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대의 소년, 여진구
여진구는 하얀 스웨터를 입은 맨얼굴로, 가죽 재킷을 입은 진한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섰다. 어떻게 해달라 요구한 적은 없으나 카메라 셔터 소리에 맞춰 매번 전혀 다른 얼굴을 만들어 보였다. 더 많은 컷이 있었다면 또 그만큼 다른 얼굴을 하고 태연하게 연기했을 거다.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는 열일곱 살 여진구를 만났다.
작년보다 키가 많이 컸네요.
1년 반 사이에 10cm 정도 큰 것 같아요. 농구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방학이라 좀 한가할 줄 알았는데 더 바쁘더라고요.
곧 일본에서 팬미팅도 잡혀 있다고 했죠?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하는 팬미팅이라 준비를 많이 하고 있어요. 오늘도 일본 매체 인터뷰를 하고 왔어요. 일본어를 배우고 있는데, 아직은 간단한인사 정도만 하는 수준이에요.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는 거예요?
일본에서 팬미팅할 때 노래와 춤은 필수라고 하더라고요. 열심히 배우고는 있는데 한숨만 나와요. 김수현 형이 부른 ‘그대 한 사람’을 연습하고 있는데 정말 어려워요. 수현이 형은 노래를 무척 잘하는 거였어요. 춤은 여러 가지를 섞어서 배우고 있는데 생각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아요. 하하.
김병욱 PD의 새 시트콤<고구마처럼 생긴 감자별 2013QR3>에 합류한다고 들었어요.
아직 촬영은 들어가지 않았고 대본 리딩만 했어요. 시트콤을 좋아해서 언젠가 한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김병욱 감독님이 불러주셔서 바로 합류하게 되었어요.
어떤 역할을 맡은 건가요?
컴퓨터 프로그래머 역할을 맡았는데, 엉뚱한 구석이 꽤 많은 아이예요. 자존심 세고 뻔뻔하기도 하고요. 가난한 아이라 거의 늘어난 트레이닝복만 입고 있어요.
7살 많은 하연수와 러브 라인이 만들어진다죠?
네. 그래서 좀 걱정했어요. 연수 누나가 동안이긴 하지만 저는 아직 십대이고 누나는 이십대인 만큼 어색해 보일까 봐요. 대본 리딩 할 때 만나서 카메라 테스트도 같이 했는데 전혀 문제가 없더라고요. 카메라에 잡힌 우리 모습을 보고 감독님을 비롯해 모두들 안심했죠.
그녀와의 호흡은 어땠어요?
짧게 맞춰봤는데 잘 맞는 편이었어요. 저는 감독님에게 ‘너무 정극 같다’는 지적을 받았어요. 제 목소리가 너무 낮아서 두세 톤 올리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요즘 목소리 톤을 올리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여진구의 코믹 연기라니, 상상이 좀 안 되긴 해요.
과장된 행동을 하거나 엄청 웃기는 캐릭터는 아니고 간간이 말투에서 재미있는 요소를 보여줄 거예요. 예를 들면 반어법을 많이 쓰는데,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하면 일단 부정부터 하는 거예요. 뭘 물어봐도 ‘아니’라고 대답하는 거죠.
김병욱 감독의 전작들을 좋아했어요?
그럼요. ‘하이킥 시리즈’도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감독님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시다 보니 요구하는 것이 정확하세요.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될 것 같아요.
영화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의 촬영은 끝난 건가요?
올해 1월부터 촬영을 시작해서 4월에 끝났고, 보충 촬영을 하고 있어요.
주인공 화이를 맡은 소감은요?
주인공이라서 좋다기보다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화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흥미로웠어요. 굉장히 복잡한 아이거든요. 파고들수록 더 파고들어야 답이 나오는 아이예요. 캐릭터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고, 감독님과 대화도 나누면서 조금씩 화이를 알아갔어요.
‘19세 미만 관람 불가’ 판정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있어요.
