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수의 새시대
빙수의 양대산맥, 압구정동 밀탑과 이촌동 동빙고를 위협하는 빙수계의 새로운 강호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곱게 간 얼음은 기본으로 팥이면 팥, 과일이면 과일 뭐 하나 부족함 없는 믿음직한 곳들이다.
1 합 + 유자빙수
인사동의 떡 카페 합은 인절미와 유과 한 조각이 근사한 디저트라는 사실을 입증한 곳이었다. 하지만 합의 신용일 대표는 어쩌면 떡보다 팥빙수를 더 좋아하는 남자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부터 빙수가 좋아서 빙수 가게를 차리기로 다짐하고 대학생 시절에는 동네 제과점에서 사용하는 빙수기계를 미리 사두기까지 했다니 말이다. 그의 빙수 철학은 확고하다. 혀에서는 달되, 그 끝은 깔끔할 것.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유자다. 삶기 전에 다섯 번, 삶은 후에 다시 또 다섯 번을 물로 씻어내는 팥은 포슬포슬하고 쓴맛 없이 달고, 직접 만든 유자우유를 빙수에 끼얹어 유자향을 더했다. 유자는 보이지 않고 그 맛만 입안에 은은하게 맴도는 것이 가히 ‘우아하다’고 할 만하다. 합의 유자빙수를 먹을 때는 재료를 뒤섞지 말고 칼로 케이크를 자르듯 수직으로 한 숟가락씩 퍼 먹어야 한다. 그래야 네 가지 층으로 이루어진 빙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사동에 이어 이태원에 문을 열었던 합은 올여름, 이태원 매장의 문을 닫고 청담동으로 이사를 했다. 일본에서 특별한 인절미 기계도 공수했다고 하니 합의 자랑인 인절미도 잊지 말고 챙기자. 인절미는 언제나 빙수의 좋은 짝이니까.
가격 유자빙수 1만1천원, 인절미 6천원 영업시간 정오부터 자정까지 주소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93-3 문의 070-7532-4819
2 UFF + 망고빙수
‘Uff’는 독일어로 ‘휴’를 가리키는 의성어다. 지난봄, 홍대에 등장한 유에프에프는 과연 이름 그대로 한숨 돌리며 쉬기에 좋은 공간이다. 영상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두 오너의 감각이 더해진 2층 규모의 카페는 유에프에프의 마스코트가 된 변경수 작가의 작품, 각각 다른 너비와 높낮이를 뽐내는 책상과 의자가 근사하게 어우러진다. 아이패드로 만든 메뉴판은 온갖 메뉴로 가득한데,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빙수다. 유에프에프의 망고빙수는 단순하다. 행여 무너지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 높다랗게 쌓은 빙수와 네모반듯하게 자른 망고 세 조각이 함께 나올 뿐이다. 하지만 얼음과 망고 과육을 함께 간 후 얼린 빙수는 특별한 토핑 없이도 달디달다. 얼음이 입안에 부드럽게 달라붙는 이유는 100% 우유를 얼려 만들었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치즈를 올려 연통에 직접 구운 군고구마와 빙수가 함께 나오는 군고구마 빙수가 인기다. 이런 빙수라면 겨울에도 매일 먹겠다.
가격 망고빙수 1만3천원 영업시간 오전 11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주소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97-11 문의 02-325-0864
3 파크 하얏트 더 라운지 + 콜라다 빙수
올여름 전국의 특급호텔을 휩쓸고 있는 빙수 열풍은 지난해 신라호텔과 파크 하얏트의 빙수가 거둔 대대적인 성공에서 비롯했다. 호텔 빙수계의 쌍두마차인 파크 하얏트는 작년의 인기 아이템 복숭아 빙수뿐만 아니라 올해 새로운 빙수 두 종류를 선보이며 여름의 시작을먼저 알렸다. 파인애플과 코코넛, 달콤한 말리부 럼을 넣어 만든 콜라다를 베이스로 한 콜라다 빙수는, 말린 파인애플과 코코넛 칩, 망고와 파인애플 조각 등 열대의 활력을 고스란히 담은 엄청난 빙수다. 빙수 자체의 양도 푸짐한데 입맛에 따라 추가할 수 있도록 캐러멜 소스와 파인애플과 함께 마카다미아 너트를 작은 접시에 함께 담아 낸다. 특히 달콤한 빙수와 고소한 마카다미아 너트의 궁합이 최고! 얼려두지 않고 매일 모든 재료와 소스를 조금씩 만드는 빙수는 마트의 진열대에서 갓 꺼낸 채소처럼 신선해서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이 모든 걸 24층 높이의 라운지 바에서 즐길 수 있다는 사실. 여름밤 최고의 데이트 코스임에 분명하다.
