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민과 한지민의 농밀한 순간
영화 <조선명탐정>의 두 명의 명탐정은 김명민과 오달수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캐릭터를 꼽으라면 김명민과 또 한 사람, 바로 한지민이다. 사건을 파헤치는 김명민과 사건의 열쇠를 쥔 한지민의 스파이 게임이 이야기의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파격 변신으로 세간의 화제를 모으고 있는 두 배우의 파트너십과 기싸움이 궁금했다.
김명민과 한지민의 만남이 세기의 만남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연기 잘하는 두 배우, 김명민과 한지민의 캐스팅은 영화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이하 조선명탐정)>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를 낳는다. 가끔은 재미없는 시나리오를 매력적인 배우가 구해내는 경우도 있으니까. 가깝게는 <쩨쩨한 로맨스>가 그렇지 않았나. 호흡이 잘 맞는 커플의 연기는 내러티브와 상관없이 관객을 들뜨게 하니, 김명민과 한지민이 어떤 그림을 그려낼지, 은근히 기대가 되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그동안 한국 영화계에 없었던 ‘명탐정’ 캐릭터를 다룬 한국형 스릴러 코미디 영화다. 한국판 셜록 홈스인 셈. 셜록 홈스에게 그가 꿈에도 잊지 못하는 여자 ‘아이린’이 있었듯, 제임스 본드에게 본드걸이 있듯, ‘명탐정’에게도 아군인지 적군인지 헷갈리는 팜므파탈 ‘한객주’가 등장한다. 그녀가 바로 한지민이다. 정조의 밀명을 받아 박봉달 살인사건을 비롯해 적성 각시투구꽃 마을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사건을 파헤치려는 ‘명탐정’과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한객주’의 밀고 당기는 신경전은 이 영화의 중요한 대목. 그러니 김명민과 한지민의 기싸움이 얼마나 치열하고, 두 사람의 파트너십이 얼마나 농밀한지에 따라 영화의 흥행 성패가 갈린다고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한지민이 <조선명탐정>을 선택하는 데 김명민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구성이 탄탄한 시나리오만큼이나 믿음이 갔다.
“사실 사극이라고 해서 좀 망설였어요. <이산> <경성스캔들> 등 시대극에 계속 출연하다 보니, 현대극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명탐정 역이 김명민 선배님이라고 하니, 한번 해보자 싶었죠. 오달수 선배님도 캐스팅된 상태였는데, 두 분이 그려낼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니 재밌겠다는 믿음이 생겼거든요.”
10살 차이가 나는 김명민에게 꼬박꼬박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한지민이 그를 깍듯이 우러르는 데 반해 김명민은 그녀를 막내 여동생을 대하듯 끊임없이 장난을 친다.
“저도 한지민 씨가 한객주 역을 맡게 될 줄 알고 미리 <조선명탐정>을 선택했습니다.”
“에이, 선배님. 또 그러신다!”
“한지민 씨가 ‘한객주’ 역에 캐스팅됐을 때, 솔직히 의외였어요.”
“이건 아닌데, 그랬던 거 아니에요?”
한지민은 김명민의 유머에 적극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촬영장에서 김명민이 얼마나 유쾌했는지, 얼마나 자주 농담을 던졌는지, 촬영장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절로 느껴졌다. 김명민의 얘기가 이어졌다.
“사실 저는 배우에 대해 잘 몰라요. 막상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모르는 거 아닐까요. 그 배우가 보여준 연기,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는 겉모습으로 그배우를 판단하게 되잖아요. 관객들도 그렇지만, 배우들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이미지 캐스팅을 하는 거고요. 이런 캐릭터에는 이런 배우가 어울리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한객주’ 역에 한지민 씨가 캐스팅됐다는 얘기를 듣고, ‘어? 어울릴까?’ 싶긴 했어요. 감독님의 캐스팅에 놀랐죠. 한지민 씨의 섹시한 이미지를 상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한지민씨가 객주로 완벽하게 변신했을 때, 다시 한번 놀랐어요, ‘이 모습이 실제 네 모습이 아니야?’라고 물었을 정도로 ‘한객주’의 팜므파탈 캐릭터를 제대로 표현해준 것 같아요. 촬영을 모두 마치고 나서 보니 청초하면서도 섹시한 캐릭터, 두 가지의 다양한 모습을 누가 과연 이토록 잘 표현해낼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예요. 특히 명탐정과 한객주가 독대하는 신이있어요. 거기서 저는 완전히 기가 팍 죽었죠! 지민 씨에게 이런 면이? 아마도 다들 깜짝 놀라실 거예요.”
