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셰프와 시장에 갔다
피처 에디터 셋이 셰프의 뒤를 밟았다. 어스름한 새벽 공기 사이로 신선한 바다내음을 길어 올리던 노량진 수산시장을 셰프와 함께 뛰고, 이태원에서 원하는 재료를 모두 구할 수 있는 운 좋은 셰프와 어릴 적부터 고기를 사던 집에서 이제 손님을 위해 고기를 사는 셰프를 따라갔다. 셰프 미행 사건의 그 세밀한 보고서.
새벽으로 차린 식탁
눈을 비비며 간신히 노량진 수산시장의 새벽에 올라탔을 때, 이미 그곳은 대낮과도 같았다. 어스름이 남아 있는 새벽의 파리한 얼굴과 달리 수산시장의 천장에는 노랗고 둥근 빛이 이 부지런한 사람들을 가지런히 밝히고 있다“. 예전에는 경매에도 참여하곤 했어요. 물론 제가 직접 참여할 수는 없고요, 아는 경매중개인에게 미리 부탁을 하면 그분이 대신 사주는 거죠.” 김미영 셰프의 말에 가슴을 쓸어 내렸다. 경매가 시작되는 시간은 새벽 2시부터 4시 사이니까. 경매가 끝난 자리는 도매 상인이 차지한다. 하얀 스티로폼 박스를 겹겹이 쌓아놓거나, 바닥에 포대 같은 걸 깔고 얼음 한 자루를 부은 다음 수십 마리의 생선을 그냥 뒹굴게 두고 있다면 바로 그곳 이 도매의 생생한 현장이다. 우리는 지금 막 그 현장에 발을 디딘 것이다.
캘리포니아 퀴진을 선보이는 김미영 셰프는 지난 30일, 이태원으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레스토랑 ‘고사소요’의 문을 열었다. 완당 김정희의 고화<고사소요(高士逍遙)>에서 딴 이름에 ‘제철 해산물 레스토랑’이라는 부제를 단 이곳에는 육류 요리가 전혀 없다. 주인공은 해산물이므로, 김미영 셰프에게는 이곳이 자신의 냉장고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매일 새벽 장을 보며, 오늘은 어떤 생물이 좋은지 살핀다. 물기가 덜 마른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셰프가 익숙한 발걸음으로 단골집으로 향한다. 시장에 존재하는 온갖 탈것과 들것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말이다. 그 옆에서는 방금 커다란 생선 목이 달아났다. 여기서 탁! 저기서 쿵!” 얼마전 위치가 다 바뀌었거든요. 저도 한동안 되게 헷갈렸어요.” 모든 셰프에게는 단골집이 있다. “필요한 걸 이야기하면 도매에서 구해놔요. 어제 제가 전화해서 부탁해놓은 생선이 있을 거예요. 다른 것도 이야기했는데 얼마 전 태풍이 왔잖아요? 없을 때도 있어요.” 태풍이 휘젓는 사이 깊은 바닷속 생물은 모처럼 고요함을 맛봤고, 가까운 바다의 생물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또 죽음을 맞기도 했던 것이다. “예를 들자면 전복이요. 완도산 전복은 며칠 볼 수가 없었고 값도 많이 올랐어요. 지난주 저희 레스토랑 오프닝 파티에 쓴 전복은 제가 새벽같이 달려가 거의 쓸어오다시피 한 거예요.” 도매는 소매보다 싸다. 수산시장에서는 누구나 도매 물건을 살 수 있다. 그럼 도매 물건을 사려면? 아침 8시 전, 도매가 끝나기 전에 방문해서 도매 상인들이 담아놓은 대로 상자째 사면 된다. 이쑤시개로 요리조리 빼먹으면 달콤한 살이 톡 튀어나오는 백골뱅이가 가득 담긴 스티로폼 박스 한 상자의 가격이 겨우 8천원이라니. 한 상자 사서 셰프에게 삶아달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올해 유독 풍년이라는 전어는 1kg에 겨우 5천원이며, 셰프도 슬슬 맛이 들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꽃게는 산 것과 죽은 것이 제각기 시세를 형성하고 있었다.