가격 콜라다 빙수 3만6천원 영업시간 오전 9시부터 자정까지 주소 서울시 강남구 대치3동 995-14 문의 02-2016-1205
4 옥루몽 + 가마솥 전통팥빙수
조선 후기의 소설 <옥루몽>에서 이름을 빌려온 옥루몽은 이름대로 한바탕 좋은 꿈을 꾸고 나온 것 같은 곳이다. 지난여름 홍대 주차장 거리에 문을 연 이후 여름에는 팥빙수, 겨울에는 팥죽을 찾는 발걸음이 끊이지 않아 결국 계획에 없던 2호점, 3호점이 강남역, 이대후문, 여의도에 줄줄이 생겼다. 옥루몽의 주인공은 단연 팥과 가마솥이다. 무게가 20kg은 족히 나간다는 거대한 가마솥은 하루 종일 팥을 삶느라 바쁘다. 커다란 솥을 휘젓는 일도, 솥을 씻는 것도 고되지만 세 시간 넘게 삶겨 나오는 옥루몽의 팥은 이런 노력에 맛으로 보답한다. ‘고소하다’보다는 ‘구수하다’가, ‘달콤하다’보다는 ‘달다’는 표현이 훨씬 잘 어울리는 깊은 맛이다. 꽁꽁 얼린 놋그릇에 담겨 나오는 덕에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입 천장이 시릴 정도로 시원하다. 얼음을 통째로 먹는 게 이런 기분인가 보다.
가격 가마솥 전통팥빙수 8천원 영업시간 정오부터 오후 11시 30분까지 주소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402-18 문의 02-325-4040
5 빙빙빙 + 요거트 빙수
간판과 유리창, 가게 곳곳에 펭귄 그림과 인형이 가득한 빙빙빙은 ‘빙수는 여름 한 철’이라는 생각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곳이다. 빙수의 사계절 호황을 노리는 이 가게는 계절 내내 빙수를 맛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매달 새로운 계절 메뉴를 부지런히 선보이며 빙수 마니아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빙수의 기본인 팥은 차씨 곰 할머니가 만든다. 홍대에서 보기 드물게 10년 넘게 버틴 밥집, ‘나물 먹는 곰’의 그 차상득 할머니다. 빙빙빙의 첫 번째 가게가 나물 먹는 곰과 같은 건물 1층에 자리한 것도 바로 그 이유. 그런 빙빙빙이 지난 3월 청담동에 도착했다. 규모는 작지만 천연설탕을 사용해 칼로리를 낮추고, 매달 새로운 계절 빙수를 선보인다는 것, 그리고 차씨 곰 할머니가 팥을 삶는다는 사실은 똑같다. 직접 발효시킨 요거트와 상큼한 블루베리 잼이 여름과 더없이 어울리는 요거트 빙수는 곱게 간 얼음과 함께 떠 먹을 것. 얼굴도 본 적 없는 차씨 곰 할머니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어지는 맛일 테니까.
가격 요거트 빙수 7천7백원, 팥 추가 1천원 영업시간 정오부터 오후 9시까지 주소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5-29 문의 070-4177-719
6 호무랑 + 호지차 빙수
일본의 빙수 명가들을 순회하며 하나하나 맛본 결과, 호무랑의 전민호 셰프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빙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얼음이라는 것! 겨우내 꽁꽁 얼린 연못의 얼음을 사용하는 가게도 가봤지만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는 불가능한 꿈이기에 대신 과학적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마치 한우처럼 얼음을 냉장고에서 숙성시키며 최적의 온도를 찾아낸 거다. 얼음이 투명해지는 순간을 맞춰 제빙한 호무랑 빙수의 얼음은 뭉치지 않고 칼로 썬 것처럼 가볍다. 쑥빛에 가까운 빛을 내는 호지차 빙수는 녹차의 잎과 줄기를 불에 볶아 만든 호지차를 이용한 빙수다. 녹차보다 한층 고소하고, 깔끔한 뒷맛을 자랑하는 호지차의 담백한 맛은 직접 만든 시럽을 만나 한층 달콤해진다. 찹쌀떡과 함께 올린 호지차 젤리도 별미다.
가격 호지차 빙수 1만6천원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주소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4-1 문의 02-6957-1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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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이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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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