잔인한 장면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꼭 보고 싶은데, 봐야 하는데 걱정이에요.
이제까지 하지 않았던, 스릴러 장르라 더 기대가 돼요. <화이>는 어떤 영화인가요?
5명의 범죄자가 아기를 납치해서 인질극을 벌이다가 차마 죽일 수가 없어 키우게 돼요. 그 아이가 화이죠. 화이가 자신을 둘러싼 5명의 아버지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예요.
김윤석, 장현성, 조진웅 등 선이 굵은 대선배와의 촬영은 어땠나요?
워낙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선배님들이라 긴장도 많이 하고 어색해했는데 편하게 대해주셔서 빨리 적응할 수 있었어요. 특히 조진웅 선배님은 극중에서 엄마 같은 역할을 맡으셨는데, 실제로도 세세한 것까지 잘 챙겨주셨어요.
그 선배들 또한 당신에게 자극을 받았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김윤석 선배님이 “진구랑 같이 연기하면 같이 끌어오르는 느낌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대기 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대화를 많이 나누었는데,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걸 하라는 말씀을 자주 해주셨어요.
아직 미성년이니 회식 자리에는 어쩔 수 없이 빠져야 했겠네요.
아니요. 항상 데려가주셨어요. 소주잔에 사이다 넣어서 건배도 하고요.
장준환 감독은 어떤 화이가 되어주길 바라던가요?
나쁜 사람들 안에서도 화이만의 ‘선’을 잃지 말아달라고 했어요.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스러웠죠. 그때 감독님이 영화<허공에의 질주(Running on Empty)>를 추천해주셨어요. 수배자가 되어서 신분을 감추고 도망 다니는 남자가 결국 자신의 사랑을 찾게 되는 이야기예요. 화이는 사랑이 아닌 진실을 찾게 되는 것이 다른 점이지만 화이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화이>를 촬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요?
높은 곳에 올라가서 저격하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 굉장히 높은 곳에 올라가서 찍었어요. 그날따라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불던지, 머리는 산발이 되고 눈에는 자꾸 뭐가 들어가서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액션 연기도 볼 수 있는 건가요?
총을 쏘기도 하고 맨손으로 하는 액션도 꽤 있어요. 한 달 동안 액션 스쿨다니면서 훈련도 받았어요. 그동안 드라마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일 거예요. 시나리오 자체도 재미있고 선배님들과 열심히 촬영한 만큼 많은 분들이 봐주면 좋겠어요.
얼마 전 <20’s 초이스> 시상식에서 볼 수 있어서 반가웠어요.
오랜만에 레드 카펫을 밟으려니 엄청 떨리더라고요. 차에서 내리기 전에 심호흡도 했어요. 헤어 스타일과 옷 때문인지 어른스럽게 보였어요. 심지어 ‘17살의 중후함’이라는 제목의 기사도 있었고요. 머리 해주는 실장님이 드레스 코드가 남성적인 스타일이니까 앞머리도 올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올렸는데 사진 보고는 다시는 안 올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하.
반 친구들과는 많이 친해졌어요?
네. 같이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고 많이 친해졌어요. 그런데 매점에 가면 그렇게 저한테 쏘라고 하더라고요. 학기 초반에는 좀 쏘다가 요즘에는 각자 계산하자고 해요.
연예인이 아닌 친구들이 부러울 때는 없어요?
수련회도 가고 싶고, 축제도 참여하고 싶은데 매번 빠져야 하니까 좀 서운해요. 맘껏 놀 수 있는 친구들이 가끔씩 부럽기도 하죠.
어느 과목이 좋고 어느 과목이 싫어요?
영어는 재미있고 수학은 어려워요.
