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에디터의 모피 쇼핑기
이번 겨울은 모피의 르네상스라 할 만하다. 고급스러운 밍크부터 인조모피까지 겨울날의 외출에 동참했다. 주머니 사정이 뻔한 초보 에디터가 어떻게 하면 예쁘고 가격도 착한 모피를 살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러 패션하우스의 2010년 가을/겨울 프레젠테이션이 한창이던 어느 날, 샤넬의 얼음 궁전에서 북극곰을 연상시키는 의상을 만났다. 온통 복슬복슬한 모피로 이루어진 팬츠와 부츠뿐만 아니라 모피와 함께 직조된 트위드 소재의 슈트까지! 거대한 양의 모피가 투입된 샤넬의 컬렉션에서 그 어마어마한 양보다 놀라웠던 것은 이 모든 게 ‘인조 모피’라는 것. 마크 제이콥스 역시 모피로 유혹적인 컬렉션을 만들어냈다. 그가 선보인 모피와 시퀸이 어우러진 토트백, 눈송이 같은 모피 방울이 장식된 투웨이백을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는 여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다른 색상의 모피, 혹은 모피와 가죽을 패치워크한 코트나 짧게 깎은 모피 드레스 등을 선보인 펜디는 모피 컬렉션에 일가견이 있는 브랜드답게 우아하고 세련된 모피 룩을 내놓았다. 타쿤은 스웨이드, 벨벳, 자카드, 가죽 등의 다채로운 소재에 모피를 섬세하게 덧붙여 소재의 매력적인 조합을 끌어냈다. 그 밖에 니트와 가죽, 레이스에 사랑스러운 모피 트리밍을 더한 디올, 생기 넘치는 블루, 핑크, 보라 등 컬러풀한 모피를 선보인 피터 솜, 볼륨 있는 색색의 타조털 드레스로 피날레를 장식한 소니아 리키엘까지! 수많은 패션하우스가 모피를 자유자재로 요리한 컬렉션을 분석하자면, 이번 시즌 모피 트렌드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다른 소재와 자유롭게 섞기, 탐스럽게 부풀리기 그리고 과감한 색상으로 물들이기. 이제 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다. ‘엄마들’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모피가 달라졌으니, 지금은 내게 맞는 모피 아우터 쇼핑에 나서야할 때. 먼저 가까운 선배들에게 이번 시즌 모피 쇼핑 계획을 물었더니, “토끼털이나 인조모피보다는 탐스러운 여우털 코트를 사려고”, “짧은 길이의 밍크 재킷을 생각하고 있어” 등 가지각색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무래도 사회 초년생인 데다 모피를 처음 구입하는 내가 참고하기엔 너무 먼 이야기이다. 그래서 젊은 감각의 모피를 제안하는 세 명의 국내 디자이너에게 이번 시즌 모피 트렌드부터 세련된 스타일링 노하우, 모피 관리법 등 모피에 관한 궁금증을 속 시원히 들어본 후 쇼핑에 나서기로 했다.
이유형(퓨어리 디자인 실장)
흔히 생각하는 밍크나 여우털 외에 또 어떤 종류의 모피가 있나요?
모피의 소재로 이용하는 동물은100여 가지가 넘지만, 통상적으로 80종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털의 종류에 따라 크게 밍크,세이블, 오소리 등 족제비과와 산고양이, 표범 등의 고양이과, 라쿤(너구리), 여우 등의 개과 몽골리안 램, 아스트라칸 등의 양과, 다람쥐, 친칠라 등의 쥐목으로 구분할 수 있어요. 보온성의 정도에 따라 설명하자면 가죽이 두꺼울수록, 털의 밀도가 높고 길이가 길수록 따뜻하답니다. 그래서 여우털이나세이블 등이 매우 따뜻한 편에 속하고 깎거나 뽑은 밍크보다는 가공하지 않은 밍크가 더 따뜻하죠.
품질이 좋은 모피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털의 밀도입니다. 털을반대결로 밀어봤을 때, 가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해야 좋은 털이죠. 또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할 점은 가죽의 상태입니다. 가죽이 부드럽고 신축성이 있어야 오래 입을 수 있답니다. 또 보통 암컷의털이 짧고 거칠지 않은 데다가죽이 얇고 부드러워서 보다 예쁜 실루엣을 연출하죠.
모피를 오랫동안 입기 위한 현명한 관리법은 무엇인가요?
