부 장벽이 무너지고 파괴되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증상인데, 이것은 모든 피부 타입에 공통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민감한 피부냐 아니냐가 아니라 왜 피부가 민감한 상태가 됐느냐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피부 타입을 막론하고 스스로 민감하다고 느끼는 정도가 높아지고 있다. 피부과 전문의 김소영 원장은 피부를 민감하게 만드는 요인을 이렇게 정의한다. “스트레스와 피로 같은 내부적인 요인과 오염된 환경, 민감 반응을 일으키는 화장품 성분 등과 같은 외부적인 요인이 있어요. 흔히 이야기하는 파라벤이나 알코올, 향료, 색소뿐만 아니라 프로필렌글리콜, 하이드록실산처럼 민감성 반응을 일으키기 쉬운 특정 성분이 들어간 화장품을 사용했다거나 과도한 활성 성분이 함유된 기능성 제품을 장기간 사용할 경우 피부가 더 민감해질 수 있죠. 이 외에 장시간 냉난방에 피부를 노출하거나 잦은 야외 활동 및 레포츠 등을 즐기는 경우 피부 건조나 자외선 과다 노출 등을 유발해 피부가 민감해질 수 있어요. 피곤할 때 피부가 푸석푸석하고 칙칙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이러한 증상이 꾸준히 지속되면 피부가 민감해진 상태라고 보고 주의해야 해요.” 환경 오염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전 세계적인 문제인 것을 감안했을 때, 최근 피부 민감 증상이 아시아 피부에서 많이 발견된다는 연구 결과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너무 많은 화장품을 이용하는 데서 오는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에요. 한 예로, 백인 유럽 여성이 일본 여성의 스킨케어 방법을 한 달간 따라 했을 때, 그들의 피부 민감도가 상승했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반대로 일본 여성이 유럽 여성의 스킨케어 방법을 한 달간 따라 했을 때 피부 민감도가 감소했고요.” 소피 세이트의 말이다. 사실 많은 여성이 화장품에 관심이 많고 또 다양한 제품을 바른다. 세럼만 해도 토너 전에 바르는 퍼스트 세럼, 토너 다음에 바르는 부스팅 세럼, 스킨케어의 마지막 단계에 바르는 세럼까지 세분화됐다. 이런 화장품이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한 단계는 아니다. 피부 관리를 위해 바르는 화장품에 ‘반드시’란 없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피부가 건강한 상태로 유지된다면, 예방 차원에서 자외선 차단제가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굳이 이것저것 챙겨 바를 필요는 없다. 화장품은 어디까지나 권장 사항일 뿐이다. 그러니까 민감한 피부로 고민하고 있다면 오염된 환경을 탓하기 전에 화장대에 널브러져 있는,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덩달아 산 화장품의 개수를 세어봐야 할 때다.
CHECK LIST
스스로 민감한 피부라고 생각한다면, 일단 다음 항목 중 해당되는 것을 확인하자.
1 실내외, 아침저녁으로 기온차가 심한 날이면 피부가 가렵고 따끔거린다.
2 손톱으로 이마를 눌렀을 때 눌린 자국이 15분 이상 남아 있다.
3 화장품을 바꾼 초기에 얼굴이 가렵거나 피부가 붉어진다.
4 피부가 건조한 편이고, 잔주름이나 하얀 각질이 많이 생긴다.
5 피부의 미세혈관이 비칠 정도로 피부가 얇다.
6 찬 바람을 조금만 쐬어도 피부가 급격히 거칠어진다.
7 사용하는 물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피부 트러블이 생긴다.
8 햇빛에 노출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따끔거리는 자극을 느낀다.
9 감정이 격해질 때 피부가 붉어지곤 한다.
10 최근 피부과 시술을 받은 적이 있다.
0개 ~ 2개 이하 이 외에 다른 고민도 없다면 피부가 건강한 상태이다.
3개 이상 ~ 6개 이하 활성 성분이 많은 화장품을 지양하는 게 좋다.
7개 이상 알레르기성 민감 증세에 대비해 전문의의 상담을 받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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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뷰티 에디터 / 황민영
- 포토그래퍼
- 정원영, 이주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