대학교에서 전공하고 싶은 건 뭐예요?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어요. 사람들의 심리를 알면 연기에도 도움이 많이될 것 같아요. 건축도 굉장히 매력적인데 수학을 잘 못해서 건축을 전공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누군가 교실에 있는 당신을 촬영한 사진이 기사화되기도 했어요. 매니저 형이 알려줘서 알았어요. 학교에서 사진 찍은 적이 없는데 이상하다 하면서 봤더니 사진이 올라와 있더라고요. 교실 밖에서 누군가가 찍어서 올렸나 봐요. 얼굴이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는데 기사 제목이 ‘교복 입은 훈남’이라서 좀 당황스러웠죠.
동아리 활동도 하고 있나요?
영화감상부예요. 같이 영화 보고 감상문도 써요.
최근에 본 영화 중에 욕심나는 캐릭터가 있었나요?
<광해>를 봤는데 1인 2역이 정말 매력적이더라고요. 이병헌 선배님 연기도 정말 훌륭했고요. <의뢰인>도 재미있게 봤어요. 사이코패스도 있고, 속물 변호사도 있고, 거기 나오는 캐릭터가 다 재미있었어요. 어린 나이에 열렬히 사랑하는 역할을 많이 했어요.
실제로 그런 사랑을 꿈꾸기도 하나요?
사실 좀 걱정이 돼요. 드라마에서의 사랑이 너무 크다 보니까 실제로 연애할 때 내 마음이 작게 느껴질까 봐요. ‘나도 이렇게 완벽한 사랑을 할 수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언젠가는 목숨을 건 사랑을 해보고 싶어요.
누군가의 남자친구가 된다면 어떤 남자친구이고 싶어요?
지고지순한 남자친구가 될 것 같아요. 여자친구가 하자는 대로 하고, 여자친구를 배려하는 그런 게 진짜 남자다운 모습인 것 같아요. 여자친구가 생기면 벚꽃축제에 가고 싶어요. 손을 잡고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걸어보고 싶어요.
스무 살이 되면 가장 먼저 뭘 하고 싶어요?
운전면허증을 따서 혼자 국내 여행도 가고 아프리카로 배낭여행을 가고 싶어요. 그리고 친구들과 술집에 가고 싶어요. 점원이 신분증을 요구하면 당당하게 내미는 거죠. 하하.
스무 살도 안 된 당신에게 ‘상남자’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솔직히 남자라면 상남자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아직 상남자는 아닌 것 같아요.
어떤 남자가 상남자일까요?
딱 봤을 때 ‘와, 진짜 남자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외모와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 소심하지 않고, 어느 정도 감성적인 면을 지니고 있는 그런 남자가 아닐까요?
연기 말고 관심 있는 분야가 생겼나요?
쇼핑에 전혀 관심 없었는데 요즘 모자나 시계 같은 거 사는 게 재미있어요. 친구나 매니저 형이랑 같이 가서 의견을 물어보면서 사요. 너무 비싼 집에 들어가면 ‘둘러보고 올게요’ 하고 후다닥 나와버려요.
지난 인터뷰 때 오시오 코타로의 기타 연주곡을 연습한다고 했잖아요. 좀 늘었어요?
아,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혼자 독학으로 하려니까 어느 순간부터 진도가 안 나가요. 지금은 시간이 부족해서 좀 쉬고 있지만 언젠가는 꼭 마스터하고 싶어요.
그때와 또 어떤 것들이 달라졌나요?
잘 몰랐는데 오늘 촬영한 사진을 보니까 많이 큰 것 같아요. 키도 크고 얼굴도 변하고요. 철도 좀 든 것 같아요. 요즘 부쩍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는 것이 많으면 연기를 할 때도 도움이 될 것 같고요.지금은 뭐든 열심히 배우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연기하는 건 여전히 좋아요?
네. 점점 연기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는 것 같아요. 제게 연기가 뭔지, 어떻게 하면 연기를 더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어요. ‘여진구는 저 역할에 정말 빠져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시청자들을 집중시킬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아직은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놀 수 있을지를 고민해도 될 것 같은데요?
농구할 때마다 고민하긴 해요. 어떻게 하면 좀 더 높이 뛸 수 있는지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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