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VIP인 1인 미용실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손님에 미용사도 지치고, 쉴 새 없이 바뀌는 미용사의 손길에 손님도 지쳤다. 지친 이들이 찾은 곳은 의자도, 거울도, 미용사도, 손님도 모두 하나인 1인 미용실이다. 내 집 같은 편안함과 VIP 못지않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는 그곳은?

염색이 한창 인기였던 1990년대 중반, 이대 앞에는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학생들을 주 고객으로 하는 대형 미용실이 밀집해 있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이 다가오면 친구들과 용돈을 모아 미용실을 찾곤 했다. 그 당시 미용실은 하나의 큰 공장 같았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대기표에 이름을 올리고 호명이 되기를 기다리다가 옷장 열쇠를 받아 옷과 짐을 넣으면 누군가 와서 머리를 감는 곳으로 데려간다. 머리를 감고 자리에 앉으면 헤어디자이너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 어떤 스타일을 할지 물어보고, 대답하기가 무섭게 간단한 지시를 내리고 사라진다. 또다시 자리를 옮기면 견습생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 염색 약을 바른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고 헤어디자이너가 다시 등장해 색상을 확인하고 사라지면 샴푸와 드라이가 일사천리로 이뤄진다.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다니다 보면 컨베이어벨트 위에 올려진 조립품처럼 취급받는 듯하여 불쾌한 기분이 든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공장형’ 미용실과는 작별했지만 프랜차이즈 미용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상담, 시술, 샴푸, 마무리의 각 단계별로 담당이 정해져 있는 대형 미용실에서는 여러 사람의 손을 탈 수밖에 없다. 유명한 헤어디자이너를 찾아가도 정작 그들을 마주하는 순간은 짧은 시간 상담을 할때와 시술이 다 끝나고 드라이로 마무리할 때가 다인 경우가 많다 보니, 스타일에 관해 차분하게 상담을 하거나 시술 도중 마음에 들지 않아도 제대로 의사표시를 하기도 어렵다. 몇 시간 동안 여기저기 옮겨 다녀야 하는 손님도 힘들지만 하루에 여러 손님을 상대해야 하는 헤어디자이너의 고충도 만만치 않다. 명동의 대형 미용실에서 일하다 지난해 1인 미용실을 연 미누 헤어의 윤호성 원장은 “여러 손님을 상대하며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아무래도 소홀해질 수밖에 없어요. 당연히 결과도 불만족스럽고요. 지금은 손님과 충분히 대화를 나누면서 차분하게 스타일을 만들어갈 수 있어서 좋아요”라고 말한다. “대형 규모의 미용실은 매출 실적이 좋아야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불필요한 시술을 권할 때가 많았어요. 1인 미용실을 운영하면서부터는 손님 한 명 한 명이 모두 단골 고객이 되는 만큼 꼭 필요한 시술만 권해요. 오히려 손님이 해달라고 해도 모발 상태가 안 좋으니 다음에 하라거나 커트만 해도 충분하니 펌은 안 해도 된다고 말하죠.” 홍대 지역에서 8년째 1인 미용실을 운영 중인 더컷의 오상윤 원장의 말이다.

