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하세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에게 꼭 법이 필요한 일이 생기는 건 드라마 속 일만은 아니다. 우리 삶 속에 어쩌면 생길지도 모르는 나쁜 일에 대처하려면, 이만큼의 법은 알아야 한다.
상황 1 | 결혼 전 혼전계약서는 필요할까?
미국의 연예 매체 <내셔널 인콰이어러>는 하이디 클룸이 마틴 크리스틴에게 자신과 결혼하기 위해서는 재산에 욕심내지 않는다는 내용의 혼전계약서를 쓸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하이디 클룸의 재산은 약 8백억원으로 추정된다. 한편 제니퍼 애니스톤은 반대를 선택했다. 약혼자의 저스틴 서룩스와의 혼전계약서에 사인하지 않겠다고 한 것. 제니퍼 애니스톤의 자산은 약혼자의 15배에 달한다. 혼전계약서는 왜 필요할까? 어떻게 해야 효력이 생길까?
변호사의 조언 미드를 보면 이혼 소송 끝에 배우자가 엄청난 재산을 분할받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이제는 고전이 된 <섹스앤더시티>에서도 샬럿이 변호사인 미란다의 조언을 받아 혼전계약서의 위자료 금액을 올리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결혼은 사랑이었더라도 이혼은 지극히 현실이라고 송지헌 변호사는 말한다. “우리나라는 부부공산제가 아닌 부부별산제를 원칙으로 한다는 점을 대부분의 여성들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부부별산제란 부부가 각각 혼인하기 전부터 가졌던 재산 및 혼인생활 중에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을 그의 특유재산(特有財産)으로 하여, 각자에게 관리•사용•수익하게 하는 제도를 의미하죠.” 만약 남편의 부모가 사준 주택에서 거주하다가 이혼하는 상황이 되어 재산분할을 하는 경우, 집값 전체를 분할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집값이 오른 차액만 분할 대상이 된다는 이야기다.
“부부재산계약과 같은 특별한 약정이 없다면 재산분할의 대상이 되는 공유재산의 범위를 매우 넓게 잡고 있는 것이 현재 법원의 현실이에요. 많은 이혼 다툼을 보다 보면, 원인이 어떠하든 헤어짐 그 자체로 당사자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게 됩니다. 여기에 재산분할까지 더해지면 서로 굉장한 상처를 주고받는 것을 종종 보게 되요. 잘 만나는 것만큼이나 잘 헤어지는 것도 중요한데, 이럴 때 혼전계약서가 도움이 되지요. ”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이혼에 대비하는 것이자 혼인생활 내내 자신의 선택에 대한 간접적인 책임감을 부여하기 위한 일종의 의식이 될 수 있다고 송지헌 변호사는 설명한다.
혼전계약서는 정해진 양식이나 형식이 없다. 당사자가 원하고, 협의한 내용을 적으면 되나 부부재산약정에 관한 조항은 들어가야 한다. 만약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이혼을 당하는 경우, 경제력 없이 가정주부로 생활 해온 아내는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재산을 분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혼전계약서의 ‘계약’이란 ‘법적구속력’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외박을 하면 빨래 담당이 된다’는 식의 내용은 귀엽긴 하지만 법적으로는 의미가 없다. 혼전계약서 항목의 예를 보면 ‘이혼 시 재산분할은 50:50으로 한다’거나 ‘외도, 폭력 등 일방의 귀책사유로 이혼에 이르게 되는 경우 재산 분할 비율을 70:30으로 한다’는 식으로 자세히 명시하고 있으며, 각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유산은 재산분할의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조항을 두기도 한다. 이 혼전계약서는 반드시 공증을 받을 필요는 없지만, 공증을 받아두면 증거자료로 법적 효력이 강해진다. 당사자가 인감도장, 인감증명서, 주민등록등본, 신분증을 지참하고 변호사 사무실이나 공증사무실을 방문하면 된다. 송지헌 변호사는 말한다. “결혼은 평생을 묶어둔 계약이지만, 법적으로 언제든 해소할 수 있는 계약이기도 해요. 그렇게 중요한 계약인데 당연히 계약서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상황 2 | 동료의 험담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 있을까?
최근 직장동료에 대해 허위 사실을 악의적으로 떠벌리고 다닌 동료에게 벌금 4백만원이 선고되었다. 남의 얘기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빨간 불이 켜진 것이다. 다른 사람의 흉을 봐도 명예훼손이 될까?
