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드라마는 왜?

사회 시사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일본 원작 드라마들이 한국에서 흥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1 무표정한 그녀, 의 최지우. 2 고현정이 열연한 . 3 의 김혜수와 오지호.

1 무표정한 그녀, <수상한 가정부>의 최지우. 2 고현정이 열연한 <여왕의 교실>. 3 <직장의 신>의 김혜수와 오지호.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 작품이 유독 눈에 띄는 한 해다. 시작은 2002년 작품인 <사랑 따위 필요 없어, 여름>을 리메이크한 <그 겨울, 바람이 분다>였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제목과 계절도 완전히 바뀐 채 돌아왔지만 원작의 애끓는 사랑을 기억하는 이들은 환호했다. 심지어 노희경이 각본을 쓰고, 남녀 주인공은 송혜교와 조인성이었으니! 이어서 ‘일드’ 좀 봤으면 한번쯤 제목을 들어봤을 작품들이 화려한 출연진을 등에 업고 전파를 탔다. <직장의 신>의 김혜수, <여왕의 교실>의 고현정, 그리고 지난 9월 23일 첫 전파를 탄 <수상한 가정부>의 최지우까지. 그야말로 톱여배우들이 선택한 이 ‘굵직한’ 작품들은 이전의 리메이크 작품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상대역이 없는 여배우의 원톱 드라마라는 점, 학교 폭력, 비정규직, 가족의 해체 등 굴절된 사회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직장의 신>의 미스김은 원작 <파견의 품격>의 오오마에를 빼닮았다. 계약직인 미스김, 그리고 우리나라 계약직에 해당하는 파견사원 오오마에. 할 말 다 하고, 초과근무 따위 용납하지 않는 이 슈퍼우먼들은 직장인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한편, 갑을관계와 고용 안정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한편 교실과 가정을 조망하는 <여왕의 교실>과 <수상한 가정부>의 세계는 <직장의 신>의 회사보다 훨씬 폐쇄적이고 기이하다. 그녀들은 무표정하며, 때로는 잔혹한 결단도 서슴지 않고 내린다. 상냥하고 다정한 어머니를 대체하는 존재로 종종 묘사돼왔던 ‘여교사’와 ‘가정부’의 이미지를 완전히 배반한 셈이다. <수상한 가정부>의 박복녀는 지시만 받으면 동반자살 시도, 납치 요구에도 응한다. 원작<가정부 미타>의 미타 역시 미행, 유괴, 심지어 살인까지도 마다하지 않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들의 비상식적인 행동과 비인간성이 위기의 교실과 가정을 구해낸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안티히어로의 등장이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직장의 신>과 달리 <여왕의 교실>과 <수상한 가정부>가 국내에서 저조한 성적을 기록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일본 드라마의 특징인 ‘만화적 설정’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여왕의 교실>의 교실은 지나치게 어둡고, 기껏해야 출생의 비밀이나 존재하던 한국 드라마에 비해 남편의 불륜으로 아내가 자살해버린 <수상한 가정부>의 가족은 너무 무겁다. 시청자들은 설정에 적응하고 이야기에 몰입하기 전에 TV 앞을 떠나버린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기본 정서가 다른 것도 이유다. 2011년 방영 당시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한 자국의 <가정부 미타>열풍을 칼럼니스트 나카무라 슌이치는 “대재앙을 경험한 일본인에게는 열정으로 문제가 해결된다는 드라마가 더 이상 공감을 얻지 못한다”고 이 드라마의 성공 비결을 말했다. 결국 미타의 인기는 냉소와 체념의 정서가 탄생시켰다는 이야기다. 반면 여전히 신분상승과 성공의 욕구가 넘치는 국내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은 <꽃보다 남자>의 여주인공처럼 착하고 똑똑한 캔디와 그녀의 조력자다. 게다가 인터넷 뉴스와 커뮤니티, 시사 프로그램, 웹툰과 트위터 등 사회 문제를 소비하고 확인할 창구들이 넘쳐나는 한국에서는 사회고발성 드라마가 설 자리가 거의 없다.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가 모든 이야기의 중심이 되며, 정치와 분쟁에 관한 이야기는 사극에서 간접적으로 소비된다. 지난해 예상치 못한 반응을 이끌어낸 <추적자>가 있긴 했지만 백홍석(손현주)은 누구라도 이해할 수밖에 없는 감정선을 가진 인물이었지 “그건 당신이 결정해야 하는 일입니다”라고 말하는 냉정한 가정부가 아니었다. 그리고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TV 드라마에서까지 답답한 현실을 마주하기엔 이미 우리는 너무 피로하다. 비록 그 것이 필요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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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처 에디터 / 이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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