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에 열광
2009년 Mnet <슈퍼스타K> 첫 시즌 출발당시,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오디션 프로그램이 꽃을 피울수 있을지 의심의 눈초리가 꽤 많았다.
2009년 Mnet <슈퍼스타 K> 첫 시즌 출발 당시, 과연 우리 나라에서도 오디션 프로그램이 꽃을 피울 수 있을지 의심의 눈초리가 꽤 많았다. 도전자에게는 실력 있는 전문가에게 평가받을 기회를, 방송사로서는 뛰어난 인재를 찾아낼 기회가 되어줄, 서로가 ‘윈윈’하는 프로그램이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그간 그다지 인기가 없었던 게 사실이니까. 물론 오락 프로그램 안에 이따금 단편적으로 존재하긴 했어도 연속성을 갖춘 프로그램은 보기 어려웠다. 실제로 KBS <서바이벌 스타오디션>(2006)이라든지 MBC <쇼바이벌>(2007) 등이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채 스러진 이력도 있다. 그러나 <슈퍼스타 K>는 그 같은 우려를 딛고 시즌 1은 70만 명, 2010년의 시즌 2는 그 두배의 인원이 도전하는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었고, 케이블 채널로는 드물게 두자릿수 시청률을 올리며 성공가도를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성공을 발판으로 MBC의 <위대한 탄생>과 <나는 가수다>, <신입사원>, tvN의 <오페라 스타>를 비롯한 여러 오디션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선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열풍의 비결을 두고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는데, 서바이벌의 재미를 우리네 정서에 맞게 잘 우려냈다는 점이 가장 큰 인기 비결이 아닐까 싶다. MC와 심사위원의 구성, 여러 단계의 예선을 거친 결선, ARS를 통한 투표로 탈락자를 가리는 방식까지 외국 프로그램의 포맷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지만 내용에서만큼은 차별화되는 부분이 확연하기에 시청자들이 주목하게 된 것이 아니겠나. 모양새는 외국 프로그램일지언정 우리 나라에 맞게 한국형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거듭났다는 얘기다.
역시 뭐니뭐니해도 일반인의 대거 참여가 주효했지 싶은데 생생한 실제 사연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다 보니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버금갈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촌철살인의 심사평까지 더해져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장면이 매번 빚어지고 있다. 물론 감동을 강요하는 게 아니냐며 마뜩잖아하는 시각도 있는 게 사실이다. 실력보다 사연에 관심이 쏠리는 바람에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라는 시청자도 있고, 인정에 흔들리는 공정치 못한 심사에 불만을 갖는 시청자도 있다. 하지만 결선에서 시청자들의 문자 투표가 시작되자 벌어진 기현상만 봐도 오디션 프로그램의 필수 조건이 ‘정(情)’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실력이 빼어난 도전자에게 투표하는 게 아니라 탈락위기의 도전자에게 투표하는 시청자들이 생겨났으니 말이다. 예를 들어 <위대한 탄생>생방송 결승 첫 무대에서 심사위원점수가 가장 낮게 나온 손진영이 심사위원점수에서는 한참 우위였던 권리세를 밀어내고 합격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나 역시 탈락위기인 출연자를 구하고 싶어하는 심정에 공감한다. LA지역 예선 때부터 눈여겨 보아왔던 참가자 데이비드 오의 음정이 다소 불안하게 느껴지자마자 이내 그에게 한표를 던지고 말았으니까. 예선부터 결선까지 얼마나 많은 갈등과 위기를 겪어 왔는지 익히 아는지라 출연자가 이젠 남 같지 않아진 것이다. 아마 심사위원들의 마음도 다르지 않을 게다. 오죽하면 아나운서 오디션 프로그램 MBC <신입사원>의 냉정하기 짝이 없었던 심사위원들이 아나운서를 꿈꾸는 도전자들의 절실함에 마음이 움직여 더 이상은 야멸찬 질문을 하기 어렵다며 난감해 했겠는가. 앞서 <슈퍼스타 K> 시즌 2의 심사를 맡았던 엄정화는 윤종신과 이승철과 달리 시종일관 칭찬을 쏟아내며 눈물을 글썽거리는 모습을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회가 거듭되면서도 전자와 심사위원, 그리고 시청자 사이에 두터운 정이 쌓여 간다는 것, 그게 바로 우리 나라 오디션 프로그램의 매력이라 하겠다.
그러나 가장 큰 인기 비결은 원석과도 같은 도전자의 발견이다. 감탄할 만한 실력과 지치지 않는 열정, 그리고 근성을 갖춘 도전자들의 등장이 시청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다. 판으로 찍어낸 것처럼 비슷한 춤과 노래를 부르는 일명 ‘기획사용 아이돌’에 염증을 느낀 시청자에게 바닥에 앉아 통기타를 치며 자작곡을 부르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준다. 내가 문자 투표로 직접 심사에 동참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시청자를 흥분시킨다. 마침 스마트폰 전성시대라는 점도 오디션 프로그램의 열풍에 큰 몫을 했지 싶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날이면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비롯한 각 소셜네트워크의 타임 라인은 각자 지지하는 도전자를 편드는 내용으로도 배가 되 곤 하니까. 굳이 TV 앞에 앉아 있지 않아도 현재 생방송 상황을 훤히 꿰뚫게 된 셈이다. 출연자끼리 죽기살기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게 아니라 서로 격려하고 따뜻하게 포용하는 살가운 사이가 되는 걸 보면, 다소 억울한 탈락이지 싶어도 웃으며 결과에 흔쾌히 승복하는 걸 보면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저 서바이벌 리얼리티가 아니라 성장드라마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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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글 | 정석희 방송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