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그 길 위에서

울진에 다녀왔다. 여느 때처럼 대게를 먹고 불영사도 찾았다. 이전과 다른 게 있었다면 금강소나무숲길을 걸었다는 거다. 눈을 감으면 웅장한 산을 감싸는 바람 소리가 온몸을 에워쌌고 눈을 뜨면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이 뻗은 소나무가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전국적으로 걷기 열풍이 일고 있다. 지방마다 경쟁하듯 둘레길을 만들고 있지만 지역의 생태와 문화에 대한 고려 없이 무분별하게 길만 만든다는 느낌도 배제할 수 없다. 금강소나무숲길은 인위적인 개발을 최소화해 있는 그대로의 길을 보여준다. 덕분에 사계절의 변화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으며 길을 걷는 동안 책임 여행에 대한 의미를 스스로 깨우칠 수 있다.

금강소나무숲길에 오르기 위해

먼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13.5km나 된다고 하니 다시 마음을 다잡아본다. 북면 두천1리 금강소나무숲길 입구에서 물이 졸졸 흐르는 징검다리를 건너면서부터 금강소나무숲길의 산행이 시작된다. 해설사가 첫 길부터 꽤 경사진 오르막길이라 체험자들이 긴장했음을 눈치 챘는지 “이렇게 오르막길만 있는 건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을 건넨다. 오르막으로 이어져 있는 바릿재는 옛날 보부상들이 물건을 바리바리 싸들고 지났다 하여 ‘바릿재’라는 이름을 얻었다. 금강소나무숲길이라 해서 금강소나무만 있는 건 아니다. 참나무, 느릅나무, 오동나무는 물론 생전 처음 만나는 꽃과 나무로 가득하다. 금강소나무숲길은 산림청, 녹색연합, 지역 시민단체와 주민들이 2007년부터 준비기간을 거쳐 2010년 7월 그 모습을 드러냈다. 5개월간의 자연정화 기간을 거치고 지난 5월 다시 문을 열었는데, 이제까지 이곳을 찾은 사람의 수만 1만5천 명이나 된다. 하루에 입장할 수 있는 인원을 80명으로 제한했는데도 말이다. 길이 시작되는 두천리와 끝나는 소광리의 주민들로 구성된 해설사가 안내하는 ‘예약탐방가이드제’를 선보이며 걷기 좋은 길로 명성을 얻고 있다. “저기 보이는 저 나무가 굴참나무입니다. 숯으로 태워 쓰고, 열매 맺으면 동물과 사람이 나눠 먹고 버섯이 특히 많이 나는 나무예요. 식용으로 약용으로 버릴 게 하나도 없어요. 참 좋은 나무라서 참나무라 부르는 겁니다.” 새로운 나무와 꽃이 등장할 때마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해설사의 말이 빨라진다.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군데군데 흙을 파헤쳐 놓은 흔적도 보인다. “지난밤에 멧돼지가 많이 내려왔나 보네요. 칡뿌리, 나무 뿌리, 도토리까지 다 파먹어요. 4~5월에는 새끼를 달고 다니는데 그때는 좀 사나워집니다. 봐도 못 본 척하고 지나가면 괜찮아요. 괜히 새끼한테 관심 보이다가는 큰일납니다.” 해설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저멀리 산 고개 쪽으로 멧돼지 두 마리가 보인다. 누군가 “멧돼지다” 하고 외치며 쫓아가자, 반대쪽으로 제법 날렵하게 달아났다.

