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간의 에코
먹을 것을 고를 때와는 달리 옷이나 화장품을 구입할 때는 친환경이냐 아니냐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던 피처 에디터가 일주일 동안 친환경 옷을 입고 화장품을 발랐다. 일주일 후, ‘환경운동가’가 되리라 선언하는 드라마틱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긍정적인 변화’는 분명히 있었다.
월요일
친환경 제품에 대한 관심과 의식과는 별개로 패션 제품에 있어서는 본의 아니게 ‘야박’했음을 고백한다. 옷장에 비슷한 색깔, 비슷한 디자인의 옷만 쌓여 있을 만큼 취향이 확고한 데다, 내게 옷이란 하루의 컨디션을 좌우할 만큼 신성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이라 친환경 제품과 동거해야 하는 첫날이 다가왔을 때 패션 제품 때문에 걱정이 앞섰다. 첫날은 이새의 원피스를 입고 버니블루의 드라이빙 슈즈를 신었다. 들판에서 자라는 쐐기풀에서 섬유를 얻고 천연염료로 색을 낸 이새의 원피스는 색감이 자연스럽고 입었을 때 살에 닿는 감촉이 부드러웠지만 이번 체험이 아니었다면 절대 입지 않았을 옷이다. 허리선이 잘록한 데다 길이가 무릎아래로 내려와 짧은 다리가 더 짧아 보일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 원피스를 재킷으로 활용하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셔츠와 청바지 위에 걸치니 봄가을에 입기 좋은 분위기 있는 재킷이 되었다. 단추를 풀어 넉넉하게 입으니 잘록한 허리선이 오히려 더 괜찮아 보였다. 이새의 스카프를 두르고 기능성 종이 원단 ‘타이벡(Tyvek)’으로 만든 신발을 신었다. 고밀도 폴리에틸렌 섬유라 불리는 타이벡은 인체에 무해하고 재활용이 가능한 대표적인 친환경 소재다. ‘그래도 종이인데 오래 신으면 찢어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건 기우였다. 재활용이 가능한 친환경 소재 타이벡은 습기만 통과시키고 물을 통과시키지 않기 때문에 비 오는 날에도 걱정 없이 신을 수 있다. 드라이빙 슈즈인 만큼 착용감이 좋아 집에 와 신발을 벗었을 때의 피로가 확실히 덜했다. 밤에는 프리메라의 연꽃 씨앗, 아마 씨앗으로 만든 유기농 트리트먼트로 건조한 피부를 달랬다. 침대에 누워 ‘비 온 후의 자연’이라는 이름이 붙은 떼르독 카필라의 향을 맡으니 깊이 잠들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생겼다. 유기농 국제인증기관인 에코서트(Ecocert)의 인증을 받아 더 믿음이 가는 브랜드. 덕분에 작은 방이 건강한 풀 냄새로 가득 채워졌다.
화요일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 것으로 기분 전환을 하는 편이라 파마와 염색의 횟수가 잦다. 때문에 모발 제품을 특히 신경써서 고르는 편이고 지난해부터 뷰티 에디터의 추천으로 아베다의 샴푸와 컨디셔너를 쓰고 있다. 친환경 브랜드이니 천연 성분을 사용한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유기농 알로에, 옥수수와 구아 콩을 혼합한 성분을 함유했고 용기 역시 80%이상 재활용 원료로 만들어졌다는 건 새롭게 알게 된 정보다. 색이 오래가고 빨리 건조되어서 애용하는 네일 브랜드 반디 역시 포름알데히드, 톨루엔과 같은 유해 성분을 전혀 넣지 않은 친환경 제품이다. 용기와 산뜻한 향, 그 이름까지 누가 봐도 친환경 제품이라 예상할 수 있는 이니스프리의 에코레시피 역시 인공향과 인공색소, 파라벤을 사용하지 않았다. 스킨을 솜에 묻혀 닦아내니 세안 후에 남은 잔여물이 깨끗하게 닦이는 느낌이다. 레몬향이 나는 립밤을 바른 뒤 오르그닷의 가방을 메고 빅토리아의 운동화를 신었다. 둘 다 평소에 메고, 신고 다니고 싶을 정도로 맘에 드는 디자인이라 일부러 미팅이 많은 날 착용했다. 이 가벼운 가방이 페트병 2개로 만들어졌다는 것도, 페트병으로 만든 저금통을 케이스로 활용했다는 것도 놀라웠다. 심지어 양면이라 의상의 컬러에 맞춰 다른 느낌으로 활용할 수 있다. 천연 캔버스와 고무, 오가닉 염색제로 만든 빅토리아의 운동화는 빈티지풍의 워싱도 맘에 들었지만 운동화 안쪽에서 향기가 난다는 사실에 귀가 솔깃해졌다.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테스트를 하기 위해서 양말을 신지 않고 반나절을 보냈다. 쌀쌀한 날씨 때문에 땀이 덜 나기도 했겠지만 신발을 벗고 냄새를 맡아보니 ‘발냄새’는 거의 나지 않았다. 한 여름,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식당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고마운 신발을 드디어 찾아낸 것이다.
