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고양이의 나날

수많은 낮과 밤, 그들은 함께 식사를 한다. 같이 잠을 자고 TV를 보고 산책을 하고 서로의 언어로 대화를 나눈다. 하루하루 쌓여가는 그들은 서로를 닮아간다.

사진작가 신규철의 마리오.

사진작가 신규철의 마리오.

우리의 만남

“고양이 이름이 뭐예요?”, “어, 물어”, “물어요? 뭘 물어요?” 물어는 원래 박지웅 시인이 키우던 녀석이다. 6년 전 어느 봄날 그의 집에서 눈을 뜬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녀석을 처음 만났다. 동네 꼬마가 울고 있어 다가갔더니 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 있더란다. 어른들이 허락을 하지 않아 가지고 나왔는데 그냥 버릴 수가 없어 그러고 있었던 것이다. 그 길로 고양이를 집에 데려다놓았는데 남자 혼자 아기를 받아 키우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그는 너스레를 떨었다. 낯선 사람이 앉아 있는데도 고양이는 전혀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무릎 밑으로 파고들어 몸을 비비더니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 후로 나는 그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자꾸만 떠올라 종종 그의 집에 들렀다. 그러던 어느 날 윤진화 시인과 함께 그의 집 옥상에 자리를 펼쳐놓고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서 함께 고양이의 이름을 짓기로 했다. 여러 이름이 나왔지만 박지웅 시인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조금 더 참신한 이름을 요구했다. 별 다른 이름이 떠오르지 않자 나는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친한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은근히 심해지는 잘난 척, 이날도 이야기는 어느새 자화자찬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 윤진화 시인이 고양이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길상호 물어!” 옆에 있던 박지웅 시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유쾌하게 웃었다. 그 자리에서 녀석의 이름은 ‘물어’가 되었다. 그리고 몇달 뒤에 박지웅 시인으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물어를 데려다 키울 생각이 없냐는 것이었다. 물어에게 정이 든 것은 사실이지만 한 번도 집에 애완동물을 들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난감한 제안이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좀 있으면 결혼을 하게 되는데 형수가 고양이를 싫어해 키울 수가 없게 되었다는 거다. 녀석을 키울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 어물어물하고는 전화를 끊고 말았다. 그런데 어느 날 노크 소리에 나가보니 박지웅 시인이 물어를 안고 떡하니 서 있었다. 녀석을 방에 내려놓더니 사료며 밥그릇이며 녀석이 사용하던 물건들을 하나씩 갖고 들어왔다. 내가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녀석도 낯선 곳에 와 있는 게 불안했는지 책장 구석에 숨어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렇듯 황당하게 물어와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나의 손등에 늘어나던 고양이의 발톱 자국이 사라질 때쯤 우리는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자판을 두드리는 이 순간에도 물어는 무릎 위에 올라와 말을 건다. “야옹! 지금 내 이야기 쓰는 거야?” – 길상호(시인)

사진작가 김현성의 밤식이와 먹물이.

사진작가 김현성의 밤식이와 먹물이.

