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의 조건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좋은 식당이 있다. 하지만 모두에게도 그럴까? 그곳을 찾는 모든 사람에게 잊지 못할 시간을 선물하는 레스토랑을, 사람들은 좋은 레스토랑이라고 부른다.
나의 입맛과 음식 취향을 키워준 건 누구였을까? 낳아준 것은 어머니요, 길러준 것은 일이었다. 여느 집처럼 어머니의 어머니, 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집안의 입맛으로 자랐고, 독자적인 외식으로 지평을 넓혔다. 좋은 레스토랑을 취재하고 쓰는 일을 몇 년간 했더니 그만큼 먹을 줄 아는 것도, 음식에서 보이는 것도 많아졌다.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을 때, 특별한 일이 있거나 다른 도시로 여행을 떠날 때 내게 전화해서 이렇게 묻는다. “좋은 레스토랑 좀 추천해줘.” 그래서 고민에 빠졌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절대적으로 좋은 레스토랑도 있을까?
미슐랭 가이드라는 탐스러운 별에 관하여
좋은 레스토랑을 증명하는 세계적인 기준 중 하나로 미슐랭 가이드를 들 수 있다. 1900년 미쉐린 타이어 구매고객에게 호텔과 레스토랑 추천을 넣은 여행 안내 책자를 나눠준 것에서 시작되어 지금에 이른,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레스토랑 가이드다. 현재 미슐랭 가이드는 셰프에게는 영광, 전 세계 미식가들에겐 로망이 되고 있는데, 음식을 다룬 영화나 책에서도 ‘별’을 차지하기 위해 분투하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반면 이 ‘별’을 잃을 때 셰프는 굉장한 스트레스와 좌절을 느낀다고 한다. 미슐랭 가이드는 그 까다롭고 베일에 싸인 평가 방법으로 오랜 시간 동안 살아남으며 권위를 얻었다. 평가단은 암행어사처럼 다녀간다. 정확한 평가를 위해 1년 동안 5~6차례 방문해 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평가가 끝난 후에는 평가단임을 밝히고 주방과 재료의 품질을 확인하는 과정도 거친다고 한다. 미슐랭이 부여하는 별은 한 개부터 세 개까지. 별 세 개는 ‘대단히 탁월한 수준의 레스토랑’이라는 뜻이다.
미슐랭 가이드는 점점 그 반경을 넓히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홍콩과 일본이 미슐랭의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미슐랭이 아시아 음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저 미슐랭의 영향력을 넓히기 위한 ‘아시아 마케팅’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난의 소리도 있다. 음식 문화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프랑스식 잣대로 아시아 음식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세계 레스토랑 순위는 누가 정할까?
해마다 봄이 되면 세계 레스토랑의 순위가 밝혀진다. 영국의 권위 있는 요리 잡지 <레스토랑>이 주관하고 이탈리아 생수업체 산 펠레그리노와 아쿠아 파나가 후원하는 ‘세계 최고 레스토랑 50위’는 요리사와 미식가, 음식 비평가, 푸드 에디터와 칼럼니스트 등 전 세계 요리전문가로 구성된 900여 명의 회원이 투표를 통해 순위를 정한다. 회원은 각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레스토랑을 7곳씩 적어 내는데, 자신의 거주지에 편중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7곳 중 4곳은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벗어난 곳에 투표해야 한다. 또 이들에게는 ‘윤리적인 책무’가 덧씌워져서 자신이 투자하거나 어떤 비즈니스 관계가 있는 곳을 추천해서는 안 된다는 조약이 있다. 이 세계 레스토랑 순위에도 늘 반론이 제기된다. 