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매니시 룩
매니시 룩을 위해 무조건 커다란 사이즈의 남자 옷을 입는 건 좀 진부하다. 올가을 매니시 룩은 남자와 여자의 옷이 서로 완벽한 마리아주 속에 새롭게 탄생했다.
한동안 패션계에서는 ‘남자친구의 옷장을 훔쳐라’, ‘남자 옷을 입은 멋진 여자들’이라는 문장을 참 많이 사용했다. 매니시 룩과 클래식한 슈트를 입은 여자들은 모두 세련되고, 멋지고, 쿨한 여자들의 대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이번 가을/겨울 시즌에는 이런 매니시 룩의 선입견을 조금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이번 시즌만큼은 ‘남성복에서 영감을 얻은’보다는 ‘남성복에서 자주 쓰이는 소재를 활용한’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기 때문이다. 그 조짐은 스텔라 맥카트니의 컬렉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컬렉션은 핀 스트라이프 재킷에 미디 스커트를 매치한 전형적인 매니시 룩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컬렉션이 진행될수록 핀 스트라이프 롱 드레스, 볼륨 스커트와 매치한 스트라이프 티셔츠처럼 여성미가 묻어 나오는 룩으로 서서히 옮겨갔다. 디올 컬렉션에서는 턱시도 재킷 드레스부터 매니시 룩의 대표적인 패턴인 하운즈투스 패턴을 활용한 뷔스티에 톱까지 한층 더 다양하게 선보였다. 패션 칼럼니스트 사라 무어는 “올가을 매니시 룩은 새로운 슈트의 미학과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모직 소재의 핀 스트라이프와 깅엄 체크 무늬가 어떤 것은 드레스로, 어떤 것은 플라운스 스커트로, 그리고 가볍고 편안한 오버사이즈 니트로 변신하는 것을 보면 이번 시즌 남자들의 전유물이던 슈트가 완전히 해체돼 새롭게 선보였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사라 무어의 말처럼 이런 여성스러운 슈트 룩을 만드는 데는 몇 가지 빠지지 말아야 할 중요한 요소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재와 패턴이다. 슈트를 만드는 모직 소재의 핀 스트라이프 패턴이나 하운즈투스, 깅엄 체크, 빗살 무늬 등 클래식한 소재와 패턴을 선택해야 한다. 돌체앤가바나에서 선보인 블랙 앤 화이트 체크 페플럼 톱과 쇼츠를 보면 디자인 자체는 섹시하고 여성스럽지만, 남성복의 향기가 느껴진다. 그 이유는 바로 남성 코트에서 많이 사용하는 체크 패턴의 매니시한 소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톰 포드가 디자인할 때 꼭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분명한 허리선과 깔끔하고 강한 어깨선이다. 따뜻한 빈티지 감성이 물씬 풍기는 로샤스 컬렉션에서 선보인 슬리브리스 원피스는 이런 원칙에 충실한 아이템이다. 롱 베스트를 변형한 원피스는 오버사이즈지만 허리의 곡선을 살려주고, 어깨선을 각지게 잡아주기 때문에 남성미와 함께 세련되고 우아한 여성미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미 눈치 챘을 수도 있지만 컬러 조합이다. 원색의 강렬한 느낌은 클래식한 남성복의 이미지와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검정, 흰색, 회색처럼 모노톤 색상 의상에, 갈색과 베이지, 와인, 카키 등 톤 다운된 색상의 액세서리를 매치해 가을 여자에게 어울리는 컬러 조합을 시도하는 것이 더 세련된 룩을 완성하는 지름길이다. 단 빨간색과 녹색은 예외다. 빨간색은 단정한 검정 슈트에 매치해 섹시한 느낌을 줄 수 있고, 녹색은 차분하고 지적인 이미지를 선사한다. 옷뿐 아니라 액세서리도 마찬가지다. 로퍼도 똑같은 로퍼가 아니다. 성스러운 라인의 페니 로퍼를 비롯해 아찔한 통굽의 플랫폼 로퍼, 날렵한 앞코의 로퍼까지 남성 슈즈에 기본을 두고 있지만 누가 봐도 여자 신발이라는 건 한눈에 알 수 있는 디자인이다. 가방의 경우는 숄더백보다는 토트백을 추천한다. 서류 가방을 연상시키는 직사각형으로 각진 라인의 클래식한 토트백과 프라다에서 선보인 커다란 볼링백은 이번 가을/겨울 매니시 룩을 한층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아이템이다. 클러치백은 화려한 장식과 패턴을 버리고, 간결한 클래식을 더했다.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가 있다. ‘자신이 까다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까다롭다’고. 단순히 재킷과 팬츠, 스커트를 입은 것 같지만 올가을 선보인 매니시 룩은 그 어느 때보다 까다롭게 골라야 한다. 이런 스타일에 처음 도전할 때는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로 대변되는 아방가르드한 디자인보다는 잘 재단된 테일러드 재킷이나 스커트에 아름다운 빈티지 뱅글과 커프로 우아하게 연출해야 한다. 반대로 매니시 룩을 즐겨 입었다면 좀 더 실루엣에 힘을 뺀 스타일로 연출하는 걸 추천한다. 너무 똑 떨어지는 실루엣보다는 스텔라 맥카트니 컬렉션처럼 커다란 니트 스웨터나 경쾌한 미니드레스, 야구 모자 등으로 캐주얼하게 연출한 스타일이다. 특히 올가을 매니시 룩을 입을 때에는 지나치게 완벽하게 마무리한 헤어나 메이크업, 주얼리는 오히려 나이가 들어 보이니 삼가는 것이 좋겠다. 세련된 스타일이 보톡스보다 더 드라마틱한 젊음을 줄 수 있다. 까다롭게 잘 차려입은 룩은 옷을 입은 사람의 성품까지 멋지게 만들어준다. 이번 가을/겨울 시즌에 가장 잘 차려입은 룩은 여성스러운 매니시 룩이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최신기사
- 에디터
- 패션 에디터 / 김미주
- 포토그래퍼
- KIM WESTERN ARNOLD, 이정훈
- 기타
- 어시스턴트 / 정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