밤식이와 먹물이

초등학생이었던 1975년부터 우리 집에는 강아지가 있었다. 아버지가 친구분에게서 데리고 온 첫 번째 강아지 레니를 시작으로 레시, 보보, 꼭지, 람보, 밀크, 얼래, 하늘이, 바람이, 돌돌이, 고양이 타비, 마이클, 루나 등 그들은 나에게 항상 가족 같은 존재였고 우리 집은 늘 스무 마리 정도의 강아지와 고양이로 붐볐다. 그중에서도 나에게 유난히 특별한 둘이 있는데 녀석들의 이름은 밤식이와 먹물이다. 앞서 얘기한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내 가족 같은 존재였다면 밤식이와 먹물이는 자식 같은 아이들이었다. 1998년에 결혼을 하면서 20년 동안 정들었던 서교동 집을 떠나 반포에 신혼살림을 차리며 데리고 온 아이들이 바로 밤식이와 먹물이다. 먹물이는 다니던 동물병원에서 못생겨서 팔리지 않는다며 준 천덕꾸러기 같은 아이였다. 성격도 내성적이고 사람을 무서워하던 먹물이는 유난히 나와 아내만을 따랐고 그 모습이 측은해 나는 먹물이를 유달리 아꼈다. 밤식이는 아내의 시골집에서 온 푸들로 먹물이와 달리 사람을 무척 좋아하고 극성이던 아이였다. 두 아이 모두 새끼 때부터 우리와 함께했고 신혼은 그 아이들과 함께 시작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녀석들과 지낸 8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인 것 같다. 물론 지금도 행복하지만 밤식이와 먹물이가 없는 인생은 예전 같지 않다. 그 아이들이 어떻게 하늘나라로 갔는지에 대한 얘기는 간단하게 해야겠다. 소심하기 그지없어서 모험을 하지 않던 먹물이는 내가 없던 스튜디오에 있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뛰쳐나갔다. 사람들과 함께 목이 터져라 이름을 부르며 먹물이를 찾았고 우린 먹물이를 3일 만에 몇 블록 떨어진 공터에서 발견했다. 그 3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암흑 같던 시간이었다. 하늘에 감사한 것도 잠시, 다음 날 먹물이 몸에 이상이 있는지 검사를 맡기러 가면서 밤식이도 함께 검사를 맡겼는데 그곳에서 밤식이가 주사 쇼크로 죽고 만 것이다. 나와 와이프는 충격을 받았고 먹물이가 살아 돌아온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그렇게 큰아들 밤식이를 하늘로 보냈다. 그 후 약 1년 반이 지나고 심장이 좋지 않았던 먹물이도 내가 자고 있던 어느 날, 식탁 밑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난 먹물이가 살아 있던 8년 내내 먹물이의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했지만 녀석의 죽음을 실감할 수가 없었다. 신앙심이 없던 나는 먹물이가 죽은 후 꼭 사후세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지금까지 평생 동안 가장 사랑했던 두 아이들에 대한 짧은 기억이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그 녀석들이 내 인생을 바꿨고, 내 가치관을 바꿨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다. 나만 행복하고 나만 성공하면 그만이었던 나의 가치관은 두 아이들이 죽은 후 바뀌었다. 이타적인 삶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타인의 행복과 약한 존재들의 복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오랜 고민 끝에 잡지를 만들기로 했고 네 달을 더 작업한 후에 <오!보이>를 창간했다. 지금, 이 순간 밤식이와 먹물이가 너무나 보고 싶다. – 김현성(사진작가)

사진작가 김태은의 김반이.

사진작가 김태은의 김반이.

이상한 개

나의 개는 어려서부터 이상한 면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최근 들어 정말 이상해졌다. 그것은 개밥그릇과 관련이 있다. 우리 집에서 사용하는 개밥그릇은 몇 년 전에 누군가에게서 얻은 것으로, 밥그릇과 물통이 일체화된 나름 고가로 예상되는 제법 훌륭한 밥 그릇이다. 그 밥그릇을 쓰기 전에는 몇 천원쯤 하는 노란색 플라스틱으로 된 밥그릇과 물그릇을 사용했는데 자리를 많이 차지해 사람이나 개가 실수로 밟아서 엎는 일이 종종 일어났고, 더운 여름에는 개가 더위를 식히려고 물그릇에 손을 넣고 물장구를 쳐서 온사방을 물구덩이로 만들었으며, 물을 자주 갈아줘야 해서 그걸 깜빡 잊으면 개가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물을 마시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하는 등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러다가 물통과 일체화된 이 훌륭한 밥그릇으로 바꾸고 나서 우리의 생활은 아주 편안해졌다. 웬만하면 엎을 일도 없었고 엎는다고 해도 물이 새어 나오지 않았다. 물을 자주 갈아줄 필요도 없었다. 개 또한 처음 한두번은 어색해하더니 금방 사용법을 터득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나의 개는 그 밥그릇을, 정확히 말해 밥그릇에 매달린 죄 없는 물통을, 폭력적인 상사가 말을 잘 듣지 않는 부하를 쥐어 패듯이 걷어차는 것일까. 그 시작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나의 개는 언젠가부터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밥그릇으로 달려가 밥그릇에 매달린 물통을 세게 걷어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우스워서 막 놀렸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화를 내면서 더 세게 물통을 걷어찼다. 그리고 그럴수록 물통을 걷어차는 실력 또한 향상되어 이제는 복싱대회에 나가면 챔피언이 될 것 같은 정도다. 시시각각 어느 놈이 내 밥그릇을 노리는가 감시하고 있다가 누군가 슬쩍 밥그릇 쪽으로 다가가거나 심지어 쳐다보기만 해도 바람처럼 달려가 물통을 걷어찬다. 가끔 뭔가 화가 나는 일(뭔가 잘못을 저질러서 야단을 맞는다거나)이 있을 때는 그 무거운 밥그릇이 넘어질 때까지 몇 번이나 걷어찬다. 그러면 물을 못 마시게 되니까 다시 일으켜놓으면 또 무섭게 화를 내며 또다시 걷어찬다. 정말이지 왜 이러는 걸까. 그놈의 물통에 집착하여 종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개는 아주 피곤해 보인다. 하지만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다.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다. 뭔가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곤경에 처한 것 같다. 도대체 무엇이 나의 개를 이런 이상한 습관에 사로잡히게 했을까. 달래보기도 하고 화를 내보기도 하고 먹을 것을 줘보기도 하지만 나아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동물농장>에 사연을 보내서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봐야 할 것 같다. – 김사과(소설가)

