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컬러들의 재탄생
대담한 에메랄드빛, 라군 블루와 자줏빛 레드 같은 1970년대를 풍미한 컬러들. 이들이 스모키 아이 메이크업으로 재해석되어 지금 가장 매력적인 스펙트럼을 펼쳐낸다.
70년대에는 참 바빴다. 개인적으로는 태어나느라 바빴고, 패션계는 60년대의 에스닉 스타일, 사이키델릭한 비비드 메이크업, 보디 아트, 팝아트, 플라워 아트가 진보해 펄 피그먼트,브론즈, 글로시 립 같은 반짝반짝 빛나는 메이크업과 함께 블루, 레드, 그린 같은 컬러 스모키를 함께 선보여야 했으니 상당히 바빴을 거다. 2년 전쯤 서울을 총책임지고 있는 한 공무원이 처음으로 예뻐 보였던 적이 있는데, 바로 사진가 사라 문 전시회 개막식에 나타났을 때였다. 서울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행사가 예정되어 있고 그 시간에 택할 수 행사는 단 하나인데 그가 사라 문 전시를 택한 사건(!)은 아직도 신기한 대목이다. 가끔 70년대를 주름 잡은 사진가인 기 부르댕과 헬무트 뉴튼을 놓고 누가 더‘ 난 사람’이었을까 생각해본다. 70년대 여성의 자유분방함과 높은 위상을 예술성 짙은 상업적인 사진을 이용해 대중에게 널리전파한 두 사진가. 그러나 역시 그 시대의 구도감과 컬러감을 아름답게 대변한 부분의 승자는 사라 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70년대 컬러 스모키의 트렌드가 돌아오니 그녀가 더 존경스러워진다.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스모키 기법과 묘하고 다채로운 컬러감을 합친 이번 시즌 컬러 스모키 메이크업 패턴을 보고 있자니 사라 문을 떠올리지 않고는 도저히 못배기겠다. 특히 디자이너 후세인 살랴얀의 청록색 펠트 드레스를 찍은 그녀의 사진이 눈에 아른거린다. 인상주의 화가 드가가 그린 밤의 무도회를 연상시킬 정도로 매혹적이었던 그 사진의 색감 때문이다. 물론 프랑스의 뷰티 매거진 <보트르 보테>에 헬무트 뉴튼의 퍼플 스모키 화보나 유독 컬러 스모키 메이크업을 많이 남긴 여배우 마리사 베렌슨의 화보 등 주옥같은 사진들도 지금 이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있지만 아무래도 사라 문의 스펙트럼을 덮기에는 역부족이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번 시즌 많은 패션 디자이너가 일제히 70년대를 그리워하는 바람에 메이크업 트렌드의 판도가 재미있게 흘러가고 있다“. 깊은 숲을 연상시키는 녹색 아이섀도와 많은 양의 바셀린을 눈두덩에 발랐어요. 매우 반짝이는 화장법이죠. 영감은 1970년대 글램 룩, 특히 안젤리카 휴스턴, 도나 미첼 등과 같은 197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들에게서 얻었습니다. 이러한 스타일을 보다 마크 제이콥스 식으로 해석하고 현대적으로 적용하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붉은빛의 입술 화장은 완벽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마크 제이콥스 쇼의 메이크업을 총 책임진 프랑수아 나스의 말이다. 녹색뿐만이 아니다. 오스카 드 라 렌타 쇼에서의 구치 웨스트먼은 말한다. “꼭 컬러 스모키 화장법을 시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좀 대담한이 에메랄드빛 아이섀도를 골랐습니다. 이 제품은 맥의 베네치아 블루 색상이에요. 그리고 아주 정교한 색조화장이 가능하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다이앤 켄덜 역시 제이슨 우 패션쇼의 메인 메이크업으로 화려한색감의 1970년대 풍 스모키 화장법을 창조했다. 대다수의 모델이 퍼플과 푸시아 핑크로 메이크업을 했고, 몇몇은 에메랄드빛 그린과 골드 컬러를 입었다. 다이앤 켄덜은 이 메이크업을 위해 제이슨 우의 신규 메이크업 제품 라인인 수프림 오프레 섀도우의 제품을 사용했는데, 이 제품들은 11월 중 중국 전역의 백화점에 출시될 예정이기도 하다. 그녀는 캐롤리나 헤레라 쇼의 메이크업도 맡았는데 기자에게 놀랄 만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국 전통의상과 꽃무늬, 그리고 여러 가지 꽃을 찍은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벽돌과 같은 붉은 색조의 눈화장을 창조하게 되었어요”라고. 세상에! 이번 시즌 스모키 컬러의 유행에 한국도 한몫 했다니. 으쓱한 순간이었다. 물론 이것은 뜬금없는 메이크업이 아니다. 팻 맥그래스 역시 니나 리치의 쇼에서 대담한 벽돌색의 붉은 색조에 눈 옆쪽과 가장자리에 밝은 분홍색 하이라이트를 준 스모키 화장으로 해석해냈다. 그리고 ‘삶의 기쁨’이라고 이름 붙였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쇼의 후일담도 재미있다. 아르마니가 매우 강렬한 화장을 원했지만, 브랜드가 아르마니인 만큼 절제되고 아름다워야 했다. 그래서 메이크업 아티스트 린다 칸텔로가 사용한 아이섀도는 미드나잇 블루 색상이었다. 좀 새로운 방식의 스모키 화장을 만들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는데 이 딥 블루 진 같은 컬러의 아이섀도를 눈가 위쪽뿐 아니라 아래쪽에도 칠했고 결과는 꽤나 강렬하고 고혹적이었다.
이 강렬함을 쉽고 예쁘게 가질 수 있는 것들은 넘쳐난다. 블루, 레몬, 오렌지, 브라운 컬러로이루어진 겔랑의 테라 인디고 4 쉐이드 아이섀도우와 블루 섀도인 샤넬의 레까트르 옹브르라공, 쿠튀르적인 컬러감을 선보이며 스모키 디자인의 계보를 잇는 디올 5꿀뢰르 그린디자인, 자줏빛 브라운의 나스 싱글 섀도 뉴욕과 차가운 초록빛 광택의 그린을 만들어낸 도곤 듀오 아이섀도우, 이탈리아 지중해 지역의 강렬한 색감과 공예품, 보석에서 영감을 받아 출시한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아이즈 온 파이어의 12가지 컬러 모두 풍부한 색감과 뛰어난 발색효과로‘ 비비드 트렌드’와는 다른 양상의 컬러 스모키 메이크업을 조력하는 아이템이 될 것이다. 조금 더 강렬하고 싶다면 블러셔, 립스틱, 아이섀도 등 멀티 컬러 제품으로 사용할 수있는 메이크업 포에버의 아쿠아 크림의 컬러감으로 화룡점정을 찍을 수도 있다. 혹은 레드 브라운을 눈가에 둘러 그리고 검은 마스카라를 더한 다음 눈썹 중앙에 작은 인조눈썹을 붙이면 70년대 컬러 스모키의 다른 진면목을 과시할 수 있다. 누군가 도발적인 이 컬러들에 눈살을 찌푸린다면 트렌드를 빌려 당당히 말해도 좋다“. 내가 어떤 컬러를 선택하든 상관하지 말아다오. 빛나는 여름이니까!”
- 에디터
- 뷰티 에디터 / 강미선
- 포토그래퍼
- kim tae sun, Photo / KIM WESTON ARNOLD, 안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