“‘명탐정’이 기가 죽었어야 되는 신이에요. 기죽는 연기조차 너무 잘하시는 거죠. 제가 감히 누구의 연기를 잘한다, 못한다 평가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지만, 명민 선배님은 정말 흠잡을 데 없는 연기를….”
“이번에 알았을 거예요. 흠잡을 데가 있구나.”
“뭐예요, 선배님! 아니에요!”
‘연기 잘하는 배우’로 공인받은 김명민은 한지민을 입이 마르게 칭찬했고 한지민은 쑥스러워하면서도 역시 김명민을 치켜세우기에 바빴다. 찰떡궁합. 핑퐁게임을 하듯이 칭찬일색의 대화가 지겨워진 나는 프로들의 기싸움에 대해 슬쩍 얘기를 꺼냈다. 물고 물리는, 뺏고 빼앗기는, 아니 빼앗기지 않으려는 스파이 게임의 역할을 맡은 두 사람의 기싸움에 대해서기대하는 바가 컸으니까. 그런데 김명민의 말은 좀 의외였다.
“라이벌의 캐릭터와 부딪치는 신이 많으면 상대배우와 기싸움이 생길 수 있어요. 그런데 ‘명탐정’과 ‘한객주’는 사실 그런 관계는 아니에요. 처음에 한두 신은 기싸움을 하지만, 나중에는 조력자의 관계가 되죠. 이런 스토리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걸 알고 연기를 하는 건 안 되는 일이지만, 상대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눈에 불을 켜고 기싸움을 하게 되진 않아요. 배우로서의 기싸움도 마찬가지죠. 어떤 신을 찍을때 ‘이 신 네가 따먹어야지’라고 말씀하시는 PD님과 감독님이 있는데, 저는 그게 이해가 안 가요. 신이 먹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저보다 연륜이 많고 에너지가 많고 연기력이 출중한 배우를 만나면 ‘아, 저 배우에게 죽지 말아야지‘ ‘이 신 잃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 저분과 연기하면 나는 연기가 절로 늘겠구나‘ ‘아, 정말 잘됐다. 이 신, 연기하기 힘들었는데, 저분의 연기에 얹혀서 갈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죠. 운동도 마찬가지잖아요. 나보다 잘하는 사람과 한 편이 되어 올림픽에 나가면 든든하잖아요. 그런데 신인들 중에 잘못 생각하는 배우가 몇몇 있는 것 같아요. 한 신 안에서 누구랑 만나느냐에 따라 내가 죽고, 네가 살고, 그건 아니거든요. 그 신 안에 같이 들어간 이상 둘은 같은 배를 타고 가는 거예요. 저 같으면 저보다 잘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나가서 싸울 때 누구든, 어떤 것이든 이길 수 있잖아요. 잘하는 사람하고 해야 늘어요. 운동도, 연기도.”
김명민의 스위치가 켜졌다. 짧게 짧게 유머 섞인 잽을 날리다가 ‘기싸움’이라는 단어를 통해 평소 연기관이 쏟아져 나오면서 몇몇 신인 연기자들에게 우려의 훅을 날렸다. 오달수와 김명수의 촬영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김명민과 함께 촬영하면서 한지민도 영화 연기를 대하는 마음이 부쩍 달라졌다.
