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도시, 그 남자 <2>
도시의 풍경이 다르듯 옷차림도 다르다. 특별한 치장이 없어도 멋낼 줄 아는 파리 남자, 컬러와 패턴의 강약을 조화롭게 소화하는 런던 남자, 중후한 슈트와 섹시한 캐주얼 룩을 동시에 즐기는 밀라노 남자, 레이어드에 능한 도쿄 남자의 스타일 분석!
중후함과 섹시함을 오가는 밀라노 남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자들의 스타일보다 남자들의 스타일이 화제가 되는 곳이자 옷 잘 입는 남자들에겐 성지 같은 곳이 밀라노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느 도시보다 옷 잘 입는 남자들이 많고, 남자들의 스트리트 룩 사진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도시다. 이런 밀라노 남자의 대표 주자는 밀란 부크미로빅과 라포 엘칸이다. 하나의 직업을 단정 짓기 힘들 정도로 패션계의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고 있는 밀란 부크미로빅은 마초적인 이탈리아 남자 룩을 선보인다. 다부진 체격, 스킨 헤드와 보잉 선글라스를 쓴 그의 룩은 섹시함 그 자체다. 재킷을 입을 땐 흰색 티셔츠나 셔츠(기본 단추 세 개 이상을 풀어야 한다)를 입거나 아예 생략하는 것이 그의 공식화된 스타일이다. 피아트 그룹의 상속자이자, 이탈리아 명문 축구팀 유벤투스의 구단주인 라포 엘칸의 스타일은 오래전부
터 정평이 나 있다. 최근엔 구찌와 컬래버레이션 라인을 선보였을 정도다. 그는 원색의 컬러 슈트를 즐겨 입는데, 라인이 살아 있는 정통 이탤리언 슈트에 브이넥 티셔츠나 니트, 셔츠를 입고, 슬립온을 신는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페도라! 작은 키를 보완하기 위해 헤드가 높은 페도라를 슈트와 캐주얼룩에 매치한다.
이런 이탈리아 남자들의 스타일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따뜻한 지중해의 햇살이 느껴지는, 태닝한 듯 건강한 구릿빛 피부의 섹시한 남자의 룩이다. 브이넥 티셔츠나 니트 스웨터에 청바지를 매치하고, 아우터를 입는 룩이다. 이때 중요한 건 액세서리 매치다. 보잉 선글라스와 디스퀘어드나 구찌의 로고 버클 벨트, 햇살 아래 반짝이는 골드 목걸이와 시계는 필수다. 두 번째는 클래식한 슈트 룩이다. 너무 타이트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펑퍼짐하지도 않은 적당한 여유와 선이 살아 있는 단정한 슈트다. 패션 칼럼니스트 남훈은 밀라노 신사들의 슈트에 대해 찬사를 보낸다. “밀라노에서 슈트를 입는 신사들은 정해진 룰에 따라 완벽하게 갖춰 입는다. 타이가 없는 슈트는 복장의 미완성이라 불편해하고, 여름이라고 해서 반팔 셔츠나 반바지를 입지도 않으며, 티셔츠처럼 칼라가 없는 건 셔츠의 범주에 넣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도 멋진 삶의 방식이다. 클래식 슈트를 오래도록 입은 신사가 노년에 입는 슈트의 멋과 맛은 아무나 쉽게 따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사에게는 나이도, 보낸 시간의 무게도 중요한 법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양이 이글거리나, 어떤 상황에서도 슈트와 재킷을 차려입은 신사의 패션에 대한 엄청난 열정과 인생의 무게가 합쳐지면서,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스타일을 선보인다. 건강하고 섹시한 이탈리아 남자들의 스타일도, 세월의 무게를 더한 세련된 슈트를 입은 중년 남자도, 진정한 밀라노 남자의 아름다움이다.
개성과 클래식의 이중 매력을 가진 도쿄 남자
예전부터 도쿄 스타일 하면 떠오르는 건 개성이 뚜렷한 레이어드 룩이다. 화려한 패턴 아이템과 액세서리를 치렁치렁 연출한 룩 말이다. 하지만 오다기리 조의 스타일리스트 니시무라 데츠야는 도쿄 남자 스타일에 대해 물었을 때 흥미로운 대답을 했다. “요즘 도쿄 패션은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흐른다. 하나는 컬러풀하고 대담한 스타일이고, 다른 하나는 아메리칸 캐주얼풍의 심플한 룩이다. 심플한 룩이지만, 도쿄 특유의 감성은 살아 있는 스타일이다.”
이런 심플한 아메리칸 캐주얼 룩을 즐겨 입는 패션 피플이 타카히로 키노시타다. 일본 남성 잡지 <뽀빠이>와 <브루투스>의 편집장인 그는 세련된 슈트에 개성을 더하는 것이 특징이다. 울 소재 팬츠 위로 양말을 신거나, 빨간 체크 코트 주머니 밖으로 갈색 가죽 장갑의 손가락이 나오게 연출하는 등 재미있는 포인트 스타일링을 즐긴다. 오다기리 조 역시 마찬가지다. 부산국제영화제 레드 카펫에 ‘아줌마 파마’를 연상시키는 파마 머리로 시선을 사로잡은 그는 컬러풀한 의상을 최대한 줄이고 검은색과 흰색의 대비를 통해 모던하게 풀어낸다. 사실 도쿄에서 패션을 공부한 사람들은 도쿄는 지역마다 다른 패션이 어우러져 도쿄다운 멋을 만든다고 말한다. 시부야의 갸르 스타일, 오모테산도의 명품 스타일, 하라주크의 스트리트 스타일 등이 모여서 하나의 도쿄 스타일을 만든다는 말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홍대 스타일, 강남 스타일을 절묘하게 섞은 룩처럼 말이다. 이런 룩의 포인트는 겹쳐 입기다. 여러 옷을 겹쳐 입으면 자칫하면 옷이 지니고 있는 실루엣을 망칠 수 있다. 실루엣을 유지하면서 겹쳐 입는 것이 중요한데, 피코트 안에 후드 점퍼, 티셔츠 순으로 소매 부분의 실루엣을 살리는 것이 좋다. 또 다른 도쿄 룩의 특징은 화려한 컬러와 패턴의 매치다. 빈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한 패턴의 셔츠, 아우터, 팬츠를 매치한 룩은 혼돈 그 자체다. 사실 이런 혼돈의 도쿄 룩은 요즘 패션계에 만연해 있는 ‘클래식을 기반으로 한 고상함’을 비웃는 듯 컬러풀하고 생동감 넘친다. 국내에서 도쿄 남자들의 화려한 룩을 가장 잘 보여주는 남자는 지드래곤이다. 실제로 쇼핑을 하기 위해 도쿄를 즐겨 찾는다는 지드래곤의 스타일리스트 지은은 도쿄 남자 룩에 대해 “어떤 옷을 입어도, 어떤 옷끼리 매치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서로 조화를 이뤄내는 도쿄 남자들의 스타일을 보면 늘 감탄한다. 그건 곧 옷을 대하는 자세가 다르다는 말이다. 무엇을 입어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도쿄 남자들의 스타일을 만든다”라고 설명한다. 이건 곧 “도쿄 남자들은 결코 새로운 것, 특이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옷을 다양하게 입는 방법을 통해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할 뿐이다”라는 니시무라 데츠야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패션에 대한 자신감이 곧 도쿄 남자들이 매력적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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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패션 에디터 / 김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