모피는 습도 50% 내외, 온도 10도내외가 최적의 환경입니다. 습기가 많은 여름철에 인공 제습제를 넣어 보관하기도 하는데, 가죽이수축하거나 약해질 수 있기 때문에 이 방법은 옳지 않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면이나 실크 등 천연소재로 만들어진 옷 덮개를 씌운 뒤, 무향무취의 방충제와 함께 실온에 보관하는 것이죠. 습도와 냄새를위해서 참숯을 넣어두면 따로 보관소에 맡기지 않아도 됩니다. 단, 클리닝을 할 때에는 반드시 모피를전문으로 다루는 세탁 업체를 찾아야 합니다. 보통 밍크나 세이블의 경우에는 7~8년에 한 번 클리닝을 하는 게 좋고, 그 외의 소재는 내구성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별도로 확인해보아야 합니다.
유효진(지컷 디자인 팀장)
이번 시즌, 두드러지는 모피 트렌드는 무엇인가요?
짙은 밤색이나 검은색의 긴 ‘아줌마 모피 코트’는 이제 정말 옛날 이야기입니다. 밍크뿐만 아니라 여우, 토끼,양털 등의 다양한 소재를 사용해 재킷, 베스트에서부터 스누드, 롱 부츠, 핸드백까지다채로운 아이템으로 선보이고 있죠. 특히 한 가지 털 종류를 사용하지 않고 여러가지 모피를 그물망 형태의 판에 꼬아서 만든 모피 니트 종류가 인기를 끌고 있어요.
모피를 처음 구입하는 20대 여성이라면 어떤 아이템이 좋을까요?
아무래도 길이가 긴 코트류는 가격이 비쌀 뿐 아니라 잘못 입으면 나이 들어 보이기 때문에 부담스럽죠. 처음 모피를 구입하는 여성에게는 니트와 퍼가 섞인 베스트 스타일을 권합니다. 가격도 착하고 스타일링하기도 편하답니다. 베스트로 어느 정도 모피아이템에 익숙해진 뒤에는 짧은 길이의 재킷에 도전해보면 어떨까요? 길이가 길고 풍성한 느낌의 여우나 라쿤털 소재에 네이비, 와인 등 색감이 있거나 무늬가 있는과감한 아이템이 훨씬 젊고 세련돼 보입니다.
‘아줌마 스타일’을 탈피할 수 있는 스타일링 팁을 준다면요?
일단 모피 하나만 가지고 스타일링하려는 고정관념을 버리세요. 가죽 재킷에 퍼 베스트를 함께입거나 니트 카디건 위에 모피 재킷을 입는 등 과감하게 믹스앤매치하는 거죠. 모피자체가 볼륨 있기 때문에 하의는 스키니진이나 미니스커트로 길고 가느다란 실루엣을만들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강자경(제시 뉴욕 디자인 실장)
해외의 유명 패션하우스에서는 유난히 강렬한 색상의 모피를 선보였는데, 국내브랜드에도 그런 화려한 색상의 모피를 많이 선보이고 있나요?
이전에는 모피의원래 색감을 그대로 살리거나 톤 다운된 베이지, 회색 등이 주를 이뤘다면, 이번 시즌에는 모피 자체에 톡톡 튀는 색감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추세입니다. 특히 그러데이션 기법이나 불규칙한 컬러 블로킹 등으로‘색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디자인의 주된 요소로 자리 잡았죠.
털의 종류에 따라 어울리는 색상도 달라지나요?
토끼, 렉스, 양털 등 촉감이 부드러운 모피는 주로 여성스럽고 귀여운 느낌의 파스텔톤 컬러를 표현하는 데 쓰입니다. 여우나 라쿤 등 보다 길고 풍성한 느낌의 모피의 경우 강하고 비비드한 컬러를 써서 화려하고 섹시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또한 밍크의 경우, 진한 색부터 부드러운 색에 이르는 그러데이션 기법을 적용하면 고급스러우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개성이 강한 컬러 모피를 실패하지 않고 고르는 방법이 있나요?
과거 모피가 밍크나 세이블 같은 고급 소재로 만들어져 우아함과 고급스러움을 상징했다면, 이제는 캐주얼부터 클래식한 스타일까지 모두 아우르는 범용성을 갖추게 되었죠. 컬러 모피가 부담스럽다면 그러데이션 기법의 모피 베스트를 추천합니다. 빈티지 데님이나 원피스에 양털 부츠와 매치해 매력적인 히피룩을 연출할 수 있죠.
인터뷰가 끝나자 모피 소재의 종류부터 트렌드, 보관법에 이르기까지 막연했던 지식이 ‘모피 백과사전’을 정독한 듯 또렷해졌다. 본격적으로 쇼핑에 나서기 전, 먼저 사고 싶은 모피 제품을 구상해보았다. 고가인 밍크보다는 여우, 라쿤, 토끼털 소재에 짧은 재킷이나 베스트 스타일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체에 비해 상체가 마른 편이고 특히 팔이 가느다란 편이어서 체형의 장점을 부각할 수 있는 디자인을 고를 예정이다. 예산은 1백만 원 안팎, 되도록이면 1백만 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해결할 생각이다. 처음으로 구입하는 모피제품이니까 하나로도 충분히 멋을 낼 수 있는 디자인이어야 하겠다.