셰프의 단골집 ‘어왕’에서 미리 예약해둔 농어를 샀다. 어머니는 도매를 하고, 아들은 소매를 하는 집이라, 만약 사정이 생겨 도매가 끝난 후에 방문하더라도 아들이 하는 소매에서 도매가로 찾아갈 수 있는 ‘스페셜 단골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생각보다 작다는 셰프의 타박과 이게 오늘 들어온 것 중 가장 크다는 주인장의 친근한 옥신각신이 이어졌다. 볼수록 참 잘생긴 생선이라고 감탄하는 동안 농어는 저울위에 잠시 놓여 몸무게를 달았다. 2.5kg. 그 자리에서 지갑을 꺼내 값을 치렀다. 아무리 셰프라도 장부나 이런 건 없다. 도매에선 오직 현금만이 있을 뿐!
“제가 단골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드릴까요?” 다음 재료를 사러 발길을 돌리면서 셰프가 웃음을 머금고 말하자 귀가 솔깃했다.“저는 절대로 물건값을 깎지 않아요. 처음부터 부르는 값을 그대로 치러요. 덤을 달라는 말도 하지 않고요. 그렇게 거래가 쌓이다 보면 사장님들이 알아서 잘해주세요. 수산시장은 특히 날씨며, 조업에 따라서 변수가 참 많거든요. 갑자기 가격이 오르기도 하고, 품귀를 빚을 때도 있어요. 그럴 때 구하기 어려운 생선을 먼저 구해주시거나 가격이 오른 생선도 원래 가격으로 팔아요.” 그 말대로였다. 돌문어를 살 땐 우수리를 떼주었고, ‘나로도’에서 전복을 살 땐 마지막 봉지를 여미면서 큰 전복 한 개를 더 넣어주었다. 더 달라는 애교도 없고, 더 줬다는 생색도 없었다. 이것이 바로 수산시장 방식의 단골 사랑이다.
재료를 모두 챙겨 이태원의 고사소요의 문을 열었을 땐 완연한 아침이었다. 저녁에 왔을 땐 저녁 풍경이 꽤 멋지다 생각했는데, 아침 풍경은 더 예뻤다. 수산시장처럼, 이곳 역시 창밖에 계절마다 그리고 시간마다 다른 영사기를 틀어놓을 것이다.셰프가 장 본 것을 꺼내서 얼음을 채우고 있는 사이 벽마다 존재하는 커다란 창에서 신선한 빛이 가득 들어오고 있었다. “홍대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긴 했지만, 원래 이태원에서 하고 싶었어요. 이 자리의 반은 구두 공장이었고, 반은 세무사 사무실이었는데요. 딱 마음에 들어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자리가 났어요. 공사하고 주방 설비하는 데 몇 달 걸렸어요.” 제철 해산물 레스토랑을 내고 싶다는 것도 셰프의 오랜 꿈이었다. “제철 해산물을 먹을 수 있는 곳은 횟집밖에 없잖아요. 횟집에서는 주로 회, 무침, 탕으로만 먹을 수 있고요. 그래서 저는 그 제철 해산물을 그때그때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을 하고 싶었어요. 조리법도 틀에 가두지 않고 그때그때 어울리게 하고요. 그래서 메뉴를 아주 적게 만들었어요. 좋은 재료가 있으면 바로 써서 붙일 수도 있겠죠.” 친구의 집에 온 듯 이곳저곳을 열어봤다. 작은 공간을 넓게 활용 할 수 있도록 셰프가 곳곳에 아이디어를 냈다. 특히 주방은 2중으로 되어 있어서 손님들의 공간 가까이에는 그릴 스테이션을 두고, 그 안쪽에는 맞은편 집의 붉은 지붕과 골목 풍경을 내려다보며 채소 등을 손질할 수 있는 스테이션이 있다. 냉장고는 조리대 아래에 서랍식으로 장착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요?”
