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듯 친숙한 컨트리 룩
손뜨개 니트 스웨터와 트위드 코트, 포근한 담요를 닮은 체크무늬 케이프와 풍성한 모피 액세서리 등 낡은 듯 친숙한 의상들이 안락함을 선물하는 계절이다.
겨울이면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가 생각난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LA에서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으로 살고 있는 카메론 디아즈와 영국 전원의 오두막집에서 웨딩 컬럼을 연재하는 케이트 윈슬렛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홈 익스체인지 휴가’라는 새로운 모험을 감행한다.서로 집을 바꿔 지내는 2주의 휴가 기간 동안 일어나는 러브 스토리가 주된 내용이다. 눈이 내리고, 사랑이 싹트는 뻔하디뻔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라면 이 영화를 소개하지 않았을 거다. <로맨틱 홀리데이>는 한 가지 매력을 더 가졌다. 영화의 몰입도를 높이는 여주인공의 매력적인 겨울 옷차림이 바로 그 남다름이다. 허리를 조이는 가죽 벨트와 몸매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펜슬 스커트, 그리고 업무 스트레스까지 훌훌 벗어 던진 카메론 디아즈는 포근한 니트 스웨터와 양털 트리밍 코트, 울 머플러 같은 편안한 감성의 의상에 몸을 맡긴 채 휴가를 즐긴다. 때마침 평온한 전원의 마을에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다. 관객의 마음마저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로맨틱 홀리데이>는 2006년 개봉 이후, 겨울 젯셋 룩의 좋은 본보기로 꼽히며 매해 겨울이면 주목해야 할 영화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장황하게 한 편의 영화 이야기를 늘어놓은 건, 지금부터 이야기할 트렌드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서다. 화려하지만 고된 일상을 내려놓고 시골 작은 마을로 휴가를 떠나는 카메론 디아즈의 심정과 휴가지에서 보여주는 편안하고 따뜻한 겨울 의상은 추위에 얼어붙은 마음을 위로한다 . 왜 그럴 때 있지 않나. 날카로운 실루엣의 테일러드 코트와 두 다리를 꽁꽁 싸맨 가죽 팬츠, 아찔하게 솟은 플랫폼 부츠 등 강인한 여성성으로 무장한 나를 내려놓고 싶을 때. 그럴 때 제격인 아날로그적인 감성의 컨트리 룩이 마침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
컨트리 룩은 알싸한 공기와 하얀 눈처럼 겨울이라는 드라마가 동반되면 그 매력이 더 진해진다. ‘오갱끼데스까’를 외치던 <러브 레터>의 나카야마 미호나, 눈밭을 뒹굴던 <러브 스토리>의 아름다운 커플, 크리스마스에 고백을 받던 <러브 액츄얼리>의 키이라 나이틀리도, 그 결정적인 순간에 소박하고 포근한 감성이 감도는 컨트리 룩을 입고 있었다. 그렇다고 촌스럽게 입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컨트리 룩의 향수 어린 감성을 책임지는 의상들, 예를 들면 손뜨개 니트와 보송보송한 앙고라, 도톰한 트위드, 풍성한 모피와 양털, 담요처럼 포근해 보이는 체크무늬 등의 의상을 선택하는 것이 먼저. 그 다음은 최대한 자연스러운 연출로 세련된 옷차림을 만드는 것이 컨트리 룩의 핵심이다.
컨트리 룩을 도시에서도 겨울 산장이나 스키장에서도 입고 싶게 만든 트렌드로 환골탈태시킨 대표 디자이너는 마이클 코어스다. 젯셋 룩의 대가다운 면모를 보여준 그는 드라마와 실용성을 적당히 섞은 컬렉션으로 컨트리 룩의 유행을 예고했다. 붉은 체크 담요를 두른 듯 디자인한 울 소재 코트에 짜임이 성긴 터틀넥 니트 보디슈트를 연출하거나 모피 칼라가 달린 손뜨개 니트 카디건에 슬립 원피스를 매치하는 식의 소재 조합이 무척 매력적이다. 스텔라 맥카트니가 선택한 손뜨개 니트 의상도 인상적이었는데, 니트 카디건과 니트 스커트, 니트 카디건과 니트 원피스와 같은 ‘니트 맞춤’이라는 새로운 시도가 눈길을 끈다.
니트와 트위드, 모직, 벨벳 등의 소재에 매니시한실루엣을 접목해 쿨한 컨트리 룩을 연출한 데스킨스 띠어리와 창백한 민트와 핑크 색상을 곁들여 컨트리 룩을 젊게 걸치는 비법을 경쾌하게 풀어낸 프링글 오브 스코틀랜드의 쇼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컨트리 룩의 스트리트룩적인 면모를 부각해냈다. 지암바티스타 발리 쇼에서는 보다 미니멀한 실루엣이 돋보이는 컨트리 룩을 감상할 수 있다. 안정감을 주는 글렌 체크무늬의 스리피스 슈트나 알파카와 트위드를 짠 듯한 모노톤의 코트는 세련된 오피스 룩을 연출하기에도 손색없어 보인다. 매력적인 컨트리 룩을 보여준 컬렉션들에서 눈여겨봐야 할 공통점은 거추장스러운 장식을 떼어내고, 실루엣만큼은 간결하게 유지했다는 점이다. 덕분에 엄마의 옷장에서 꺼내 입은 듯한 낡은 느낌이 사라졌다. 상·하의 색상을 통일하거나 톤온톤으로 연출해 부드러운 느낌까지 더하면 더욱 모던해 보인다.
- 에디터
- 박선영
- 포토그래퍼
- KIM WESTON ARNOLD, CHOE HYE YEONG
- 스탭
- 어시스턴트 / 정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