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적이고 낭만적인 웨스터 룩
총잡이와 카우보이, 무법자가 난무했던 19세기 후반의 미국 서부 개척시대. 흙먼지가 자욱한 황야를 달리던 카우보이의 거침과 자유분방함이 런웨이로 질주했다.
서부 개척시대는 수많은 미국 대중문학의 배경이 되어왔다. 개척자와 인디언의 대립, 원시림의 자연과 황야를 오가는 문명과 야만, 악에 맞서는 카우보이의 용맹함이 교차되었던 서부시대는 낭만적이면서도 역동적이고 통쾌하면서도 슬프기도 한 역사의 한 장면을 그려낸다. 특히 서부영화는 한 장르로 분류될 만큼 큰 인기를 끌어왔는데, 시각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극 곳곳에 포진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선보인 <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서부영화의 매력과 향수를 오랜만에 제대로 끄집어냈다. 생생하고 역동적인 영상과 서부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음악을 재조명한 OST, 명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이 어우러진 이 영화는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카우보이의 옷차림을 세심하게 재현한 배우들의 패션도 극의 재미를 높이는데, 이 영화 덕분에 새삼 웨스턴 룩의 멋과 매력에 푹 빠졌다.
노을이 내려앉은 황야, 말을 탄 두 남자의 아슬아슬한 마지막 결투는 서부영화의 뻔하디뻔한 엔딩 신이다. 한 사람은 살고, 한 사람은 죽는 진부한 스토리를 보여주지만 영상만큼은 끝내준다. 양쪽 챙이 살짝 뒤집힌 모자, 스웨이드 소재의 베스트와 재킷, 총이 달린 가죽 벨트, 프린지 장식의 팬츠, 앞이 뾰족한 부츠 등 거칠지만 규칙이 있는 카우보이의 옷차림은 영상의 멋을 극적으로 끌어올리는 장치다. 패션 디자이너들은 영화 속 카우보이의 옷차림을 현실로 부활시킨 일등공신이다. 게다가 여자에게도 어울리는 패션으로 재현하면서 웨스턴 룩의 역사는 새로이 써졌다. 웨스턴 룩은 여성에게 남성의 마초적이고 거친 기질을 입히는데,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은 그 방식을 한층 정제되고 세련되게 표현해 웨스턴 룩의 재발견이라는 평을 얻고 있다.
근사한 웨스턴 룩을 만드는 데는 몇 가지 중요한 요소가 필요하다. 그 첫번째는 여름과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스웨이드 소재. 원단이 얇은 스웨이드나 스웨이드의 질감을 표현한 의상을 선택하면 되는데, 스웨이드 특유의 질감이 이열치열의 멋을 만든다. 간결한 선으로 웨스턴 룩의 위엄을 연출한 생 로랑 컬렉션은 프린지 장식을 단 스웨이드 스커트에 시스루 블라우스를 매치하는 식의 극적인 소재 대비를 활용해보라고 권한다. 스웨이드와 가죽을 봄/여름 컬렉션에 사용한 로에베 컬렉션은 피부를 드러내는 슬릿 장식과 밀짚 소재의 액세서리를 더하면 답답해 보이는 스웨이드의 단점을 가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두 번째로 기억해야 할 요소는 가늘고 긴 실루엣을 연출하는 것이다. 어정쩡한 길이나 치렁치렁한 장식을 피한 웨스턴 룩은 성숙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낸다. 은은한 프린트의 블라우스와 부츠컷 팬츠를 입은 이자벨 마랑 컬렉션의 모델은 낭만적인 보헤미안 같고, 러플 블라우스에 블랙 팬츠를 입고 두꺼운 벨트로 허리를 잘록하게 조인 랄프 로렌 컬렉션의 모델은 귀족적이다. 긴 실루엣이 답답해서 싫다면 날염 프린트의 하늘거리는 미니드레스를 입은 베르사체 컬렉션의 모델들처럼 아예 짤막한 실루엣을 선택하자.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요소는 톤 다운된 색상이다. 본디 카우보이의 옷차림이 그렇듯, 화려한 색상은 황야의 거친 면모와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 베이지나 카키, 갈색을 선택하면 가장 안전하며, 좀 더 튀는 색상을 걸치고 싶을 땐 물 빠진 듯한 느낌을 내는 낮은 채도의 색상을 고르자. 아이스버그와 로에베 컬렉션처럼 베이지, 카키, 초콜릿 등 비슷한 계열의 색상을 톤온톤으로 연출하면 날씬해 보이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웨스턴 룩의 멋을 맛보기로 경험해보기에 액세서리만 한 게 없다. 카우보이 모자부터, 프린지 장식의 숄더백과 스트랩 슈즈, 보안관을 떠오르게 하는 보잉 선글라스 등 다양한 액세서리를 활용할 수 있다. 더위쯤이야 상관없다면 앞코가 날렵한 스터드 장식의 부츠를 신으면 금세 카우보이의 느낌이 난다. 액세서리를 고를 때 역시 스웨이드 소재는 필수 요건이다. 웨스턴 스타일의 액세서리는 그런지 느낌이 나는 데님 팬츠나 셔츠, 시원하고 이국적인 분위기의 화이트 리넨 원피스나 블라우스 등의 의상과 궁합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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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박선영
- 포토그래퍼
- KIM WESTON ARNOLD, 정민우, 이주혁
- 스탭
- 어시스턴트 / 정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