커다란 농어가 먼저 도마 위에 놓였다. 칼과 깨끗한 마른 행주들이 준비되고, 셰프는 천천히 아가미를 젖히고 배를 가르기 시작했다. “이때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들어요. 손에 생명이 전해지니까요.” 다른 생명으로 생명을 이어가는 일의 숭고함을 셰프는 매일 손끝으로 겪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것도 허투루 버리거나 함부로 다루지 않게 된다고 셰프는 말했다. 그 손끝에서 농어가 4조각으로 나누어졌다. 이 조각은 모두 얼음을 채운 찬물에 잠시 담가서 조직을 탄력 있게 만드는 과정을 거친 후 숙성에 들어간다. “농어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생선 중 하나예요. 오늘은 카르파치오와 구이를 만들 거예요.” 다음은 문어를 손질할 차례. 동그란 문어 머리를 완전히 뒤집어서 내장을 제거하고 굵은 소금으로 박박 문지른다.“문어 구이를 만들 예정인데요, 문어는 생것을 굽는 게 아니라 먼저 삶은 후에 다시 구워서 내죠. 문어를 삶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요. 문어를 부드럽게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한데, 저는 문어를 삶을 때 무도 넣어요.”
요리는 준비하는 게 반이었다. 공들인 밑준비가 끝나자 부엌은 빨라졌다. 전복은 한바탕 불쇼를 겪은 뒤 곱게 채친 마를 깔고 누운 뒤 폰즈 젤리 소스까지 껴안았고, 농어 역시 껍질이 파삭해질 때까지 오일을 가득 두른 팬에서 튀기듯 구워졌다“. 전복과 마가 어울릴 줄 몰랐죠? 농어는 신선해서 미디엄으로 구울 겁니다.” 구운 농어 옆에는 신선한 무화과와 물냉이가 놓였다. 농어 카르파치오 한 접시가 완성되고 마리네이드한 문어를 썰기 시작하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셰프, 부엌에서는 음식을 먹는 게 아니지요?” 내 말에 숨은 허기를 정확하게 간파한 그녀가 화통하게 웃으며 내 입에 문어 한 조각을 넣어줬다. 김장하는 엄마 옆에서 한입 얻어먹는 배추 쌈처럼 정겨운 맛이다. 그렇게 가득 먹고 나자, 새벽에 일어나 쌓인 피로가 한바탕 몰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셰프의 얼굴은 오늘 아침 농어처럼 생생해 보일 뿐이었다. 그때 알았다. 셰프는 잠이 없어야 한다. 특히 제철 해산물을 요리하는 셰프가 되려면 할머니, 할아버지보다 더 새벽잠이 없어야 한다.
간판 없는 식당
장진우 식당에는 간판이 없다. 뭐 하는 집인가 싶어 안을 들여다보면 부엌 위로 가지런히 놓인 그릇과 잔, 커다란 테이블과 와인 덕분에 어렴풋이 음식을 만드는 공간임을 짐작할 수 있는 정도다. 식당의 메뉴는 매일 바뀐다. 그날그날 장진우가 먹고싶어 하는 메뉴가 ‘오늘의 메뉴’가 된다. 피시앤칩스테이크, 새우리소토, 루콜라라자냐, 연어열무샐러드, 바지락덮밥, 전어파스타, 안동찜닭덮밥, 소고기국밥, 장진우 버거까지 그 메뉴는 그의 입맛만큼이나 다양해서 좀처럼 종잡을 수 없다. 그러니 매일 장을 봐야 하고 장을 보는 장소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월요일 오후, 이태원의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 잡은 장진우 식당 앞에서 장진우를 만났다. 낮잠을 자다가 조금 늦었다는 그는 “오늘은 바질샌드위치랑 리코타크림파스타를 만들 거예요. 제가 앞장설 테니 저만 따라오세요” 라는 말을 남기고 오토바이에 올라탔지만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옆집 부동산 아주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길을 지나다 만난 철물점 아저씨에게 안부를 물어야 했기 때문이다. 