음악 칼럼니스트 김영혁의 김밥이.

음악 칼럼니스트 김영혁의 김밥이.

김밥 아빠의 날들

야근을 하고 집에 늦게 들어가 문을 열면 전력질주로 뛰어나와 옆집 문 밖에 세워둔 꼬마 자전거와 알 수 없는 교감을 나누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요즘은 집 입구에 자전거를 세워둬서 그런지 자전거를 향해 달려나가는 일은 없지만 밤마다 추격전을 벌이는 나름의 재미도 있었다. 늘 그렇게 장난치듯 뛰어다니는 이 고양이의 이름은 ‘김밥’이다. 고양이 목각인형을 사 모은 적은 있지만, 고양이와 동거에 들어간 것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의 집고양이 이래로 이 녀석이 처음이다. 크면서 많이 예뻐졌지만 처음 김밥이를 데려온 김밥 엄마의 말을 빌리면 입양을 기다리던 새끼고양이 몇 마리 가운데 녀석을 택한 이유는 ‘얼굴은 못생겼지만 사람을 잘 따르는 모습이 왠지 안쓰러워서’였다고 한다. 작업실 소파 뒤에 숨어서 나오지 않거나 빛 아래에서는 발을 내딛는 자세부터가 영 어색한 아기였지만 사료에만큼은 아낌없는 애정을 보이는 모습을 보고 이름을 ‘밥’이라고 지었다. 녀석은 사료를 수북이 쌓아주면 마치 지구가 곧 종말을 맞이해 두 번 다시 밥을 먹을 기회가 없다는 듯 깨끗이 먹어 치웠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져 사준 자동급식기의 배식시간을 도저히 못 기다리겠다는 듯 손을 안에 집어넣어 나오다만 사료를 긁어내는, 마치 동전 없이 자판기 안 땅콩초코볼을 빼먹는 불량꼬마를 연상시키는 행동을 선보이기도 했다. 밥을 향해 뛰어다니며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하던 김밥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약을 먹어도 설사와 구토가 진정되지 않았다. 그 정도 상태가 지속되면 침울해하거나 식욕이 없어질 법도 한데 이 녀석은 여전히 밥을 많이 먹고 뛰어다녔다. 그래서 어린 고양이에게는 치명적인 백혈구 감소증에 걸렸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생명이 걸린 위험한 상황이라 입원을 하고 면회를 통해 만나야 하는 상황이 왔고 그렇게 뛰어다니는 걸 좋아하던 밥이가 갇혀 있는 모습을 봤다. 아파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뛰어다녔지만 갇혀 있는 상황에서는 녀석도 침울해질 수밖에 없었나 보다. 슬쩍 밀어 넣은 손가락을 김밥이가 덥석 붙잡던 장면은 눈물 없이는 보기 힘든 이산 가족 상봉처럼 느린 화면으로 머릿속에 남아 있다. 빠른 시간 내 완쾌하자 담당의사는 밥도 잘 먹고 기력이 좋아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식성과 에너지는 그로부터 1년 몇 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물고기 모형을 품은 낚싯대를 흔들어주기를 기대하면서 그 낚싯대를 만지작거리는 김밥이를 보면서 김밥 아빠로서, 그의 친구로서 해야 할 일을 오늘도 깨닫는다. 그는 늘 지치지 않는 열정의 세계를 나에게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생명체이자 가장 사랑하는 친구 중 하나다. – 김영혁(음악 칼럼니스트)

사진작가 이규열이 스위스에서 만난 길고양이들.

