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만

모두가‘ Yes’ 할 때‘ No’를 외치라는 건 아니다. 무조건 열광하기에 앞서 한번쯤 짚어봐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거다. 지금 우리가 열광하는 이슈에 대한 조금은 다른 시선들.

의 배반

분명 ‘아침’ 7시 10분이라고 했다. 그녀는 그 이른 시간에 아이맥스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호쾌하게 예약했다. 평소의 그녀는 설령 아침 7시에 잠들지언정 그 시간에 일어나는 건 꿈도 못 꿀 생활 패턴의 소유자다. 이 ‘마의 조조’는 그녀의 두 번째 관람이었고, 그녀는 이토록 훌륭한 영화의 재관람은 당연하다고 여겼다. 이 위대한 영화에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내는 나를 내심 질타하는 눈치였다. 아마 내 주변에 그 성스런 예매행렬에 동참하지 않은 건 나뿐이었을 거다.

솔직히 도입부의 항공 액션 신은 멋졌다. 고담시티를 아이맥스로 관조하는 장면은 더더욱 그랬다. 2시간 45분이나 되는 러닝타임에 아이맥스 촬영을 1/3이나 한 건 정말이지 크리스토퍼 놀란이니까 가능했던 일이다. 아이맥스의 압도적 스케일에 대해서는 나도 이견이 없다. 시리즈의 완결판으로서 모두가 지지하는 부분, 그러니까 ‘손색없는’ 결론이란 부분도 수긍이 간다. <배트맨 비긴즈>부터 <다크 나이트>로 이어지는 스토리라인과 캐릭터들을 소외시키지 않고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분명 유종의 미를 거두었으니 말이다.

내가 묻고 싶은 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다크 나이트 라이즈>만을 위해서 온전히 해준 게 무엇이었냐는 말이다. 귀엽고 섹시하고 코믹하기까지한 일당백의 캣우먼이 있지 않냐고? 물론 캣우먼은 명불허전 캐릭터다. 영화를 본 후, 배트카에 몸을 밀착하던 앤 해서웨이의 몸이 지금도 순간순간 떠올라, 식욕이 떨어지는 긴장효과도 톡톡히 봤다. 게다가 캣우먼 스핀 오프 제작설도 있으니 말 다했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소탐대실’에 불과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걸 잃었다. 조커에 필적할 악당의 출현이라고 그토록 큰 기대감을 안겨주고선, 캣우먼을 돌보는 동안 악당 베인은 어떻게 그토록 비참하게 내동댕이쳤냐는 말이다.

고담시티의 본령은 추악한 악의 세계와 그 악을 정화하는 배트맨의 노력으로 집결된다. 전작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의 악행은 그 자체로 기능할 뿐 아니라, 배트맨을 돋보이게 하는 상승작용까지 해내며 극의 긴장을 선사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정화해야 할 대상인 악은 결과적으로 너무 미미했다. 베인과 미란다 테이트의 관계에 감정적 파장을 강하게 연결하든가, 것도 안 됐다면 미란다 테이트를 좀 더 캐릭터화해야 했다. 정말이지 배트걸에 필적할 의상이라도 내려줬어야 했다. 미란다 테이트가 작전을 수행할 때 굽 낮은 신발과 보온에 충실한 옷을 입는 순간, 게임은 끝났다고 본다.

어쨌건 베인의 베일이 벗겨지길 2시간 45분 동안 긴장하며 기다린 결과물치곤 지금의 결론은 너무 초라하다. 하수인에 불과한 악인에게서 절대악을 기대하라는 건 무리다. 배트맨과의 대결구도는 시시하게 무너졌고 결과적으로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시리즈 총정리로서 미덕은 건졌으나, <다크 나이트 라이즈> 한 편으로서의 독립된 완성도는 놓쳐버렸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게 따져 묻고 싶다. 베인을 그저 맥거핀으로 사용할 거였으면서, 그에게 표정조차 가늠되지 않는 커다란 마스크를 쓰고 열연하는 고통을 내렸어야 했냐고. 감독님, 이 정도면 애니메이션 목소리 연기라고요! –이화정(<씨네 21> 기자)

동시 상영관 같은 음악 페스티벌들

미안하지만 올여름 당신이 다녀왔던 음악 페스티벌들은 정확히 말하자면 음악 페스티벌이라고 할 수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자. 당신이 기억하는 훌륭한 순간이 그 뮤지션들의 공연이었는지 아니면 그 음악 페스티벌의 풍경이었는지 말이다. 대다수가 뮤지션의 공연만 기억할 것이다. 잘나가는 해외 뮤지션들의 공연을 봤으면 충분하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음악 페스티벌의 전부는 아니다.