골목길을 빠져나간 그는 붕붕 소리를 내며 제법 속도를 냈다. 그가 처음으로 찾은 곳은 해밀턴 호텔 맞은편에 위치한 ‘셰프 마일리 델리’였다. 오스트리아 출신 셰프 마일리가 직접 운영하는 이곳은 2층은 레스토랑이고 1층은 고기와 햄을 파는 델리이다. “여기 고기와 햄, 베이컨은 정말 끝내줘요. 셰프가 직접 만들어 파는데 요리하지 않고 그냥 집어 먹어도 맛있어요. 아, 이모님. 베이컨은 두껍게 잘라주세요. 식감이 느껴지게 더 더 두껍게 잘라주세요.” 가게 설명을 하다 말고 고개를 돌려 점원에게 까다로운 주문을 넣는다. 훈제 등심과 베이컨을 가방에 담고는 이슬람 사원 쪽에 위치한 외국인 마켓으로 향했다. 히잡을 쓴 중동의 여인이 카운터를 보고 3개 국어가 동시에 들려오는, 말 그대로의 외국인 마켓이다. “여기서는 주로 타이 요리에 넣는 향신료나 치즈를 사요. 다른 곳에는 안 파는 독특한 향신료와 치즈가 많아요.” 워낙 자주 오는 곳이다 보니 재료를 구매하는 데 있어 망설임도 없다. 필요한 것만 딱딱 골라 계산을 마친 그의 다음 코스는 ‘하이스트릿 마켓’이다. “여긴 오트밀과 올리브 오일 종류가 많아요. 파스타 면도 자주 사는데 저는 특히 시금치 면을 좋아해요. 필요한 재료를 말하면 직접 구해주기도 해서 편해요. 라벨에 흠집이 생긴 와인과 향초를 저렴하게 살 수 있어서 자주 찾는 곳이에요. 이제 마지막 코스인 ‘오 월의 종’으로 갈게요.” 요리에 쓰는 빵은 오월의 종에서만 구매하는데 자주 찾는 곳이니만큼 어디에 어떤 빵이 놓여 있는지 훤하게 알고 있다. 원하는 빵을 역시 고민 없이 집어 들었다.” 오월의 종은 이태원에서 가장 맛있는 빵집이에요. 쫄깃쫄깃하고 고소하고 달지 않아 좋아요. 아, 치아바타는 다 자르지 말고 가운데만 살짝 갈라주세요. 바게트는 그냥 가져갈게요.” 역시 가게 설명을 하다 말고 점원에게 주문을 넣기 시작한다. 어느덧 어깨 위로 둘러멘 그의 가방이 오늘의 재료들로 한껏 부풀어 올랐다. 그는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탔고 20분 뒤 우리는 다시 장진우 식당 앞에서 만났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테이블 위에 장 본 재료를 펼쳐놓았다. “이렇게 그날그날 장을 보고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아요. 일찍 문을 닫을 때도 있고 재료가 남을 때도 있지만 매일 즐겁게 요리하는 것만큼은 변함없어요. 그럼 샌드위치부터 만들어볼까요” 하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진이 아닌 동영상을 찍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손과 입을 함께 움직이는 유쾌한 요리시간이 시작되었다.
아스파라거스와 양송이, 피망, 토마토, 치아바타가 오븐 위에 올라가자 고소하고 먹음직스러운 향이 식당 안에 가득 퍼졌다. “저는 ‘끼 부리지 않는’ 요리를 만들어요. 요리를 잘해서라기보다는 건강하고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넣기 때문에 맛있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셰프 마일리에서 사온 이 훈제 등심 한번 먹어볼래요?” 하면서 크게 잘라 건네준다. 짭조름하면서도 느끼하지 않고, 육즙이 살아 있는 건강한 맛이다. “진짜 맛있죠? 그래서 조금 비싸더라도 셰프 데일리에서만 사요.” 버터를 녹여서 치아바타의 양면에 바르고 치즈와 훈제 등심, 바질, 셀러리, 당귀를 정성스럽게 쌓아 올렸다. 얼마나 집중하며 재료를 쌓아 올리는지 빵 사이로 그의 머리가 들어갈 것만 같다. 예쁜 그릇 위에 샌드위치와 발사믹 소스를 두른 토마토와 피망, 아스파라거스와 버섯이 함께 올랐다. 다시 허리를 숙여서 치즈를 갈아 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입에 침이 고여온다.
