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 없는 미식 여행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자꾸 걸어나가면 온 세상 사람들을 다 만날 수 있을거다. 하긴, 음식만 먹을 거라면 지구를 한 바퀴 다 돌 필요도 없다. 스칸디나비아 반도부터 아프리카까지 모두 서울에 있으니까. 서울에서 훔쳐 본 여덟 나라의 상차림.
지중해 | 세븐블레스
가로수길에서 유일하게 제대로된 지중해 음식을 선보여온 세븐블레스가 지난 9월 5일 이사를 했다. 주방을 넓혀 좀 더 제대로 된 음식을 선보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다. 물론 대표 메뉴는 여전하다. 우선 그리스 페타 샐러드부터 보자. 페타 치즈에 토마토, 오이, 블랙올리브에다가 로메인과 바질, 요거트 드레싱을 뿌렸으니 몸에 좋다는 것은 다 들어간 셈이다. 피타 빵과 함께 나오는 이 건강한 메뉴는 보기에도 푸짐하다. 모로코의 전통 요리인 타진(Tajin)은 같은 이름의 원형 도자기냄비에 치킨, 감자 등 재료를 넣고 가열하는 찜요리를 가리킨다. 파스타 중 가장 작은 씨앗 모양의 파스타인 쿠스쿠스(Cous Cous)가 함께 나오니 쌀밥 먹듯 먹으면 된다. 전용 그라인더로 갈아낸 원두를 직화로 우려낸 그리스 커피는 터키에서 기원한 것으로 원두가 씹히는 것이 특징. 에스프레소 보다도 쓰다. 아직 지중해 요리와 친하지 않은 친구와 함께 간다면 파스타 메뉴가 새로 생겼다는 사실을 귀띔해주자.
몽골 | 울란바토르
해발 1,300미터에 자리한 울란바토르는 몽골의 수도다. 사막과 고원이 끝없이 펼쳐진 땅을 달렸을 몽골의 유목민들은 양, 소, 돼지, 낙타의 고기를 먹고 염소의 젖을 짜서 배를 채웠다. 몽골 음식의 대부분이 고기류인 것은 그 때문이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주변, 헬로apm을 길 하나 건넌 자리에는 낯설게도 ‘몽골타워’라고 부르는 빌딩이 있다. 식료퓸 판매, 환전, 핸드폰 업무 등 한국에 거주하는 몽골 사람들을 위한 모든 시설이 들어앉은 이 건물 안에 있는 몽골 음식 전문점의 이름은 울란바토르. 몽골의 전통 수프인 반탄(Bantan)과 군만두와 비슷한 호쇼르(Khuushuur)를 먹기 위해 찾아오는 몽골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감자 샐러드와 콜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는 젊은이들도 보인다. ‘비후스텍’이라 써있는 비프 스테이크와 찐만두, 군만두 등 평범한 메뉴도 많지만 기왕 온것 기름기가 동동 떠다니는 반탄과 만두우유차를 후루룩 들이켜며 게르에 앉아 있는 기분을 내자.
페루 | 쿠스코
바야흐로 1997년, 한국 최초의 페루전문여행사 ‘비바라틴’의 문을 연 쿠스코의 주인은 아마 페루를 가장 잘 아는 한국 사람 중 한 명일 거다. 옛 잉카제국의 수도인 쿠스코에서 이름을 가져온 이곳은 국내 유일의 페루 레스토랑. 페루에서 온 주방장이 정통 페루 요리를 차려준다. 어린 양고기만 사용한다는 쿠스코의 양갈비는 누린내가 전혀 나지 않아 깔끔하다. 페루에서 덮밥요리를 가리키는 살타도(Saltado), 으깨어 삶은 감자 속을 고기와 야채로 채워 튀겨낸 페루식 감자 크로켓인 파파레예나(Papa Rellena), 계핏가루와 보라색 옥수수 가루 등으로 만드는 전통 디저트까지 페루의 식탁을 그대로 옮겨온 쿠스코의 메인 요리는 뭐니 뭐니 해도 세비체(Cebiche). 오징어, 새우 등의 익히지 않은 해산물에 야채와 레몬즙을 섞고, 우유를 첨가한 세비체는 페루의 국민 음식이다. 러시아 사람들 뺨치게 독한 술을 마시는 페루 사람들은 세비체를 전채로도, 해장용으로도 먹는다니 그 사랑을 알 만하다.
스위스 | 레만호
스위스와 프랑스의 국경이 맞닿는 제네바에 자리한 호수, 레만호. 이곳에 20년 넘게 머무른 찰리 채플린은 이 호수에게 ‘석양의 호수, 눈 덮인 산, 파란 잔디가 행복의 한가운데로 이끌었다’고 찬사를 바친 바 있다. 비록 호수 대신에 경리단길을 품고 있지만, 레만호는 스위스의 펜션 격인 샬레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닌 주인이 레만호를 차린 이유는 한국에서 맛볼 수 없는 스위스 전통 음식 라클레트(Raclette)를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라클레트 오븐에 꼬치와 치즈를 올려 구운 후, 녹아 내린 치즈를 꼬치와 함께 먹는 라클레트는 퐁듀와 비슷한 음식이다. 원래는 감자와 치즈만 먹는게 정석이지만 아직까지 라클레트가 낯선 한국 사람들을 위해 호박, 버섯, 토마토부터 소시지, 닭고기, 소고기까지 있는 모둠 꼬치 메뉴를 만들게 되었다고. 스위스 치즈의 진한 풍미를 양 볼 가득 품고 느끼다 보면 레스토랑의 문 밖에 초원이 펼쳐져 있을 것만 같다.
