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우, 빛나는 나날
한차례의 성장통을 뚫고 나온 이장우는 확실히 더 단단해져 있었다. 시종일관 특유의 낙천적인 얼굴을 보이다가도 배우의 역할과 자세를 이야기할 때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간절하고 강렬하며 담대한 그의 눈빛에서 배우 이장우가 앞으로 만들어낼 경이로운 시간을 확신했다.
<아이두 아이두>가 끝났어요. 첫 번째 주연작품인 만큼 처음의 기대도, 끝나고 난 뒤의 아쉬움도 예전 같지는 않았겠죠?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드라마에 기대를 정말 많이 했어요. 김선아라는 여배우의 상대역이고, 좋은 대본이 있고 훌륭한 스태프가 모였으니 당연히 인기도 많고 시청률도 잘 나올 거라 생각했죠. 그래서 4회쯤에 확 무너졌던 시간이 있었어요. 바로 마음을 다잡긴 했지만요.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하고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그 시간을 어떻게 이겨냈나요?
선아 누나가 큰 힘이 되어줬어요. 누나와 함께한 남자 배우들이 다 잘됐잖아요. 상대 배우가 잘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람이에요. 그 정도의 위치에 있으면 욕심이 생기기 마련인데 누나는 그런 게 없어요. 자신보다 작품이 먼저고, 함께하는 스태프가 먼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죠. 항상 저를 배려해주고 이끌어줬어요.
결과적으로는 한 단계 성장한 당신이 느껴지네요.
시야가 더 넓어진 것 같아요. 평생 연기를 할 거고, 앞으로 정말 많은 작품을 하게 될 거고, 그중 한 작품일 뿐인데 처음에는 조급했어요. 과한 욕심을 부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본이 많이 들어오고 있겠네요. 딱 지금 나이에 욕심나는 역할이 있다면요?
<시크릿 가든>의 현빈 선배처럼 멋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역할이 배우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서요. 찌질한 역할을 많이 했더니, 저도 왠지 그렇게 변해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인디밴드나 아이돌 가수를 연기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를 꽤 오랫동안 하고 있어요. 배우로서 분명 염려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요?
걱정을 안 한다면 거짓말이겠죠. 드라마를 보는 분들이 감정이입이 어려울 수도 있고 <우결>의 저와 혼동할 수도 있고 그 때문에 배역을 놓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어떤 도움을 말하는 건가요?
먼저 대중에게 저의 이름을 알려준 프로그램이에요. 이장우라는 배우가 있다는 걸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죠. 또 자연스럽게 카메라 앞에서 노는 법을 배웠어요. 촬영때마다 약 20대의 카메라가 저희를 따라다녀요. 그 앞에서 밥도 먹고 요리도 하고 심지어 키스도 하는 거잖아요. 덕분에 카메라와 많이 친해졌고 드라마와는 또 다른 예능의 맛을 알았어요.
<우결>을 찍다 보면 연애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끼지 않나요? 일종의 대리 만족을 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아니요. 오히려 더 하고 싶어져요. 물론 가상이지만 연애가 아닌 결혼을 한 것 같아요. 1년 넘게 하다 보니 서로 짜증을 내기도 하고, 진짜로 싸우기도 해요. 서로 챙겨주기를 바라고 권태기도 경험했고요. 그래서 더 늦기 전에 풋풋한 연애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결혼도 하고 싶어졌어요. 촬영 끝나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 들어갔을 때 혼자라는 느낌이 싫더라고요.
결혼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우결>이 꽤 도움이 될 것 같네요.
한번 해봤으니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하. 저랑 잘 맞는 여자를 만나고 싶어요. 어디 얽매이지 않고 훌쩍 떠나는 거 좋아하고, 맛있는 거 먹는걸 좋아하는 그런 여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싶어요.
<뮤직뱅크>에서는 생방송으로 MC도 맡고 있어요. 배우로서 또 다른 도전이었겠죠?
<뮤직뱅크>가 드라마를 촬영할 때의 제 활력소였어요. 그곳에 가면 열정적인 어린 가수들을 만나게 되죠. 무대 위에서 죽을 힘을 다해서 노래하고 춤추는 걸 보면 저도 덩달아 힘을 얻게 되요. 지치고 힘들 때 그들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할까,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게 되요.
경험을 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죠. 요즘 관심있게 보는 프로그램이 있다면요?
<정글의 법칙>에 꼭 한번 나가보고 싶어요. 살면서 언제 그런 오지에 가서 그렇게 고생을 해보겠어요. TV 프로그램에서 보내주고 평생 소장할 수 있도록 영상으로 남겨주니 얼마나 좋아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캠핑 마니아답네요. 요즘에도 자주 다니나요?
드라마 끝나고 벌써 몇 번 다녀왔어요. 용인에 있는 캠핑장에 아예 월세를 내고 텐트를 쳐놨어요.
캠핑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인가요?