“제가 배달 음식을 잘 못 먹어요. 그래서 직접 만들어 먹기 시작했어요. 런던에 머문적이 있었는데 밤 10시만 되면 식당 문을 닫고 친구들끼리 모여서 노는 모습이 엄청 부럽더라고요. 한국에 오자마자 작은 공간을 만들었고 좋아하는 요리를 친구들에게 만들어 줬는데 가끔씩 모르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음식을 주문하더라고요. 그래서 만들어줬죠.” 개인적인 공간이 자연스럽게 식당이 되었으니 장진우 식당에 간판이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건 욕심없이 식당을 해나가겠다는 의지이기도 했다. 사실 장진우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진가다. 오늘 장진우의 얼굴이 유난히까만 건 그저께 영덕에서 온 햇살을 받아내며 촬영을 한 덕분이다. 그래서 그의 하루는, 일주일은 남들보다 조금 더 길 수밖에 없다. 식당을 마감한 후에는 리터칭 작업을 하고 식당 문을 닫는 날이면 어김없이 사진 촬영이 이어진다. 몇 달 전에는 식당과 30m 거리에 장진우 다방도 냈다. 낮에는 커피를 팔고 밤에는 술을 파는데 장진우 식당이 가득 찬 날에는 다방으로 음식을 배달하기도 한다.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작은 호텔도 짓고 있다. 물론 인테리어 디자인은 직접 한다. 그에게는 이 모든 일이 그저 즐거운 놀이일 뿐이다.
바질샌드위치를 뚝딱 만들어낸 그가 이번에는 리코타크림파스타 요리를 시작했다. 프라이팬에 크림을 두르고 오자마자 삶았던 면을 꺼내 넣었다“. 제가 꼬들꼬들한 면을 좋아해서 손님들한테도 꼬들꼬들한 면을 줘요. 어쩔 수 없습니다. 하하.” 베이컨도 큼직큼직하게 잘라 넣고 리코타 치즈도 듬뿍 넣었다. 파스타 그릇에 담은 뒤에는 후추를 갈아 넣고 바질을 손으로 툭툭 잘라 올렸다. 크게 들어간 재료도, 비법도 없는데 그 맛이 기가 막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예전에 사진만 찍을 때는 행복하지 않았어요. 23살 때 네이버와 계약하고 국내의 모든 연예인을 찍었어요. 돈을 엄청 벌었지만 스트레스도 정말 많았어요. 결과물에 대한 부담도 크고 사람들한테 상처도 많이 받았고요. 이곳에서 요리를 하면서부터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내 일과 인생을 진심으로 즐기게 되었어요.” 이 공간은 이제 장진우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그의 삶을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었다. 그는 언젠가 장진우 식당의 스태프들 모두가 작은 식당을 내고 그 식당에서 요리한 음식들을 하나씩 가져와 이곳에서 함께 저녁을 먹는 시간을 꿈꾼다. 그의 요리를 먹은 건 처음이었는데 엄마가 만들어준 것 같기도 하고 솜씨 좋은 친구가 만들어준 것 같기도 했다. 요리의 맛도 맛이지만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넣고 정성껏 만들어 먹이고는 ‘맛있다’는 한마디에 온 얼굴의 주름을 다 꺼내웃는 그의 얼굴을 볼 때 가장 그렇다고 생각했다. “손님이 아무리 많아져도 식당을 넓히지는 않을 거예요. 대기업은 큰 공간만 만들잖아요. 누군가는 작은 공간을 지켜야죠.” 오늘 밤에도 어김없이 장진우 식당의 불은 켜질 것이고 그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만들어낸 한 끼의 식사를 식탁 위로 올릴 것이다. 자신의 요리를 먹는 이들의 행복한 표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것이고 ‘맛있다’는 말 한마디에 온 얼굴의 주름을 다 꺼내 웃을 것이다. 그가 작은 공간을 고집하는 가장 큰 이유가 어쩌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기 굽는 남자
여의도 한양아파트 지하상가의 공기는 기묘했다. 여느 아파트 단지의 상가와 달리 하나의 장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40년 넘는 시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가게가 즐비한 풍경은 마치 타임슬립을 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올봄 문을 연 후 한껏 주목받았던 프렌치 비스트로 ‘태번38(Tavern38)’의 고병욱 셰프가 매일 아침 고기를 사기 위해 들르는 대림정육점도 그중 하나다. 식재료에 신경을 쓴다는 셰프들이 직거래하는 농장에서 직영으로 물건을 받거나, 직접 마장동 고기시장에서 장을 본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오래된 아파트 상가의 정육점으로 매일 출근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대체 어떤 인연이 있는 걸까?