“사실 영화는 여러 신을 찍잖아요. 그러니까 항상 다음 신이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연기가 좀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한 번 더 찍을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명민 선배님과 작업하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OK가 단번에 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 제가 ‘한 번만 다시 찍고 싶어요’라고 말하긴 부끄러울 정도였죠. 촬영하기 전에 더 철저히, 더 꼼꼼히 준비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함께 작업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 큰 깨달음이 된 것 같아요. 무엇보다 그게 되게 놀라워요. 쉬는 시간에도 끊임없이 뭔가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만들어내세요. 감독님께 제안하면 그것이 영화에 반영이 되니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한지민과 김명민이 처음부터 이토록 신뢰가 쌓였던 것은 아니다. 이번 영화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 성격은 좋지만 낯은 좀 가리는 편인 한지민에게 진지한 이미지의 김명민은 좀 어려워 보이는 상대였다.
“연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게 상대 배우와의 호흡이잖아요. 특히 저는 상대배우와 친해지지 못하면 눈도 잘 못 쳐다보는 성격이에요. 그런데 한객주는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얘기해야 하는 캐릭터잖아요. 김명민 선배님이 굉장히 어려울 것 같아서 감독님께 어떤 분이시냐 물었죠. ‘의외로’ 편안한 남자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일단 안심했죠. 막상 현장에 갔더니 굉장히 유머러스한 성격인 거예요. 선배님, 다른 현장에서도 이렇게 재밌는 캐릭터세요? 아니면 우리 영화가 재밌는 영화라서, 선배님 캐릭터를 유지하느라 그런 거예요? 워낙 스태프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스태프들 이름 하나하나 다 외우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 주세요.”
“우리가 친해진 건 저 때문이 아니에요. 지민 씨 덕분이죠. 지민 씨가 워낙 성격이 좋잖아요. 살갑고, 잘 웃고, 털털하고. 제가 그러지 좀 말라고 했어요. 여배우는 신비감도 있어야 하고, 거리감도 좀 있어야 하거든요. 사실 너무 허물이 없는 건 안 좋다고 생각해요. 배우는 이미지라는 게 필요하니까요.”
“대본 연습할 때 명민 선배님을 처음 뵈었는데, 저보다 먼저 다가와서 인사해주시더라고요. 연습 끝나고도 ‘지민 씨, 대사 톤이 좋은 것 같아요,라고 먼저 말씀해주셨어요.”
두 배우의 얘기를 듣고 있으니 영화 촬영장에서 김명민과 한지민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촬영장을 쥐락펴락하는 김명민과 그 옆에서 막내 동생처럼 생글생글 웃는 한지민은 감독의 ‘Ready Go’ 소리와 함께 카메라 속으로 빠져들었으리라.
“영화 촬영이 끝난다는 게 아쉬웠어요. 촬영을 좀 더 하면서 김명민 선배님에게 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죠. 다음 영화에서 명민 선배님을 또 만났으면 좋겠어요.”
“내 얼굴 보고 웃지만 않는다면 다음 영화로 멜로도 좋고.”
마지막까지 유머를 날리는 김명민. 사실 그의 유머는 영화 현장의 열정을 더 뜨겁게 달구기 위한 윤활유이다. 그의 치열한 유쾌함과 한지민의 시원한 털털함이 결합되면서 <조선명탐정> 전 스태프들의 파트너십은 더욱 끈끈해졌다. 그리고 김명민과 함께 <불멸이 이순신>을 함께 작업했던 김탁환의 원작 <열녀문의 비밀>이 영화 <조선명탐정>으로 거듭나면서 허당천재 ‘명탐정’과 섹시한 팜므파탈 ‘한객주’ 등 생생하게 살아 있는 캐릭터로 구현된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한 편의 영화로 인해 사람을 얻고, 캐릭터를 얻었으니, 이쯤 되면 영화 흥행과 상관없이 두 배우의 마음속에 이 영화는 성공한 작품이 아닐까.
성격 좋기로 소문이 자자한 배우, 한지민
영화 <조선명탐정>의 개봉을 앞두고, 김명민과 한지민의 파격 변신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대한민국 대표 진지남 김명민이 허당 천재 코믹남으로, 남자들의 로망인 순수녀 한지민이 팜므파탈 섹시녀로 변신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먼저, <조선명탐정>의 제작발표회에서 가슴골이 파인 드레스 패션을 선보여 ‘베이글녀’임을 증명한 한지민. 청초한 얼굴에 아담한 몸매인 줄만 알았더니 의외로 볼륨 있는 몸매의 소유자였던 그녀는 이번 영화에서 관능적인 신비녀 ‘한객주’ 역을 맡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섹시한 모습이다. 특히 한복 저고리 사이로 보이는 가슴골은 남자들의 시선을 고정시켰다.