수요일
‘리블랭크’는 버려지는 폐자원을 재활용해 다이어리도 만들고 명함지갑도 만들고 옷과 가방도 만든다. 친환경 의식이 없는 이들도 그저 디자인이 예뻐서 구매할 만큼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소문난 브랜드다. 리블랭크의 이 커다란 가방은 2009년 서울디자인 올림픽 옥외 광고로 사용된 광고물로 만들었기 때문에 똑같은 제품이 단 하나도 없으며 고유 번호가 부착되어 있다. 화학약품이 아닌 식물성 오일을 사용한 가죽으로 만든 다이어리와 명함 지갑은 손톱이나 자극에 꽤 민감한 편인데 오히려 그러한 자연스러운 흔적 때문에 더 멋스럽게 느껴진다. 커다란 가방에 다이어리와 명함지갑을 넣고 빛으로 충전되는 배터리를 사용하는 에코 드라이브 시계를 차고 나섰다. 이렇게 친환경 제품을 몸에 두르고 커피숍에 들러서 일회용 잔을 들고 나오기가 머쓱해져서 테이크아웃을 하지 않고 커피숍에 앉아 머그잔에 담긴 커피를 마셨다. 리리코스의 앰플은 피부에 두드려 바를 때 흡수되는 느낌이 좋았고 로션과 세럼을 바를 때 화장품이 밀리는 현상도 눈에 띄게 줄었다. 더바디샵의 스무딩 데이 크림과 나이트 크림은 특유의 향 때문에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인공향을 넣지 않아서’ 그러한 향이 난다는 거였다. 이제껏 건강한 냄새를 분간해낼 수 없을 만큼 인공향에 길들여져 있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오가닉 바바수(Babassu) 오일을 함유하고 있어 칙칙한 피부 톤과 거친 피부결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연이은 촬영으로 턱까지 내려온 다크 서클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발랐다.