“이모가 30년 넘게 여의도에 사셨어요. 저희 식구들이 워낙 요리를 어마어마하게 하거든요. 어머니와 친할머니는 전주 출신에, 외할머니는 홍콩에서 한식당을 하신 적도 있어서 아침에 밥상 앞에 앉으면 소고기 무국, 콩나물국 한 그릇씩. 그리고 불고기를 비롯한 여러 밑반찬과 김치찌개, 된장찌개가 기본으로 놓여 있을 정도였어요. 한마디로 엄청 먹는 집안인 거죠. 그런 가족들이 몇 십년째 고기를 사는 곳이에요.” 물론 단순한 친분 때문만은 아니다. 대림정육점은 농장의 직영 도축장에서 바로 도축한 고기를 들여놓는 곳이다. 이른 아침에는 두 동강난 소 반 마리를 등에 업고 정육점 계단을 내려가는 직원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직접 소를 기르기도 하는 송춘 실대표는 2주에 한 번 있는 쉬는 날이면 농장으로 내려간다. 오래된 사이이기 때문일까. 피가 밴 낡은 도마와 절골기가 놓인 살풍경한 배경에 투박한 대화 속에서도 알수 없는 친근감이 몽글몽글 피어난다. “원래 식당과는 거래를 안 해요. 업체납품을 하면 단골들에게 줄 좋은 부위가 남지않거든. 하지만 내가 꼬맹이일 때부터 봐왔는데 줘야지 별 수 있나. 제일 좋은 고기로 줘야지.” 고병욱 셰프도 거든다. “가족 같아요. 선지나 다른 부위도 얼마나 챙겨주신다고요.”
오늘 고병욱 셰프가 구매할 부위는 돼지갈비살과 우족, 오겹살이다. 친숙한 족발뼈 모양 그대로 동그랗게 말린 채 떨어져 나온 살덩어리가 냉엄한 도륙 과정을 증명한다. 붉은 살색을 드러낸 채 도마에 누운 두툼한 오겹살, 뼈대가 살아 있는 갈비는 위풍당당하기까지 하다. 감성적으로 예측했던 생명에 대한 처연함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고기를 고기로 취급하는 정육점의 모든 과정은 그런 감정이 비집고 틀어올 틈새도 없이 질서정연하고 말끔했다. 언젠가부터 피를 머금은 고깃덩어리를 향한 식욕이 사라져버린 나지만 이 순간만큼은 프란시스 베이컨의 말이 떠올랐다“. 정육점에 가면 고깃덩어리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정육점 바로 옆에 자리한 생선가게에서 구입한 연어까지, 양손 가득 장바구니를 든채로 고병욱 셰프가 레스토랑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점심시간까지 꽤 시간이 남았는데도 홀 매니저는 물론 세 명의 직원까지 모두 출근해 각자의 자리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다. 고기는 정육점에서 충분히 다듬어줬다고 생각했는데 장갑을 끼고 오겹살을 쓰다듬는 고병욱 셰프는 여전히 할 일이 남아 있는 눈치다. “이렇게 일일이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뼈를 찾아내야 해요. 골격이 되는 커다란 뼈말고도 무수히 많은 뼈가 있거든요. 뼈가 만져진다 싶으면 하나하나 보닝 나이프(Boning Knife)로 발라내죠.” 비슷한 과정은 연어를 다듬을 때도 반복된다. 말끔히 뼈를 바른 연어를 스테이크 한 덩이 크기로 썰어 진공 포장한다. 갓 손질한 이 도톰한 한 덩이 연어를 먹게 될 오늘의 손님은 과연 누굴까? 아무리 ‘레스토랑’이고 ‘셰프’라지만 내가 먹을 고기도 아닌 것을 이토록 정성스럽게 손질하다니! 얼굴도 본 적 없는 그 누군가가 부러워져 군침을 꼴깍 삼켰다.
