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취향 2
스타일 좋은 사람들에게 평소 어떤 옷을 좋아하고 어떤 향수를 뿌리고 무슨 영화를 보며 어디를 가는지 물었다. 세월과 함께 차곡차곡 쌓인 그들의 취향은 그들의 스타일을 멋지게 만드는 원소였다.
박혜라 | ‘H.R’ 디자이너
가을에 꼭 구입할 한 가지는 루디 데이비스의 스니커즈들. 컬러 블로킹 느낌이나 스터드 장식 등 뻔하지 않은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내가 생각하는 클래식한 옷차림은 모직으로 된 스커트 슈트. 간결한 라인이어야 한다. 애용하는 보잉 선글라스 역시 클래식한 액세서리라고 생각한다. 10년 후에도 들고 싶은 가방은 내가 만든 심플한 검정 클러치백. 옆으로 넓게 디자인했는데, 스타일이나 기능 면에서 만족도가 높다. 삶에 영향을 미친 책은 <니체의 말>. 좋은 말들이 담겨 있어 틈틈이 읽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또 아침마다 받아보는 <고도원의 아침편지>. SNS를 통해 친구들이 올려주는 혜민 스님의 말을 빼놓지 않고 읽는다.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주얼리 책도 틈틈이 본다. 요즘 취미생활은 여행이다. 국내든 외국이든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을 다니고, 여행지의 재래시장에 꼭 들른다. 디자인 영감의 원천이 된다.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는 라오스의 루앙 프라방. 자연 그대로의 풍경에 젖어 있노라면 시간마저 느리게 간다. 집에 없어서는 안 될 소품은 ‘굿나잇’이라는 제목의 판화. 굉장히 미니멀해서 잡동사니가 많은 내 집을 정돈해준다. 또 그날 하고 있던 주얼리를 벗어놓는 예쁜 그릇들. 아무렇게나 놓아둬도 장식이 된다. 즐겨 뿌리는 향수는 에스티 로더의 ‘노잉(Knowing)’. 20년째 애용하고 있다. 좋아하는 꽃은 들국화. 그냥 자연스럽고 소박한 모습이 예쁘다. 나만의 아지트는 청담동의 뚜또베네. 은밀하고 아늑한 느낌이 드는 공간으로 아지트로 활용하기에 최적의 공간이다. 물론 음식도 맛있고. 완벽한 주말은 친구로 시작해 일요일 늦은 오후 가족과의 저녁식사로 마무리하는 것.
예란지 | ‘더 센토르’ 디자이너
내가 생각하는 클래식한 옷차림은 뻣뻣한 면 소재의 화이트 셔츠와 낙낙한 핏의 검정 스웨터. 여자의 가장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이끌어낸다. 10년 후에도 들고싶은 가방은 일본 오모테산도에 있는 작은 셀렉트숍에서 산 이트키(Itdki)의 백팩. 가방에 큰 욕심이 없는 편인데 이 매력적인 프린트 백팩은 오래오래 사용할 것 같다. 나만의 쇼핑 장소는 이태원 가구거리 끝에 위치한 빈티지 팩토리. 빈티지 베스파부터 부엌장까지, 시대가 명확하고 디자인이 예쁜 것들로 가득하다. 나만의 아지트는 한남동 나의 쇼룸 앞에 위치한 카페 눈(Noon). 주인언니의 맛있는 커피와 함께 수다를 떨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 깊은 커피의 맛과 애정 어린 충고는 언제나 내게 힘을 준다. 내게 영향을 준 책은 도올 김용옥의 <여자란 무엇인가>. 요즘 취미생활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망상을 붙들어 상상하는 것. 집에 없어서는 안 될 소품은 향초와 조명. 고독한 여자의 필수품이 아닐까? 좋아하는 꽃은 극락조다. 왠지 모르게 나를 닮아서.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는 언제나 발리다. 귓가에 어여쁜 꽃을 단 근육질의 택시 기사와 미묘한 컬러가 난무하는 발리는 늘 디자인 영감의 원천이 된다. 즐겨 뿌리는 향수는 히스트 오레스 드 퍼퓸(Hist Oires de Parfums)과 메종 프란시스 커크잔(Maison Francis Kurkdjian). 과하지 않고 우아해서 늘 이것들만 쓰게 된다. 내 보드판에 걸린 사진은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가 사랑하던 어떤 날의 사진. 완벽한 주말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
최서연 | 콘텐츠 플래너
가을에 꼭 구입할 한 가지는 포근한 니트 소재의 드레스. 하나만 있으면 ‘Up&Down’ 스타일이 모두 가능하다. 내가 생각하는 클래식한 아이템은 흰색 면 티셔츠다. 다른 어떤 장식적인 옷도 이 흰색 티셔츠가 주는 담백함을 따라올 수 없다. 10년 후에도 들고 싶은 가방은 아마도 천으로 만든 가방. 매일 천으로 만든 가방만 든다. 10년 후에도 그러지 않을까? 나만의 쇼핑 장소는 아름다운 가게. 발품 파는 재미가 쏠쏠하다. 손길이 타서 더 매력적인 제품을 찾아냈을 때의 희열이 좋다. 나만 알고 있다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내게는 보물 창고다. 내게 영향을 준 영화는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애니메이션 <웨이킹 라이프>. 내가 살아가는 지금이 과연 현실인지 꿈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내 기억 속 책은 수잔 손탁의 <해석에 반대한다>. 예술은 유혹이지 강간이 아니라고 한 저자의 말이 깊이 남았다. 예술은 예술 자체로 자유롭게 느껴야 한다는 그녀의 생각에 100% 동의한다. 내 보드판에는 사진가 리처드 버브리지가 찍은 배우 스티브 부세미의 포트레이트와 보는 것만으로 미소 짓게 만드는 ‘ Nice’ 라고 쓰인 엽서가 걸려 있다. 요즘 취미생활은 ‘To Do List’ 만들기. 내일 어떤 영화를 보고 모레 어떤 음식을 먹을지 매일매일이 즐거워지는 원동력이 된다. 즐겨 뿌리는 향수는 조 말론의 잉글리쉬 페어 앤 프리지아. 시원함과 달콤함이 그만이다.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는 베를린. 처음 갔는데도 왠지 모를 정겨움이 느껴졌다. 내년에 아마 또 갈 것 같다. 완벽한 주말은 숙취가 없는 것.
