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없는 일주일
소비와 외식, 일회용품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쓰레기 없이 산다는 건 이제 영화나 예능프로그램의 소재가 될 정도로 엄청난 도전이 됐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과연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살 수 있을까? 한국판 ‘노 임팩트 맨’에 도전한 에디터의 일주일.
조금 우쭐대보자면, 나는 나름 환경친화적인 사람이다. 아니 적어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텀블러 사용은 기본이고, 일회용품이 싫어서 사무실에 개인 젓가락과 포크, 숟가락을 두고 있을 뿐 아니라, 분리배출도 잘하고, 가게에서 무언가를 살 때 비닐봉지나 종이봉투는 대부분 거절하며, 무엇보다 휴지도 매우 아껴 쓰니까! 휴지 세 칸으로 뒤처리가 가능하냐고 묻는 사람에게는 그게 바로 나라고 말해주고 싶고, 회사 화장실에서 누군가 핸드타월을 가차없이 ‘폭, 폭, 폭, 폭’ 뽑을 때마다 아픈 가슴을 움켜쥐곤 한다. 그래서 ‘쓰레기 없이 살기’ 미션을 받았을 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평소보다 조금만 더 신경 쓰면 될 거라고 믿었으니까.
다음 날 아침, 사무실에 도착해 평소처럼 티백 커피를 우리려고 했다. 내 커피는 ‘착한’ 공정무역 커피지만 포장지를 버려야 한다는 점은 다를 바 없었다. 점심에는 홍보 회사 직원과 미팅이 있었다. 맛있게 밥을 먹다가 배가 부를 즈음 내가 이 음식을 다 먹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식사 한 끼 했을 뿐인데, 이미 나는 엄청난 양의 음식물 쓰레기를 만든 주범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 다 같이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권했다. 돌발상황이었다. 평소대로라면 직접 주문하면서 ‘머그컵에 주세요’라고 말하겠지만, 한눈을 판 틈에 이미 내 손에 테이크아웃 커피잔이 들려 있었다. 안이한 마음으로 ‘쓰레기 없이 살기’를 시작한 지 고작 반나절, 나는 인정해야 했다. 나의 완패였다.
퇴근 후 집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까? 거실의 재활용 통은 배달해 먹은 도시락 용기와 피자 상자, 그리고 빈 1.5리터 생수통으로 가득했다.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해도 어쨌든 쓰레기였다. 배달 음식은 일제히 끊고, 물은 전기포트를 이용해 매번 끓여 마시기로 했다. 가장 마음 아픈 것은 물티슈에게 안녕을 고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물티슈로 방바닥을 닦는 건 고향에 계신 엄마가 들으면 천인공노할 나의 ‘길티 플레저’ 중 하나였지만 이제는 안녕, 안녕이다. 그럼에도 차마 화장솜과 면봉과는 이별을 고하지 못했다. 미세먼지가 창궐하는 시기, 내 피부는 소중하니까.
‘집 안’이 레벨 1의 악당이라면, ‘집 밖’은 최종 보스 캐릭터에 비교할 만했다. 일단 물건을 사는 것 자체가 쓰레기를 발생시켰다. 심지어 물티슈를 대체할 세정제와 걸레조차 비닐봉투와 포장지에 둘러싸여 있었으니까! 텀블러를 미처 챙기지 못한 날에는 목이 말라도 참았다. 내가 편의점의 페트병 음료수나, 카페 테이크아웃 음료를 그토록 자주 이용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요구르트? 출근길에 하나씩 먹었던 요구르트와도 물론 헤어졌다. 장식용이나 수납용으로도 나중에 쓸 수 있을 거라는 핑계로 유리병에 담긴 플레인 요구르트를 딱 한 번 사 먹었을 뿐이다. 가장 큰 문제는 ‘밥’이었다. 외식을 할 때마다 적당히 먹고 남기는 게 습관화되다 보니, 내 양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특히 밑반찬이 나오는 식당이나 찌개를 먹을 때면 어김없이 음식이 남았으니 골치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도시락통을 가지고 다니며 남은 반찬과 밥을 담을까? <인간의 조건> ‘쓰레기 없이 살기’편의 출연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 하지만 식당의 남은 반찬과 밥을 도시락통에 담는 내 모습은 상상만 해도 구슬펐다. 그들 옆에는 촬영용 카메라와 조명이라도 있었지만 나는…. 결국 화장솜과 면봉 다음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 타협안은 다음과 같았다. 밥을 시킬 땐 무조건 “적게 달라”고 말할 것, 그렇게 말하는 것을 깜박했다면 음식을 남기지 말고 먹을 것, 그리고 도시락을 쌀 수 있을 때는 도시락을 쌀 것. 일주일 동안, 도시락을 싼 건 딱 두 번뿐이었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쓰레기 없이 살아보려 했던 일주일 동안 느낀 감정은 뿌듯함보다는 무력감에 가까웠다. 노력과는 별도로 어쩔 수 없이 쓰레기는 끊임없이 생겨났다. 신제품을 소개하는 행사에 참석하고 받은 기념품에서, 회의 내용을 프린트한 A4 용지에서, 편지 봉투에 담겨 날아온 공연 예매권에서, 야근하는 동료들과 함께 먹은 배달 음식에서…. 매일 마법처럼 솟아나는 쓰레기를 보며, 그동안 별 생각 없이 만든 쓰레기의 총량을 가늠하면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배달 음식을 끊고, 물을 사 먹지 않은 이후로 좀처럼 가득 차지 않는 내 방의 재활용 통을 보면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음식을 주문할 때 ‘먹을 만큼만 주세요’라는 말하는 게 이제 좀 익숙해졌고, 텀블러를 놓고 외출하는 일도 많이 줄어들었다. 회사에서도 어지간히 중요한 서류가 아닌 이상, 이면지를 프린터에 갈아 끼우고 사용하는 일이 습관이 됐고, 전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재활용품을 분류해서 버린다. 생활 패턴이 지금과 완전히 달라지지 않는 한, 나는 단 하루도 ‘노 임팩트 우먼’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서 얻게 된 마음의 무게가 꼭 싫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는 그 마음의 짐이 필요하다.
GREEN COMMENT
“하루에 쓰레기가 이렇게 많이 생긴다는 것에 놀랐어요. 그리고 그 쓰레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버렸다는 사실을 후회했죠. 방송에서 옷을 리폼해 입고, 그릇을 여러 번 씻어 사용했던 것처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두 팔을 걷고 나서다 보면 하나씩 해결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 박소영(개그우먼)
최신기사
-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이마루
- 포토그래퍼
- 정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