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 밥상

산에 피는 봄나물은 진달래보다 한발 앞서 봄의 도착을 알린다. 봄기운을 땅속부터 품은 나물들. 그 나물들이 있는 한 상을 찾아 나섰다. 양평의 농가 맛집부터 홍대의 작은 식당까지, 봄은 어디에나 있었다.

1. 각종 밑반찬과 함께 직접발효시킨 유자소스로 맛을 낸삼치구이와 직접 만든 겨자소스를뿌린 오리고기로 차리는 용문큰상.2. 광이원에서 직접 담근 장과제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

1. 각종 밑반찬과 함께 직접
발효시킨 유자소스로 맛을 낸
삼치구이와 직접 만든 겨자소스를
뿌린 오리고기로 차리는 용문큰상.
2. 광이원에서 직접 담근 장과
제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

광이원
광이원에는 수저보다 장독대가 더 많다. 마당에는 온갖 장을 담은 장독대가, 식당 뒤편에는 오가피, 오디 등 각종효 소를 담은 장독대가 가득하다. 스무 살이 되던 해 ‘내 이름을 단 장항아리 하나를 만들어 달라’고 했던 딸은 재작년 장독대가 있는 마당에서 혼례를 올렸다. 오랜 시간 그렇게 장 만드는 집이었던 광이원이 지난해 가을, 식당 문을 열었다. 농가 맛집 광이원의 시작이다.

22년째 장을 담근 김광자 대표의 손맛에 요리 연구로 석사 학위까지 딴 딸의 안목이 더해진 광이원의 한 상은 임금님 상이 부럽지 않다. 나물철이면 새벽 4시부터용문산에 올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물을 캐는데, 그렇게 캔 나물은 말리거나 장아찌가 된다. 오물오물 나물을 씹고 있으니 김광자 대표가 간장을 권한다. 2년간 숙성된 전통 간장이 입안을 개운하게 해줄 거라는 말 그대로 정말 한 방울 ‘콕’ 찍어 먹었을 뿐인데 자연스레 새 침이 고인다. 천 년 된 은행나무가 있는 용문산의 은행과 쑥, 냉이, 더덕, 그리고 겨울을 살아낸 산야초는 야채튀김이 된다. 오디전도 인기다. 잘 익은 포도 같은 빛깔만 봐도 군침이 도는데 오디씨가 입안에서 톡톡 튀기까지 한다. 광이원에서 음식 이야기를 하자면 끝도 없으니, 뽕잎가루로 만두피를 만든 뽕잎규아상은 임금님이 먹던 만두라는 것까지만 말하겠다. 봄이 오면 광이원의 쌈밥도 시락을 들고 용문산에 오를 테다. 참, 예약은 필수다. 광이원은 한 상을 차리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곳이니까.

가격 용문큰상 3만원 영업시간 정오부터 오후 10시까지 주소 경기 양평군 용문면 덕촌리 13-1 문의 031-774-4700

자련
분당과 정자동 카페 거리만 있는 줄 알았던 성남시에 청계산을 두른 한적한 동네가 있다. 정자동에서 15분 거리인이 곳에 지난 6월 사찰요리 전문점 자련이 문을 열었다. 자련의 주인인 민연숙, 민연자 자매는 사찰음식연구소에서 공부를 하고, 동국대 불교대학원 사찰음식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사찰 요리계의 엘리트라고 할까?

자련의 상은 소박하다. 보기에는 예쁘지만 가끔은 먹는 일이 고행처럼 느껴지는 산야초 부각과 더덕의 뿌리 샐러드를 내놓는 다른 사찰 음식점의 음식보다 친근한 맛과 생김새다. 하지만 음식을 만드는 것도 수행의 한 과정인 불교에서 식사는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잇는다는 본연의 목적에 가깝다. 육식은 물론 파마, 늘, 부추, 달래, 홍거처럼 냄새가 강한 식자재도 오신채라고 하여 금하는 만큼, 자련의 요리도 최소한의 간만 하고 천연식초와 천연효소로 맛을 낸다. 나물 요리에도 참기름을 뿌려 일부러 고소한 향을 내거나, 깨를 뿌리는 일은 없다.

커다란 냉장고에는 취나물, 시금치, 냉이, 고사리 등 청계산을 오르내리며 캔 온갖 나물이 가득한데 잘 얼려두었다가 겨울이 되면 다람쥐 도토리처럼 사용한다. 그래도 없는 나물은 인근의 하우스 농가에서 재배한 것을 받아 온다고. 해조류도 나물로 분류하는 사찰 음식의 특성 상 톳나물과 파래도 산나물과 같은 쟁반에 담긴다. 쑥 내음이 코앞까지 스며드는 쑥전, 유자청과 견과류를 넣은 된장을 발라 봄동 쌈을 입에 넣었다. 봄이 왔다.

가격 수련상 1만5천원 영업시간 정오부터 오후 8시까지 주소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89 문의 031-8016-8844

춘삼월
홍대에 여전히 밥집이 부족하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그래서 밥과 반찬이 고팠던 사람들에게 춘삼월은 봄처럼 반갑다. 자그마한 간판을 달고 2층에 조용히 자리한 이 식당은 포털 사이트에 주소 등록도 해놓지 않았을 정도로 깍쟁이지만 막상 찾아가면 온갖 반찬과 샐러드, 찌개가 함께 오르는 한상 을 푸짐하게 차려준다. 춘삼월의 곽지환 대표는 맛있는 밥집을 만들기 위해 태어나서 먹은 온갖 맛난 것들을 다 떠올렸다고 한다. 강원도 고향집에 갈 때마다 먹던 메밀배추전은 그렇게 춘삼월의 식탁에 오르게 됐다. 배춧잎을 메밀가루에 묻혀 부친 메밀배추전은 아삭한 배추와 쫀득쫀득한 메밀의 궁합이 일품. 계절의 변화를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일주일마다 메뉴를 바꾸는 춘삼월의 식탁에서 나물은 빠지지 않는다. 도라지, 취나물, 무나물 등 다양한 나물이 번갈아 오른다.

취나물은 간장으로, 무말랭이는 고춧가루로, 섬초는 소금으로 간을 했지만 하나같이 맛이 순하다. 하우스 농업이 워낙 발달해 제철 나물의 정의가 점점 모호해지는 요즘이지만 직접 시장에서 장을 보다 보면 시장 아주머니들로부터 귀띔으로 얻는 정보가 제법 쏠쏠하다는 것이 곽지환 대표의 말. 그렇게 알게 된 새로운 나물 이름도 많다고 한다. 지난가을에는 상수동 일대가 연기로 뒤덮였을 정도로 가을맞이 전어잔치를 성대하게 벌였다. 매 계절을 기억하는 춘삼월은 이름에 맞게 이토록 사시사철 계절에 대한 생각을 놓지 않는다.

가격 1인상 1만5천원부터 영업시간 정오부터 오후 11시까지 주소 서울시 마포구 상수동 328-14 문의 02-323-2125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이마루
    포토그래퍼
    이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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