음악 페스티벌이라 함은 최근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보다 수백 배 재미있어야 한다. 음악 페스티벌은 ‘음악’ 페스티벌이 아닌 음악 ‘페스티벌’이다. 뮤지션 라인업이란 어쩌면 수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시발점이자 원동력일 뿐이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에게 음악을 시작으로 다양한 설치미술, 퍼포먼스, 서커스, 환경캠페인들을 선보이며 일반 콘서트장에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새로운 사회가 탄생되고 그 안에서 그들만의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정상적인 음악 페스티벌의 풍경이다. 가까운 일본 후지록페스티벌의 경우, 공식 무대 위 공연을 보지 않고 사흘 동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놀아도 다 못 놀 정도로 거대한 미로 같다. 무대와 무대 사이를 오가는 길가마다 차력사, 마술사들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쇼를 벌이고, 수많은 수작업 공예가가 직접 만든 액세서리, 악기를 판매하고 깜짝 미니 공연들 이 열린다. 먹거리 역시 축제다. 월드레스토랑이라고 불리는 대형 푸드코트에서는 태평양 어느 섬나라의 음식부터 브라질, 멕시코, 심지어 한국의 빈대떡까지 등장하는 지구촌 먹자 파티가 열린다.

반면 한국에서는 한 해 동안 수십 개의 음악 페스티벌이 열리지만 약속한 듯 하나같이 똑같은 풍경들뿐이다. 흰색 사각형 천막이 나열된 협찬사 홍보 부스와 며칠 출장 나온 프랜차이즈 음식들, 몇 개의 맥주 판매 부스와 넘쳐나는 쓰레기가 전부다. 한국의 음악 페스티벌은 아직 티켓 한 장으로 여러 영화를 볼 수 있는 심야 동시 상영관 정도의 수준이다. 음악 페스티벌이란 문화를 만든다는 사명감보다는 거액을 투자해서 해외 뮤지션 몇 팀을 불러 릴레이 공연을 시키고 남는 수익을 챙겨가는 단순한 사업처럼 느껴진다. 국내에서 음악 ‘페스티벌’의 모습을 보여주는 페스티벌로는 유명 뮤지션 하나 없고 포스터도 투박해 보이는 ‘쌈지 사운드페스티벌’을 꼽을 수 있다. 숨은 고수 발굴과 인디 뮤지션들 공연 중 심수봉, 빅뱅 등 종잡을 수 없는 스페셜 게스트가 출연할 뿐 아니라 감자소쿠리 머리에 이고 빨리 달리기, 젓가락으로 콩 골라내기 등 10년이 넘도록 매년 독특한 기획을 선보이고 있는 이 페스티벌은 뮤지션 라인업에 대한 기대보다는 왠지 가보면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믿음직스러운 설렘을 준다. 건강한 음악 페스티벌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김홍기(칼럼니스트)

에게 기적은 찾아올 것인가?

잠시 <슈퍼스타 K 3>로 돌아가보자. 3 시즌의 첫 회는 씨름선수이면서도 가수 못지 않은 가창력을 지닌 김도현이 출현했고 마지막에는 소녀 손예림이 등장해 심사위원을 울게 만들었다. 허각과 비교된 신지수, 촌스러운 패션으로 감각적인 음악을 들려준 투개월, 동방신기의 노래를 작곡한 크리스가 연이어 나왔다. 화제성과 실력을 고루 갖춘 출연자들 탓에 버스커 버스커는 생방송 결선에 오르지도 못할 뻔했다. 그런데 <슈퍼스타 K4>는? 강용석 전 국회의원은 심사 결과가 나오는 데 2주, 아이돌 가수였던 죠앤은 3주였다. 화제성 있는 출연자가 그만큼 적다는 의미다.

