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서른이 코앞인데 보드를 타고 싶어졌다. 무릎에 상처가 남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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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롱보드 댄싱이 유행했을 때 막연히 해보고 싶었지만 생각으로 그치고 말았다. 그러던 내가 이제 와서 크루저보드를 산 건 워너원의 멤버들이 한강 공원에서 보드를 타는 사진을 보고 나서였다.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스케이트보드 타고 싶다’고 슬쩍 말을 흘렸고, 그녀는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냉큼 그 이야기를 물었다. 그 말을 꺼내고 일주일도 채 안 되어서 우리는 함께 보드를 사러 갔다.

위시리스트에 올려둔 건 롱보드였다. 댄싱에 대한 열망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데크 위에서 좀 사뿐사뿐 걸어줘야 멋이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욕심을 안고 보드숍으로 향했지만 정작 사서 들고 나온 건 크루저보드였다. 롱보드와 크루저보드의 가장 큰 차이는 데크의 길이로, 롱보드는 길이가 110~125cm이고 크루저보드는 55~66cm이다. 크루저보드는 작고 가벼워 들고 다니기 쉽지만 롱보드는 길고 무거워 이동이 불편하다. 보드숍의 사장님 역시 롱보드를 타려면 데크를 들고 나가야 하는데 크루저보드는 가벼워서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탈 수 있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또 방향 전환이 민첩해서 인파가 많을 때 타기에도 적절하다. 애초에 길거리를 다니며 크루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보드이기 때문이다. 반면 롱보드는 라이딩 스타일에 따라 데크의 모양이 약간씩 달라지며 크루징, 댄싱, 프리스타일 등 본인이 타고자 하는 스타일에 맞는 보드를 고르면 된다. 그래서 초심자 입장에서는 바로 롱보드에 입문하는 게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졌다. 댄싱을 하기까지는 오랜 시간 연습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전에 보드 자체에 흥미를 잃을 내 자신이 너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욕심을 버리고, 일단 크루저보드를 타면서 보드와 좀 더 가까워지기로 했다. 드디어 내가 탈 보드를 고를 타이밍! 보드를 살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모양과 디자인이다. 한마디로 ‘멋’. 예뻐야 가지고 다니고 싶고, 타고 다니고 싶어지는 것. 크루저보드가 모여 있는 코너에서 바로 눈에 들어온 건 스마일이 그려진 노란색 보드였다. 화사한 노란 데크에 노란 바퀴를 골랐더니 숍에서 뚝딱뚝딱 보드를 조립해주었다. 아직 타지 못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졌다. 아, 소비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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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드를 산 숍에서는 매주 일요일 오후 2시에 무료 강습을 연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숍 앞이 사람으로 가득 찬다. 롱보드나 스케이트보드, 크루저보드 등 각자 자신이 타는 보드를 끌고 나오면 강사들이 간단한 설명을 해주고, 연습을 하다가 안 되는 건 물어볼 수 있다. 크루저보드를 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게중심을 앞으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게중심을 뒤에 두면 뒤로 넘어질 확률이 높은데, 그건 앞으로 넘어지는 것보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보드를 타는 건 이론상으로는 쉽고 간단하다. 한쪽 발을 데크에 올리고 다른 쪽 발로 몇 번 땅을 구르다가 그 발을 바로 데크에 얹은 후, 먼저 올라가 있던 발을 옆으로 돌려 보드 옆을 바라보고, 그대로 타면 된다. 그 자세로 몸의 균형을 맞추고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거다. 앞에 오는 발, 그러니까 먼저 올릴 발은 왼발, 오른발을 번갈아 올려보고 더 안정적인 쪽으로 정한다. 주행이 익숙해지면 좌우로 빠르게 중심을 이동하며 속도를 붙이는 방법을 연습해야 한다. 이를 펌핑이라고 하는데 무게중심을 보드의 좌우로 이동시키면서 턴을 급격하게 하면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나는 처음 한 번만 숍에서 타는 법을 배운 뒤 네이버 블로그와 유튜브 등을 통해서 강습 동영상을 봤다. 사실 타는 방법, 즉 이론이 어려운 건 아니었다. 머릿속으로는 알겠는데 행동으로 옮기는 게 어려울 뿐이다. 해마다 겨울이면 타는 스노보드의 연장선일 거라고 여기고 만만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막상 연습을 하고 보니 느낌 자체가 달랐다. 눈에서 넘어지는 공포와 땅에서 넘어지는 공포를 비교하면 후자가 압도적이었다. 무릎을 깰 수도 있다는 말을 더 이상 웃고 넘길 수 없었다. 겁이 별로 없는 편인데도 땅 위에서는 자꾸만 몸을 사리게 됐다. 아니면 혹시 나이 때문일까? 나이를 먹고 겁이 늘어서? 그게 무엇 때문이든 그 겁이라는 게 쉽사리 없어지진 않았다. 겨우 두 발을 땅에서 떼고 보드 위에 올라타는 것까진 할 수 있게 되었다. 미약하지만 두 뺨을 스치는 바람이 느껴질 때는 이게 보드 타는 재미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가 보드를 타는 속도는 아직 거북이 기어가는 수준이다.

이 글을 쓸 때쯤이면, 자유자재로 보드를 가지고 놀고 있을 줄 알았는데 우리 사이는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나는 아직도 나의 크루저보드와 친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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