스페인 바스크 지방 최고급 레스토랑 마르틴 베라사테기(Martin Berasategui)로 미슐랭 3스타를 받은 셰프 마르틴 베라사테기는 이 순위는 미슐랭 가이드를 흠집 내기 위한 음식 회사들의 조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순위가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심사 중 하나인 건 분명하다. 북유럽을 여행할 계획이 전혀 없는 나도 올해도 노마(Noma)가 세계 레스토랑 1위를 차지할 것인지 궁금해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결과는 스페인의 엘 세예르 데 칸 로카(El Celler de Can Roca) 레스토랑이 새 왕좌를 차지한 것!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로카’ 삼형제가 각각 음식, 페이스트리, 소믈리에를 맡아 운영하는 이곳은 엘 불리(El Bulli)처럼 분자요리와 향기로운 음식으로 유명하다. 주최 측인< 레스토랑>의 찬사는 이랬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하면서 배워, 그들의 음식에서는 가족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한편, 3년간 1위 자리를 차지한 노마는 작년 63명의 손님이 식중독에 걸린 사고가 패인으로 분석되었다. 레스토랑에서 식중독 사고는 큰 이슈가 된다. 지난 0209년에도 늘 5위 안에 들던 셰프 헤스톤 블루멘탈의 레스토랑 팻덕(Fat Duck)에서 식사를 한 손님이 구토와 설사 증세를 호소한 적이 있었다. 레스토랑의 문을 닫고 위생당국과 컨설턴트들이 역학 조사를 벌였지만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올해에는 헤스톤 블루멘탈의 또 다른 레스토랑 디너 바이 헤스톤 블루멘탈(Dinner by Heston Blumenthal)이 5위를 차지했다.
이 레스토랑 순위가 비판받는 또 다른 이유는 유럽과 미국 레스토랑에 편중된 결과를 낸다는 것이다. 오대양 육대주가 있는 지구에서 좋은 레스토랑은 모두 유럽과 미국에 쏠려 있다는 것일까? 한편 50위 안에는 20위를 차지한 도쿄 나리사와와 홍콩 앰버 레스토랑을 비롯해 총 개7의 아시아 지역 레스토랑이 올라와 있다.
내 입술이 황홀했던 날들
그렇다면 미슐랭의 별이 반짝이고, 세계 최고 레스토랑에 오르내리는 레스토랑은 뭐가 다를까? 프렌치 런드리(French Laundry)에서의 식사가 먼저 떠오른다.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의 작은 마을 욘트빌에 위치한, 낡은 세탁소 건물을 개조해 만든 이 프렌치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는 내 오랜 ‘푸드 로망’ 중 하나였다. 셰프 토마스 켈러의 프렌치 런드리는 엘 불리가 레스토랑 트렌드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기 전, 항상 1위를 차지하고 있던 레스토랑이었다. 캘리포니아 퀴진을 취재하러 간 여행에서, 운 좋게 테이블을 예약할 수 있었다. 음식은 완벽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다. 12시간의 비행 후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건 아침. 그때부터 나파 밸리의 와이너리를 온통 쏘다니다가 저녁을 먹으러 왔으니, 우리는 사실 피로에 지친 상태였다. 3시간 30분 동안의 디너는 그래서 피로라는 소스에 잔뜩 버무려질 수밖에 없었고, 우린 점점 말을 잃은 채 접시 위의 음식을 해치우는 데만 집중했다. 일곱 번째 음식이 나올 때쯤 프렌치 런드리의 직원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기색이 보였다. 왜 저들은 다른 손님들과 달리 행복해 보이지 않지? 음식이나 서비스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여섯 번째 음식이 조금 늦게 나갔는데 그래서인가? 이윽고 레스토랑의 매니저가 다가와 음식은 마음에 드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행의 피로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자, 그들은 안도하는 듯했다. 그때 세계 최고 수준 레스토랑의 자존심을 엿봤다. 