변호사의 조언 명예훼손은 ‘보통 사람들’이 송사에 휘말릴 가능성이 가장 높은 법률이다. 포털 사이트의 뉴스만 봐도 국회의원과 논객이 서로를 고소하고, 연예인들이 악플을 달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한 네티즌을 고소하며, 또 수많은 인들이 명예훼손과 무고죄로 서로를 고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에 의해 명예가 훼손되었다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또는 형법 명예훼손죄로 고소하여 처벌받게 할 수 있어요. 신문이나 유인물, 라디오 또는 구전을 통해서 명예훼손을 하는 경우 형법 명예훼손으로 처벌되지요. 조심해야 할 것은 사실을 말해도 명예훼손 범죄는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거짓을 말한 경우에는 가중처벌이 적용되지요.” 송지헌 변호사의 설명이다. 명예훼손 사건은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말, 글 모두가 처벌의 대상이 된다. 인터넷에 유포한 경우에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 7조 제1항 제2호에 의해서 처벌된다. 회사 인트라넷에 유포하면 어떻게 될까? 이것 역시 위법으로 벌금 또는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만일 누군가 나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이야기를 들은 제3자에게 진술서나 확인서를 받아 고소장을 제출하면 됩니다. 진술서와 확인서에는 인감증명서와 신분증을 첨부하고 내용은 ‘언제 어디서 누가 누구에 대해서 어떠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라는 취지의 내용을 적으면 돼요. 명예훼손은 점점 벌금이 높아지는 추세이므로 주의가 필요하죠. 특히 남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는 우리나라에서는요.”
상황 3 | 친구가 빌려간 돈을 갚지 않는다면
한 포털 사이트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이 친한 친구에게 빌려줄 수 있는 최대 금액은 ‘100만원(63.2%)’이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친구 사이에서 차용증을 작성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67.3%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실제 차용증을 쓴 사람은 친구와 돈 거래를 해본 경험자 중 14%에 불과했다. 차용증이 없으면 돈을 받을 수 없을까?
변호사의 조언 보이스피싱이 화제가 되기 전에는, 네이트온 같은 메신저를 해킹해 친구를 사칭해 돈을 빌리는 사기 수법이 많았다. 그만큼 친구 간의 돈 거래가 많다는 것. 하지만 ‘친구와는 돈 거래를 하지 말라’는 어르신들의 조언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의는 의대로 상하고, 돈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혹자는 주고도 잊어버릴 만큼의 돈만 빌려주라고도 하지만, 서로 큰돈을 거래하게 되었다면 다음과 같은 조언을 명심하길. “당연히 차용증이 필요합니다. 차용증보다 더 확실한 것은 현금보관증이라는 이름으로 자필 서명한 증서를 받아두는 것이 좋아요. 여기에 인감증명서까지 첨부하면 완벽하죠.” 차용증이나 현금보관증에는 차용한 날짜, 금액, 이율, 변제기한을 반드시 기재한다. 만일 약속한 날짜가 지나도 돈을 갚지 않으면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 또는 우편으로 변제를 촉구하고 이를 남겨둔다. “그럼에도 갚지 않으면 결국 법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데요, 일반 민사소송(대여금청구)을 하게 되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지급명령 신청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급명령신청은 금액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 소송비용보다는 절반 수준이니까요.”
상황 4 | 임금 체불을 당하거나, 정규직인 줄 알았는데 비정규직이었다면
고용노동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까지 근로자 15만4000여 명이 약 7천1백억원의 임금을 받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4년간 평균 체불임금보다 6.8% 증가한 수치다. 또 1인당 평균 체불액도 4백 61만원에 달했다. 고용부는 ‘상습 체불사업주’ 234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는 임금체불. 어떻게 대처할까?