목요일
오늘 들고 나갈 가방은 필리핀의 여성조합이 버려진 주스팩을 재활용하여 100% 수작업으로 만든 주스백이다. 필리핀 여성조합은 주스백 수거 팀, 소독 및 클리닝 팀, 커팅 및 재봉 팀, 디자인 및 위빙 팀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500명이 넘는 필리핀 여성이 일자리를 얻었다고 한다. 단지 친환경의 개념을 넘어 생면부지의 아주 멀리 살고 있는 여성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이 가방을 구입해야 할 이유는 설득력이 있다. 보테가 베네타 부럽지 않은 ‘위빙’을 자랑하는 주스백은 화사한 색상 때문에 여름에 더 자주 들게 될 것 같다. 프랑스의 유기농 화장품 멜비타의 제품 역시 에코서트의 인증을 받았다. 시어버터와 장미수, 로열젤리가 함유된 클렌징 크림으로 얼굴을 부드럽게 마사지한 후에 화장솜으로 닦아 냈다. 친환경 뷰티 제품을 사용한지 4일째. 피부가 예민한 편이라 화장품을 바꾸면 피부 트러블이 생길 때가 많은데 목요일까지 매일 새로운 제품을 썼는데도 단 한 번의 트러블도 없었다. 사실 친환경 뷰티 제품을 사용하기 전에 식물성 원료가 내 피부를 하루 종일 촉촉하게 유지시켜줄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가졌었다. 순한 성분은 아무래도 기능성이 떨어질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시로 미스트를 뿌리지 않으면 ‘갈라지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는 건조한 피부라 더 신경이 쓰였다. 그러나 어제 사용한 나이트 크림은 물론이고 비타민 E와 오메가6가 풍부한 아르간 오일 역시 그러한 걱정을 덜어주었다. 저녁에 듬뿍 바르고 자면 아침 까지 촉촉한 느낌이 그대로 유지되었고 아침에 메이크업을 하기 전에 바르면 은근한 물광 효과까지 있어 만족스러웠다. 또 하나 놀라운건 친환경 화장품을 사용하면서 기초 화장을 하는 시간이 두배로 늘었다는 거다. 어떤 성분으로 만들어진 화장품인지를 공부하다 보니 화장품 역시 정성을 들여서 꼼꼼하게 바르게 된 것이다. 덕분에 체험이 끝난 후 구매하고 싶은 화장품 목록이 자꾸 늘어가고 있다.
금요일
‘이게 얼마 만의 백팩이란 말인가?’ 터치포굿의 백팩을 메면서 마지막으로 백팩을 멨을 때를 아무리 떠올려봐도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지하철의 광고판을 재활용해 만든 이 가방은 등을 다 덮을 만큼 큰 사이즈와 광택이 도는 커버가 특징이다. 백팩과 어울릴 만한 옷을 찾다 보니 리바이스의 청바지가 눈에 들어왔다. 리바이스 역시 대학생 시절 ‘잇 아이템’이었던 엔지니어드진 이후, 참으로 오랜만의 만남이다. 청바지가 유명한 브랜드 정도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리바이스는 오랫동안 워터리스 가공법을 활용해 물 사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청바지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물의 양은 평균 60리터이지만 워터리스 청바지는 1.4리터의 물만을 사용해 만든다고. 의류브랜드 최초로 ‘환경 친화적 케어라벨’이 부착된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청바지 안쪽에는 ‘찬물로 세탁’, ‘자연 건조’, ‘필요 없는 청바지는 기부하세요’라는 귀여운 메모가 적혀 있다. 100개 한정 이벤트 제품으로 판매하고 있는 리블랭크의 골드 파우치 세트는 2010년 월드컵 응원 옥외광고물로 만들었다. 광고 프린트가 되지 않은 뒷면이 파우치 겉면이 되는데 각각의 프린트 색상에 따라 보여지는 겉면의 색상도 조금씩 달라서 더 재미있다. 3개의 파우치를 1만2천원에 살 수 있으니 가격도 매력적이다. 화장품은 프랑스 가마르드 지방의 온천수로 만든 가마르드 수분 크림과 모공 수축에 효과가 좋은 윌르앤보메의 페이스 마스크를 사용했다. 천연 화이트 데이지로 만든 마르게리따의 겔 포밍 클렌저는 미세하고도 풍성한 거품 덕에 모공 구석구석 깨끗하게 씻긴다. 머리를 감을 때는 도넛 모양의 비누, 이름하여 샴핑도넛에 도전했다. 프랑스에서 온 유기농 샴푸 비누로 250ml 샴푸를 2개 압축한 것과 같은 용량이 담겨 있다. 두피의 모공을 깨끗하게 씻어주어 피지 조절에 탁월한 효과가 있기 때문에 과도한 기름으로 ‘머리를 잘 감지 않는 사람’으로 오해를 받는 이들에게 선물해도 좋을 듯하다.