식당을 찾은 모든 손님을 만족시켜야만 그들은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포시즌스 홍콩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을 두 개나 보유하고 있는 호텔이다. 프렌치 레스토랑 카프리스(Caprice)와 광동 레스토랑 렁킨힌(Lung Keen Hin)이 그것. 미식의 도시임을 자처하는 홍콩답게, 카프리스는 음식과 서비스 그리고 공간까지 모두 완벽한 레스토랑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홍콩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에는 눈부신 크리스털이 층을 이룬 거대한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다.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새롭고 개성 넘치는 음식은 베르나르댕의 호사스러운 식기에 서브되고, 주류세가 없는 도시의 너그러움에 힘입어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와인을 곁들일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조리법이 복잡하고 어려운 음식을 완벽하게 설명하며, 어떤 질문도 척척 대답하는 웨이터가 그랬다. 또 카프리스에서의 식사에서 치즈를 빼놓을 수 없다. 테이스팅 코스 중 ‘모둠 치즈’에 이르자, 그들이 가져온 건 4인용 식탁보다 더 큰 스톤 플레이트 위에 놓인 스무 가지가 넘는 치즈였다. 색깔도 모양도 물론 맛도 다른 그 치즈! 나의 취향과 입맛 그리고 호기심에 따라 얼마든지 치즈를 골라 맛볼 수 있었다. 부드러운 것, 단단한 것, 짠 것과 담담한 것. 하나씩 손가락으로 가리킬 때마다 웨이터의 입에서는 치즈에 대한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나를 ‘치즈룸’으로 안내했다. 주방 옆에 별도로 마련된 저장고에는 30여 종의 치즈가 온도와 습도에 맞춰 보관되어 있다. 카프리스에서는 이 치즈 셀렉션을 위해 프랑스인 치즈 디렉터를 따로 두고 있다. 치즈 장인인 아피뇌르(Affineur)가 1년에 겨우 180덩어리만 생산하는 아주 희귀한 치즈를 여기서 맛볼 수 있는 이유이다. 그들은 왜 긴 코스의 일부인 치즈에 이토록 공을 들일까. 역시 ‘최고’여야 한다는 고집과 자부심 때문이다. 최근 포시즌스 홍콩은 간단한 음식과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카프리스 바(Cprice Bar)를 오픈했는데 이곳에서도 장인의 치즈를 맛볼 수 있다.
물론 이들도 최고가 되기 위해 나름의 대가를 치른다. 지난달 프랑스 출장에서는 미슐랭 2스타를 획득한 더 레스토랑(The Restaurant)에 갔다. 이 레스토랑의 CEO는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물론 별 한 개보다는 두 개가, 별 두 개보다는 별 세 개가 좋을 거예요. 하지만 이건 분명하답니다. 미슐랭 3스타를 유지하려면 더 많은 비용이 듭니다. 더 갖춰야 하고, 투자해야 할 것이 더 많죠. 최고의 재료를 얻기 위해 싸워야 하고, 재고 부담은 더 커질 겁니다.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별 2 개가 더 경제적이라는 거지요! 물론 별 세 개를 준다면 마다하지 않겠지만, 별 두 개도 충분히 만족스러워요.” 그 식당에서 코스 요리를 맛보았다. 환상적인 맛이었다.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레스토랑
물론 나는 아직 노마는커녕 덴마크에도 가보지 못했고, 세비체를 제외하고는 세계 푸드 트렌드의 새로운 흐름이라는 페루비안 음식도 제대로 먹어보지 못했지만, 1년에 몇 번씩은 세계 레스토랑 순위에 오르내리거나 미슐랭의 별을 받는 레스토랑에 가보는 행운을 누렸다. 이미 너무나 유명한 셀러브리티 셰프가 이끄는 대도시의 레스토랑부터, 시골 구석에 숨어 있는 레스토랑에도 찾아갔다. 그럼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길. 과연 우리가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방문할 가치가 있는 걸까?