금강소나무숲길은 옛날 보부상들이 20kg의 짐을 지고 몇 날 며칠을 지나던 길이다. 동해안의 울진죽변흥부 장에서 구입한 미역, 고등어, 소금 등을 짊어지고 봉화 소천장에 가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했던 길이다. “이곳을 지나는 보부상들이 부르는 구전 민요가 있는데 한번 불러볼까요? 미역 소금 어물 지고 춘양장은 언제 가노, 대마 담배 콩을 지고 울진장을 언제 가노, 반평생을 넘던 고개 이 고개를 넘는구나, 서울 가는 선비들도이 고개를 쉬어 넘고, 오고 가는 원님들도 이 고개를 자고 넘네, 꼬불꼬불 열두 고개 조물주도 야속하다,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해설사가 구수하게 한 자락을 뽑아내자 뒤따르던 이들도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노래를 배워가며 유유자적 걷다 보니 벌써 바릿재 정상이다. 산적이 많던 곳이라 시체도 많이 묻혀 있다면서 겁을 준다. “길 가다가 이따금 감나무가 나오죠? 감나무가 열린 곳은 예전에 집이 있던 자리라고 보면 됩니다.” 덕분에 감나무가 나올 때마다 그 옆에 자리하고 있었을 옛날 집을 상상하며 걸었다. 아침과 다른 햇살에 땀이 제법 올라오기 시작했다. 여름에는 물이 차고 겨울에는 따뜻하다는 ‘찬물내기 쉼터’에 이르러서야 애타게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주어졌다. 오늘의 점심을 담당하는 아주머니들이 미리 도착해 비빔밥이 담긴 그릇을 하나씩 쥐어준다. 고추장을 넣어 쓱쓱 비벼가며 맛있게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동네 어르신이 직접 담근 개복숭아주라며 한잔 권하신다.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받아 한입에 털어넣으니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한 잔을 더 받아 들고서 찬물내기 개울가로 내려가 손을 담갔다. 햇빛이 비치는 돌다리에 앉아 광합성을 하고 있자니 “자, 이제 다시 출발해야죠” 하는 해설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60여 명의 체험가가 해설사 뒤로 줄지어 서서 다시 걸음을 이어간다.

73개의 계단을 넘어 샛재로 넘어가니 고로쇠 나무도 보인다. 산 능선과 길 어귀에 병풍처럼 늘어선 금강소나무는 유난히 반짝이고 하늘 높이 닿아 있다. 과연 이 길의 주인다운 모습이다. 금강송은 금강산 소나무라는 뜻이다. 금강산을 비롯한 태백산맥 일대에서 자란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붉은빛을 띠고 있어서 적송, 미인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미인송, 봉화 춘양역에서 다른 곳으로 실려갔다고 해서 춘양목,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지고 속이 누래진다고 황장목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2006년도에 금강소나무라는 가장 고운 이름으로 통일되었다. 가볍고 단단하며 방수가 잘되고, 뒤틀림이 없고 벌레가 먹지 않아 건축자재로도 인기가 많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수없이 빼앗겨야만 했던 나무이기도하다. 이곳에서는 50년, 100년을 산 소나무는 명함도 못 내민다. 200년이상을 산 소나무가 8만 그루가 넘고 500년 된 소나무도 두 그루다. 긴시간, 결코 쉽지 않은 지난날을 강직히 견뎌낸 위엄이 느껴진다. ‘깔딱 고개’인 샛재를 넘으면 보부상이 반드시 들러 행로의 안전과 번영을 기원하고 갔다는 성황사가 나온다. 지역주민과 보부상이 만들어 휴식처로 이용하기도 하고 제를 지내기도 한 곳이다. 해설사는 바위에 구멍을 뚫고 세워놓은 석비와 마귀할멈의 전설이 전해오는 말무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기서 소광2리에서 온 해설사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샛재 주변에는 문화재 복구용으로 쓰일 금강송 거목들이 노란 띠를 두르고 있다. 샛재를 넘고 나면 계곡을 따라 푹신한 솔잎을 밟으며 제법 여유를 부리며 걸을 수 있는 느삼밭재 구간이 나온다. 흙길도 걷고 시멘트길도 걷고 다리도 건너고 낙엽으로 뒤덮인 산길도 걷는다. 비슷하고 본 듯하지만 결코 같지 않은 색깔의 나무가 온 산을 뒤덮고 있다. 노란색에 가까운, 주황색에 가까운 색이지만 그렇다고 또 노란색이라 주황색이라 단정 짓기는 어려우니 한번에 눈을 돌리기가 쉽지 않아 자꾸 걸음을 늦추게 된다.

