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범, 멋지거나 나쁘거나
모든 것이 우연처럼 멋졌다.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이 오가던 오래된 서울역사 안에 그가 있었고 음악도 없이 춤을 췄다. 박재범은 자신이 머문 시간과 공간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힘이 있었다. 박재범이 가진 아주 모던한 자유로움, 그의 모던한 인생.
문화역284에서의 촬영이 끝났다. 밖으로 나간 박재범의 발걸음이 곧장 향한 곳은 길가에 있던 작은 포장마차. 어묵을 하나 베어 먹고, 라면을 하나 끓여달라고 했다. 그 사람 많은 서울역의 한 귀퉁이에서, 팬이 가장 많은 뮤지션 중 하나인 그가 서서 어묵을 먹고 있다는 건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숟가락 주세요, 고맙습니다.” “맛있었어요. 안녕히 계세요.” 꼬박 꼬박 인사하는 그를 포장마차 아주머니는 그냥 조금 젓가락질이 서툴고 인사성은 밝은 청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고, 그건 사실이기도 했다. 여느 때 같으면 여기서 서로 예의 바른 인사를 했을 것이다. 또 만나서 멋진 화보를 찍자. 다음에는 정말 뱀파이어 콘셉트로! 멋지고 설레지만 기약할 수 없는 말들을 뒤로하며 각자 갈 길을 가는 게 보통의 수순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박재범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었기에 인터뷰는 이동하면서 하기로 했고, 다음 스케줄인 콘서트장으로 향하는 바로 그 차에 함께 탄 것이다. “오, 색다르네.” 차에서 하는 인터뷰는, 그도 처음이라고 했다. 그가 수없이 받았을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안 했다.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것만 얘기하기에도 시간이 바빴으니까. 토요일 서울 곳곳은 지독하게 막혔지만 하나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시간의 상대성 이론 속에서 차는 천천히 움직였고 박재범은 줄곧 랩을 하듯 말했다.
데뷔 후 가장 바쁜 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촬영 준비하는 동안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던데, 요즘도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어요?
언제가 제일 바빴냐고 하면 컴백하고 그 다음 주가 그랬어요. 스케줄도 많았고 감기 걸린 상태에서 잠을 거의 못 자서 힘들었어요. 또 한동안은 콘서트 때문에 바빴어요. 하루에 한 3시간 잔 것 같아요.
첫 단독 콘서트가 성공적으로 끝났죠. 5천 명이 박재범만을 보기 위해 왔는데, 준비한 모든 걸 보여줬나요?
아쉬운 게 없진 않아요. 고민 진짜 많이 했거든요. 스케줄과 콘서트 준비를 같이 하는 게 때론 감당이 안 됐지만 정말 멋진 콘서트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콘서트는 팬을 위해서 하는 거니까, 즐겁게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팬들이 보기에는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팬이 아닌 사람이 봐도 재미있었나?
누가 봐도 재미있는 콘서트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이죠. 그럼 정말 잘된 콘서트죠. 2시간 동안 똑같으면 질리니까요, 섹시한 거, 힙합, 퍼포먼스, 웃긴 거 다 보여주고 싶었어요. 특히 이번엔 밴드로서의 모습과 가수로서의 모습을 많이 보여줬는데, 그러다 보니 춤을 별로 못 춘 것 같아요. 끝나고 보니 그건 좀 아쉬워요.
대신 콘서트를 위해 AOM비보이크루 친구들이 미국에서 왔죠. 지금도 같이 있어요? 아까 “Peace” 하며 통화한 친구도 AOM인가요?
네. 그 친구만 빼고는 다 돌아갔어요. 와줘서 정말 고맙죠. 함께 무대에 설 수 있어서 정말 좋았는데 바빠서 함께 시간을 별로 못 보냈어요.
콘서트에 가지 않은 사람도 박재범이 레이디 가가의 ‘포커페이스(Poker Face)’를 불렀다는 거 다 알 거예요.
그건 별로 준비하지도 않았는데 제일 반응이 좋더라고요. 여장을 해서 그런가. 치마 입고, 화장하고 나도 재미있었어요.
레이디 가가 퍼포먼스를 설명하면서 라디오에서 했던 말, ‘부라자’ 때문에 엄청 웃었어요. 래퍼라서 이제 일상의 언어를 추구하나 싶었죠.