사진작가 이규열이 스위스에서 만난 길고양이들.

고다르에게

스물셋의 여름, 나만의 공간을 갖기로 한다. 어디에 터를 잡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기도 전에 대뜸 고양이를 들이기로 마음먹는다. ‘고양이?’라고 되묻던 애인은 그럴듯하게 집을 꾸린 어느 가을날 사진 한 장을 보여준다. 시큰둥한 어미 곁에 새끼고양이 여섯이 누워 있다. 터키시앙고라인 어미가 바람을 쐬다가 무뢰한을 만나 덜컥 새끼를 뱄던 모양이다. 어미를 빼닮아 두부같이 하얀 셋은 이미 새 삶을 찾았고 아비를 닮았을 얼룩이 셋은 아직이다. 그중에 유난히 건방진 눈빛을 한 네가 있다. 너도 만만찮은 내 첫인상에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악패를 뽑았다, 하며 울분을 토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너와 나는 만났다. 2007년 10월 27일의 일이다. 예상했던 대로 우리의 동거는 쉽지 않다.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없고 너는 내가 성에 차지 않는다. 네가 이불에 오줌을 갈겨대는 탓에 나는 김장비닐을 두른 매트리스 위에서 추위에 떨고, 너는 사랑의 짜릿함을 맛보기도 전에 남성성을 거세당하는 봉변을 당한다. 네가 발톱을 세우는 만큼 난 분무기를 들었다. 네가 털갈이를 할 때 나는 기관지염을 앓고 내가 피워대는 담배 연기 때문에 너는 창문에 붙어 산다. 나의 잦은 부재로 너는 어둠에 갇혀 며칠을 홀로 지낸다. 너는 이유 없이 내 손등을 깨물곤 피를 볼 때까지 이를 박는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닮아간다. 복도에 울리는 내 발소리를 용케 알아듣고 너는 마중을 나온다. 나는 네가 내는 소리로 너의 기분을 읽어낸다. 내가 식탁에 앉으면 너도 밥을 먹는다. 서로 속상한 일이 있으면 적당히 거리를 두고 눈치를 본다. 네가 내 품의 온기를 좋아하는 만큼, 나는 핫바 냄새를 풍기는 네 말랑한 발바닥을 사랑한다. 이제 우리는 베풀 줄도 안다. 너는 내가 무서워하는 벌레를 잡아주고 나는 네가 맘껏 뛰어놀도록 옥상으로 난 문을 열어둔다. 마음이 맞는 날엔 마주 보고 누워 대화를 나눈다. 네 배를 간질이고 내 어깨를 주무르다 우린 잠이 들곤 한다. 네 허락도 없이 나는 네 이름을 정해버렸다. 고다르. 프랑스 영화감독의 이름을 빌렸다. 너는 그의 영화처럼 네 멋대로 하고 너의 삶을 살며 때론 미치광이가 되기도 한다. 잠깐 글쓰기를 멈추고 네 이름을 불러본다. 고다르. 여전히 내 베개를 점령하고 있는 넌, 연녹색 눈을 반짝이며 한쪽 귀를 쫑긋 세운다. 잠시 눈이 마주친 후 우리는 각자의 일로 돌아간다. 너는 털을 마저 핥기 시작하고 나는 글을 마치려 한다. ‘트뤼포’라 불릴 친구를 만들어주려는 깜짝 선물을 오래전부터 계획했다. 어쩌면 돌아오는 봄, 우리 셋이 잘 말린 이불에서 뒹굴다 한 베개를 베고 달콤한 낮잠에 들지도 모르겠다.
– 양효주(영화감독)

    에디터
    조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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