이처럼 분업화된 대형 미용실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늘면서 몇 년 전부터 원테이블 레스토랑처럼 의자 하나를 두고 한 사람의 손님만 받는 1인 미용실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카페나 작업실 같은 조용하고 아늑한 공간에서 매뉴얼대로가 아닌 주인장의 개성이 묻어나는 스타일을 해볼 수 있다는 점과 누군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오직 나만을 위해 시간과 정성을 쏟는 것은 1인 미용실이 갖는 가장 큰 매력이다. “기존에 다니던 대형 미용실은 충분한 상담을 하기보다 요즘 유행하는 틀에 박힌 스타일을 권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1인 미용실은 헤어디자이너와 1대1로 상담할 수 있어서 모발 상태나 두상, 얼굴형 등에 어울리는 현실적인 조언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아요. 4~5시간 동안 샴푸부터 마무리까지 헤어디자이너가 전담하다 보니 시술 결과에 대한 책임감도 더 큰 것 같고요. 시술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헤어디자이너가 먼저 나서서 다시 하자고 할 정도니까요.” 평소 1인 미용실을 즐겨 찾는 <얼루어> 패션 에디터 박선영의 말이다.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1인 미용실의 존재가 궁금하던 차에 취재도 하고 오랫동안 길러온 긴 머리를 자를 겸해서 헤어 스타일리스트 유다가 운영한다는 1인 미용실을 찾았다. 청담동의 주택가 사이에 자리한 그의 가게는 아담한 작업실 같은 분위기였다. “뉴욕에 있는 작은 스튜디오처럼 사람들이 편안하게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어요.” 푹신한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그런데 정작 어떤 헤어 스타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은 없었다. “저는 사람들이 원하는 스타일을 그대로 해주지 않아요. 오히려 그 반대죠. 자기가 하고 싶은 스타일과 자기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은 다르니까요. 손님들의 의견에 휘둘리다 보면 원하는 대로 할 수 없고, 결과물도 어정쩡해서 손님도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타협하고 싶지는 않아요. 물론 저도 대형 미용실에서 일할 때는 최대한 많은 손님을 받기 위해서 손님이 원하는 대로 그대로 해줬어요.” 시안 속 연예인과 똑같은 획일화된 스타일이 아니라 손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고집한다는 그의 이야기에 기대가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손길을 거쳐 긴 머리에서 쇼트 커트로 변신한 스타들의 모습이 떠올라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만 고집하는 건 아니에요. 손님들이 오면 대화를 하면서 평소 어떤 스타일의 옷을 즐겨 입는지, 직업이 뭔지 물어봐요. 그리고 다양한 헤어 스타일을 모은 책을 보여주면서 간단히 설명을 하죠. 손님들 중 상당수가 커트를 하기 위해 와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 라면 펌을 하라고 권하지 않아요. 커트만 제대로 해도 스타일이 잘 사니까요. 머릿결이나 두상, 얼굴형, 가르마 등에 따라 각자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은 분명히 있어요.” 의자에 앉자마자 곧바로 작업이 시작됐다. 날카로운 가위가 머리 사이를 지날 때마다 ‘삭삭’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어린 시절 엄마가 오빠와 나를 앉혀놓고 앞머리를 잘라줄 때 들은 바로 그 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미용실을 다니면서부터는 한동안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주변의 드라이어 소리와 음악소리, 말소리에 가위질 소리가 묻혀버렸으니까. 모든 관심과 시선이 오롯이 나에게만 쏠리고,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이따금 가위질 소리만 들리는 상황이 마치 중요한 의식을 행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상담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발이 상했으니 트리트먼트를 하라거나 펌이나 염색을 강요하는 불편한 대화도 없었다. 다행히도 쉴 새 없이 움직이던 가위가 어깨보다 살짝 밑에서 정지했다. 커트부터 샴푸, 드라이까지 걸린 시간은 20분 내외. 드라이도 머리를 말리는 정도로 간단히 끝났다. “대형 미용실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커트보다 드라이에 오히려 공을 많이 들였어요. 그렇게 해서라도 손님이 원하는 스타일에 맞추려고 노력한거죠. 요즘은 커트나 펌을 하고 나서 드라이를 거의 하지 않아요. 집에 돌아가 직접 손질을 했을 때 같은 스타일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평소와 달리 미용실에 다녀온 티가 나지 않아 조금은 허전한 마음으로 미용실을 나왔다. 그리고 다음 날 머리를 감고 드라이어로 말렸는데 신기하게도 어제 미용실을 나왔을 때의 모습과 똑같았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1인 미용실을 찾았는데 일단 첫경험은 성공적이었던 셈이다. 물론 1인 미용실이라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헤어디자이너 한 명이 전 과정을 혼자 담당하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시술을 할 때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규모가 작다 보니 값비싼 펌 기계를 여러 대 들여놓을 수 없어 선택의 폭이 줄어든다는 점도 감수해야 할 몫이다. 신속하게 나오는 보통의 커피를 마실지, 기다림을 감수하고라도 진한 드립 커피를 마실지는 결국 각자의 선택에 달린 셈이다.

여기가 1인 미용실

1인 미용실은 헤어디자이너의 개성이 가장 중요하기에 노하우부터 자신 있는 스타일, 분위기까지 프로필로 작성했다.