아, 그거요. 나는 한국에서는 ‘부라자’라고 부르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다 웃는 걸 보니 잘 안 쓰는 말인가봐요. 왜냐하면 미국에서 내 주변에 한국어를 쓰는 사람은 아줌마밖에 없잖아요. 엄마나 이모 같은. 그래서 이상한 말을 쓸 때가 있나봐요. 한국말을 더 잘했으면 좋겠어요.
정규 앨범의 곡 대부분을 작사, 작곡했잖아요. 가사를 들어보니 이제 한국말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도 되겠던데요?
그럼 정말 다행이에요. 지금도 가사를 쓰면 도끼나 더콰이엇 형에게 물어봐요. “형 이거 말 돼?” 말 안 된다고 하면 고쳐야죠.
힙합은 자기고백적인 음악이잖아요. 늘 자신에 대해 고백해야 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Clap’은 딱 지금 박재범에 대한 이야기 같았어요. 솔직하고 대범하고.
부담은 없어요. 무슨 일이든 숨길 것도 없고, 말하기 불편한 주제도 없고 인터뷰에서 나오는 질문도 다 솔직하게 답해요. 그냥 내 얘기를 하는 건데요. 이번 앨범에서도 내 인생에 있던 얘기를 그대로 했어요. 맞아요. ‘Clap’은 지금 나를 가장 잘 담은 노래죠.
‘훅 갔어’에서 ‘연예인이든 뭐든 지금만큼은 눈치 안 봐, 비밀인데 있잖아 오늘은 혼자 못 자’라고 말하는 당신은 여전히 악동이죠. 다행이다 싶었어요. 그동안 계속 착하고 바른 이미지만 보여준 것 같아서.
뭐든 마음만 착하면 되잖아요? 하하. ‘훅 갔어’는 쉽게 썼어요. 가장 어려웠던 건, ‘Go’였어요. 쓰는 건 쉬웠는데 녹음이 어려웠어요. 계속 노래 분위기를 바꿨거든요. 덥스텝이었다가 댄스였다가, 슬픈 R&B로 바꿨는데 결과물은 맘에 들어요.
정규앨범을 작업하면서 가장 신경 쓴 건 뭐였어요?
자유로움. ‘이런 음악으로 이런 콘셉트로 활동해라’라는 가이드 없이 그때그때 하고 싶은 대로 작업하고 연습할 수 있는 게 가장 좋아요. 그게 솔로의 장점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무슨 음악을 해야 할지, 내 갈 길이 뭔지 몰랐어요. 음악 만들면서 활동하면서 이제 감을 좀 잡은 것 같아요.
다양한 아티스트와 협업을 했는데 그것도 직접 결정한 거예요?
혼자만 계속 하면 비슷비슷할 수밖에 없어요. 비지 형, 타이거JK 형과 윤미래 누나…. 같이 작업한 모든 뮤지션에게 정말 많이 배웠죠. 미국에 있었으니까 지금까지 한국 힙합을 별로 안 들었잖아요. 이제 한국 힙합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말로 설명하긴 힘들지만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요. 서로 인정해주고, 존경해주고, 각자만의 스타일이 정말 분명해요. 예를들어 도끼와 타이거JK 형은 무척 다르잖아요. 랩도 다르고 플로우도 다르고. 그런데 둘 다 정말 멋진 음악을 하고 있고 그걸 인정해주거든요.
만들었는데 빠지게 된 아까운 곡은 없어요?
일단 ‘Can’t Stop’은 브라이언 형에게 줬어요. 형 앨범과 더 잘 어울렸거든요. 이번에 유키스가 곡을 달라고 해서 한 곡 썼고요. 어쩌면 타이틀 곡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음악을 만들 때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거든요.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서 쓰는 건 처음이에요. 유키스는 아이돌 그룹이니까 재미있고 대중성 있는 곡을 쓰려고 노력했어요
-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허윤선
- 포토그래퍼
- 창원석
- 스탭
- 패션 스타일리스트/황종하, 헤어 / 김귀애, 메이크업 / 이미영, 어시스턴트 / 임수정, 오은덕
- 기타
- 로케이션 /문화역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