산에서 자는 게 좋아서 캠핑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건강한 기운이 느껴져요. 뭔가 정화되는 느낌도 들고요. 산속에 들어가면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아침 일찍 일어나게 되는 게 참 신기해요. 캠핑가서 경치 보면서 한량처럼 가만히,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아요.
캠핑을 가면 각자의 역할이라는 게 있잖아요. 당신이 담당하고 있는건 뭔가요?
제가 고기를 기막히게 잘 구워요. 캠핑 가서 먹으면 어떤 고기든 다 맛있지만 제가 구우면 고기 맛이 어마어마해지죠. 숯도 굉장히 중요해요. 모든 종류의 숯을 다 써봤는데 참숯이 최고예요. 참숯에다 고기를 구워주면 다들 그 고기맛을 못 잊어요.
캠핑도 종류가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어떤 방식을 즐기나요?
스무 살부터 시작했는데 계속 바뀌고 있어요. 처음에는 오토캠핑으로 시작해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고, 그 다음엔 오지캠핑이라고 해서 차가 못 올라가는 힘든 곳으로만 다녔어요. 캠핑장이 아닌 산속 깊은 곳에 가서 텐트를 치는 거죠. 처음에는 스릴도 있고 재미있었는데 좀 무섭더라고요. 곰이나 뱀이 나오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좀 더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캠핑 야영장으로 바꿨어요.
캠핑을 떠나지 않을 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집에 혼자 있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술 마시러 나가죠.
술을 좋아해요?
너무 좋아해서 탈이에요. 술 자리나 술 취하는 걸 좋아하기보다 술의 맛을 좋아하는 정도니까요. 어떤 날은 막걸리가 너무 맛있고, 어떤 날은 소주가 맛있고 어떤 날은 사케가 맛있어요.
진정한 애주가네요. 당신의 낙천적인 성격은 연기에 도움이 되겠죠?
낙천적인 건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해요. 낙천적인 게 좋긴 한데 ‘내일 해도 돼, 괜찮아’ 하면서 넘겨버리니까 그것 때문에 문제가 생겨요. 배우란 때론 완벽주의자가 되어야 하는데 한 번도 완벽주의자가 되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배우가 자신의 길이라는 걸 확신하나요?
제가 원래 욕심이 없어요. 공부를 못하는 것도 창피해하지 않고 “그래 너 잘하는구나. 네가 해라” 이런 성격인데 연기는 좀 달랐어요. 중학교 때 연기를 하기 위해 무대에 올라갔다가 울어버렸어요. 40명이 저를 보고 있는 게 너무 무섭더라고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울면서 뛰쳐나왔고 그런 저의 행동에 충격을 받았어요. 자존심도 상하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처음으로 어떤 일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재미있지만 알면 알수록 어렵고, 못하면 부끄러운 유일한 게 바로 연기예요.
제대로 해보고 싶은 연기를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어요?
영화를 세 편씩 빌려서 봤어요. 배우가 대사를 할 때 어떤 표정과 제스처를 만드는지 그런 생각들만 하고 살았어요. 친구들 상대로 거짓말도 하고 연기도 하고 배우들을 따라 하기도 하고요. 특히 최민식 선배님을 많이 흉내 냈는데 대사로도 모자라서 <올드보이>의 호일 파마까지 따라 했어요. 비디오 가게 아저씨가 “너 이제 볼 거 없어”라고 얘기할 정도로 많이 봤죠.
롤 모델로 생각하는 배우가 있나요?
정우성 선배님을 정말 좋아해요. 볼 때마다 자극을 받아요. <비트>를 지금까지 천 번 정도 본 거 같아요. 엑스트라 대사까지 다 외울 정도예요. 그때 그분 나이가 24살이었는데 그 나이에 어떻게 저런 느낌이 날 수 있을까, 하면서 볼 때마다 놀라워하죠.
실제로 만나면 꼭 이야기하세요. 정말 반가워할 것 같은데요?
본 적 있는데 너무 떨려서 그냥 먼발치에서 바라보고는 도망갔어요.
요즘 어떤 고민을 하고 있어요?
드라마 끝난 지 2주 정도 됐는데 딱 3일 쉬니까 일하고 싶어졌어요. 빨리 다음 작품을 만나고 싶어요. 요즘 <아이두 아이두> 재방송을 보고 있는데 열심히 살았던 순간들을 보니까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더라고요. 다른 드라마를 봐도 현장의 모습이 그려지니까 빨리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져요. 물론 빨리 복귀하는 것보다 좋은 작품과 좋은 배역을 만나는게 더 중요하겠죠. 그래서 더 신중하게다음 작품을 보고 있어요.
인터뷰가 끝났고 마침 해도 지고 있으니 한잔하러 가셔야죠. 오늘은 뭐가 맛있을 것 같아요?
비잔 클리어라고 아세요? 일본 소주인데 그걸 토닉워터에 타 마시고 싶어요. 정말 맛있어요. 꼭 드셔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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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조소영
- 포토그래퍼
- KIM SANG GON
- 스탭
- 스타일리스트 | 안하영, 헤어 | 임원묵(헤어보떼101), 메이크업 | 문윤경(헤어보떼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