손질한 오겹살은 우리식으로 말하면 육수에 가까운 브라인(Brine)에 재워 진공포장한다. 물과 소금, 꿀, 레몬과 허브로 맛을 낸 브라인이 앞으로 10시간 동안 고기의 단백질과 지방층 틈새에 샅샅이 스며들 거다. 이후 장장 12시간에 달하는 저온조리 과정을 거치고 나면 촉촉한 식감에 풍부한 향과 맛을 자랑하는 오겹살 스테이크가 완성된다. 조리시간만 20시간이 훌쩍 넘으니 오늘 우리가 맛볼 오겹살 스테이크는 하루 전에 이 모든 과정을 미리 마친 고기일 거다. 요리를 하는 동안 나는 고병욱셰프의 한결같은 고기 사랑을 들을 수 있었다. “유학 시절, 집에 오는 친구들이 깜짝놀랐어요. 고기를 돼지고기, 소고기 가리지 않고 부위별로 나눈 다음에 한 번 먹을양만 포장해 냉동실에 채워뒀거든요. 거의 업소 수준이었죠.” 유학생의 냉동실을 상상하며 웃고 있는데 그 다음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고기 자르는 법을 배우는데 교수가 등심에 붙어 있는 떡심을 가리키며 이 근육은 질겨서 발라내야 한다고 하는 거예요. 하지만 한국 고깃집에서 단골들에게 먹으라고 주는 게 떡심구이잖아요. 수업시간에 발라낸 떡심을 다 가지고 온 적도 있어요.” 역시, 어릴 때부터 고깃국과 고기반찬을 매일 먹었던 남자답다.
그리고 짜잔! 도톰한 질감과 자르르 흐르는 기름이 동파육을 떠올리게 하는 오겹살 스테이크가 등장했다. 어른 주먹 두 개만 한 크기의 돼지고기 스테이크라니! 느끼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는 고기를 썰어 입에 넣는 순간 말끔히 사라진다. 직접 졸여만들어낸 블루베리 소스의 새콤달콤한 맛이 자칫 부담스러울 수 있는 고기의 질감을 훌륭하게 잡아주기 때문이었다. 함께 곁들인 아몬드와 강낭콩을 오도독 씹고 있자니 메인인 스테이크와 디저트를 한꺼번에 먹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고기는 먹어보는 게 중요해요. 보통 고기를 고를때 ‘선도가 좋다’는 표현을 쓰잖아요. 소고기의 경우 빨갛거나 돼지고기의 경우 선분홍에 가까울 때 쓰는 말인데 그래도 육안으로 보는 건 한계가 있어요. 수입산 소고기와 달리 한우는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는데 눈으로만 봐서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 내친김에 좋은 고기를 고르는 법에 대해 조금 더 캐묻기로 했다.“냉동 닭은 구분하기 쉬워요. 한번 냉동한 닭은 뼈 속에 피가 스며들어가서 조리하면 피가 까맣게 변하거든요. 또 뭐가 있을까… 마트에서 판매하는 갈비 중에 까맣게 된 부분이 있죠? 그건 냉동이 지나치게 됐다는 뜻이에요. 전문 용어로는 프리즈 번(Freeze Burn)이라고 해요.” 입안 가득 문 스테이크를 오물거리며 설명을 듣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육식을 둘러싼 다양한 의문이 제기되는 요즘, 고기를 예찬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는 않냐고. 돌아온 대답은 솔직하고 간결했다. “식욕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고 욕망이잖아요. 적어도 이 욕망에 대해서만큼은 편하게 살고 싶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사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오래된 정육점 테이블에 놓여 있던 도마의 묵직함, 고기를 결 따라 쓰다듬으며 뼈를 하나씩 발라내던 손길, 그리고 정성스럽게 요리한 돼지고기가 선사해준 놀라운 맛이 연달아 떠올라 그의 대답에 고개를 크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얼마나 고기를 진지하게 대하는지를, 오늘 하루 종일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내일도 여의도의 오래된 정육점으로 향할 것이다. 그는 좋은 고기로 근사한 요리를 만드는, 고기 좋아하는 남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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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허윤선, 조소영, 피처 에디터 / 이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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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형준, 이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