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패션의 시대
머리부터 발끝까지 패션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우리.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패션이 신체를 넘어 우리의 또 다른 분신을 장식하기에 이르렀다. 삶의 필수품인 디지털 기기가 스타일의 일부가 되기까지의 뒷이야기는 이렇다.
컬렉션 출장을 앞둔 에디터를 가장 신경 쓰이게 한 건 낡은 구두나 유행 지난 잇백이 아니었다. 전 세계의 스타일 좀 안다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패션 에디터의 섬세한 취향을 드러내줄, 그래서 재정비가 시급한 휴대폰이 먼저였다. 구입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갤럭시 S4 모델은 치열한 일상을 그대로 반영하듯 모서리의 은박이 떨어져나가고 여기저기 흠집이 난 채 구입 당시의 매끈함을 잃어버렸는데, 이건 마치 관리를 하지 않아 매니큐어가 벗겨진 손톱과도 같았다. 아무리 옷을 근사하게 차려입어도 손톱이 지저분하면 세련미가 반감되듯, 늘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남들의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란 것 같다. 화려하고 예쁜 샌들에 눈길을 빼앗겼을 때 갑자기 각질 가득한 발을 떠올린 순간은 없는가. 스타일을 완성하는 건 얼굴이니, 월급이니 말들이 많지만 결국 디테일까지 완벽하게 신경 썼을 때 비로소 옷차림은 빛을 발한다. 이 말인즉슨, 잘 꾸민 스마트 기기 하나가 우리의 스타일리시한 이미지 구축에 꽤 크게 기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휴대폰의 스타일리시한 진화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부분을 휴대폰에 의존한다. 통신수단으로서는 물론이요 MP3, 카메라 기능에 인터넷 서핑과 게임, 소셜 네트워크, 길 찾기 등 흔히 사용하는 기능만으로도 일상을 함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기계가 일종의 분신이 된 현 상황에 스타일에 대한 욕망까지 불러일으키는 건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휴대폰 업계와 패션계의 서로를 향한 러브콜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03년, 모토로라는 ‘레이저’라는 신제품을 선보이며 당시 최고의 스타일 아이콘인 데이비드 베컴을 광고 모델로 기용했다. 사진 속 베컴은 근육질의 상반신을 드러낸 채, 체인을 단 레이저 휴대폰을 목걸이처럼 목에 걸고 있었는데, 세련된 향수 광고를 하는 듯 섹시한 모습에 대중들은 환호했다. 그리고 그 광고 이미지는 휴대폰도 패션 액세서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카메라 해상도와 벨소리 화음만으로 휴대폰의 가치를 따지던 시기에 이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LG와 프라다가 협업해 만든 일명 ‘프라다 폰’이 출시됐다. 별다른 기능은 없었지만 프라다라는 이름이 주는 이미지와 미니멀한 디자인, 배우 에드워드 노튼과 톱 모델 다리아 워보이가 등장한 광고 컷만으로도 이 휴대폰은 ‘패션 폰’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인기를 끌었다. ‘이 휴대폰을 가지면 스타일리시해진다’는 달콤한 착각을 더한 것이다. 이후 시크한 휴대폰의 계보는 림의 ‘블랙베리’가 이어갔다. 블랙베리는 실시간으로 이메일을 관리하는 혁신적 기능과 세련된 디자인으로 지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때마침 불어 닥친 스트리트 사진의 급부상과 맞물려 패션 피플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근사한 옷차림으로 패션 위크를 누비는 에디터들은 손에 항상 쇼 초대장과 블랙베리를 쥐고 있었고, 그건 마치 블랙베리가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 혹은 비즈니스맨의 스타일리시한 파트너라도 된 듯한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스트리트 패션 사진 속 사람들 대부분이 통화 중이거나, 전화기를 들여다보는 이유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다. 사진 찍히는 그 찰나의 순간에도 휴대폰을 놓지 않을 만큼 바쁘고 다이내믹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패션은 휴대폰을 사용하는 애티튜드에 의미를 부여했고, 날이 갈수록 휴대폰과 상호작용하며 시너지 효과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디지털 커스터마이징(Digital Customizing)의 시대도 열렸다.
스마트 패션과 개인의 취향
터치스크린 기술과 다양한 하드웨어적 기능도 뛰어나지만, 앱 구성부터 케이스 선택까지 개인의 취향에 따라 자신만의 휴대폰으로 꾸밀 수 있다는 점이 아이폰의 가장 큰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요즘처럼 개인의 취향이 존중받는 시대에 딱 맞아떨어지는 기기인 셈이다. 물론 휴대폰 꾸미기는 피처폰 시절부터 있었다. 그때에는 휴대폰을 꾸며주는 사람도 있었고, 일일이 크리스털을 붙이거나 페인트칠을 하는 등 어찌 보면 좀 더 쿠튀르적인 방식으로 기기를 꾸몄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처음에 기능성을 강조하던 인케이스도 요즘은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디자인의 액세서리 제품을 생산하는 데 주력하는 등, 이미 수천 가지 디자인의 폰 케이스를 많은 브랜드에서 출시하고 있고, 우리는 그저 기분에 따라 고르고, 바꿔 끼우기만 하면 된다. 이는 아이폰뿐만 아니라 다른 기종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소형 노트북 등 다른 디지털 기기에도 해당한다.
