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접어들 때에

참 우주적으로 우연이다.

참 우주적으로 우연이다. 골목을 돌아 당신과 내가 마주치는 풍경이 그렇다. 우리는 타인으로 단지 스쳐가기만 할 뿐이지만, 이렇게 넓은 우주, 이렇게 많은 장소, 그렇게 많은 시간에 우린 함께 있었다. 삼선동, 옥수동, 길음동 등 서울의 골목을 담는 작가 김재현은 골목에서 만나는 ‘뮤트(Mute)’를 사랑한다. 좁은 골목길의 계단, 그늘지고 습한 담벼락, 녹슨 철문을 응시한다. 시간과 더불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골목길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똑같이 골목을 사랑했던 프랑스의 사진작가 윌리로니스(Willy Ronis)는 1910년에 태어나 2년 전 세상을 떠났다. 꼭 한 세기를 지켜본 그의 말년의 얼굴은 동양인에 가까워 보였다. 생전의 그는 아름다움은 길위에 있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나는 인생을 따라 움직였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을 사랑한다.” 윌리 로니스의 사진과 에세이를 담은 <그날들>은 그만큼 따뜻한 사진집이다. 김재현의 사진전은 11월 5일부터 12월 3일까지 한미사진미술관, 출판사 이봄이 펴낸 <그날들>은 지금 서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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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처 에디터 / 허윤선
    포토그래퍼
    Courtesy of Hanmi Museum, Munhakdong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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