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아나운서 스타일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아나운서는 지적인 커리어 우먼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최근 늘어난 채널과 방송 아나운서의 역할 확대에 따라 아나운서 옷차림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아나운서를 상징하는 이미지 중 하나는 ‘지적인 커리어우먼’이다. 이러한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은 정확한 말투, 단정한 헤어와 메이크업 등의 요소와 더불어 뉴스를 보도할 때 입는 의상이 대부분 검정이나 진한 네이비 등 톤 다운된 컬러의 한 벌 슈트였던 것에 많은 부분 기인한다. 다소 경직되어 보일 수도 있지만, 뉴스와 정보 전달자로서 시청자들에게 신뢰를 주기에 이러한 의상들은 적절한 선택이었고, 이들이 만들어낸 아나운서의 스타일은 ‘반듯함’으로 대표되었다.
이러한 아나운서의 이미지에 변화가 감지된 것은 2005년경부터다. 강수정, 노현정 아나운서처럼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는 아나운서가 늘어나면서 아나테이너(아나운서와 엔터테인먼트의 합성어)라는 신종어가 탄생했고,역할이 확대됨에 따라 옷차림 또한 변하기 시작했다. 정보를 전달하는 뉴스에서 화려한 드레스를 입을 수 없는 것처럼 유쾌해야 하는 예능 프로그 램에서 답답하게 느껴지는 한 벌 정장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상상플러스>를 진행했던 노현정 전 아나운서는 블라우스나 니트 스웨터, 편안한 팬츠 차림으로 보다 친근한 스타일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다. “제가 아나운서를 시작한 10년 전만 해도 누트럴 컬러의 다소곳한 인상을 주는 의상을 주로 입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보다 과감한 스타일에 도전하는 추세예요. 예전 같으면 노랑, 핑크 같은 컬러 재킷은 상상도 할 수 없었죠.” SBS 정미선 아나운서의 말이다.

지난해부터 심심치 않게 이어진 노출 논란은 아나운서의 이미지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실감하게 하는 부분이다. 논란의 대부분은 스포츠 아나운서와 기상캐스터의 옷차림에서 비롯되는데, XTM <베이스볼 워너비>를 진행하고 있는 공서영 아나운서는 지나치게 짧은 길이와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고 방송에 임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공서영 아나운서뿐만 아니라 MBC 스포츠 플러스의 김민아, KBS N 스포츠의정인영 등 스포츠 아나운서들은 모두 한두 번 정도는 노출과 관련된 기사에 이름을 올린 적이 있을 정도. 그녀들이 과감한 의상을 입는 데는 스스로를 부각하려는 이유도 있겠지만 시청률과의 관계도 배제할 수 없다. 스포츠 프로그램의 주요 시청자들은 남성이다 보니 그들의 시선을 잡을수 있는 요소인 ‘섹시미’를 내세워 시청률을 올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실제로 공서영 아나운서는 노출 논란에 대해 프로그램을 위한 콘셉트라 말했고, 계속해서 기사화된 덕분에 <베이스볼 워너비>는 타깃 시청률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프로그램은 사라지고 공서영만 남았다는 빈축도 있었지만, 어찌되었건 그들의 마케팅 전략은 성공한 셈이다.생각해보면 이 같은 현상은 방송 환경의 변화 때문인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방송은 공중파, 케이블 종편 등을 포함해 약 150개의 채널에 달한다. 시청률 경쟁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시청자들의 시선을 쉽게 모을 요소가 필요한 상황. 이에 따라 요즘에는 예능은 물론 뉴스도 이전만큼 경직된 분위기로 진행되지 않는다. 뉴스에서 생활 뉴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고, 따라서 전달자에 요구되는 스타일도 한층 친근하고 부드러워졌다. 앵글 역시 보다 다이내믹해져서, 과거의 뉴스들이 상반신 위주로 진행되었다면, 현재는 전신 샷을 비롯해 카메라가 한층 다양한 각도에서 비춘다. 때문에 아나운서들의 의상이 과거에 비해 훨씬 많이 드러나게 되었고, 자연스레 주목도가 높아졌다.

지난해 런던 올림픽 기간 화제가 되었던 MBC 양승은 아나운서의 모자 패션을 기억하는지? 화려한 모자를 통해 개최국인 영국 스타일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였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시선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시대가 변했어도 메인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에게 대중이 기대하는 것은 뉴스 전달자로서의 신뢰를 주는 이미지라는 것을 확인한 대목이었다. 전 KBS 아나운서 성연미는 <아나운서처럼 세상과 연애하라>에서 “여성 앵커의 의상만 봐도 첫 뉴스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나쁜 사고가 있는 날의 의상은 무채색에 가깝고, 가급적이면 화려한 아이템은 피한다. 반면에 축제가 있는 날이나 기념일에 의상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를 밝고 화사하게 연출한다”라고 말한다. 즉 프로그램을 대표하는 진행자이기에 옷을 입을 때 프로그램의 성격과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SBS 8시 뉴스를 진행하는 박선영 아나운서 스타일이 박수를 받는 이유는 T.P.O(Time, Place, Occasion)을 고려해 옷을 입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하고 방송 환경이 변해도, 전달하고자 하는 뉴스가 정치나 경제, 날씨, 스포츠든 아나운서는 말 그대로 뉴스를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다. 따라서 아나운서에게 옷이란 어디까지나 그뉴스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매개체가 되어야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아나운서의 옷차림만 기억된다면 그건 아나운서로서 직무유기를 하는 셈이다. 우리가 아나운서에게 기대하는 스타일은 패션지 화보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화려한 옷차림이 아니라 옷입기의 기본 중의 기본인 T.P.O에 맞는 옷차림이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김지후
    아트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션/허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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