이곳은 비무장지대를 제외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산양이 서식하고 있는 곳이다.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1급, 천연기념물 제217호인 산양은 250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모습이 변하지 않은 채로 살고 있다 하여 화석동물이라고도 불린다. 엄청난 폭설이 내린 지난겨울, 이곳에서 25마리의 산양이 사체로 발견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부검 결과 모두 굶주림에 의한 탈진이었다. 살아서 구조된 산양도 응급 처치를 할 수 있는 전문 수의사, 천연기념물을 위한 치료소, 계류장 하나 갖추고 있지 못한 탓에 영주로 호송되었고 그사이에 폐사하고 말았다. <얼루어>는 지난 그린캠페인 행사를 통해 얻은 수익금을 모아 녹색연합에 기부했고, 기부금은 바로 이곳에 살고 있는 산양을 위해 쓰이고 있다. “<얼루어>의 기금은 이곳뿐만 아니라 울진 삼척 일대의 산양 조사를 하는 데 쓰였습니다. 자원활동가들이 여름 내내 산양의 흔적을 찾아 다녔어요. 이 자료는 산양의 기초 데이터로 구축 되어 앞으로 산양을 보호하고 연구하는 데 귀하게 쓰일 겁니다.” 해설사의 말에 괜히 마음이 놓인다. 산양을 볼 수 있을까 꽤 기대를 했지만 아쉽게도 그들을 만나지는 못했다. 산양을 보지 못한 아쉬움은 그들의 배설물을 보며 달래야 했다. 바위 틈 사이에 흘려놓은 배설물을 보며 그들의 안녕을 확인하니 왠지 그들과 가까워진 느낌이다. 이번 겨울은 건강히 잘 견뎌낼 수 있기를 바라며 마지막 코스를 향해 다시 걸으니 이윽고 13.5km의 코스도 끝이 보인다. 장장 6시간이 걸린 짧지 않은 길이다.

코스가 끝나는 출구에 자리한 주막에 둘러앉으니 울진 막걸리와 파전, 두부로 테이블이 한상 가득 차려졌다. 양철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를 사발에 담아 벌컥벌컥 마셨다. 직접 재배한 재료로 노릇하게 구운 파전과 단단하고 구수한 두부는 막걸리와 최고의 궁합을 만들어냈다. 음력 9월 9일에 끓여 먹으면 가장 향이 좋다 하여 이름 붙은 구절초와 달맞이꽃의 냄새를 맡고 와인의 코르크로 쓰인다는 황벽나무의 물컹한 껍질을 만져보기도 했다. 꽃이 위로 피는 층층나무의 가지를 올려다보았고 이고들빼기의 유용한 쓰임에 대해 듣기도 했다. 무엇보다 금강소나무의 장대한 모습을 원 없이 보고 그 건강한 기운을 원 없이 받았다. 그 길을 걸으며 보고 듣고 냄새 맡은 모든 것, 결코 예사롭지 않았던 작은 만남을 다시 떠올려본다. 단순히 걷고 끝나는 길이 아니라 생각하고 소통케 했던 그 길 위에 서 있던 6시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1, 2. 금강소나무숲길을 걷는 동안 그림 같은 풍경과 수없이 마주치게 된다. 자꾸만 걸음이 늦춰질 수밖에 없는 이유. 3. 호수에 그대로 떨어져 내린 불영계곡의 절경. 4. 지난여름의 소란했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는 평화로운 동해 바닷가. 5. 찬물내기 쉼터에서 먹은 점심. 고추장을 넣어 쓱쓱 비며가며 먹어야 제 맛이다. 6. 빨랫줄에 나란히 걸린 오징어, 바닷가에 찾아온 노을 덕분에 금빛 오징어가 되었다.