첫 번째로 약간 바랜 듯한 카키색이 멋스러운 쟈딕앤볼테르의 라쿤 재킷을 입어봤다. 색감도 멋지고 거칠고 풍성한 털의 느낌도 좋다. 니트 조직처럼 짜여 있어 무엇보다 가볍고 따뜻하다는 게 장점. 하지만 소매가 너무 길고 상체가 부해 보여서 마른 상체가 돋보이지 않는 점이 아쉬웠다. 그렇다면 상체를 강조하는 바이커 스타일의 재킷은 어떨까? 모피와 니트 소재가 적절히 섞인 아르마니 익스체인지의 재킷은 그런 면에서 체형을 돋보이게 했다. 인조 모피를 사용해 30만 원대로 가격대가 착한 점도 매력적이다. 단, 모피보다는 니트의 비중이 높아서 한겨울에 입기에는 추울 것 같다. 커밍 스텝의 호피 무늬 재킷 역시 마찬가지. 호피 무늬의 여우털에 부분 부분 가죽을 덧대 과해 보일 수 있는 재킷을 한결 젊고 감각적으로 연출한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만, 얇은 두께 때문에 조금 망설여졌다. 유달리 호피 무늬가 유행이라 많은 브랜드의 매장에서 호피 무늬의 아이템을 볼 수 있는데, 백이면 백 입자마자 급격히 나이가 들어 보이는 문제가 생긴다.
많이 입어보고 내린 결론은 규칙적인 무늬보다는 불규칙적인 무늬가, 털이 긴 모피보다는 짧은 모피 종류가 더 젊어 보인다는 것. 그래서인지 아날도 바시니의 밍크 후드 재킷은 유달리 탐나는 제품이었다. 밑단에 스트링이 달려 있어 캐주얼한 느낌으로 연출할 수 있고 어두운 회색 톤이라 이너웨어를 매치하기도 훨씬 수월하다. 문제는 3백만 원이 넘는 가격. 아쉽지만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야 했다. 마음에 쏙 들지만 가격 때문에 다음을 기약한 의상이 또 있었는데, 바로 질 스튜어트의 여우털 베스트다. 유달리 녹색 계열을 좋아해서 진한 초록색의 풍성한 여우털을 보는 순간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진초록색의 모직 소재와 가죽, 모피가 어우러진 소재의 조화도 멋스럽고 다양하게 레이어드해 입기에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예산을 두 배나 초과하는 가격이 문제라 일단 조금 더 둘러보기로 했다.
마지막까지 접전을 펼친 아이템은 바로 매긴의 여우털 재킷과 르샵의 벨트 장식 재킷! 매긴의 경우 진한 네이비와 캐멀, 흰색의 모피가 층층이 만들어내는 무늬와 풍성하고 탐스러운 질감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토끼와 여우털이 섞인 르샵의 재킷은 니트로 이루어진 소매 부분과 엉덩이를 살짝 덮는 길이, 허리를 잘록하게 만들어주는 벨트 장식이 돋보이는 디자인이다. 둘 다 예쁘지만, 아무래도 체형의 장점을 보다 잘 살릴 수 있는 르샵의 재킷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평소 치마보다는 팬츠를 즐겨 입기에 엉덩이를 살짝 가리는 재킷이 활용도가 더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어떤 쇼핑이든 쉽지는 않지만 모피 쇼핑은 유달리 까다롭다. 고가이기 때문에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고 무작정 카드를 내밀었다가는 후회하기도 쉽다. 가격을 낮추자니 성에 차지 않고, 유행을 좇자니 한철 입고 옷장속에 걸어두기엔 위험 수당이 너무 크다. 따라서 모피를 쇼핑하기 전에 반드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보길 권한다. 자신의 체형에 어울리는가,원하는 가격대인가, 주로 어떤 스타일의 이너웨어를 입는가, 어느 정도의 트렌디함을 원하는가 등으로 구분 지어서 머릿속 디자인을 명확하게 구상해보는 것이 좋다. 무작정 쇼핑에 나섰다가는 한번 제대로 입어보지도 못하고 옷장에 고이 모셔둘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잊지 말 것. 현명하게 체계적으로 따져본 뒤 집을 나서도 결코 늦지 않다.
SMART PRICE FUROU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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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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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진호, KIM WESTON ARNO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