패션 브랜드의 입장에서도 스마트 기기 액세서리는 꽤 유용한 수입원이다. 브랜드의 상징적인 프린트나 로고를 디자인에 쉽게 적용할 수 있는 데다, 제작 과정이 간단하고 저렴하며 누구나 다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스티브 J&요니 P, 럭키 슈에뜨, 먼데이 에디션 등 발빠른 국내 디자이너들은 스마트 기기 액세서리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다지고 있다. 반면 샤넬과 구찌, 토즈, 에르메스 등 유서 깊은 명품 브랜드들은 하우스 고유의 DNA와 기발한 아이디어를 담아낸, 럭셔리한 버전의 스마트 액세서리를 제시한다. 여기에 제2의 인케이스를 꿈꾸는 수많은 스마트 액세서리 브랜드가 가세하면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휴대폰을 쉽게 꾸밀 수 있게 되었다. 일종의 디지털 기기를 위한 레디투웨어 시장이 열린 것이다. 그렇게 휴대폰 케이스의 형태와 소재는 다양해졌고, 이어폰 마개, 휴대폰 가방, 액정 지지대 등 액세서리의 종류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유명 스트리트 사진가인 토미 톤(Tommy Ton)의 블로그를 둘러보면 패션 피플의 손과 그 주변 풍경에 집중한 사진이 꽤 많은데, 이는 원래 클로즈업 사진을 좋아하는 그의 성향이 드러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의 옷 입기가 점점 디테일에 집중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토미 톤의 클로즈업 사진 속에는 스마트 기기와 매니큐어, 주얼리, 옷의 소재와 컬러, 소매 장식이나 가방 등 액세서리의 디테일이 빚어내는 섬세한 조화가 담겨 있다. 대량 생산에 기반한 저렴한 가격대의 브랜드로 런웨이의 웬만한 옷차림은 쉽게 따라 할 수 있지만 손을 장식하는 주얼리와 스마트 기기에까지 나만의 캐릭터를 담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럭셔리라고 본다. 스트리트 패션 신에서 주목받는 스타 중 한 명인 블로거 수지 버블과 패션 에디터 지오바나 바타글리아는 평소 옷에 따라 휴대폰 케이스를 바꾸고, 옷차림에 아이패드와 헤드폰 등 다양한 디지털 기기를 포함시키기로 특히 유명하다. ‘스마트 기기를 쥔 손’이라는 작은 영역 안에서 펼쳐지는 그녀들만의 드라마를 보면 참 많은 영감이 떠오르는데, 어떻게 보면 스마트 기기는 패션계가 정해놓은 수많은 규칙과 트렌드의 영향에서 벗어난 유일한 영역인지도 모른다. 아무런 제약 없이 자신의 개성에만 집중하는100% 프리스타일 존인 셈. 그래서 이 작은 디테일이 우리의 전체적인 옷차림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세련된 디지털 기기의 보디 랭귀지
사실 스마트 패션의 영역에는 휴대폰 외에도 카메라, 헤드폰, 블루투스 이어폰 등 휴대할 수 있는 모든 디지털 기기가 포함된다. 흥미로운 건, 커스터마이징이 어려운 기기도 스타일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1세대 아이팟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출시 당시 전국의 버스정류장을 도배한 아이팟의 광고를 기억하는가? 알록달록한 색상의 그림자 실루엣에 흰색의 가느다란 이어폰 줄을 그려 넣은 그 이미지는 아이팟이 그저 음악을 트는 ‘기계’가 아닌, 활기찬 매력의 패션 아이템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후 수없이 많은 제조사에서 아이팟을 모방한 흰색 이어폰을 만들어내는 등 제품 자체가 스타일리시함을 상징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때 20~30대 남자들 사이에서 라이카와 로모 등의 카메라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는데 굳이 사진을 잘 찍지 않더라도, 복고풍의 위트 있는 디자인 덕분에 그저 몸에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액세서리 역할을 했다. 또 최근에는 박진영, 이하늘 등 남자 뮤지션들이 방송에 하고 나와서 인기를 끈 몬스터의 다이아몬드 티어스 헤드폰이나 비츠 바이 닥터 드레 헤드폰 또한 제품 자체가 액세서리 역할을 해내는 대표적인 디지털 기기들이다. 혹자는 이런 제품을 두고 ‘허세’라며 깎아 내리기도 하지만 정작 이런 디지털 기기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그 안에 내포된 취향의 공감대에 반응하는 것. 그래서 이런 제품들은 보통 여자들보다 남자들 사이에서 더 화제가 된다. 세련된 디지털 기기는 취미나 라이프스타일의 수준을 보여주고, 이를 타인과 공유하면서 ‘나는 이런 삶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렇게 디지털 기기는 원래의 기능을 넘어, 옷차림을 완성해주는 수단이자 개인의 취향과 가치관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휴대폰은 더 이상 단순한 전화기가 아니며, 디지털 기기는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다. 여기에 나만의 손길을 약간만 더한다면 개성 넘치는 패션 소품 역할까지 한꺼번에 누릴 수 있으니 디지털 기기의 똑똑한 커스터마이징은 가끔 잇백보다 더 효과적으로 스타일을 완성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Cell Phone Couture
스마트폰 커스터마이징의 첫걸음은 휴대폰 케이스로부터 시작한다. 멀리 볼 필요도 없이 국내 디자이너 5인이 제안하는 케이스부터 먼저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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