토요일
비온다. 이때다 싶어 방수 점퍼를 꺼냈다. 옥수수에서 추출한 소로나 원사로 만들어진 에이글의 점퍼는 신축성이 좋았다. 김민희가 신었던 에이글의 친환경 부츠도 욕심이 났지만 방수 점퍼에 레인부츠까지는 오버인 것 같아 타이벡 소재로 만든 시빅듀티의 운동화를 골랐다. 시계는 땅속에서 분해되는 콘 레진(Corn Regin)으로 만들어진 스프라우트의 하얀 시계를 찼다. 이 브랜드는 1개의 시계를 판매할 때마다 스리랑카에 1그루의 나무를 심는 1구매 1기부 활동을 하고 있다. 옥수수가 옷을 만드는 원료로도, 시계를 만드는 콘 레진에도 중요한 소재로 쓰이고 있었던 것. 약방의 감초처럼 여기저기서 친환경 제품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클라란스는 마다가스카르 주민들과의 공정무역을 통해 나무 카타프레이를 구매했고 그것에서 얻는 성분으로한 바이페이즈 세럼을 만들었다. 또한 카타프레이가 지속적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새로운 카타프레이를 심고 있다. 공정무역이란 생산자와 기업의 경제적 불균형을 바로잡고 소비자들의 윤리적 소비를 자극하기 위해서 유럽에서 시작된 운동이다. 생산자들의 경제적 자립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건강과 생태 환경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의 사람들을 돈으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하고 공정한 거래를 통하여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유도하는 대안적인 무역 방식인 것이다. 프레시의 로즈 페이스 마스크와 록시땅의 시어버터는 서부 아프리카 여성들과의 공정 거래를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 시어버터는 때로는 립밤으로 때로는 핸드 크림으로, 때로는 보디 크림으로 사용해서 빠른 속도로 바닥을 보이는 제품이기도 하다. 일본 게이샤들의 정종 목욕법에서 착안해 만들어진 사케 배스는 몸 안의 독소를 배출하고 심신을 회복시키는 힐링 테라피로 유명한 제품. 웬만한 화병보다 더 예쁜 사케 배스의 용기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다 쓴 후에 수국을 꽃아놓을 생각을 하니 괜히 기분까지 좋아진다.
일요일
패스트 패션의 대명사 H&M도 친환경 의류를 만드는 일에 열심이다.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면화로 만든 컨셔스 컬렉션의 재킷을 입고 슈페르가 운동화를 신고 란셀의 BB백을 들었다. BB백은 프랑스의 대표 여배우이자 동물 애호가인 브리지트 바르도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니스프리의 리미티드 에코 메이크업 세트는 표백처리를 하지 않은 크라프트지, 생분해되는 옥수수 전분 용기를 사용했는데 각각 세 개의 컬러가 들어가 있어 골라 바르고 그리는 재미가있다. 오랜만에 눈, 볼, 입술에 힘을 주고 출근을 하니 후배가 물었다. “선배 오늘 소개팅해요?” 아이라이너와 치크 크림의 경우 지속력이 약해 오후에는 저녁 약속조차 없을 것 같은 얼굴이 되어 아쉬웠지만 이 세트만 있다면 올여름 색조 화장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일주일 동안 입고 신고 바른 친환경 제품들 중에는 돈을 주고 사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제품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이제부터 친환경 제품만 사용하는 환경운동가가 될 거야!’라고 선언을 하는 드라마틱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긍정적인 변화’는 분명히 있었다. 예전에는 내 몸을 위해 먹고 마시는 것의 성분을 궁금해했다면 이제는 바르고 입는 제품에 이르기까지, 단지 내 몸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제품을 사용함으로써 영향을 미칠, 수많은 과정과 결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친환경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물건을 구매하는 데 있어 여전히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는 않았지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조건중 하나가 되었다는 얘기다. 친환경 제품을 온몸에 두르고 친환경적이지 않은 행동을 할 때 스스로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입고 바르는 것으로 시작한 에코 체험이 알게 모르게 나의 모든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을 주고 있었던 거다. 체험을 하기 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다. 그리고 예전에는 몰랐던 이렇게나 많은 친환경 제품의 세계가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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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조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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