7번 국도에 들어섰을 때

나도 모르게 창문을 내렸다. 순간 비릿한 바다 냄새가 차 안으로 들어온다. 지난 8월, 뜨거웠던 그날과는 또 다른 냄새다. 늦은 가을의 바다는 수고스러웠던 지난여름을 무던히 견뎌낸, 그래서 인지 조금 더 단단해진 모습이다. 그 많던 관광객은 어디로 가고 낚시를 위해 커다란 돌계단을 어렵사리 건너가는 중년 남자가 유일한 방문객이다. 모래사장 가까이의 나무는 크지도 작지도 않다. 많지도 적지도 않다. 드문드문 놓여, 바다로의 시야를 가린다. 움직이는 차 안에서 보는 바다와 나무는 흔들리고 울렁이며 왜곡된 모습을 보여준다. 차 안에서 담아내는 정지되지 않은, 흔들리는 순간은 때론 더 아름답다. 조금 더 지나 기성망양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는 갈매기가 유난히 많다. 곳곳에 오징어를 판매하는 작은 좌판이 자리하고 있다. 왼쪽으로는 흔들리는 바다가 여전히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다. 오징어를 말리는 할머니를 만났을 때는 해가 저 너머로 지고 있었다. 빨랫줄에 걸린 빨래처럼 줄지어 가지런히 널어놓은 오징어는 가까이서 보니 꽤 두껍고 실하다. “할머니 저희 오징어 사진 좀 찍어도 돼요?”라고 물으니 “오징어 사진은 뭐 할라고? 그려, 맘대로 찍어”라고 하신다. 휴대폰을 꺼내 오징어 사진을 몇 장 찍는다. 할머니는 모래에 떨어진 오징어 다리를 몇 개 골라 옆에 있는 갈매기에게 던져주신다. “거기서 뭐 보고 있노? 여기 와서 이거나 먹어라.” 갈매기가 할머니 말을 들어서인지, 냄새를 맡아서인지, 종종걸음으로 걸어온다.바닷가의 저녁은 도시보다 좀 이르다. 뒤돌아본 바닷가에는 어느새 저만큼이나 내려온 노을이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흩트리고 있었다.

1. 늦은 가을을 맞이한 불영사는 색색의 단풍으로 조화롭게 물들어 있었다. 2. 불영계곡으로 오르는 길은 굽이굽이 꽤 멀리까지 이어진다. 그 길의 초입에서만난 작은 오솔길. 3. 울진 붉은 대게를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붉은 대게 축제’를찾는 것도 좋을 듯.

울진에 왔으니 대게를 먹어야지

하고 벼르던 참이었다. 내비게이션에 후포항 선착장을 찍고 들어서는 골목에서는 간판 구경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샤넬 미용실, 청사초롱 분식, 금잔디 의상실, 돼지궁뎅이, 피렌체 레스토랑, 자유미인 헤어샵을 소리 내어 읽다 보니 금방 목적지에 도착했다. 예상한 것처럼 수많은 대게집이 한 줄로 늘어서 있다. 울진 대게는 12월부터 4~5월까지가 제철이라 아직은 붉은 대게가 대부분이다. 집집마다 커다란 어항 안에 붉은 대게 수십 마리, 아니 수백 마리가 겹겹이 쌓여 있다. 가장 가까운 집으로 걸어가 어항 안의 빨갛고 큼지막한,등껍질에 반질반질한 윤기가 흐르는 대게를 보며 ‘맛있겠다’라고 혼잣말을 내뱉었다. 자기를 쳐다보며 얼마나 끔찍한 말을 내뱉고 있는지도 모르고 아까부터 같은 속도로 눈만 깜빡이고 있다. “저 짝에 큰 놈은 2만원부터, 요짝에 작은 놈은 만원부터, 뭘로 할랑겨?” 어항 앞에 딱 붙어 있는 모습이 답답했는지 가게 주인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조금의 고민도 없이 “큰 놈으로 주세요”라고 답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저짝’에 있는 커다란 게를 손으로 잡아 올리더니 커다란 솥 안으로 밀어 넣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으니 소라와 시금치, 땅콩 등 밑반찬을 차려낸다. 십분 전 솥뚜껑 안에서 생을 마감한 붉은 대게 4마리도 상 위에 올랐다. 가위로 가장 실해 보이는 다리를 잘라내니 꽉 찬 속살이 드러난다. 대게 앞에는 보통 ‘영덕’이 붙는데 울진 사람들은 그리 불리는 것을 조금 억울해한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탓에 동해안에서 잡은 대게는 영덕에 집산해 내륙으로 옮겨졌고 자연스럽게 대게 앞에 ‘영덕’이 붙었다. 울진 앞바다에 있는 왕돌초라는 거대한 암초에서 자란 대게야말로 알짜라 할 수 있다고. “대게는 크기보다 살이 얼마나 단단히 들어차 있는가가 중요해. 지아무리 커도 안에 물이 차 있으면 맛이 없어.” 옆에서 게를 손질해주시던 아주머니가 게를 고르는 방법까지 일러준다. “배 부분이 빨갛고 배를 눌렀을 때 물이 안 나오면 90%는 성공한 거여.” 다리와 몸통 안의 하얀 속살을 비우고 나니 게딱지 안에 밥을 비벼주신다. 매운탕과 함께 게딱지 비빔밥까지 깨끗이 비웠다.

