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우리 젊은 날
“저는 신기하고 궁금한 게 많아요.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서 아는 것도, 경험도 많아지면 이 세상이 또 어떻게 보일지 정말 궁금해요”라고 말하는 아름답고 정직한 이진욱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정읍으로 가는 길. 안개가 자욱한 흐린 하늘은 정읍에 가까워질수록 비를 쏟아내고 있었다. 목적지인 정읍 아산 병원은 tvN 드라마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의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진짜 환자들이 환자복을 입은 연기자들을 구경하기 위해 고개를 기웃거렸고, 감독이 액션을 외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알아서 발소리를 낮췄다. 이진욱은 <나인 : 아홉 번의 시간여행>에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신비의 향 9개를 손에 넣은, 냉철한 앵커 박선우 역할을 맡았다. <로맨스가 필요해2>가 끝난 지 6개월. 단정하게 자른 머리와 검은색 슈트를 입은 이진욱에게 더 이상 귀엽고 까칠한 <로맨스가 필요해2>의 시나리오 작가 윤석현은 없었다.
“자, 진욱 씨, 이제 들어갈게요.” 이진욱은 서둘러 움직였다. 함께 촬영할 배우에게 인사를 건네고 곧 리허설에 들어갔다. 대사를 하다가 잘 생각이 나지 않을 때는 특유의 천진한 얼굴로 멋쩍은 듯 웃었다. 그의 얼굴 앞으로 마이크가, 옆으로 조명이 자리를 잡고 수십 명의 스태프가 그를 둘러쌌다. 김병수 감독이 그에게 다가가 동선을 확인했고, 몇 번의 리허설을 마친 후 촬영에 들어갔다. 같은 장면을 수십 번 촬영하는 동안 이진욱은 한순간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네팔 로케이션 촬영을 다녀오자마자 정읍이네요. 네팔에서의 촬영은 어땠나요?
해외촬영은 항상 타이트하게 진행되는데 네팔은 그렇게 하려야 할 수가 없었어요. 촬영 중에 전기가 나가기도 하고, 밤이 되면 상점이 문을 닫을 뿐 아니라 가로등까지 꺼져버리니 정말 깜깜하거든요. 그래서 숙소에 머물면서 이번 드라마에 도움이 될 만한 영화나 책을 많이 챙겨 봤어요. 이번 작품은 특히 대사가 많아서 대본을 보는 시간도 많았고요.
기다렸다는 듯이 2013년 시작과 함께 새로운 작품에 들어갔네요.
저의 2013년 계획이 ‘쉬지 않고 일하자’예요. 다행히 좋은 작품을 만나서 일하며 한 해를 시작할 수 있어서 좋아요. 사실 배우라는 직업이 누군가에게 선택을 받는 직업이라 그게 쉽지는 않거든요.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의 박선우는 어떤 사람이에요?
제가 좀 기구한 운명의 캐릭터를 좋아하는데, 제가 맡은 박선우라는 인물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아픔을 다 겪어요.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싸우고, 심지어 과거의 사람들까지 상대해요. 만들기 쉽지 않은 드라마이고, 어쩌면 한 번도 만나기 힘든 역할인데 그런 배역을 만나서 요즘 신이 나 있어요.
심지어 신의 영역에도 도전한다고 들었어요.
신의 영역에도 도전하고, 인간의 수명에 대한 고민도 하죠. 선과 악, 판도라의 상자까지 아우르는 정말 버라이어티한 드라마가 될 거예요. 사실 대중들에게 관심을 받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드라마에서도 이와 같은 소재가 다뤄지는 건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품 말이에요.
일부러 <로맨스가 필요해>의 윤석현과 다른 이미지를 찾은 건가요?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닌 것 같아요. 그런 걸 신경 쓸 만큼 작품을 하지도 않았고, 아직 어떤 이미지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오로지 작품 하나만 보고 선택하는 편이에요.
당신이 연기하는 박선우는 어떤 인물인가요?
아픈 기억이 있지만 비뚤어지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건전하게 받아들이는 인물이에요. 연기를 할 때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어요.
앵커역을 맡았으니 뉴스를 진행하는 모습도 볼 수 있는 건가요?
물론이죠. 제 말투가 좀 건조한 편이에요. 군대 가기 전부터 군대 갔다 온지 얼마 안 되었냐는 말도 많이 들었고요. 이런 말투가 이번 배역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드라마 티저 영상을 봤어요. 조윤희 씨와의 러브 신도 기대돼요.
조윤희 씨와 함께 촬영하는 장면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사랑하는 사이인데 아직까지는 잘 못 만나고 있어요. 네팔 촬영을 함께 가서 그때 많이 친해졌어요.
여기 정읍은 어때요? 좀 적응이 되었나요?
정읍은 처음 와봤어요. 매일 촬영이 있어서 어디 다니지는 못했어요. 게다가 계속 비가 오더라고요. 그저께는 광주 시내에서 촬영이 있었고, 정읍 촬영이 끝나면 대관령으로 가요.
그렇게 역마살 있는 사람처럼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건 어때요?
다행히 그게 잘 맞아요. 해외 어디를 가든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고, 잠자리가 바뀌어도 잘 자거든요. 사실 어릴 때 배우가 되겠다고 마음먹기 전부터 영화나 책을 보면 그 주인공처럼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성향이 저를 배우로 만들었고,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것 같아요.
촬영이 끝나고 숙소에 있을 때는 어떤 시간을 보내나요?
음악을 많이 들어요. 요즘은 클래식에 심취해 있어서 드뷔시와 바흐를 많이 듣고 있어요. 새벽에 바흐의 바이올린협주곡을 듣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공상하는 걸 좋아해서 어떤 생각에 빠지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요. 때때로 반은 상상 속에서, 반은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도 해요.
지난해 행사장에서 자주 봤는데 늘 김지석 씨와 함께 있더군요.
군대 다녀와서 작품도 같이 했고, 새 작품 들어갈 때까지 생활패턴이 비슷하다 보니 마치 같은 회사 다니는 동료처럼 친해졌어요. 지석이는 <청담동 앨리스> 촬영하고, 저는 이 드라마 촬영을 시작하면서 잘 못 만났어요. 지금은 드라마 끝나고 태국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서로 멀리 떨어진 연인처럼 카톡만 주고받고 있어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익숙하지는 않죠?
예전에는 제 이야기를 하는 걸 싫어했어요. 지금도 익숙하지는 않아요. 제가 생각하는 걸 말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100퍼센트 다 표현하기가 힘들잖아요. 좀 더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어서 여러 가지 표현을 가져오다 보면 그게 또 왜곡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서른셋의 당신이 가장 고민하고 있는 건 뭔가요?
이렇게 말하면 사차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진심으로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요. 네팔에 가서도 낙후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그들을 만나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다가 그렇게 생각하는게 교만일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들은 우리와 태어난 장소가 다를 뿐이잖아요. 어떤 행동이, 생각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많이 고민하는데, 문제는 고민만 한다는 거예요. 행동으로 옮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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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조소영
- 포토그래퍼
- 안형준
- 스탭
- STYLIST/ 윤은영, 헤어 | 현정(바이라), 메이크업 | 김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