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리얼리티야!
수천 개의 시퀸 장식으로 뒤덮인 코트나 족히 2미터는 넘을 것 같은 롱 드레스 등 과연 팔리기는 할지 의문을 만들어내는 패션쇼의 의상들. 이 옷들은 과연 매장에 그대로 걸리게 될까?
귓가를 쿵쿵 울리는 음악 소리, 화려한 조명의 런웨이, 팔등신의 모델이 캣워킹을 하는 이 패션쇼의 순간은 그야말로 ‘쇼’에 가깝다. 쇼에 미혹되어 감탄사를 연발하다가도 ‘그런데 저 옷을 어떻게 입고 다니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칠 때가 있다. 패션 에디터인 내게 친구들도 ‘저런 옷이 진짜 팔리긴 해? 실제로 입는 사람이 있어?’라고 물어오곤 한다. 자, 이 질문에 명쾌하게 해답을 내리자면 팔린다. 하지만 패션쇼에서 발표된 그대로가 아닌 경우도 있다. “디자이너들이 쇼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바로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얼마나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느냐인 거죠. 하지만 ‘쇼’를 위한 옷과 실제 고객이 입는 옷은 달라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에요. 그래서 저는 모든 아틀리에 라인을 고객의 주문을 받아 제작해요. 원하는 컬렉션 의상을 선택하면 그 고객의 취향과 체형을 고려해 맞춰주는 형식이죠.” 소울팟 스튜디오의 디자이너 김수진이 말한다.“고객이 옷을 부담스러워하길 바라는 디자이너는 없어요. 하지만 가끔은 무대 위, 혹은 조명 아래서 더 예쁘게 보이게 하려면 다루기 어려운 소재나 과장된 실루엣을 사용하게 되죠. 그래서‘커 머셜’이라 불리는 매장 판매용 의상을 준비해요. 실제 고객이 이 옷을 입었을 때 편하고 즐거워야 하니까요.” 그레이스 레이먼트의 디자이너 김소정 역시 같은 이유를 들어 커머셜 라인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한다.
부담은 덜고 가격은 가볍게
“실제 컬렉션에서는 반짝이는 작은 스팽글이 섬세한 자수로 장식됐었죠. 2012 가을/겨울 주요 테마인 갈루샤 무늬를 표현한 것인데, 아무도 제작 기간이 길고 비용 문제도 있어 판매용 의상에는 프린트로 재현했습니다. 좀 더 가볍고 입기 편하죠.” 펜디 홍보 담당자의 설명이다. 이처럼 디자이너 컬렉션의 경우 호사스러운 장식, 희귀한 소재 등을 써서 콘셉트를 표현하는데, 실제로 지나치게 고가이거나 일상에서 입기 부담스러운 경우가 있다. 그래서 판매용은 테마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조금 더 단순한 디자인으로 출시되기도 한다.
같은 듯 다른 새로운 재해석
“컬렉션의 아이디어를 다른 제품으로 재해석하기도 하죠. 하나의 모티프가 여러 가지 아이템으로 변형될 수 있으니까요. 쇼에서 선보인 원피스를 좀 더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코트로 만들면서 소매의 가죽 장식은 삭제했어요. 전체 테마가 되었던 돌 모형 장식은 탈착 가능한 브로치로 만들고요. 이렇게 하나의 아이디어가 매장에서 다양하게 변형되고 있습니다.” 이상봉 컬렉션의 디자이너 김경은은 하나의 아이디어가 커머셜 의상의 기반이 된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컬렉션 의상은 다채로운 형태로 파생되면서 고객의 다양한 입맛을 만족시키고 있다.
실용성을 높이고 체형에 맞게
“볼륨을 강조하기 위해 캐시미어와 울 혼방 소재를 썼던 이 슈트는 좀 더 가볍게 입을 수 있도록 울 100% 소재로 제작했어요. 스커트 길이는 무릎 정도로 과하지 않게 하고 재킷에는 앞지퍼를 달았어요. 판매용 제품은 컬렉션 의상 느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실용적이어야 하니까요.” 미스지 콜렉션의 홍보 담당자 신수희 과장은 판매용 의상을 만들 때 가장 고려하는 점이 고객의 편의라고 말한다. 이처럼 판매용 의상으로의 변형이 불가피한 가장 큰 이유는 실용성에 있다. 그래서 소재를 바꾸거나 모델의 신체 사이즈와 다른 보통 사람을 위해 길이나 실루엣 등을 변형해 출시하는 경우가 많다.
- 에디터
- 김주현
- 스탭
- 어시스턴트 | 노은주
- 기타
- Photography | Lee Ju Hyuk, Kim Weston Arnold, Courtesy of Seoul Fashion Week, Grace Raiment, Nohke 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