천축산을 끼고 흐르는 불영계곡은

골짜기로 오를수록 격정적으로 휘어진다. 길 아래로 80m에 이르는 절벽을 보기 위해서 몇 번이고 차에서 내려 철장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곳에 기대서 바라보다 보면 이곳이 설악산 천불동계곡, 지리산 칠선계곡과 함께 3대 계곡으로 불리는 이유가 명백해진다. 천축산 전체에는 물론, 흰색 화강암 절벽 위에까지 소나무가 뿌리를 박고 섰다. 불영사계곡 휴게소부터 불영사까지의 경치는 특히 빼어나다. <대동여지도>에서는 이곳을 비단 금 자를 써서 ‘금계천’이라 불렀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봄이나 겨울에나 지금처럼 늦은 가을에나 늘 이렇게 입이 떡하니 벌어지는 풍경이었던 거다. 입장권을 끊고 불영사 대웅전 앞마당까지 걸었다. 소나무와 잣나무, 단풍나무, 밤나무가 순서 없이 늘어서 있다. 구룡교를 건너면서부터 나타나는 고목 숲길은 불영사의 텃밭까지 이어진다. 불영사는 불영사 계곡에 안겨 있다. 연못에 부처님의 그림자가 드리운다고 해서 ‘불영사’라 불리는 이곳은 비구니들이 참선을 하는 사찰이다. 깊숙이 들어서니 빗자루로 마당을 쓸거나 살금살금 발걸음을 옮기는 비구니의 모습이 보인다. 부처님 그림자가 비치는 연못을 지나면 대웅보전이 눈에 들어온다. 특이하게도 돌거북 조각 한 쌍이 기단을 받치고 있는데, 불영사가 있는 자리가 화산이라 불기운을 누르기 위해서라 한다. 늦은 가을의 산사는 놀라울 만큼 고요하고 평화롭다. 마치 바깥세상과는 완전하게 단절된 작은 마을 같다. 빛바랜 기와와 나직한 담장을 올려다보며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 이곳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금강소나무숲길 체험하기

금강소나무숲길은 미리 예약한 인원에 한해 탐방할 수 있는 ‘예약탐방가이드제’를 운영하고있기 때문에 사전 예약은 필수다. 오전 9시에 해설사와 함께 출발하므로 두천리 마을 농가에서 민박을 하는 편이 좋다. 1인 1박의 비용은 1만원으로 든든한 아침 식사까지 준비해준다. 자연에 최소한의 흔적을 남기는 생태관광으로 진정한 의미의 책임여행을 경험할 수 있다. www.uljintrail.or.kr

    에디터
    조소영
    포토그래퍼
    안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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