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보헤미안 룩으로의 여행
스타일에도 ‘쉼표’가 있다. 자로 잰 듯 반듯한 미니멀리즘 룩이 몸과 마음을 꼿꼿하게 긴장시킨다면 자유분방한 감성이 서린 보헤미안 룩은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북유럽의 정취를 담은 노르딕 무드부터 고전적인 아메리칸 클래식 무드까지, 겨울 스타일에 낭만적인 쉼표를 찍는 보헤미안 룩으로의 여행.
서정적이고 자유로운 멋의 보헤미안 룩이 모직 코트, 니트 스웨터, 라이딩 부츠 등 겨울 클래식 아이템과 만나 한층 고급스럽고 세련되게 재탄생 했다. 향수 짙은 대지의 향기는 여전히 간직한 채로 말이다.
자본주의의 산업적 가치를 거부하며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갈망했던 1970년대의 히피 문화에서 비롯된 보헤미안 룩은 예나 지금이나 많은 디자이너의 영감의 원천이다. 규율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정신과 예술가적인 기질, 유랑하는삶 등 감성으로 충만한 그들의 성정은 매 시즌 새로운 모습으로 패션에 입혀진다. 이번 시즌 등장한 보헤미안 룩이 그 어느 때보다 매력적인 트렌드로 자리한 이유는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상반된 요소와의 신선한 어울림 덕분이다. 겨울 보헤미안 스타일의 공통분모로 꼽을 수 있는 손뜨개 니트와 거칠고 대담한 모피, 자연을 담은 패턴, 맥시 실루엣, 규칙 없는 스타일링 등의 특징은 이번 시즌 클래식 무드를 만나 한층 묵직해졌고 울, 실크, 새틴 등 부드러운 소재와의 극적인 매치는 낡고 오래된 느낌의 보헤미안 룩을 한결 우아하고 고급스럽게 변신시켰다. 거기다 이러한 근사한 보헤미안 룩을 걸친 2010년의 방랑자는 각 디자이너의 상상 속에서 겨울의 낭만과 서정을 만끽할 수 있는 세계 곳곳을 탐험하고 있어 그 매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추위에 꽁꽁 언 몸과 마음을 눈 녹이듯 녹인 대표 컬렉션은 북유럽으로 여행을 떠난 D&G였다.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눈꽃 무늬와 루돌프 무늬, 에스키모의 신발을 닮은 머클럭 부츠, 손뜨개 니트 스웨터, 서정적인 꽃무늬 시폰 드레스 등으로 버무려진 노르딕 보헤미안 룩은마치 설원을 뛰노는 소녀의 감성을 닮았다. 너무 어리게만 보일 수 있는 프린트 니트 의상은시폰 소재와 어울려 서정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미니와 맥시 실루엣이라는 상반된 매치로 스타일링의 재미를 더한다. 그 덕분에 한층 젊고 세련된 북유럽의 정취가 보헤미안의 DNA에 녹아들었다. 앙상한 나무를 무대에 세운 겐조 컬렉션은 언제나 그렇듯 보헤미안 룩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이번 시즌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향수 어린 감성이 짙게 드리워있다는 것. 낙엽과 꽃무늬가 그려진 맥시 드레스와 벨벳 케이프, 니트스카프 등을 걸친 모델들이 런웨이를 걷기 시작하자 앙상하기 그지없던 나무들은 하나둘 꽃을 피우듯 살아났다. 또 프린트 의상 위에 걸친 큼직한 모직 코트와 니트 카디건, 클래식한 페도라, 모피 액세서리 등은 겨울의 온기를 불어넣으며 겐조의 보헤미안들을 한층 성숙하게 변신시켜놓았다.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에서 영감 받은 1970년대 룩을 선보인 피터 솜 컬렉션에서는 한층 여성스러운 보헤미안 룩을 만날 수 있다. 다채로운 프린트의 하이웨이스트 스커트, 잘록한 허리를 강조한 벨트, 색감이 풍부한 모피 코트 등으로 스타일링의 규칙을 배제한 룩을 선보인 피터 솜은 보헤미안의 자유분방한 정신을 제대로 표현해냈다. 특히 시퀸 장식의 재킷과 스커트처럼 톡톡 튀는 매력의 아이템들은 마치 록 음악을 연주하는 듯 모델의 워킹에 맞춰 경쾌하게 움직였다.파리 그랑 팔레에 거대한 빙산을 세운 샤넬 쇼는 북극으로의 여행길로 안내했다. 한 마리 북극곰을 연상시키는 모피 풀오버를 시작으로 트위드와 모피를 엮은 코트와 점프슈트를 지나눈의 여왕을 연상시키는 눈꽃송이 모양의 화이트 니트 룩으로 끝을 낸 샤넬 컬렉션은 얼음장 같은 북극에 나타난 클래식한 보헤미안을 감상하는 듯한 기분을 선사했다. 칼 라거펠트는 단순한 북극으로의 여행이 아닌 쇼에 등장한 모든 모피에 인조 모피를 사용함으로써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자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랄프 로렌은 아메리칸 클래식 무드를 담은 보헤미안 룩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꽃무늬 시폰드레스와 낡은 듯한 느낌의 모직 재킷의 만남을 이토록 고혹적이면서도 고전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이 밖에도 니트 레이어링으로 한층 캐주얼한 보헤미안 룩을 연출한 랙앤본, 프린지 장식이 달린 커다란 울 케이프 등으로 유목민의 감성을 드러낸 운더킨드, 니트 스웨터에 프린지 팬츠를 매치한 룩으로 텍사스에 살고 있는 모던한 보헤미안을 떠올리게 한 클로에, 1970년대 히피룩을 기하학적인 패턴과 간결한 실루엣으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마르니 컬렉션 등은 제각기 다른 콘셉트로 겨울 보헤미안의 낭만적인 선율을 노래했다.
보헤미안 룩이 여름보다 겨울에 더 근사한 이유는 레이어링 연출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더더기 없는 딱딱한 스타일에 싫증이 날 때에는 감성을 느긋하게 만드는 손뜨개 니트스웨터나 부드러운 모피 코트, 눈꽃 무늬패턴 아이템, 프린지 장식의 액세서리 등을 활용한 겨울 보헤미안 룩을 연출해보길. 이때 클래식한 캐멀색 케이프 코트나 실크 블라우스, 울 페도라 등 보헤미안 의 자유분방함을 살짝 누르는 아이템으로 강약을 살린 레이어링에 도전해야 이번 시즌의 서정적인 보헤미안 룩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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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박선영
- 포토그래퍼
- Photo / KIM WESTON ARNO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