우즈베키스탄 | 사마르칸트
고대 실크로드의 중심지라는 화려한 역사를 자랑하는 사마르칸트는 지금까지도 수도인 타슈켄트와 맞먹는 우즈베키스탄 제 2의 도시다. 우즈베키스탄 남자 둘이 깔끔하게 운영한다고 입소문난 사마르칸트의 실내는 단출하다. 벽에 걸린 전통의상인 치아판을 제외하고 우즈베키스탄의 정취를 전하는 것이 바로 음식. 2인부터 주문 가능한 양고기 꼬치 샤슬릭(Shaslyk)은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흔하게 먹는 요리 중 하나. 향신료로 간을 한 양고기를 야채와 함께 굽는데 곁들이는 양파와 향신료가 특유의 냄새를 잡아준다. 걸쭉한 국물 맛을 느끼고 싶다면 야채 칼국수나 수프를 주문할 것. 라그만(Lagman)이라 부르는 야채 칼국수는 당근과 감자가 듬뿍 들어간 것이 고기국물을 제외하면 우리의 칼국수와 빼도 박도 못하게 닮았다. 세모꼴의 모양이 특이한 우즈베키스탄의 만두 사모사(Samosa)도 인기 메뉴. 피클 역할을 하는 새콤한 야채 무침이 입맛을 돋운다.
북유럽 | 에이팟
지난 4월 홍대에 문을 연 에이팟의 오너, 황선진 셰프의 경력은 화려하다.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순위의 1, 2위를 다투는 노마와 엘불리에서 근무했다니 말 다한 셈이다. 하지만 정작 그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화려한 분자요리의 기술도, 근무한 레스토랑의 명성도 아니다. 100% 로컬 식재료를 사용하기 위해 아침이면 허브와 버섯을 찾아 다니던 노마와 같은 북유럽 레스토랑의 ‘건강한 음식’을기본으로 여기는 태도다. 계단과 창문, 옥상까지 화분으로 가득한 에이 팟은 직접 재배한 허브를 케이크와 샌드위치에 장식하고 에이드와 피클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긴 겨울을 나기 위해 채소의 뿌리 조리법이 발달하고 절임 요리가 주를 이루는 북유럽에서 그녀가 가져온 습관이다. 소금에 절인 연어를 야채와 함께 먹는 연어 글라블락스(Salmon Glavlax)와 스웨덴 사람들의 일상적으로 먹는 새우 샌드위치인 토스트 스카겐(Toast Skegen)이 북유럽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는 메뉴다.
아프리카 | 해피홈 레스토랑
이태원 소방서 뒷골목은 나이지리아 사람들의 구역이다.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음식이 아닌, 아프리카 음식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해피홈 레스토랑. 바비큐 그릴 같은 거창한 음식보다는 간단히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일상적인 아프리카 요리가 주를 이룬다. 나이지리아와 가나, 토고 등 서아프리카에서 자주 먹는 졸로프 라이스(Jollof Rice)의 뜻은 ‘한 냄비’. 토마토와 양파, 그리고 생강 등의 향신료로 맛을 냈지만 향은 강하지 않은 편. 흰 찐빵처럼 생긴 후후(Fufu)는 옥수수 같은 녹말 성분이 든 야채를 물에 끓여 만든 일종의 빵으로 조금씩 떼서 함께 나오는 수프나 다른 요리와 함께 먹는다. 보기보다 끈적거리는데 아프리카 음식은 원래 손으로 먹는 것이 기본인지라 손을 씻으며 먹을 수 있는 분홍색 물그릇이 함께 나오니 걱정 말길. 단단하고 커다란 바나나인 플랜틴(Plantain)을 튀긴 프라이드 플랜틴은 고구마 튀김과 비슷한 식감으로 주전부리처럼 먹기 좋다.
터키 | 이스탄불
1997년에 문을 연 가게가 지금까지 존속하는 일이 홍대와 가로수길에서 가능할까? 1997년 의정부에서 시작해 2004년 지금의 대학로에자리 잡은 이스탄불은 국내 최초의 터키요리 전문점이다. 케밥이나 난이라는 말이 친숙해지기 오래전부터 터키 요리를 선보인 곳답게, 오랜 시간 쌓인 터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터키의 고급호텔과 레스토랑 수준의 요리를 목표로 하는 이스탄불의 요리는 터키 대사관의 입맛을 사로잡았을 정도. 고기나 해산물을 피망과 양파, 송이버섯 등의 야채와 함께 프라이팬에서 한 번, 오븐에서 한번 더 요리한 터키식 뚝배기 요리인 귀외치(Guvec), 담백한 터키식 피자인 피데(Pide) 등 아직은 낯선 이름의 터키 음식이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터키 동부의 아다나의 대표적인 요리인 아다나 케밥, 그리고 치킨 시스케밥(Chicken Sis Kebap)은 한국 사람이 좋아할 만한 꼬치 음식으로 닭, 소고기, 양 세 종류로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형제의 나라 터키의 맛이라 그런지 괜히 익숙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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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이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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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