나효진 | ‘모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가을에 꼭 구입할 한 가지는 구조적인 느낌의 원피스. 아마도 닐 바렛에서 구입하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클래식한 옷차림은 리틀 블랙 드레스. 여자를 가장 우아하고 단아하게 한다. 가장 클래식한 주얼리를 꼽으라면 에르메스의 가죽 팔찌. 10년 후에도 들고 싶은 가방은 샤넬의 빈티지 2.55백. 때로는 검은색보다 네이비색이 더 클래식한데, 이 백이 그렇다. 오피스 룩에 매치할 때와 캐주얼 룩에 매치할 때 풍기는 매력이 다르다. 나만의 쇼핑 장소는 파리에 있는 빈티지 숍인 ‘ 바람이 머무는 곳’. 내 삶에 영향을 준 책은 미셸 루트번스타인과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아인슈타인, 마르셀 뒤샹 등 아티스트들의 생각의 발상법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스트리트 스타일을 참고할 수 있는 <더 사토리얼리스트>와 ‘Your Guide to Personal Style’ 북. 디자인에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 집에 없어서는 안 될 소품은 디퓨저. 좋은 향기는 머리를 맑게 한다. 나만의 아지트는 회사 근처의 선술집 시로(Siro). 좋아하는 꽃은 아이리스. 남들과는 다른 색감과 꽃 모양이 시크하게 느껴져서.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는 베니스. 아름다운 물의 도시 베니스에 닿는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고요한 물과 아름다운 건물이 만들어내는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완벽한 주말은 남들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는 것. 오전에는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는 지인들과의 수다와 공연 등으로 보내는 것.
송자인 | ‘제인 송’ 디자이너
가을에 꼭 구입할 한 가지는 남자의 것인지 의심 갈 정도로 각지고 딱딱한 테일러드 재킷. 혹은 진짜 남자 재킷을 사서 입을까도 생각 중이다. 내가 생각하는 클래식한 옷차림은 간결한 저지 드레스에 테일러드 재킷을 입는 것. 10년 후에도 들고 싶은 가방은 글쎄. 가방에 집착하지 않는 편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 삶에 영향을 준 책은 나와 동갑내기인 프랑스 작가 로랑스 타르디외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사랑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하게 한 책이다. 요즘 취미생활은 식물을 기르는 것. 말도 못하는 식물과 교감을 나눈다는 건 참 따뜻한 일이다. 신기하게도 사랑을 주는 것을 안다. 식물 기르는 데 점점 재미를 들이고 있다. 집에 없어서는 안 될 소품은 화분들. 다른 어떤 조형물보다 애착이 간다. 나의 아지트는 상수역의 칵테일 바 선샤인. 음악과 조명, 달콤한 술이 어우러지는 이 이국적인 공간은 나에게 완벽한 휴식처다. 좋아하는 꽃은 수국. 소박하면서도 화려하고, 호사스러우면서도 담백하다. 즐겨 뿌리는 향수는 뿌린 듯 안 뿌린 듯 시원하고 상큼한 향이 나는 프레시의 헤스페리데스.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는 지난여름 휴가지였던 투스카니 지방의 산속에 있는 호텔 빌라 피티아나(Villa Pitiana). 지상 낙원이 따로 없었다. 완벽한 주말은 정원이나 산, 바다 같은 진짜 자연 속에서 뒹굴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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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김주현
- 기타
- Photography | Lee Ju Hyuk, Courtesy of Patek Philippe, Minumsa, Silcheonsa, Josee, Jardin de Chouette, Bottega Veneta, MK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