변호사의 조언 “노동원(근로복지공단)에 진정하면 근로감독관이 배정되어 사용자와의 임금체불 문제를 중재해줍니다. 근로감독관은 추후 민사 소송으로 체불임금을 받을 수 있는 확인원을 발급해주는 등 일체의 법률 문제를 일임받아 해결해주고 있어요.” 송지헌 변호사의 설명이다. 임금체불은 꽤 흔한 일이다. 국가에서는 밀린 임금의 일부를 대신 지급하는 ‘체당금’을 비롯해 여러 방법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해주고 있는데, 임금이 계속 체불되고 있다면 그 사업장을 빨리 그만두는 게 현명할 수도 있다. 사용자가 임의로 임금을 지급해주지 않을 경우, 결국은 법원으로 가야 하는데 대부분 임금체불이 문제되는 경우, 사용자 역시 지불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판결문을 받더라도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주로 변호사들은 형사고소를 해서 사용자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주고, 이 과정에서 친인척 가족들로부터 합의금을 받고 고소를 취하해주는 방법을 이용하기도 하지요.” 한편, 정규직인 줄 알고 입사했는데, 알고 보니 비정규직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정을 요구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안타깝지만 방법은 없다. 민법 제109조,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 취소를 하여 계약관계를 해소하는 수밖에 없는 것.
상황 5 | 전 남자친구와 촬영한 야릇한 사진, 유포하겠다고 협박을 해온다면?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헤어진 애인의 나체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다간 6개월간 감옥살이를 할 수 있다. 이른바 ‘복수 포르노’ 처벌법이라고 불리는 법안에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지난 일1 (현지시간) 서명함에 따라, 이 법은 즉각적인 효력을 갖게 되었다. 이 법이 시행됨에 따라 개인의 신체 전체나 일부가 노출된 사진을 인터넷에 유포하면 최대 6개월의 징역형에 처하거나 1천 달러의 벌금이 부과된다.
변호사의 조언 “우리나라에도 캘리포니아 주법과 같은 법이 있어요.” 송지헌 변호사의 설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정통법 제44조에 따라 불법정보의 유통금지 및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가 금지되어 있다. 통신매체를 통하여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 음향, 글, 그림, 영상 또는 물건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백 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것. “특히 성폭력범죄처벌등에 관한 특례법 제 14조에서는 최근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죄에 대한 내용이 보강되어, 카메라나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하거나 그 촬영물을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것이죠. 또 과거에는 촬영 당시에 자발적으로 촬영 했다면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었지만, 지금은 촬영 당시에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그 의사에 반해 촬영물을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만약 영리의 목적으로 판매했다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데, 미수범에게도 적용된다. “다만 정통법상의 음란물의 개념은 일반인의 성적•도덕적 수치심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의 음란성을 요구하고 있어, 아마도 일반 여성들이 고민하는 정도의 사안으로 포섭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데요, 만약 유포 전에 모종의 협박이 있는 경우에는 형법상 협박죄를 추가해서 고소할 수 있습니다.” 송지헌 변호사의 말이다.
상황 6 | 블로그에 드라마와 연예인 사진을 게재해도 될까?
스마트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거나 입력하면 외모를 분석해 닮은꼴 연예인을 알려주는 ‘푸딩얼굴인식’ 애플리케이션. 무려 1525만 명이 다운로드 했을 정도의 인기 앱이지만 연예인 60명의 사진을 동의 없이 사용했다는 이유로 1인당 3백만원씩 총 1억8천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다만 법원은 퍼블리시티권 침해는 인정하지 않고 성명권과 초상권 침해에 따른 정신적 손해만 인정했다. 초상권은 어디까지 인정될까?
변호사의 조언 최근 ‘연예인 초상권’과 관련해 블로거, 쇼핑몰 운영자, 성형외과 등 병원이 소송에 휘말리고 있다는 뉴스가 곧잘 눈에 띈다. 지금까지 손 놓고 있었던 방송사, 연예인 기획사 역시 초상권과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기준을 바짝 조이는 추세라 주의가 필요하다. 실제로 초상권 침해로 고소할 예정이니 합의하자는 무시무시한 메일을 받았다는 증언도 속출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초상권과 저작권을 어겼다면 처벌 대상이 되는 건 확실하다. 저작권법 제136조에 따라 형사처벌이 가능한 것이다. 또한 형사처벌뿐만 아니라 몰수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미 유포된 자료를 몰수하고 이에 대한 손해배상도 청구할 수 있다. 반대로 블로그에 우연히 찍힌 내 사진이 올라갔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사진 삭제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도 있어요. 한 연예인이 과거에 찍은 ‘섹시 화보’가 포털과 블로그 등에 있는 경우, 이 사진을 모두 몰수해달라는 요청을 할 수도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