“‘한객주’를 표현하기 위해 외모부터 바꿨어요. 동그란 눈을 날카롭게 보이기 위해서 눈썹을 길게 빼는 메이크업을 시도했고, 눈썹과 헤어 컬러는 원래 짙은 검은색인데 갈색으로 염색했죠. 밝은 컬러가 좀 더 섹시해보이잖아요. 눈썹도 아래로 처진 편이었는데 아래쪽 눈썹을 뽑고 위쪽의 눈썹을 그려 넣었어요. 명민 선배님이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객주’는 보는 순간 남자가 ‘허걱’할 정도의 외모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그런 여인상을 머릿속에 상상해보라고요.”
그런데 촬영장에서 만난 한지민은 솔직히 섹시하진 않고, 귀여웠다. “남자 친구에게요? 섹시하단 칭찬, 들어봤죠. 그런데 남자 친구가 거짓말한 거 같아요”라고 웃는 그녀. 섹시한 ‘한객주’는 스튜디오에 이미 없다. 소탈하고 털털한 한지민이 옆에서 웃고 있을 뿐이었다. 배우라고 하기엔 너무 성격 좋은 그녀. 오죽하면 김명민이 한지민에게 “여배우의 오라를 갖춰라”고 조언했을까. 요즘 그녀도 ‘일로 만난 사람들과의 경계’에 대해 고민할 때가 종종 있다고. 사람들과 친해지다 보면 종종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오는 몇몇이 꼭 생기게 마련이다.
“사람들과 친해지다 보면 적정선을 지킨다는 게 어렵잖아요. 어떻게 보면 제 친근한 행동이 상대를 지나치게 편안하게 만드는 거니까요.” 사실 한지민은 <조선명탐정>에서 사건의 키 역할을 하지만, 촬영 신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래서 촬영 사이사이 인터벌이 많았고, 그 틈새 시간을 보내다가 촬영에 복귀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뜨문뜨문 촬영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감정 유지도 힘들고요. 게다가 즐거운 촬영장에는 매일 가고 싶잖아요. 이 영화의 촬영장이 그랬어요. 명민 선배님과 달수 선배님의 연기가 너무 멋지고,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으니까요. 촬영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배우로서 배운 게 많아요.”
<조선명탐정>으로 인해 한지민은 연기의 폭이 넓어졌다. 청초하고 귀여운 여자에서 섹시한 여인까지, 그 스펙트럼을 넓히면서 한지민은 조심스럽게 다음 작품에 대한 욕심을 내비쳤다.
“다음 작품은 정말 현대극을 하고 싶어요.”
