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여자 신드롬
‘카리스마’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파워 슈트로 무장한 여자들과 가죽 스커트와 망사 스타킹으로 치장한 거친 여자들이 몰려온다. 스타일에 있어서 만큼은 매우 독한‘, 나쁜 여자’로 분류될 수 있는 그런 여자들이 말이다.
성공한 나쁜 여자들의 패션
패션계가 성공한 워킹우먼에게 주목하기 시작한 건 1980년대부터다. 1988년도 영화 <워킹걸>에는 맨해튼 증권가에서 일하는 성공한 냉혈한의 여자 상사로 시고니 위버가 나온다. 1 980년대는 경제 호황이 지속되면서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던 시기였다. 이 같은 추세에 발맞춰 디자이너들은 여성의 슈트에 카리스마를 더하는 요소를 찾기 시작했다. 패드를 두툼하게 넣어 어깨 라인을 강조한 재킷에 무릎길이의 스커트나 팬츠를 매치해 일명 ‘파워 슈트’를 탄생시켰다.< 워킹걸> 속 시고니 위버의 룩도 마찬가지다. 회색 스커트 슈트 룩에 각진 어깨의 코트를 걸치거나, 레드 재킷과 블랙 스커트의 강렬한 대비를 연출했다.
성공한 여자들의 옷차림을 일컫는 ‘파워 드레싱(Power Dressing)’에 대한 패션계의 관심은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올가을 성공한 워킹우먼을 위한 스타일은 단순히 80년대 등장한 파워 슈트처럼 두꺼운 패드를 넣어 어깨를 과장되게 부풀리지 않는 대신, 잘록한 허리선으로 여성성을 우아하고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다.
포문은 디올의 라프 시몬스가 열었다. 1948년 무슈 디올이 처음 사용한 하운즈투스 체크는 날 선 시가렛 팬츠와의 조합으로 일하는 여자들을 위한 다양한 비즈니스 슈트로 변신했다. ‘성숙한 파워 우먼의 룩’이 무엇인지 랑방 하우스를 지휘하면서부터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는 디자이너 알버 엘바즈 역시 이제는 그의 시그너처 스타일이 된 스커트 슈트에 커다란 목걸이와 퍼 머플러를 더해 그 이미지를 이어갔다. 구찌 컬렉션은 페플럼 재킷과 스커트의 만남, 오프숄더 재킷과 스커트의 조화 등 세련된 매너를 지닌 성공한 여자의 이미지에 딱 맞는 스타일을 선보였다. 이런 카리스마 넘치는 여자들에게 어울리는 룩은 가만히 살펴보면 디자인은 굉장히 심플하다. 스커트 슈트를 위주로 잘 재단된 재킷과 미디 스커트, 몸에 잘 맞는 깔끔한 원피스, 완벽하게 몸에 맞는 팬츠가 키 아이템이다. 한마디로 ‘좋은 옷’을 입은 ‘나쁜 여자’다.액세서리 매치는 더 간결하고 심플하다. 앞코가 뾰족한 스틸레토 힐 펌프스나 구조적인 부티를 신고, 주얼리는 깔끔한 진주 귀고리만 착용하거나, 파워 슈트에 브로치로 포인트를 주었던 영국의 고 마거릿 대처 수상처럼 다양한 브로치를 적극 활용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최근 유럽이나 미국에서 성공한 여자들의 상징은 ‘잇 백’이 아니라 ‘노백(No Bag, 고급 세단 뒷좌석에 가방을 놓고 빈손으로 다니는 것)’으로통한다. 개인 운전사가 있다 해도 건물 바로 앞에 주차하기가 힘든 우리나라 상황상 노 백 대신 클러치백이나 클래식한 작은 토트백을 선택하는것이 베스트. 너무 큰 사이즈의 백에 이것저것 다 가지고 다니는 것보다는 작은 사이즈 백에 립스틱과 거울, 지갑과 휴대폰만 가지고 다니는 것이 우아한 이미지를 위해 적절한 선택이다.
패션계에서 가장 성공한 여자인 미국 <보그>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는 다큐멘터리 <셉템버 이슈> 첫 장면에서 “패션은 사람들을 긴장하게 하죠”라고 말한다. 누군가를 긴장시킬 수 있는 패션, 나 스스로도 입으면서 긴장할 수 있는 패션이 바로 성공한 나쁜 여자들에게 딱 맞는 패션이다.