좋은 레스토랑, 이상적인 레스토랑에 대한 각자의 철학이 있다. 나는 우리 집 근처에서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레스토랑을 좋아한다. 카드로 계산하면 투덜거리는 할머니가 하는 속초의 물곰탕집을 좋아한다. 만화 <헤븐?>에 등장하는 묘지 옆 프렌치 레스토랑을 꿈꾸고, 맛이 좀 없더라도 나의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식사 시간을 좋아한다. 요컨대 내게 행복한 식사를 만들어주는 좋은 레스토랑이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불리는 곳들은, 그곳을 찾는 사람에게 ‘절대적인 순간’을 선물한다. 이들이 고심 끝에 짜놓은 ‘테이스팅 코스’를 먹을 때면 늘 내 안에 신선한 아침 공기가 밀려오는 듯하다. 처음 보는 프레젠테이션과 처음 느끼는 맛이 혀끝을 환기한다. 한입 한입 먹을 때마다 입안의 미뢰가 깨어나고 머리가 쨍하게 맑아지는 것 같은 느낌은, 결코 일본 요리 만화에서나 나오는 과장이 아니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천재가 열정 넘치는 사람들과 연구하고 고민한 끝에 만들어낸 오직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창의적인 음식들이 그곳만의 담음새로 내게 온다. 다큐멘터리 영화 <엘 불리 : 요리는 진행 중>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수백 번의 실패와 고민 끝에 얻어진, 당대 음식 문화의 정수가 그 접시 위에 담겨 있다. 그사이 또 다른 레스토랑과 셰프들은 그들의 음식을 원하고 원망하며, 연구하고 맛보며, 그들의 스타일과 맛을 카피하거나 그것에서 영감을 받아 더 나은 요리를 만들기 위해 애쓴다. 결과적으로 좋은 레스토랑들은 세계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다.
물론 우리는 부자가 아니다. 한 끼에 10만원에서 30만원을 호가하는 돈을 지불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 내가 여행하는 도시에 멋진 레스토랑이 있다는 걸 알면 나는 늘 예약 전화를 건다. 새로운 음식이 주는 기쁨과 황홀을 만나기 위하여. 단언컨대, 음식은 우리의 오감을 총동원한 모든 감각으로 누릴 수 있는 놀라운 경험 중 하나니까.
레스토랑에 갈 때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
1 테이스팅 코스 레스토랑마다 불리는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레스토랑에서는 셰프의 역량을 집중해놓은 ‘테이스팅 코스’를 운영한다. 셰프와 레스토랑의 개성을 모두 경험할 수 있도록 짜놓은 이 코스의 가격은 높을 수밖에 없지만, 그 레스토랑의 수준이나 특징을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메뉴라는 건 분명하다. 단품메뉴나 다른 세트메뉴 없이 이 코스만 운영하는 곳도 있다. 최근에는 코스를 세분화해, 20가지 코스를 내는 레스토랑도 있다. 적어도 3시간은 소요되는 경우가 많으니 시간을 넉넉히 두고 방문해야 한다.
2 와인 페어링 최고의 레스토랑에는 최고의 소믈리에가 있다. 테이스팅 코스의 메뉴에 맞춰 어울리는 와인을 미리 매칭해놓은 것을 ‘와인 페어링’이라고 한다. 테이스팅 코스에 얼마가량 추가하는 방법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3 갈라 디너 이른바 셀러브리티 셰프와 미슐랭 셰프들의 레스토랑을 일부러 찾아가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갈라 디너를 들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도 미식가들의 욕구가 커지면서, 특급호텔 등을 중심으로 셰프를 초청해 갈라 디너를 여는 것이다. 작년에는 토마스 켈러가 신라호텔을 다녀갔다. 가격은 비싼 편이지만, 실제로 그들의 레스토랑을 찾아가는 것과 큰 차이는 없고, 예약하기 힘든 레스토랑인 경우가 많아 갈라 디너 예약은 빠르게 마감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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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처 에디터 / 허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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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FourSeosons Hotel Hong K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