10대 소년 유승우, 학벌에 재력까지 갖춘 ‘엄친아’ 로이킴 등 실력파로 분류될 만한 출연자들은 대부분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거나, 여군 강수연처럼 발라드를 부른다. 시즌 3와 시즌 4 사이에는 K BS <톱밴드>와 SBS <일요일이 좋다-K팝스타>가 있었다. 실력파 밴드들은 <톱밴드>로 갔고, 어리고, 예쁘고, 춤 잘 추는 10대들은 S M, YG, JYP가 캐스팅을 약속하는 로 간다. <슈퍼스타 K 4>의 참가자는 전보다 더욱 늘어났지만, 프로그램을 화려하게 꾸밀 ‘주연급’은 다른 프로그램과 나눠야 할 처지다. 시즌 3보다 시즌 4가 다소 느슨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착각은 아닐 것이다. 매주 다른 외모와 음악과 개인사를 들고 나온 시즌 2와 3의 출연자들과 달리, <슈퍼스타 K 4>는 비슷한 음악을 하는 출연자들이 전 시즌에서 비슷하게 보여준 캐릭터와 개인사를 가졌다. 물론 아직 큰 흠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의 90년대는 어떤 90년대인가?

수년 전 유희열과 윤상이 재조명될 때부터 직감하고 있었다. 작년 아이유 2집에 윤상, 이적, 김광진, 정석원 등이 참여한 것이나 UV의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오마주에서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거기에 쐐기를 박은 건 영화 <건축학개론>과 드라마 <신사의 품격>이었다. 나와 같은 ‘90년대의 아이들’이 드디어 늙은 것이다! 그런데 <응답하라 1997>은 다르다. 일단 장동건이나 엄태웅이 아니라 은지원이 나오는 것부터(훨씬 젊은 이미지니까) 아이돌 팬덤과 같은 ‘다른’ 경험이 등장한다. 혹자는 <응답하라 1997>이 <건축학개론>과 <신사의 품격>을 잇는 ‘90년대 세대의 감수성’을 드러낸 작품이라고 평하기도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건축학 개론>과 <신사의 품격>은 자매품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응답하라 1997>은 전혀 다른 세대의 이야기다. 이 생각의 근거는 1990년대를 보는 관점에 있다. 90년대는 70~80년대와 달리 한 세대의 구분을 ‘통기타 세대’니 ‘386 세대’로 구분하기 어렵다. 이때의 대중문화는 유사 이래 가장 빠른 변화를 겪었고 그걸 경험한 세대가 보다 미묘하게 구분되기 때문이다. 해외여행 자율화조치(1989), 방송법 개정(1990), 일본문화 개방(1991) 등으로 이어진 정책변화는 이후 SBS와 Mnet의 개국, <드래곤 볼> 같은 일본만화의 성공으로 이어지며 ‘90년대적 감수성’의 등장을 가능케 했다. 또한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의 듀스, 클론, 룰라, 디제이 디오씨, 김동률과 유희열, 윤상 등은 H.O.T와 젝스키스, 핑클과 S.E.S와 확연히 구분되는 소비자/팬덤을 구축하며 음악분야에서 ‘아이돌(산업)과 그 외’라고 할 만한 분기점을 만들었다.

영화잡지 <키노>와 <씨네21>을 비롯해 코아아트홀, 동숭아트센터 같은 예술영화 전용관들은 쿠엔틴 타란티노와 주성치를 소개하거나 재발견하는 통로가 되었다. 홍대 앞 인디신이 탄생하고 분화한 것도 90년대 중반 이후였다. 중요한 건 이런 문화적 경험이 매우 빠르게, 동시에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90년대를 경험한 세대는 각각 다른 취향을 향유하며 동세대라고 하기엔 다소 애매한 공동체적 경험을 나누게 되었다.

<건축학개론>과 <신사의 품격>, <응답하라 1997>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연령 차이는 많지 않지만 각각의 작품이 소환하는 경험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어쩌면 이런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한국의 교과과정이 3년 주기로 나뉘어있고, 90년대의 몇 년 사이에 대중문화 산업에 큰 변화의 폭이 발생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여기서 1991년에 서태지와 아이들을 경험한 고등학생과 1997년에 H.O.T를 경험한 고등학생의 경험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응답하라 1997>이 90년대를 불러온다고 했을 때 우리는 역으로 반문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그 90년대는 정확히 어떤 90년대인가?’라고. –차우진(칼럼니스트)

    에디터
    조소영
    기타
    Illustration | Kim Eun H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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