거칠지만 매력적인 나쁜 여자들의 스타일
앞서 말한 파워 드레싱이 여성의 사회적인 지위에 맞물려 등장했다면, 펑크 룩은 패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음악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것도 패션계에서 ‘쿨’과 동급인 ‘록’에서! 생 로랑으로 화려하게 컴백한 디자이너 에디 슬리만은 나쁜 여자 룩의 힌트를 전형적인 런던 쿨 키즈들의 록 시크 스타일에서 얻었다. 여러 개의 벨트를 착용한 것 같은 펑키한 가죽 원피스를 비롯해 크리스털이 장식된 슬리브리스 가죽 원피스까지 다양한 가죽 원피스를 선보였고, 화려한 크리스털로 장식된 시스루 원피스를 비롯해 속옷인지 착각할 수 있을 정도로 짧은 팬츠와 퍼 코트로 글래머러스한 스타일을 연출했다. 검정 망사 스타킹은 컬렉션에 등장한 모든 룩에 착용했는데, 의도된 천박함이 느껴지는 런던의 방종한 로큰롤 그 자체였다. <보그>와 <바자>의 전설적인 패션 에디터였던 고 리즈 틸버리스는 생전에 “런던의 패션 피플들은 이 세상의 모든 짓궂고 기괴하고 별나고 로맨틱한 것들을 다 뒤섞은 후 ‘이것이 바로 최첨단’이라고 자신 만만하게 주장한다”고 말했는데, 올가을 이 말을 착실하게 따른 디자이너는 칼 라거펠트다. 그는 샤넬 컬렉션에서 니트 스웨터와 미디 스커트를 입은 요조 숙녀를 사이하이 부츠와 체인 목걸이, 안나 윈투어의 헤어 스타일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컬러풀한 퍼 모자를 매치해 런더너들에게 딱 어울리는 펑키한 룩을 연출했다 .펑키한 스타일이라고 해서 모두 런던 쿨 키즈들의 스타일을 선보인 것은 아니다. 발맹의 올리비에 루스테잉은 글램 록과 디스코가 믹스된 화려한 메탈 룩을 선보였다. “1970년대 후반의 화려함을 담았어요”라고 말한 올리비에 루스테잉이 선보인 화려한 메탈 톱과 하렘 팬츠는 데이비드 보위의 글램 록을 떠오르게 하지만, 양쪽 어깨에 20cm는 더한 어깨 패드 장식의 가죽 재킷은 1980년대 마돈나가 즐겨 입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쁜 여자 스타일은 해외 컬렉션뿐 아니라 이효리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도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스티브 J&요니 P의 디자이너 요니가 전체 스타일을 디렉팅한 뮤직비디오에는 다양한 나쁜 여자 스타일이 제대로 등장한다. “화장은 치열하게, 머리는 확실하게, 허리는 좀 더 졸라매야 해 ”의 <배드걸> 가사에 맞춰 노래하는 이효리는 화려한 패턴의 인조 퍼 코트를 입기도 하고, 섹시한 호피 무늬 랩 드레스로 몸매를 드러내기도 하고, 허벅지 중간까지 트인 미디 스커트로 아찔한 룩을 연출하고, 시스루 소재 원피스에 여러 겹의 체인 목걸이로 펑키한 나쁜 여자 룩을 완성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액세서리 매치다. 검정 워커, 체인 목걸이는 록 시크 룩에 꼭 등장하는 단골 손님이고, 크리스털이 장식된 망사 스타킹부터 투명한 블랙 반스타킹, 사이하이 부츠처럼 느껴지는 허벅지까지 오는 불투명 스타킹 등 잘 고른 스타킹 하나만으로도 아찔하게 섹시하고 펑키한 느낌을 살릴 수 있다.
혼자 사는 여자들에게 멋진 옷차림은 곧 경쟁력이다. 드라마처럼 겸손하게 차려입은 착한 마음씨에 감동한 재벌 2세가 당신과 사랑에 빠질 확률은 전혀 없다. 순해 빠진 여주인공보다는 부지런히 자기 털을 고르는 고양이처럼 카리스마 넘치거나 아찔할만큼 섹시한 나쁜 여자가 훨씬 더 매력적이고 성공하는 게 현실이다. 처음엔 남의 옷을 입은 듯 어색하지만, 결국 못 입을 옷은 없는 법. “내가 제일 잘나가, 난 매일 바빠, 콧대는 지존, 난 나쁜 기집애!”라고 씨엘처럼 당당히 외친다면 당신이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 매력의 소유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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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패션 에디터 / 김미주
- 포토그래퍼
- KIM WESTERN ARNO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