1. 유다 시작 2005년
스타일을 만드는 노하우 잡지와 광고 촬영, 스타들과의 활발한 작업을 통해 기본적인 테크닉과 트렌디한 감각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 고객이 원하는 것보다 고객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고집하는 편.
분위기 뉴욕의 스튜디오처럼 작고 아늑한 작업실.
가격 길이에 상관없이 커트, 염색, 펌 모두 15만원.
운영시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예약은 수시로.
위치 학동사거리 근처,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20-8 101호
전화번호 02-548-9402 트위터 @01creativebook

2. 더컷 시작 2005년
스타일을 만드는 노하우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 트렌드를 적절히 반영한다. 고객의 직업을 꼭 물어보고 신발을 눈여겨본다.
분위기 인디록, 재즈, 소울, 펑크, 일렉트로닉 등 다양한 음악과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윈도 갤러리가 있는, 편안한 작업실 같은 공간.
가격 커트 3만원, 염색 8만원부터, 펌 9만원부터, 트리트먼트 8만원부터.
운영시간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예약은 평일 낮에는 일주일 안에, 평일 저녁이나 주말은 일주일보다 더 전에.
위치 상수역 근처,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411-19 1층
전화번호 02-337-1250 웹사이트 www.thecut.co.kr

3. 스튜디오X 시작 2012년
스타일을 만드는 노하우 원하는 스타일을 그대로 해주기보다 직업이나 패션, 취향 등을 고려해 새로운 스타일을 제안한다. 가장 잘하는 건 세련된 커트와 단발 스타일.
분위기 작은 카페처럼 편안하고 아늑한 공간. 주로 트는 음악은 라운드와 일렉트로닉. 그 외에는 고객이 선곡한 음악을 튼다.
가격 커트 2만원, 염색 6만원부터, 기본펌 6만원부터, 열펌 12만원부터, 트리트먼트 8만원
운영시간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예약은 보통 일주일 전에.
위치 세종대 근처, 서울시 광진구 군자동 369-9
전화번호 070-7566-0714 블로그 blog.naver.com/katowoo

4. 장싸롱 시작 2011년
스타일을 만드는 노하우 드라이를 과하게 하지 않아도 느낌이 사는 스타일을 만든다. 자신 있는 스타일은 자연스러운 단발 펌과 중성적인 쇼트 커트.
분위기 책과 장난감이 있는 빈티지한 카페 같은 공간. 영화 OST를 주로 튼다.
가격 커트 3만원, 염색 9만원, 기본펌 10만원, 열펌 15만원, 트리트먼트 9만원
운영시간 대략 정오부터 오후 9시까지. 예약은 보통 일주일 전에.
위치 상수역 근처, 서울시 마포구 상수동 337-6
전화번호 02-6085-4264 웹사이트 www.jangsalon.com

5. 미누 헤어 시작 2011년
스타일을 만드는 노하우 장기적으로 어떤 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싶은지 대화를 충분히 나눈다. 손질하기 쉽고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추구한다.
분위기 고양이와 에스프레소가 있는 카페 같은 미용실. 조용한 팝을 주로 튼다.
가격 커트 2만5천원, 염색 8만원, 펌 8~13만원, 트리트먼트 8만원
운영시간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예약은 일주일이나 2주일 전에.
위치 이대 근처, 서울시 서대문구 대현동 37-45 3층
전화번호 02-364-0308 웹사이트 www.minouhair.com

6. 앨렌제이 시작 2012년
스타일을 만드는 노하우 가장 자신 있는 스타일은 트렌드를 반영한 커트다. 고객의 두상과 얼굴형, 성향에 맞게 최신 트렌드를 변형해 세련되게 연출한다.
분위기 모던한 카페 같은 공간. 주로 트는 음악은 클래식한 팝, 고객에 따라 바뀌는 편.
가격 커트 3만3천원, 염색 13만2천원부터, 펌 13만2천원부터, 트리트먼트 13만2천원
운영시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예약은 2~3일 전에.
위치 가로수길,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39 401호
전화번호 070-4138-6853 블로그 skeke77.blog.me

    에디터
    뷰티 에디터 / 조은선
    포토그래퍼
    이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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