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안 소설> 그리고 감독
<러시안 소설>의 감독 신연식은 철학자 같았다. 그의 말이 비밀스러운 매력을 지닌 영화의 타래를 푸는 단서가 될 것이다.
31살부터 상업영화 단독 계약을 해왔죠. 한 번도 제가 ‘이 작품 제가 하고 싶어요’라고 해서 단독 계약을 해본 적이 없어요. 다 제작사에서 해달라고 해서 한 거예요. 뭐랄까, 상업영화 시스템에서는 이해가 안 되는 시스템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상업영화 시스템에 내가 안 맞는 건가 고민도 많이 했어요. 그런 말 있죠? 한 낚시꾼이 계속 물고기를 잡았다가 놓아주고, 잡았다고 놓아주는 거예요. 왜 잡은 물고기를 계속 놓아주느냐 물으니 어제 잡다 놓친 놈을 찾고 있는데, 찾을 수가 없다고 그래요.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사공처럼 어제 잡다 놓친 물고기를 잡기 위해, 오늘 잡을 수 있고, 잡아야 할 물고기들을 버리며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오늘 잡았다가 놓아준 물고기들 중에, 그 물고기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사실 저는 영화를 그만둘 생각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러시안 소설>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만든 영화예요. 제 인생과 예술을 반추하는 시점이었어요. 처음 이 시나리오를 썼는데,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배우들도 이해를 못했어요. ‘성한’과 ‘신효’가 제 콤플렉스의 양면을 보여주는 인물들인 것 같다는 건, 만들고 나서 든 생각이에요. 저는 연극영화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연출부 생활을 한 것도 아니죠. 영상원도 떨어지고, 영화 아카데미도 떨어지고, 하다못해 영화진흥위원회에 지원해도 떨어졌어요. 영화인의 삶으로서는 정말 철저하게 루저로서 살아온 거예요. 그런데 3백만원짜리 영화 만들어서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고, 해외 영화제 가고, 안성기, 이하나 캐스팅해서 CJ배급 영화 만들고, 그 다음엔 김기덕 감독과 공동 제작해서 영화를 만들었죠. 딱 이렇게만 보면 편하게 영화 찍은 사람 같죠? 하지만 아니거든요. <러시안 소설>은 제가 연기를 가르친 학생들을 캐스팅해 만들었어요. 일부러 시나리오도 그들의 이름을 주인공 이름으로 썼어요. ‘내 안엔 너희들뿐이다’라고 말한 거죠. 배우 외에 딱 세 명의 스태프로 찍었어요. 촬영감독과 저, 조명감독. 조명감독은 저녁에만 출근했죠. 그렇게 해도 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왜 제작비가 3천만원이거나, 30억원이거나 다 똑같은 시스템으로 영화를 만들죠? 김기덕 사단이라는 말은 좀 이상해요. 감독님을 몇 번 안 만났거든요. 제가 대학을 10년 다녔는데 졸업을 못했어요. 김기덕 감독님한테 결국 졸업 못했다고 하니까 감독님이 너무 좋아하시는거예요. ‘어! 그럼 고졸이네! 하하’ 이러면서요. 나의 정체성이 정말 애매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한국에서는 그렇잖아요. 잡지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콘셉트가 확실한 사람들이 잘되잖아요. 너무 길게 얘기했나요. <러시안 소설>은 복잡한 영화예요. 핵심은 그거죠. 어제 놓친 물고기. 그것이 영화든 뭐든지 간에 내가 지금 삶의 의미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본 거죠. 여러분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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