캐릭터를 창조하는 행위 아티스트, 김명민
국내에서 메소드 연기를 하는 몇 안 되는 배우로 손꼽히는 김명민. 정신과 육체를 한계까지 밀어붙이며 연기를 선보이는 그는 출세작 <하얀거탑>뿐 아니라 영화 데뷔작 <소름>, 최근작 <파괴된 사나이>그리고 20kg를 감량해 화제를 낳았던 영화 <내 사랑 내 곁에>, MBC 연기대상을 거머쥐게 한 <베토벤 바이러스>까지 거의 모든 작품에서 심각하고 진중하고, 때로 오만방자할 정도로 마초스러운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그런 그가 코믹 연기를 부담스럽지 않게 전달할 수 있을까? 어쩐지 김명민은 코믹한 캐릭터마저도 묵직하게 전달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 인터뷰에서 오달수가 김명민에 대해 “과장된 연기에 대해 신념을 가지고 연기해 깜짝 놀랐다”고 말한 기사를 보며 웃은 적이 있는데, 실제로 김명민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오달수가 왜 그런 얘기를 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코믹 연기? 그런 용어는 없어요. 코믹, 스릴러, 멜로 등 영화의 장르를 나눌 수는 있지만, 연기를 장르로 나눌 수는 없으니까요. 공포 연기를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으악~! 이게 공포 연기인가요? 어떤 사람이 너무 화가 나서 밖으로 나가다가 화단에 걸려서 넘어졌다고 치자고요. 그 사람은 길 가던 사람에게 큰 웃음을 선물했겠지만, 원래 코믹한 캐릭터의 사람은 아니잖아요. ‘명탐정’을 연기하면서도 이 사람이 코믹한 캐릭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명탐정’이라는 사람은 한량 같은 허술함과 능청스러움을 무기로 탐정이라는 신분을 숨긴 채 수사를 해나가는 데 도움을 받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죠. 코믹해 보이는 것은 그의 무기일 뿐이죠. ‘명탐정’ 역할이 코믹한 캐릭터라고 생각했다면 이 연기를 시작도 못했을 거예요. 코미디 연기에 대한 부담감이 너무 크고, 오버를 하려고 들었을테니까. ‘아, 코믹 연기를 어떻게 해, 유치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코믹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자신 없다고 엄살을 떨었지만, 김명민은 촬영장의 분위기 메이커로 소문이 자자했다. 한지민이 얘기한 대로 그는 막내 스태프의 이름까지 모두 외우는 다정한 남자였고, 촬영장에 웃음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유머 지상주의자였다. 촬영장의 분위기를 최고조로 이끄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김명민은 스스로 움직여 실현했다.
“매 작품을 통해 얻는 것이 많지만, 사람을 얻는 것이 첫째죠. <조선명탐정>을 통해 달수 형을 얻었고, 지민 씨를 알게 됐고, 스태프들과 가족이 되었어요. 그들에게서 배우는 게 정말 많아요. 특히 막내들은 거의 용돈정도만 받고 일하잖아요. 저들이 나중에 5년, 10년 후에 한국 영화를 짊어질 역군이 된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져요. 하루, 이틀 밤을 새우면서 고생을 해도 그 열정이 식지 않은 채 각자의 포지션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 그 모습 자체가 정말 감동적이에요. 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라는 직업인 게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고, 저를 비춰주는 그들이 너무 고마운 거죠. 감독님은 저 멀리서 모니터를 보고, 실제로 조명기를 들고 제 얼굴을 비춰주는 건 막내들이잖아요. 제가 급한 용무가 생기거나 의문이 생겼을 때 물어볼 수 있는 친구도 제 바로 옆의 막내들이고요. 그때 제가 ‘야야, 거기, 어이’ 이렇게 묻는 것과 ‘태호야, 정민아’라고 부르는 것은 완전히 다르죠. 그게 눈에 안 보이지만 촬영장에 에너지를 심어주는 거예요. 아주 작지만 그런 것들로 인해서 활기가 막 도는 거죠.”
김명민이 원하는 것이 분위기 좋은 촬영장만은 아니다. 그는 쉬는 시간에도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내고 감독님과 상의하는 창조적인 남자다.
“배우도 예술가에 속한다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창조해야 하니까요. 제가 할 줄 아는 캐릭터를 반복해서 연기하는 건 재미없잖아요. 다른 캐릭터, 또다른 캐릭터를 계속 만들어가면서 배우로서 만족을 느끼는 거죠. 그게 첫 번째고. 그것을 보고 손뼉쳐주고 응원해주는 관객에게 힘을 얻어 그 다음 창조 작업으로 가는 게 배우의 두 번째 만족이에요. 창조 작업을 게을리하면 그만큼의 질타가 오는 거고요. 쉬운 것 같진 않아요.”
김명민이 새롭게 창조해낸 ‘명탐정’은 어떤 피사체일지, 자못 기대가 된다.
- 에디터
- 박훈희
- 포토그래퍼
- 박지혁
- 스탭
- 헤어 | 윤성희(김명민, 라떼뜨), 태양(한지민, 제니하, 메이크업 | 정민(김명민), 성희(제니하우스), 스타일리스트 | 김봉법(김명민), 고민정(한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